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한 이래, 가톨릭을 넘어 온 세상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이 땅을 찾아 그가 전하고 간 유언·무언의 메시지들은 그 바람을 거스르기 어려울 것임을 우리 종교계와 사회에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로마로 돌아간 그는 실제로 얼마 전 교황청 내 보수 강경파의 선두인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66)을 세속국가의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교황청 대심원장 직에서 해임하고, 추문에 휩싸인 고위 성직자를 구금하는 등 구체적인 개혁조치들을 보여주고 있다.국내 교회에도 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지난 11월
일본인들 중에서도 이제는 일왕(天皇)은 ‘인간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지 않겠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대(代)가 끊어진 적이 없는 신의 아들’이라는 엉터리 신화를 위해서라도 다음 왕이 될 사람은 성(性)적으로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히로히토가 열다섯 살 때에 아버지 다이쇼(大正) 천황은 자신의 젊은 후궁을 아들의 거처로 보내 아주 인간적인 점검(?)을 한 적이 있다.“그 여자가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곧이어 성인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성 폭행범을 살해하였다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하여, 지난 10월25일 사형이 집행된 스물여섯 살의 이란 여성이 남긴 유서에서 ‘진심으로 어머니가 내 무덤에 와서 울고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나는 이 책 ‘정절의 역사’에서 마주친 조선 여성들을 떠올리며 ‘여자로 태어나는 죄가 이리 무거운가?’ 자문(自問)하였다.정절(貞節)은 조선시대 이 땅의 여성들이 짊어져야 했던, 그리고 아주 최근까지도 안고가야 했던 무거운 짐이다. 본래 ‘정절’은 지극히 개인적인 덕목이지만, 조선시대의 시공간(時空間) 상황이 이것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다른 가족관계에 비해 훨씬 더 폭발적인 사회·정치적 의미를 가진다”고 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상의 여러 인간관계 중에서 피(유전자)를 나눈 아버지(어머니)와 아들(딸) 사이보다 더 가까운 곳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였던 영조와 그 아들 사도세자의 경우와 같이,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면서 아주 극단으로까지 치달았던 사례는 동서양 역사에 숱하게 많았고, 가까이는 1995년 초 대학교수 아들이 재력가 아버지를 무참하게 살해
물리학자 양형진은 책으로 처음 만났고 5년 전에는 모 신문사 대담자로 그를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행운도 누렸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에게서는 자연과학자의 냉철함보다는 따뜻한 수행자의 향훈(香薰)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대학 1학년 교양강좌에서 고(故) 서경수 교수를 통해 불교를 만난 이후, 선(禪)과 교(敎)에 걸친 지식을 두루 쌓고 참선 수행도 놓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직접 들었다.그에 따르면 우리가 그냥 당연한 듯이 여겨왔던 일들, 예를 들어 “우리 눈이 푸른빛을 감지할 수 있게 된 것도 또한 간단히
아룬다티 로이는 그녀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통해 처음 만났다. 그 덕분에 인도 문학에 관심을 갖기도 하였는데, 이 작가가 환경 운동의 여전사(女戰士)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소설가라 감성에 치우치고 독설만 퍼붓지 않을까’ 짐작했었지만 근거자료를 들어가며 차분히 주장을 편다.그가 말한다. [대형 댐 공사 건설이 진행되는] “나르마다 강 유역에 관한 이야기는 현대 인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토의 공습 중에 베오그라드 동물원에 있던 호랑이처럼, 우리는 제 살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맞다. 세상 곳곳에
정민은 뛰어난 학자이며 작가다. 독서의 깊이와 넓이도 엄청나지만 그의 글에는 독자들을 빠져들게 하는 매력(또는 마력)이 있다. 해서 그의 책은 한 번 손에 잡으면 쉽게 놓기 어렵다.이런 그가 어딘가에 미쳐서 일가를 이룬[狂而及] 사람들의 자취를 더듬어, 나 같은 보통사람들도 알 수 있게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거기에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이라고 멋진 제목을 달았다. 그럼, 미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잊는다[忘]는 것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해서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학생들에게 사실만을 가르치시오.…사실 이외에는 어떤 것도 심지 말고 사실 이외의 모든 것을 뽑아 버리시오.…이것이 내가 내 자식들을 키우는 원칙이고, 이것이 내가 이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원칙이오.” 사립학교 설립자 겸 교장으로 나중에 의회의원이 되는 그래드그라인드 씨의 엉터리 교육철학 연설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한편 이 사람과 짝을 이루는 바운더비 씨는 “은행가, 상인, 공장주 등등.…자신이 자수성가했음을 아무리 자랑해도 부족한 사람. 놋쇠로 된 트럼펫 같은 목소리로 옛날 자신의 무지와 가난을
2004년 12월30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나이트클럽에 큰불이 났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이자 추기경인 호르헤 베르골리오(뒷날 프란치스코 교황)가 가장 먼저, 소방 공무원들이나 구급차보다도 빨리 도착하였다. “몸에 불이 붙은 채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의 옷을 조심스레 벗기고, 놀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이처럼 그는 가난한 사람, 곤란을 겪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었다.”이번에 한국을 찾는 세계 가톨릭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일화다.(본
이 ‘시간과의 경쟁’은 서울대에서 ‘연구실 불이 가장 늦게 꺼진다’는 소문과 함께 ‘제자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켜서 그 앞에서 모두 벌벌 떨게 된다’는 평을 받았던 고(故) 민두기 교수의 연세대 석좌교수 1년 강의 내용을 엮은 책이다.책 제목은 아마 “일본과 중국은 시대적 과제의 표현에 있어 두드러지게 차이가 났지만 서로 닮은 점도 있다. 두 나라가 그 시대적 과제를 추구함에 있어 몹시 조급하여 역사의 시간과 숨 가쁜 경쟁을 했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부·강(富와 强)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눈앞에 잇따라 다가오는 망국(亡國;
이 책을 19년 전인 1995년 3월10일에 사서 그 봄이 가기 전에 다 읽었다. 가끔 몇몇 구절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냥 그렇게’ 지내며 먼지 묻은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싶을 정도로 내 가슴에 인상을 깊이 새겨놓은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책장을 샅샅이 뒤져서 이 책을 찾아내 먼지를 털게 된 데에는 어느 인사의 공이 크다. 그 인사가 ‘조선 민족이 게으르고 그래서 일제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으로 했던 과거 자신의 발언은 자기 ‘얘기가 아니고 영국 비숍 여사의 기행문에 나온다’고 해명하는 것을 언론에서 보고, ‘정말 그
김규항은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B급 좌파’를 자처하고, 또 그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주목하게 된 것은 그에게 붙은 이 꼬리표 때문이 아니다. “예수를 ‘대제사장이든 로마 총독에게든 무턱대고 반말을 하는 사내’로 그리는 건, 게다가 그런 예수에게 대제사장과 로마 총독이 존댓말을 하는 것처럼 그리는 건 대단한 왜곡”이라고 보는 그의 예수관(觀) 덕분이다.나도 오래 전부터 ‘반말 하는 붓다는 상상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말과 글로 여러 차례 펼쳐왔던 차라, 마치 오랜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웠던 것이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