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의 남동부를 마주보고 인도양 한가운데 떠있는 섬이 하나 있는데 이 아름다운 섬은 모리셔스라고 불린다. 330Km에 이르는 아름다운 백사장은 산호초들로 장식되어 있고, 활동을 멈춘 화산의 분화구들이 드넓은 평원에 흩어져있다. 또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와 강물, 폭포들은 이 곳을 진정한 낙원으로까지 보이게 한다. 아랍인들이 이 섬을 방문한 것은 10세기였다고 전해지며 그 후 포르투갈 출신의 항해사 페드로 마스카레나가 1505년 이 섬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후 이 섬은 1638년에서부터 1710년까지 네덜란드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이어 프랑스에 의해 통치되었다. 1814년 파리조약에 따라 프랑스는 섬의 통치권을 대영제국에 넘겨주었다. 이 섬이 마침내 독립을 이룬 것은 1968년으로, 포트 루이즈
“내가 성스러운 달라이라마를 생각해볼 때 나는 끝임없이 그녀를 생각하게 된다 한 몸으로 이 세상에 와서 살다 갈 때 나는 부처님처럼 되고 싶다 -창양 가쵸, 제6대 달라이 라마- 제6대 달라이 라마 창양 가쵸(내가 가장 좋아하는)는 1683년 3월 1일 인도의 북동부 아루나찰 프라데시라는 주(州)에 위치한 타왕 사원의 근처에서 태어나셨다. 그리고 그는 1706년 11월 14일 중국으로 향하던 길에 세상을 떠나셨다(아마도 살해되셨던 것 같다). 짧은 생애 동안 그는 사원 밖에서나 안에서나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티벳의 종교적, 세속적인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자였고, 음주를 즐겼으며, 시를 쓰고, 이성적인 사랑을 알았던 분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친구와 같았던 그는, 그의 그런
유점사는 신금강에 위치한 금강산 4대 사찰의 하나로 창건연대가 확실히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이 사진첩에서는 신라 2대 남해왕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동국여지승람』에서는 “53부처가 무쇠종을 타고 월씨국(月氏國)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와서 포구에 닿았는데 노춘(盧春)이 관속과 함께 찾아 나섰다가 결국 이 곳에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유점사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또 846칸의 건물이 있었다고 밝혀 금강산 최대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능인보전(能仁寶殿)은 이 절의 중심이 되는 법당으로서 절의 맨 위단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건물 앞에는 조선시대 9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광주지사=김경태 지사장
투바에 머무는 동안 나는 내몽고에서 온 불자 사업가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그날 밤 나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 현재 중국의 자치구인 내몽고 내의 불교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자면 과거에는 내몽고 지역에 무려 700여 개의 사원이 있었지만 오늘날 남은 불교 사원은 단지 27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스탈린의 소위 ‘해방운동군(도대체 무엇으로부터 해방한다는 건지…)’과 특히 중국 문화혁명은 내몽고를 완전히 황폐화시켜 버렸다. 티베트나 신장 지역과는 달리 내몽고의 관계 당국은 이러한 대대적인 파괴 이후 불교 사원을 재건하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많은 수의 중국 한족이 이 곳으로 유입되면서, 특히 도시에서 한족들과 이곳 몽고인들간의 통혼이 이루어
한때 소련의 1급 비밀 해군기지였던 블라디보스톡은 바깥 세상에 문을 내린 채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톡이 문호를 개방한 이후, 이 곳은 러시아에서 극동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어 끊임없이 발전해나가고 있다. 수백년 동안 블라디보스톡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끝나는 철도의 동쪽 종점으로서 유명했으며, 오늘날 이 유서깊은 기차역은 재건되어 과거의 화려한 모습을 되찾았다. 도시의 이곳 저곳을 둘러본 후, 나는 멋진 기차 여행을 경험해보고자 시베리아 횡단 열차표를 사기로 결심했다. 오후에 드디어 그 유명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라탔다. 러시아인 사업가와 영국에서 온 관광객 남녀를 만나 여행 내내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이 기차 내에서 해야만 하는 일은 그저 편안하게 쉬는
스리랑카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 나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대부분 바위 위나 동굴 내부에 사원을 세웠다는 것을 발견했다. 담불라 (Dambulla) 지역에 위치한 유명한 동굴 사원들은 스리랑카 사람들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지고 있는 이러한 독특한 스타일을 잘 표현한 훌륭한 예가 아닐까 싶다. 다섯 개의 동굴 사원에 가려면 바위를 다듬어 만든 150 미터 높이의 계단을 올라가야만 한다. 이 곳 사원들의 인테리어는 불교 미술의 조각과 그림에 있어서 걸작품들이라 할 수 있는 것들로 장식되어 있다. 우리는 동굴 안에서 부처님을 그려 놓은 그림들을 150여 점 넘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스리랑카로 꽤 여러 번 여행을 다녔고 매번 120만 인구가 거주하는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인 콜롬보를 방문할 때면
최근 발생한 해일로 태국에서만 5384명이 목숨을 잃었고 3000여명 이상의 사람들, 그 중에서도 1000여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실종됐다. 최근 한국 내 태국 관광청의 초청으로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푸켓섬을 방문하게 되었다. 텔레비전에 비친 끔찍스러운 해일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감을 못 잡은 채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러다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펜과 카메라로 해일이 심하게 덮친 나라들을 방문하고 그 곳에 대한 기사를 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푸켓에서처럼, 작은 수입에 의존해 사는 현지인들은 생계의 대부분을 관광업에 의존해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잃은 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로 좋은 일은 아마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
승무원이 비행기 문을 열자마자 들어오는 습하고 더운 공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와타니 공항 밖으로 나와 25년 된 지프차를 타고 시내까지 들어갔는데 그 곳까지 가는 동안 이 차는 아스팔트 곳곳에 구덩이들이 파져 있어 매우 덜컹거렸다.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에는 약 3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외관상으로는 토네이도가 지나가고 난 후 잠들어 버린 조용한 마을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럽에서부터 18시간이라는 장시간의 비행 후에 도착한 이곳은 숨을 돌리고 휴식을 취하기에는 완벽한 장소였다. 다음날 아침, 라오스의 상징과도 같은 파 탓 루앙을 들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곳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이 곳 지폐의 뒷면에 그려져 있기도 한 곳이었다. 탓 루앙으로 가는 길에
세계에서 불교와 관련된 유적지들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파키스탄이다. 대승불교와 불교 예술이 싹튼 곳도 바로 이 곳의 간다라(Gandhara) 지역이었다. 한국과 일본에 최초로 불교를 전해 준 스님께서 태어나신 곳 또한 초타 라호르(Chota Lahore) 지역이었으며 그에 의해 384년 실크 무역이 이루어지던 길을 따라 한국에 불교가 도래할 수 있었다. 한편 가장 유명한 스투파도 이 곳 간다라 지역에서 세워졌다고 한다. 초타 라호르는 지리적으로 파키스탄 북서 접경지대 근처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의 주도는 오늘날의 페샤와르(Peshawar)이다. 과거에는 ‘신의 땅’을 의미하는 푸르샤푸라(Purushapura)로 불리었다. 인간과 동물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들이나 바위에 조각된 암각화를 포함해 140여
몇몇 불교 서적들에 따르면, 어느 날 부처님께서 식사를 마치신 후, 그가 머무시던 사원을 걸어 나오시다가 갑자기 숲을 향하시기 시작하셨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당시 근처 숲 속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 그 곳은 공포스러운 앙굴리말라(Angulimala)가 사는 매우 위험한 곳이라고 말씀드리며 들어가는 것을 말렸다. 사실 당시 앙굴리말라에 관하여 세간에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고 단지 그가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고 유명한 탁실라 불교 대학(Taxila Buddhist University)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다는 사실만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다. 이토록 장래가 총망하던 젊은이의 운명에 비극이 일어났다. 그의 총명함에 시기심을 품은 다른 학생들은 그들의
조계종 총무원은 12월 20일, 성탄절을 앞두고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조계사 앞마당에 걸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나팔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오렌지색 승복을 차려 입은 스님들의 긴 행렬이 지나가고, 티베트 전통 예복을 차려 입은 여인네들이 벽면에 크게 ‘티베트 중앙 학교(Tibetan Central School)’라고 쓰여있는 건물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시야가 들어오는 곳곳마다 사원들이 우뚝 서있는 이곳은 만약 한낮에 내리쬐는 강한 햇살만 아니었더라면 티베트의 한 마을에 와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할 것 같다. 나는 지금 인도 남부의 카르나타카(Karnataka) 주(州)에 만들어진 도굴링(Doeguling) 티베트 난민촌에 와 있다. 이곳에는 1960년 이후로 티베트인들이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데, 1959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후 수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인도 전역으로 몰려 들어왔다. 인
112개 동굴에 화려한 불교 벽화 일부 학자 제외하곤 방문객 없어 쿰투라(Kumtura)라고 불리는 동굴의 불교 유적에 대해 들어 본적이 있는가?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중국 북서부의 고비 사막 끝자락에 있는 둔황(Dunhuang)의 동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곳의 경치가 매우 아름답고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불교 유적이 있다는 말에 잠시 그 곳에 들르기로 결심했다. 고비 사막의 오아시스 주변으로 정착한 사람들에 의해 생긴 마을인 둔황은 중국에서 지중해 지역에 이르는 7000 킬로미터의 기다긴 실크로드를 따라 형성된 마을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교차로로서의 역할을 했다. 이 길을 따라 실크나 옥, 향신료 등이 운반되고 거래되었음은 물론이고 동서양간의 문화
“저 한 사람의 단식으로 포항시가 서로 화합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고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대한불교청년회 전 회장인 전안호 포항 죽림사 신도회장이 종교편향대책위원회 주관으로 12월 6일 오후 5시 열린 포항시장의 기관장 홀리클럽 탈퇴에 관한 기자 회견 직후 시청 정문 앞에서 단식에 들어갔다. ‘포항시장의 기관장 홀리클럽에서 즉각 탈퇴하라’는 글귀를 적은 부스 안에서 단식을 하고 있는 전 회장은 「법보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장식 포항시장은 하루 속히 특정 종교가 아닌 모든 시민의 시장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하면서 “범불교도 대회가 열리는 12월 15일까지 포항시장의 홀리클럽 탈퇴를 촉구하는 단식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지사=김영각 지사장 dolgore@b
예상했던 대로, 중국은 달라이라마께서 러시아를 방문하고자 하는 계획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몇 번씩이나 비자를 거절한 후에서야 달라이 라마께 비자를 내주었다. 3년전, 러시아 정부는 달라이라마께서 요청하신 경유 비자 내주기를 거절했고 그 때문에 달라이라마의 몽골 방문 일정은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불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고 있는 부랴티아(Buryatia), 칼미키아(Kalmykia), 투바(Tuva) 지역을 방문하실 수 있기를 오랫동안 계획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중국 정부의 심한 압력이 계속되지는 못해서 이번에 달라이라마의 러시아 방문이 성사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달라이라마를 뵙고 말씀을 듣기를 고대했던 수많은 불자들은 짙은 눈보라가 휘날리는
2005년 새 임원진 구성…본지 이학종 부장 공동의장에 한국종교신문언론인협의회(대표의장 하춘생)가 11월 27일, 28일 이틀간 경기도 양평 한화리조트에서 ‘제8회 종교신문언론인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한국종교신언론인협의회는 이날 사회 각 분야의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에 대해 종교신문 언론인들이 화해와 평화의 정신으로 사회갈등 해소와 국민통합, 민족의 화합과 통일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며 결의문을 채택 발표했다. 이들은 ‘정치권의 정쟁 중지’와 종교지도자들이 무분별하게 정쟁에 휘말려 국론분열과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모습에 우려를 표시하며 ‘종교지도자들의 정치적 발언 중지와 종교 본연의 자세 회복', 종교간 대화를 통한 평화적 사회 실현을 염원하며 ‘종교간 화해와 평화실현 노력
조계종 중앙신도회 손안식(법명 영산) 상임부회장이 참여불교재가연대가 제정한 올해의 재가불자상을 수상했다. 손안식 부회장은 1968년 청담 스님을 계사로 오계를 수지한 후, 82년 조계종 전국신도회 사무총장, 2004년 중앙신도회 상임부회장 등을 맡아 신행활동을 해 왔다. 시상식은 11월 27일 우리함께회관 법당에서 개최됐다.
오늘 날 호주에서의 불교는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종교라고 한다. 실제로 불자의 수는 지난 10여년 동안 300%나 증가해서 현재 그 수는 2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기독교 보다 500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이슬람보다는 1000년이나 이전에 시작된 고대 종교인 불교가 호주의 현대 사회에서 활기차게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호주 전역에 걸친 불교의 빠른 성장을 보면 불교가 갑작스레 유행이 되며 번진 듯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 이 넓은 땅 호주에 불교가 하루 아침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사실 몇몇 인류학자들은 불교가 호주에 백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정착해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공식 종교였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엘킨 (Elkin) 교수의 가설 중 하나에 따르자면 호주 북부 지역의 원주민
방콕에서 파로 (Paro)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을 때 운좋게도 창가 쪽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비행기가 두텁게 깔린 구름 아래로 고도를 갑자기 낮추자 짙푸른 숲으로 우거진 언덕이 창밖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의 한 장면 같았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언덕들, 녹음이 우거진 숲, 험한 계곡 사이를 흐르는 강들과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가옥들 때문에 마치 내가 스위스를 향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물론 벼가 익어가는 논이나 금빛 지붕의 졍(dzong: 일종의 수도원 겸 사원)만이 이 곳이 스위스가 아니라 부탄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정말 이국적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파로 (Paro)에
1997년 7월, 나는 운 좋게도 이미 세상을 뜨신 스님과 마주칠(?) 기회를 잡았다. 일본의 야마가타 현에 위치한 성스러이 여겨지는 세 개의 산으로 성지순례를 하던 중, 하룻밤 묵어가기 위해 쯔로우까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에 들리게 되었다. 우연히도 그 마을에는 미라가 된 스님들 중 한 분을 모신 사찰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약 열 여섯 분 내지는 스물 네 분의 스님이 이렇게 스스로 미라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사실 이러한 이상한 관행은 19세기 말에 법적으로 금지가 되며 더 이상 시행되고 있진 않다. 신곤 (Shingon) 종파와 같은 일본의 특정 불교 종파에서는 스님들로 하여금 고된 수행과 금욕을 하도록 하여 신체적 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예를 들어, 스님들은 때때로 한 겨울에 얼음 같은 물이 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