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상상해봅시다.어느 날 우리나라에 엉뚱한 사람들이 “여기 본래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땅이거든”이라면서 무단으로 들어앉았습니다. 밀쳐내려 했지만 강대국들이 떡하니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기에 억울하기는 해도 폭탄 맞고 싶지 않아서 그냥 견디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야금야금 땅따먹기 놀이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설마…”하며 그저 쳐다보기만 했는데, 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주요한 지점을 다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오히려 난민 취급하면서 모든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박탈하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온갖 가공할 무기를 동원해서 살육을 일삼고 있습니다. 상상도 이 정도면 수준 이하요, 얼토당토않은 내용이라며 비난받기 딱 좋습니다.
“초겨울의 짧은 해는 서산에 비켜섰다. 큰방 앞에서 객이 왔음을 알리자 지객 스님이 친절히 객실로 안내한다. 객실은 따뜻하고 감자밥은 꿀맛이다. 무척이나 시장했던 탓이리라. 진부 버스정류소에서부터 줄곧 걸었으니 피곤이 온몸에 눅진눅진하다.” 『선방일기』는 산사에서 첫날밤을 맞게 되는 선객의 노곤함을 간결하기 그지없는 문체로 시작합니다. 이맘때면 항상 이 책을 펼칩니다. 그건 아마 거두절미하고 들입다 시작하는 산사 첫날 풍경의 저돌적인 매력 때문일 것입니다. 세속에서는 온갖 잡무를 마무리하고 일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 술잔을 나누느라 연신 분주하고 술렁이고 흥청댈 텐데 그 인연을 다 털어버리고 헐헐한 기분으로 바랑 하나 메고 산사로 찾아든 선객의 심정을 짐작해봅니다. 하지만 동안거 석 달을 지내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12월이 되기 무섭게 안방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금종, 은종이랑 온갖 장식물을 매달고 겨우 내내 트리 밑에서 카드를 그리거나 캐럴을 부르고 동화책을 읽으며 지냈습니다. 물론 성탄절 전야에는 머리맡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자는 것을 잊지 않았지요. 적어도 내 어린 시절은 크리스마스의 환상으로 가득 하였습니다. 나보다 2년 먼저 서울로 유학 갔던 언니가 방학한 다음 날 집에 내려와서 이 한 마디를 던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산타가 진짜 있다고 믿었냐? 엄마 아빠가 산타였어. 이런 바보!” 혹시 뒤에 엄마라도 서계실까 살펴본 뒤에 천기누설이라도 하는 양 낮은 목소리로 들려준 그 말을 듣던 당시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설마 했었는데 그럴 줄이야. 엄마 아빠가 내 머리맡에
세상 사람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뉩니다.채찍질의 기미만 보여도 기수의 뜻을 감지하여 달리는 탁월한 말과 같은 사람. 채찍이 닿기 직전에 잘 달리는 좋은 말과 같은 사람. 채찍이 닿아야 달리기 시작하는 빈약한 말과 같은 사람. 채찍의 고통이 뼈에 사무친 다음에야 달리기 시작하는 나쁜 말과 같은 사람. 자기가 첫 번째 말에 해당한다고 자신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 번째와 네 번째 말에 해당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 자신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코가 석자나 빠져도 그게 위기인 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위인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분야에서 최고, 달인이 되고 싶은 생각을 마음 한켠에 가지고 있으니 이걸 기특하다고 해야 할 지 주제넘다고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제목은 물론이요, 표지사진마저도 황홀경에 빠져들게 하는 책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에서는 도서관과 박물관의 이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을 가리키는 영어단어 ‘Library’는 나무껍질을 뜻하는 라틴어 ‘Liber’에서 비롯했다. 나무껍질은 파피루스의 속껍질, 즉 책의 원료를 뜻하고, 책을 모아둔 컬렉션 또는 책을 보관하는 집을 라이브러리라고 한다.”(81쪽) “우리말로 ‘박물관’을 그대로 직역하자면, 온갖 잡동사니를 펼쳐놓은 시설 및 건물을 말하지만 박물관을 가리키는 ‘Museum’은 그리스어 ‘Museion(무제이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학예를 관장하는 아홉 뮤즈들의 전당을 지칭한다. 그곳은 과거의 신성한 지혜와 유산을 보존하는 성소이며, 동시에 옛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보존해
사람들에게 ‘불교’하면 아마도 가장 먼저 ‘보살’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합니다. 석가모니불보다 더 친근한 분이 관세음보살이고, 절에 다니는 여성들은 죄다 ‘보살’인데다, 주택가에 빨간 깃발을 내걸고 운명을 짐작해주는 집에도 여지없이 ‘00보살’이란 상호가 내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림짐작으로나마 ‘보살은 여자를 가리킨다’, ‘회색 몸뻬 바지를 입고 집보다 절에 가야 더 편안해하는 사람이다’, 또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신기가 내려서 점쳐주는 여자다’라고 단정을 내립니다. 이게 바로 대승불교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 ‘보살’에 대한 한국 사람들 이해의 현주소입니다. 게다가 불자들은 헷갈려 합니다. 우리가 그토록 엎드려 기도 올리던 관세음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문수사리보살이 실
순위 도서명 저자 펴낸곳1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월호 마음의 숲 당신을 사랑합니다 2 성철스님 화두참선법 원택 김영사3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월호 불광출판사4 행복한 사람들 김천 하얀연꽃5 아름다운 인생은 &n
보현행원품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과 신뢰는 좀 유별납니다. ‘전국민적’인 애정을 받는 금강경과는 달리 보현행원품은 마니아(mania)층이 따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나는 보현행원품을 처음 만났을 때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재미있는 예화도 없고, 기억하며 수시로 인용할 만한 문장도 눈에 띄지 않았으며, 전광석화처럼 내 무지를 단번에 날려버릴 교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사업 실패와 가정불화로 고민하던 끝에 보현행원품을 만나서 눈물을 흘리고 위안을 얻으며 다시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길고 긴 수행의 끝에 이 경을 만난 수행자는 얼음처럼 차갑게만 느껴지던 진리의 이면에서 더할 수 없이 따뜻한 온기를 발견하고 위로를 얻습니다. 그리고 출세간의 일방통행로에서 벗어나 아주 크게
2008년 11월5일 우리나라 시간으로 낮 1시 조금 지났을 때 미국 CNN방송에서는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버락 오바마가 당선 확정되었다는 자막을 띄웠습니다. 뭔가 찌릿한 게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고 화면을 보면서도 ‘정말? 정말?’하고 되물었습니다. 미국은 대권에 도전하는 후보자들에게 신앙간증에 가까운 종교적 신념을 묻습니다. 특히 정치 세계에 종교색이 짙게 가미된 것은 현 대통령인 조지 부시 시대부터라고 합니다. 조지 부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이 내가 대통령이 되길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쉽지 않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내가 그러기를 바라고 계세요. 나는 그걸 알고 있어요. 그러니 꼭 대통령 선거에 나가야 하는 거죠.”(170쪽) 그러나 그토록 하느님이 원한 결과, 법정까지
한가한 지하철 속에서 어린 소년과 엄마의 문답은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엄마, 저건 뭐야?”꼬마는 지하철에 달려 있는 모든 사물의 이름을 물었고 엄마는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오자 꼬마의 질문은 점점 빨라졌고 엄마의 대답도 바빠졌습니다. 꼬마의 질문은 언제쯤 멈출까요?어쩌면 어느 날 매우 불성실해지고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그만 좀 물어봐’라는 엄마의 대답을 듣게 되는 그 순간일 지도 모릅니다. 하긴, 뭐 그리 사무치게 궁금한 것도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질문하기를 멈춘 아이는 학교에 들어간 뒤 세상에서 벌어진 사실과 세상에서 펼쳐지는 이치에 대해 수업을 받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의 내용에다 ‘왜 꼭 이렇게 이해해야 하지요?’라거나 ‘이 내용이 사실이고 진실한가요?
헬렌 켈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간절한 가정 아래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날에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는 그 전율어린 기적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에는 번화가로 달려가서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할까 합니다.”(『사흘만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 지음, 이창식 옮김, 산해) 그녀는 정작 지상의 빛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몇 시간은 신나는 코미디 공연이 한창인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다고 합니다. ‘불가능한 꿈’치고는 너무나 명랑합니다. 웃음소리가 왁자합니다.암흑 속에서 살아오던 헬렌 켈러는 이 세상이 생기와 희망과 웃음으로 가득 찼으리라 짐작하면서 딱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은 블라디미르, 우리의 주인공입니다. 그 블라디미르 옆에서 함께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에스트라공은 고도의 존재에 관심도 없지만 그것 말고는 뭐 달리 할 일이 없는 터라 그저 함께 기다려주는 또 하나의 주인공입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는 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란 것이 도대체 아무런 의미도 없을뿐더러, 전혀 앞뒤 맞지 않는 말을 둘은 주섬거릴 뿐입니다. 그러다 그들은 갑자기 자기들의 대화에 맥이 풀려버립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이제 가자.”하지만 일어서지 않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쓸 데 없는 대화는 왜 나누었고, 떠나지도 않을 거면서 ‘가자’는 말은 왜 했냐고 따지니 블라디미르의 볼품없는 상대자 에스트라공이 대답합니다.“우린 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