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는 한 선배는 3월 하고도 중순을 넘어섰는데도 계속되는 눈 폭풍 때문에 눈 치우느라 너무 힘들다고 했다. 봄눈이라 절로 녹지 않겠냐고 했더니 눈이 그치고 몇 시간 내로 집 앞 눈을 치우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된단다. 법이란 게 때로는 정상참작 내지는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단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됐든 지구의 기상이변은 지난 겨울 동안의 혹한에 이어 며칠 전 춘분에 내린 눈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이렇듯 날씨가 잦은 변덕을 부리니 예측이 어려워지고 하늘을 살펴야 하는 농사일은 점점 힘들 수밖에 없다.의식
며칠 전 주말 저녁이었다. 식구들이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큰 아이가 쌈을 싸려던 상추에서 달팽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동물 종 99%가 달팽이 크기 이하벌레는 끊임없이 지구 비옥케 해인간 출현 훨씬 전부터 지구 살아식구들 눈이 일제히 그 상추 위로 쏠렸고 거기엔 작은 민달팽이 한 마리가 있었다. 달팽이도 놀랐는지 몸을 웅크려서 몸길이가 1센티미터나 될까 싶었다. 모르고 그냥 상추를 먹었으면 어쩔 뻔 했냐며 우리는 안도했다. 작은 아이는 다른 상추 잎을 뒤적이며 또 있을지 모를 달팽이를 찾았다. 우리 눈에 띈 건 결국 한 마리였
얼마 전 양산에 있는 통도사엘 다녀왔다. 마침 정월대보름에다 동안거 해제가 있던 날이라 주차장부터 사람들로 분주했다.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옆 개울물은 돌돌거리며 흐르는데 봄볕에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다웠다. 완연한 봄을 느끼기에 충분한 풍경이었다. 경내로 들어서서 좀 걷다보니 사람들로 유난히 북적이는 곳이 눈에 띄었다. 이무렵 통도사의 핫스폿이라 불리는 영각 앞 홍매화나무였다. 수령이 370여 년쯤 되었다는 나무의 자태는 웅성거리는 사람들 너머로 배경처럼 보였다. 가까이에서 쳐다보니 많은 꽃봉오리 사이로 드물게 만개한 꽃이 언뜻언뜻
만물이 겨울잠을 털고 반짝 눈 뜨는 경칩이다. 이미 남녘에는 봄까치꽃이 하나 둘 꽃망울 터트리며 양지바른 들판을 쪽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따스한 기운을 따라 노랑 양지꽃이 괭이눈이 또 바닥을 점점이 채워갈 것이다. 큰 나무들이 잎을 내고 우거지기 전에 얼른 한 살이를 마치려는 야생화들의 바지런함이 반갑다. 바람결마저 가볍고 부드럽다. 창밖을 내다보니 앞산이 한결 유순하게 느껴진다. 둔탁하고 무겁던 겨울 껍질을 벗고 있는 중인가보다. 저 숲에 나무들은 지금쯤 열심히 물을 빨아올리며 꽃눈을 잎눈을 부풀리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을 것이
나는 한때 스포츠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경쟁에 집착하는 스포츠가 부담스러워졌다. 경쟁에 이겨야만 인정받고 기대에 못 미치면 매국노 취급받는 문화에 거부감이 들다가 자연스레 스포츠와 멀어졌다. 결과만을 중시하다보니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는 아무리 사력을 다하고 자기 기록을 경신해도 죄인처럼 조용히 경기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메달도 최고 메달이 아니면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였고 애석하다느니 하는 수식어가 붙었다. 스포츠맨십이라며 넘어진 선수를 일으켜주는 미담은 정말 어쩌다 등장할 뿐, 선수도 관중도 기록과 등수가 적힌
우리 사는 세상은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찰나조차 변하지 않는 순간이란 없다. 얼마 전 벌어졌던 가상화폐 광풍 또한 그 변화무쌍 가운데 하나였다. 가상현실, 가상공간처럼 발 딛고 사는 현실에 깊숙이 들어온 이 가상의 세계에 화폐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삶은 한낱 꿈일 뿐이라는 비유가 결코 비유가 아니라는 걸 요즘 가깝게 다가온 이 가상이라는 낱말에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 투자, 투기, 거품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비트코인의 등장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투자회사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시작된 2008년 금융위기
미세먼지로 온통 희뿌옇던 날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전망대에 올랐다. 약속 장소를 굳이 그곳으로 잡은 건 서울시내 풍경이 어느 정도나 심각한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시청에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북악산이 대강의 실루엣만 눈에 들어왔다. 한낮인데도 해질 무렵이라 해도 믿을 만큼 어둑했다. 전망대 카페를 찾은 사람들 대부분은 커피며 음료를 일회용 컵에 담아 홀짝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심각한 대기를 걱정하며 이야기 나누는 이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차 한 잔 마셨을 뿐인데 혹시 그 행위가 미세먼지와
한파가 지나가니 미세먼지가 왔다. 이 둘은 올 겨울 들어 선수교체 하듯 번갈아가며 방문하고 있다. 한파가 기승을 부릴 땐 눈 뜨면 기온부터 살폈는데 날이 풀리니 미세먼지 농도를 먼저 살피게 된다. 둘 가운데 어느 게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냐는 처한 환경에 따라 각자 다를 것이다. 당장 연료비를 걱정해야하는 처지라면 한파가 더 고통스러울 테지만 숨 쉬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더러운 공기를 흡입해야하는 일은 장기적인 고통이 될 것이다.미세먼지 원인으로 중국만 비난한국 소비물품 대부분은 중국제국내 기업마저 중국에 생산공장청정공
한파가 한반도를 꽁꽁 얼리고 지나갔다. 지나갔다고 잘라 말하기에 겨울의 터널은 아직도 길기만 하다. 내가 사는 서울에서 시베리아를 경험할 줄은 미처 몰랐다. 아니 시베리아보다 더 추웠던 날도 있었다. 그 춥던 어느 날 잔뜩 움츠리고 길을 걷다가 길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초등학교 사오학년쯤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 두 명이 나무 덤불 아래를 들여다보며 서성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같이 들여다보니 길고양이 한마리가 그곳에 있었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고양이는 며칠을 굶었는지 게다가 어디에 뜯겼는지 몰골 이만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로 이어지는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여남은 권의 책을 읽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들이기만 하던 책들이 탑을 이루던 차였다. 탑 높이가 부담에서 압박으로 느껴지던 연말연시에 모든 일을 작파하고 일단 틀어박혔다. 번잡함에서 잠시 비껴 책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맞이한 행복한 시간이었고 피폐했던 내면에 아주 조금 살이 오르는 걸 느꼈다. 읽는 책마다 그 매력에 푹 빠졌지만 그 가운데 두 권의 책에서 받았던 감동은 꽤 오래도록 내게 좋은 에너지가 될 것 같다. 한 권은 린 마굴리스와 도리스 세이건이 쓴 ‘생명
며칠 전 전철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문이 열리자 친구 사이로 보이는 외국인 두어 명과 한국인 너 댓 명이 전철에 올랐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언뜻 봐도 십대 청소년들로 보였다. 정오를 살짝 넘긴 시간대라 전철 안은 한가했고 이들은 좌석 한 줄을 모두 차지하고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켜고 다른 이들은 화면을 같이 들여다보며 영상을 즐기는 게 아닌가. 음악이야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건데 이들의 행동은 마치 전철 안을 자기 집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싶었다. 전철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적으로 자기가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니콜라스 험프리는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우리 선조들은 자신의 배우자와 자손, 그리고 사회 집단 내에 있는 다른 구성원들의 마음을 통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추측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역지사지라는 말과 맥이 닿아있는 것 같다. 남의 처지를 내 처지로 바꿔보기만 해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다는 역지사지의 순서는 내 처지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된다. 내가 힘들었던 기억에서 출발해야 상대방이 경험하게 될 힘듦을 헤아리는 일이 가능하니까. 인간 소외는 자연 소외서 비롯‘연기’ 인식할 때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