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탄(22)은 작은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족들은 쌀농사에 매달려 생활을 연명해왔다. 홍수나 극심한 가뭄을 겪을 때면 종종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들었다.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자책하는 부모님 앞에선 배가 고프다는 어리광조차 부릴 수 없었다. 학업을 중단한 형이 전기공으로 일하며 가족을 책임지고는 했지만 월급 30만원으로 5명을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어린 탄은 가난의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형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고등학교를 마친 탄은 지인으로부터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김형규)이 11월24일 베트남 출신 리우띠안씨에게 700만원을 전달했다. 성금은 2021년 10월28일~11월24일 법보신문 보도를 통해 사연을 접한 고담선원, 방명숙 불자 등의 지정기탁을 포함해 독자들과 전국의 불자들이 십시일반 보내온 금액 및 대한불교진흥원 지원기금 중 일부다. 소독 치료로 전달식에 참석하지 못한 리우띠안씨가 유선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김민아 기자 kkkma
법당에 들어앉은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우샤니(24)씨가 무릎을 꿇은 채 “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를 읊조리며 기도를 올린다. 우샤니씨의 깊고 큰 눈에는 간절함이 가득 배어있다.“기도를 올릴 때마다 한국에 온 이유를 떠올립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왜 버텨야만 하는지도요. 어린 동생들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정말 살고 싶습니다.“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읜 우샤니씨는 4명의 동생을 홀로 책임져야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위해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국어 공부까지 했다. 그러나 대학도 나오지 않은 우샤니씨
“손가락이 잘리던 끔찍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도려내는 느낌도 계속 나요. 하루하루가 고통스럽습니다.”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리우띠안(37)씨는 9월14일을 잊을 수 없다. 자신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간 바로 그 사고가 일어난 날이다. 플라스틱 공장으로 직장을 옮긴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불의의 사고는 삶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밤낮없이 찾아오는 지독한 통증에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 없고,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도 이룰 수 없다. 그는 매일 아무도 없는 방에 누워 숱한 밤을 자책과 후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김형규)이 10월27일 캄보디아 출신 찬디라씨에게 500만원을 전달했다. 성금은 2021년 10월1일~10월27일 법보신문 보도를 통해 사연을 접한 독자들과 전국 불자들이 십시일반 보내온 금액 중 일부다. 찬디라씨는 최근 복막염이 재발하면서 긴급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찬디라씨를 대신해 캄보디아 법당 린사로 스님이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김민아 기자 kkk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찬디라(31)씨가 한국행을 선택한 건 ‘가족’때문이었다.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연로한 어머니, 몸이 약한 누나와 형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딱한 사정을 들은 지인이 유리공장을 소개해줬고, 어렵사리 일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뜨거운 불 앞에서 일하며 받는 돈은 9만원 남짓. 5년을 넘게 일해도 월급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갈수록 집안 살림은 더 궁핍해져갔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돈을 더 벌어야만 했다. 그렇게 고향을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구룽시타(47)씨의 끙끙 앓는 소리가 창문 없는 작은 옥탑방을 가득 채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통증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몸을 웅크린다. 진통제를 털어 넣어도 평온함은 잠시 뿐이다. 한 번 올라온 묵직한 고통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몸은 덜덜 떨리고 이마엔 식은땀만 흐른다.농부의 딸이었던 구룽시타씨는 남편 구룽산도스(48)씨와 물려받은 작은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러나 몇 년째 이어진 가뭄과 홍수로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불안정한 수입에 먹을 것도 부족해 주린 배를 물로 채우는 경우가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심정섭)이 8월24일 스리랑카 출신 기달씨 가족에게 500만원을 전달했다. 성금은 2021년 7월28일~8월24일 법보신문 보도를 통해 사연을 접한 현근 스님, 김경림, 송상원 불자의 지정기탁을 포함 독자들과 전국 불자들이 정성으로 보내온 금액 중 일부다. 기달씨는 불자들의 후원으로 희귀병을 앓고 있는 딸 레사디의 병원비 걱정을 조금 덜 수 있게 됐다. 기달씨는 전달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유선으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 경기지부와 경상지부를 설립했다. 이에 그동안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돼온 일일시호일의 공익활동이 경기와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상권에서도 활발히 펼쳐질 전망이다.일일시호일은 최근 임시총회를 열어 지부 설립을 결의하고, 주무관청의 승인을 얻어 8월11일부로 경기지부와 경상지부를 설치했다. 경기지부는 경기도 수원 보현선원 내에 위치하며, 경상지부는 부산 수정동 부산불교교육원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일일시호일은 법보신문이 언론의 공익적 가치 구현을 목적으로 진행해온 ‘우리사회 소외계층 지원사업’을 보다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심정섭)은 7월28일 몽골 출신 다와씨 가족에게 500만원을 전달했다. 성금은 2021년 7월1일~7월28일 법보신문 보도를 통해 사연을 접한 독자들과 전국 불자들이 정성으로 보내온 금액 중 일부다. 아들 아난드는 척추암과 혈액암 진단을 받아 현재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다와씨는 불자들의 후원으로 병원비 걱정을 조금 덜 수 있게 됐다. 다와씨는 전달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유선으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
고향을 덮친 쓰나미로 삶의 터전을 잃은 스리랑카 출신 기달(39)씨. 집도, 직장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떻게든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다. 대학을 졸업했기에 일자리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 월급은 30만원. 겨우 입에 풀칠만 할 정도였다. 같이 근무하던 동료가 한국어 공부를 권했다. 한국에서 일하면 월급의 5배 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대가족을 책임져야 했기에 한국행을 결심했다. 돈을 빌려 비행기 표를 샀고, 아내 마리티(37)씨와 2011년 한국으로 왔다.5년 간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근무했던 부부는 누구보다 성실
6월 중순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대구에 있는 한 스님이었다. 몽골에서 온 아이가 암 투병중인데 병원비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주민 지원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일일시호일에 희망을 걸고 연락을 했다고 했다. 조심스레 도움을 요청하는 스님의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이토록 스님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 것은 몽골에서 온 다와(31)씨와 그의 아들 아난드(10)다.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살고 있는 다와씨는 집에 자그마한 불단을 마련한 뒤 매일 출근 전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고, 집으로 스님을 초청해 법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심정섭)은 7월1일 스리랑카 출신 노민다씨에게 2500만원을 전달했다. 성금은 2021년 5월26일~7월1일 부산 금천선원, ㈜인서정공, 대전 형통사의 지정기탁을 비롯해 독자들과 전국 불자들이 십시일반 정성으로 보내온 금액 중 일부다. 노민다씨는 불자들의 후원으로 의족비용과 생활비 걱정을 조금 덜 수 있게 됐다. 노민다씨는 전달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유선으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2)725-7010김민아
“아직도 제 발이 잘려나가는 꿈을 꿉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도 무섭습니다. 의식이라도 잃었으면 제가 덜 고통스러웠을까요.”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노민다(27)씨는 사고가 났던 1월26일을 잊을 수 없다. 쓰레기 처리장에서 근무한지 7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불의의 사고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밤이면 찾아오는 엄청난 통증과 악몽 같았던 당시 상황이 떠올라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룰 정도다.쓰레기를 포크레인으로 옮기는 업무에 배치된 노민다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쓰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심정섭)은 5월25일 네팔 출신 라마씨 가족에게 1200만원을 전달했다. 성금은 2021년 4월27일~5월25일 독자들과 전국 불자들이 십시일반 정성으로 보내온 금액 중 일부다. 특히 법보신문 보도를 통해 사연을 들은 부산 금천선원에서 특별후원금을 텐진씨 가족에게 지정기탁했다. 불자들의 후원으로 라마씨 가족은 병원비 걱정을 조금 덜 수 있게 됐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텐진씨 부부의 아들 삼야스는 엄마 라마씨의 임신중독증 증상으로 32주만에 1.4 kg으로 태어났다.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심정섭)은 4월27일 베트남 출신 토안씨 가족에게 300만원을 전달했다. 성금은 2021년 3월23일~4월27일 독자들과 전국 불자들이 십시일반 정성으로 보내온 금액 중 일부다. 토안씨 부부의 아들 당은 엄마 레씨의 임신중독증이 심해져 26주 만에 초미숙아로 태어났다. 성장이 더뎌 부부의 걱정이 컸지만 인큐베이터에서의 집중 치료로 몸무게가 2.5kg까지 늘어 3주 후 퇴원을 앞두고 있다. 토안씨 부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전달식에 참석을 못했지만 유선으로 감사인사를 전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돈이 없어 서럽고 비참한 날의 연속이었다. 네팔 출신 텐진(33)씨와 라마(35)씨는 어떻게든 일을 해야만 했다. 풍족하진 않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부부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2016년 한국에 온 부부는 김포에 있는 한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일했다. 레일 위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쓰레기 사이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만을 골라내는 고된 작업이었다. 쓰레기가 빠른 속도로 밀려드니 쉴 틈이 없었다. 매일 꼬박 9시간을 일했다. 앉지도 못한 채 서서 근무해야하는 열악한 환경에 다리
토안(38)씨는 고향 베트남에서 월급 30만원을 받는 도배공으로 일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많은 돈을 벌 수는 없었다. 그러다 “한국어를 배우면 현재 월급의 몇 배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길로 하노이에 위치한 한국어학당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연필을 잡았던 탓인지 한국어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레(34)씨를 만났다.첫눈에 반해 사랑을 키워간 이들은 희망을 품고 2012년 3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 취업한 곳은 평택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 낯선 환경이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와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대표 심정섭)은 3월22일 캄보디아 출신 왓니씨에게 300만원을 전달했다. 성금은 2021년 2월24일~3월22일 독자들과 전국 불자들이 십시일반 정성으로 보내온 금액 중 일부다. 불자들의 후원으로 왓니씨는 치료비 걱정을 조금 덜 수 있게 됐다. 2014년 한국에 온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왓니씨는 미나리농장에서 하루 12시간씩 근무했다. 어느 날부터 몸이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어지럼증에 시야가 흐릿해지는 일도 잦았다. 검사결과 말기신부전과 심부전이었다. 현재 약물치료와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었던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왓니(42)씨는 자식들을 자신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부양해야 될 식구만 다섯 명. 그러나 배운 것이 없어 변변한 직업하나 구할 수 없었다. 동네주민의 도움을 받아 작게나마 농사를 지었지만 그마저도 입에 풀칠만 겨우 할 정도였다.“가난했기에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서러웠죠. 어린마음에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저와 같은 삶을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했어요.”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왓니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