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합동구호단이 모로코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모로코 대지진이 일어난 지 한 달이 흘렀으나 아직 피해복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산간지역에 위치한 일부 마을들은 ‘적은 수의 가구가 거주한다’ ‘물품이 전달되기 어렵다’ ‘도로 복구가 늦어지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에 조계종 합동구호단은 부처님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소외된 이들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불자들의 십시일반으로 마련된 구호물품을 전달하며 일상으로의 조속한 복귀를 기원했다. 조계종 합동구호단은
조계종 합동구호단이 모로코 지진 피해지역의 조속한 복구를 위해 현지 NGO 단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조계종 합동구호단(이하 합동구호단)은 10월6일(현지시간 10월7일) 모로코 마라케시의 High Atlas Foundation(이하 HAF)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본격 구호작업을 시작했다. 현지 HAF사무실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묘장 스님과 벤 마이어 HAF 대표이사가 참석했다.오전 9시, HAF 사무실에 도착한 합동구호단은 미리 예약한 텐트를 트럭에 실었다. 이날 실린 텐트는 30개로 총 150개의 텐트를
조계종 국제합동구호단이 출정식을 갖고 10월6일부터 모로코 현지에서 4박5일간의 본격적인 구호활동에 착수한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묘장 스님, 진겸 복지재단 후원사업과장, 윤태훈 사회부 국제팀 주임으로 구성된 합동구호단 본단은 출국에 앞서 10월4일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예방하고 모로코 긴급구호 업무보고 및 본대 출발보고를 했다.보고에 따르면 9월9일 북아프리카 모로코 마라케시 남서쪽 71.8km 지방에서 규모 6.8 이상의 강진이 발생하자 조계종 사회부는 피해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아름다운동행, 조계종사
간화선의 세계화에 기여한 전 송광사 조계총림 방장 구산수련(九山秀蓮, 1909~1983) 스님의 선사상과 행적을 집중 조명하는 학술대회 및 심포지엄 등의 행사가 서울과 순천 등지에서 6박7일간 열린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구산 스님의 외국인 제자 30명이 참가해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간화선 지도방법의 특징 및 구산 스님과의 인연담 등이 발표돼 현재 개발 중인 ‘K-명상’ 세계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보조사상연구원(원장 이병욱)이 구산 스님 열반 40주기를 맞아 10월13일 서울 법련사에서 개최하는 국제학술대회를 시작으로
조계종 제10교구본사 팔공산 은해사(주지 덕조 스님)가 9월 17일 오전 10시 30분 경내 육화원에서 은해사 수행가풍을 진작시킨 7명의 스님들을 추모하며 문중 합동 다례재를 봉행했다. 합동 다례재는 문중 전체의 단합과 화합을 위해 2021년 처음 시작한 이후 올해로 세 번째다. 다례재에서는 고경당 법전, 화산당 학명, 일고당 덕근, 동곡당 일타, 포월당 혜업, 포운당 성진, 포산당 혜인 스님의 위패를 봉안하고 다례를 올렸다.은해사 총무국장 용주 스님의 사회로 시작한 다례재에는 은해사 조실 법타, 회주 돈명, 주지 덕조 스님과 중앙
은밀과 은묘, 은미와 은연, 이는 피아니시모의 미학이 작동하는 두 가지 표현방식이다. 특정한 표정을 갖지 않기에 무심한 얼굴 속으로 많은 다른 표정들을 숨기듯 접어 넣는 것이 은밀이라면, 그 무심한 얼굴이 보는 이와 만날 때마다 다른 표정으로, 이 표정에서 저 표정으로 오가며 펼쳐지는 것이 은묘다. 이처럼 부처나 보살의 얼굴을 성스럽게 하거나 애써 자비롭게 하지 않고 무표정하다 싶을 만큼 무심하게 표현하는 것을 두고 ‘무심’이나 ‘무분별’, ‘무위’와 같은 개념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도를 향해 이끌려는 이를 상(像)으로 만들
삶의 경험들은 뇌신경망으로 체화(體化)된다. 경험이 물질이 된다는 뜻이다. 그 물질은 곧 기억이며,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들도 차곡차곡 뇌에 쌓인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쌓이는 것이 아니라 연관된 정보들은 서로 질서정연하게 연결되어 쌓인다. 기억은 그렇게 연관신경망을 생성하면서 축적된다. 따라서 하나의 기억이 회상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억이 되살아나 추억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또한, 연관신경망은 삶의 인연에 따라 맞게 되는 첫 번째 화살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스스로 거듭 맞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모두 원하는 대로만
“실려도 편먹기” “실려도 편먹기”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손등과 바닥을 연신 교차해 가며 외쳤던 말이다. 필자의 고향인 부산에서는 이렇게 외치며 편을 갈라 놀았다. 어른이 되어서 언제 편을 나눠 뭔가를 한 적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매번 편을 나눴지만 어느 한 편이 고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어떤 형태이건 어느 편에 속해 있었기에 편을 나눌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편(偏)이라는 말이 놀이에서는 즐거움을 위한 선택이지만, 이념이나 전쟁의 상황에서는 생사의 갈림길이
미국 군종법사 출신의 USNDC TK 평화봉사지원여단 사령관 진각 스님(목포 반야사 주지)이 소장으로 진급했다.USNDC TK 평화봉사지원여단(사령관 소장 남진선)은 9월11일 목포 신안비치호텔에서 ‘USNDC TK 평화봉사지원여단 소장 남진선 진각 화봉 스님 진급식’을 진행했다. 이날 진급식에는 백양사 주지 무공 스님을 비롯해 광주불교연합회장 도성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국제포교사회장 정혜 스님 등 스님들과 박인곤 소장 등 USNDC TK 소속 장교들이 동참했다.진각 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소장으로 진급한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책임
나는 오래전에 ‘몸의 밀의(密意)’라고 하는 주제로 논문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유식(唯識)이라는 용어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이 교리가 오직 순수한 식(識)만 있고 몸통은 사라진 존재들을 강조한 것이 아님을 부각하려 했었다. 우리의 ‘식’에 나타난 형상 중에 가장 생생하게 실감하는 것은 자기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가면서 내 생각도 조금 바뀌었다. 어쩌면 사람들의 오랜 꿈속에는 ‘보이지 않는 몸’에 대한 염원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난번 ‘초인’에 대한 글과 마찬가지로 이번
프랑스에서는 2023년 가을 학기부터 대학교를 제외한 모든 공립학교에서 이슬람 여성의 의복인 ‘아바야’, 이슬람교도가 즐겨 입는 ‘카미즈’, 이슬람 남성의 의복인 ‘토브’ 등 착용을 전면 금지했다. 특정 종교를 겨냥한 옷의 검열은 현재 상당한 반발과 비판을 초래하고 있다. 프랑스는 이미 2004년에 공립학교에서 이슬람 여학생의 히잡, 유대교 남성의 챙 없는 모자인 키파, 시크교의 터번인 다스타, 기독교의 대형 십자가 같은 명시적인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했다.프랑스 정부가 ‘드레스 코드’라는 어쩌면 매우 비근대적인 조치인
새벽 산사의 고요하면서도 깨어있는 풍경을 질감을 살린 회화로 표현해 온 한동훈 작가의 치유와 수행이 녹아든 작품과 함께 생명존중의 가치를 나누는 하루 찻집의 장이 열린다.생명나눔실천 부산지역본부(본부장 심산 스님, 이하 생명나눔 부산)는 9월16일 부산 영광도서 8층 리갤러리에서 ‘라온(LA·溫) 어울림 마당 – 전시·공연 그리고 차(茶)’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생명나눔 부산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펼치는 생명나눔 기금 마련을 위한 하루 찻집이다. 특히 올해는 새벽 산사의 고요하면서도 깨어있는 평온함을 간결한 회화로 표현해 온
니까야에 따르면 ‘쿠살라(선한;kusala)’ 행위는 ‘미래의 즐거운 경험과 행운의 환생/즐거운 경험 또는 행운의 환생’을 통해 지출되기 전까지 착실하게 저축되는 예금통장, 즉 이른바 ‘공덕’이다. 이에 반해 ‘아쿠살라(악한;akusala)’ 행위는 고스란히 저축되었다가 나중에 ‘고통스러운 경험과 불행한 환생/고통스러운 경험 또는 불행한 환생’으로 지출되는 쓸모없는 예금, 즉 ‘악덕’에 해당한다. 다만 니까야에서는 이런 예금들이 정확하게 어디에 축적되고, 또 그것들은 어떻게 행위자와 결합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지
입체화에 대한 선호나 그걸 표현하는 기법이 ‘동양’이나 불교의 회화에 없었다고 할 순 없다. 가령 중당(中唐)기 작품인 돈황 막고굴 제220굴의 설법도나 오대십국 시대 작품으로 보살과 팔부신중을 그린 제6굴의 벽화는 스푸마토 기법을 이용하여 얼굴이나 신체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아주 때 이른 시도를 보여준다. 북주시대의 작품인 290굴의 ‘비천도’는 명도를 달리하는 두꺼운 선을 이용해 입체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가령 돈황석굴의 그 많은 벽화 가운데에서도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스푸마토를 이용한 입체화의 기법이 이처럼
‘상윳따 니까야-화살경(Salla sutta, S36:6)’에서 붓다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육체적인 괴로움을 겪게 되면 근심하고 상심하며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화살에 꿰찔리고 연이어 두 번째 화살에 또다시 꿰찔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 사람은 두 화살 때문에 오는 괴로움을 다 겪을 것이다.”화살은 아픔(괴로움)을 주는 경우를 말한다. 첫 번째 화살은 삶의 인연에 따라 맞을 수밖에 없다. 세상사 모두 원하는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
‘전법ON 캐릭터 나만의 굿즈 만들기’를 기획한 문수혁(동대부중 3)학생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나란다축제를 위해 2개월 동안 준비한 전법ON 캐릭터를 선보이는 날이기 때문. 문 군이 디자인한 캐릭터는 코뿔소의 우직한 정진에서 따온 ‘코정이’와 꽃사슴의 따뜻한 자비의 줄임말 ‘꽃비’로, 미술을 좋아해 디자인에서 제품 구상까지 도맡아 더 애착이 컸다.“‘캐릭터를 개발해야겠다. 그리고 굿즈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부처님 말씀 중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가장 좋아해 코뿔소를 가지고 만들어봤고, 자타카에서
우리의 꿈이 빚어낸 형상들 중에 막상 현실 속에 나타나면 우리의 애정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있다. 가령 인형과 거울 같은 물건들 말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처음부터 인간의 형상이나 행위를 모방하도록 허용했지만, 바로 그 이유로 그것에 막연한 두려움도 갖고 있다. 가령 내 손끝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야 할 꼭두각시 인형이 다른 누군가의 주술에 따라 움직인다거나, 혹은 거울 속의 영상이 더 이상 내 얼굴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다른 표정을 짓는다고 상상해보라. 그다음엔 저 인형과 거울 속 영상이 언젠가 나를 공격해올지도 모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을 오(감)문 인식이라 한다.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피부(身根)를 감각이 들어오는 각각의 문(門)으로 보고 다섯 가지 (감각의) 문(五(感)門)을 통하여 일어나는 인식이라는 뜻이다. 반면에 오문(五門)을 통하여 일어나지 않는 인식도 있다. 문득 떠오르는 어떤 생각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상념이 뇌리에 떠오르기도 하고, 불현듯 어린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認識)들은 오감과 상관없이 일어난다. 이러한 인식을 의문(意門, mano-dvāra) 인식이라 한다. 오
불교윤리에서 ‘업과 업보’의 관계는 서양윤리학에서 말하는 ‘행위와 결과’의 관계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내용상의 차이점에 앞서 우선 형식상의 유사성이 두드러진다. 이는 일부 불교학자들이 불교윤리를 결과주의적 사고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물음을 되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원래 옳고 좋은 행위였기 때문에 그 결과도 옳고 좋은 것이 되는가, 아니면 결국 옳고 좋은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그 행위가 옳고 좋은 것으로 판명되는가?” 전자는 의무론적 입장이고 후자는 결과론적 접근으로
상이한 표정들, 상이한 감응들을 무심한 표정 속에 은밀하게 접어넣고 그것들이 은묘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 수평적인 방향에서 피아니시모의 힘을 이용하는 방식이라면, 깊이의 정도라는 수직적 방향에서 피아니시모의 힘을 이용하는 방식도 있다. 깊이감을 최대한 증폭시켜 강렬함이라는 포르티시모의 힘을 감각 속으로 밀어넣는 것과 반대로, 최소 차이를 갖는 미소한 깊이 속에 표정이나 감응을 ‘은미(隱微)’하게 접어넣고 그것들이 ‘은연(隱然)중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사천성 무현(茂懸)에서 출토된 남제 영명 원년(483)명 불상은 하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