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때 대한독립학교 입학“안창호처럼 되겠다” 다짐할아버지에게 효사상 익혀 성숙이 들어간 대한독립학교에서는 목총을 메고 군사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또래 아이들에 비해 키가 크고 몸집이 좋았던 성숙은 옷을 화려하게 입고 전체 학생들이 선 대열의 제일 앞에 서서 나팔을 부는 나팔수를 했다. 학생들은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 재미있어 군사훈련 시간만 되면 서로 제가 더 잘한다고 뽐내기에 바빴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군사훈련의 재미에만 빠져 있을 때, 성숙은 “우리는 꼭 나라의 독립을 찾아야 한다”는 선생님들의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독립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성숙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군사훈련을 할 때 단순하게 총을 다루는 훈련만 시켰던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 융희황제(隆熙皇
“스님 공부 시켜달라” 간청양평 용문사로 출가 결심고향 부모 생각 절로 눈물 이제 막 원산을 탈출할 기회를 잡은 성숙은 어디로 가야할지를 고민하던 차에 저 앞에 홀로 걸어가는 스님을 보는 순간 “저 중을 따라가 일단 중노릇을 좀 하다가 봉천으로 가는 일을 다시 도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친 성숙은 다짜고짜 스님의 장삼자락을 붙잡고는 “스님, 나 여기서 스님 되는 공부 좀 시켜주세요”하고는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님은 성숙을 아래위로 한번 훑어보고는 “요런 당돌한 놈을 보았나” 하는 생각에 “그래, 무엇 때문에 중이 되려고 하는고”하곤 되물었다. 성숙은 미동도 없이 태연하게 되묻고 있는 스님의 태도에 순간 긴장했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불경을 공부하려고 합니다”하고
독립군 되려 집 떠났다가원산에서 낯선이에 잡혀석탄일 절 구경 갔다 탈출 1916년 이른 봄. “독립군이 되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일에 앞장서야겠다”는 일념으로 고향 땅 평안도 철산을 떠나, 독립군을 길러내는 신흥학교가 있는 봉천(지금의 중국 심양)으로 향하던 열 여덟 김성숙의 발길은 그만 원산에서 묶이고 말았다. 원산에서 청진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던 순간 뒷덜미를 낚아채는 차가운 손길에 온몸이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던 것이다. “아이쿠, 잡혔구나. 이제 독립군이 되기는 다 틀렸다”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데도 어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왜놈 순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성숙의 뒷덜미를 낚아챈 사내는 말투며 옷 모양새며 이 지역 아이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