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 귀신은 이미 천지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다. 보통 사람들은 귀신을 저승에 가지 못하고 떠도는 죽은 사람의 영혼 따위로 알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곧 신의 심판에 따라 천국이나 지옥으로 보내지기 때문에 이 세상에 떠도는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혹 주변에 죽은 부모의 영혼이 나타난다든가 무당을 통해 알려지는 귀신들은 사람이 죽어서 된 귀신이 아니라 모두 사탄에 소속된 귀신들이 죽은 영혼으로 변장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사후의 어떤 영혼과도 교류가 될 수 없고 교류가 되는 것은 모두 악마에 소속된 귀신들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죽은 부모나 친척들에게 제사를 모시지 않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귀신은 악마와는 약
영국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저서에서 기독교의 악마 기원설을 비합리적 교리라고 반박했다. 그는 “모든 악의 기원이 악마라면 악마는 누가 창조 했는가?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악마의 기원이 천사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에 의해 순수하게 창조된 천사에게 신을 배신하는 악이 생겨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질문하면서 기독교의 교리에 강한 불신을 표명했다.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기독교 악마설에 회의를 품겠지만 무조건적 믿음을 강조하는 기독교 입장에서는 이런 의혹을 품는 행위 자체가 이미 사탄의 지배를 받는다고 질책한다. 그런데 불교에서도 악마의 존재가 거론된다. 기독교와는 달리 불교의 악마는 다분히 인간의 속성을 띠고 있으며 세상을 지배할 만큼 큰 능력을 지니고 있
인간이 창조신 야훼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하게 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악마인 사탄의 꼬임 때문이었다. 사탄은 인간으로 하여금 야훼신이 접근하지 말라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게 하여 죄를 범하도록 만든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로부터 비롯되지만 그 근저에는 사탄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기독교에 있어 사탄은 엄청나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만약 이 세상에 사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간의 역사는 정 반대로 흘러갔을 것이 분명하다. 사탄은 죄의 원조로써 인간 세상의 모든 문제가 사탄으로부터 흘러나오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탄은 수많은 마귀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신의 일을 반대하며 파괴하려든다. 창조 이래 지금까지 사탄은 인간계를 교란시키고 인간들에게 죄를 범하게 하고 있으며, 신의
불사의 생명과 영화를 누리며 영원히 살 수 있었던 인간은 자신들이 저지른 단 한 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같은 죄는 대물림되어 아담과 하와 뒤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에게 똑같은 형벌이 내려진다. 전지전능하다는 기독교의 신은 자신의 피조물들이 죄를 범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몰랐을까? 만약 몰랐다면 전지전능이 아닐 것이고 만약 알았다면 애초에 약속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신은 공의롭고 자비한 존재이다. 그런데 신이 어떻게 자신의 피조물들을 향해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용서치 않고 이런 가혹한 형벌을 내릴 수 있을까? 그러나 인간은 신이 하는 일에 이유를 붙여서도 안 되고 저항을 해서도 안 된다. 절대의 신 앞에 다만 머리를 조아리고 신이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기독
인간은 왜 죽어야 하며 괴로움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가? 이에 대한 기독교에서의 대답은 원죄 때문이라고 한다. 애초에 신 야훼는 인간 아담과 하와를 창조할 적에 한 가지 굳은 약속을 맺었다. 그 약속은 신 야훼가 에덴동산에서 두 인간에게 한 약속으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나무의 열매를 따먹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 약속은 약속이라기보다는 신의 일방적인 명령에 불과 하지만 신은 이를 인간의 생명이 걸린 귀중한 언약으로 규정하고 범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둘은 불행하게도 뱀의 형태로 가장한 악마의 유혹으로 신이 금하라고 내린 열매를 따먹게 되고 이로 인해 씻지 못할 범죄를 저질러 타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두 사람의 타락의 결과는 신과의 결별, 육신의 죽음, 도덕적 붕괴, 자연계의 저
기독교 성서에 따르면 삼라만상을 창조했다는 야훼는 맨 마지막 엿새째 되는 날에 인간을 창조한다. 야훼는 먼저 흙으로써 자신의 형상대로 남자 아담을 만들고 이어서 여자 하와를 만든다. 아담이라는 이름은 본래 사람을 뜻하는 말로 ‘붉은 흙’에서 유래된 용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야훼신이 여자 하와를 만들면서 아담처럼 직접 흙으로 빚지 않고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창세기에는 “야훼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매 그가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고 살로 채우신 다음 그 갈비대로 여자를 만드시고”라고 기록돼 있다. 이로 본다면 야훼가 사람을 창조할 때에 흙으로 육체를 만들고 생기로 생령을 만들었다는 말로 이는 인간이 물질적
만물을 창조했다는 기독교의 신 야훼는 그의 전지전능한 힘으로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을 보존하고 다스린다. 기독교 교리서에 직접적으로 ‘섭리(providens)’라는 단어는 없지만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요약하는 의미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왔다. 기독교의 섭리란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지어 놓고 유지 관리하며, 자신의 창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도하며 창조된 모든 것들과 지속적으로 관계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이와 같은 신의 섭리를 보존, 협력, 통치라는 말로 표현한다. 먼저, 보존이란 신이 스스로 창조한 세상의 만물에 대해 그 특성을 그대로 보호하고 유지시키시는 것을 의미한다. 신은 바위는 바위로, 불은 불로, 나무는 나무로 그 특징을 그대로 이
기독교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책상은 목수가 없었으면 존재할 수 없고 화병은 옹기장이가 없었으면 존재할 수 없듯 세상도 창조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창조신을 부정하면 책상과 옹기가 스스로를 만들었다는 논리처럼 모순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불교에서는 세상 스스로가 세상을 만들었다는 논리 역시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다른 존재에 의해 지어졌다는 논리도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한다. 만약 그들의 논리대로 라면 세상을 만든 신 또한 만든 자가 있어야만 존재한다는 스스로의 모순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불교 이론에 따르면 기독교와 같이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을 ‘자재신화작론(自在神化作論)’이라 하고, 세상 스스로가 스스로를 만들어 냈다는 우연론을 ‘무인유과론(無因有果論)
기독교는 유대민족에 의해 숭상됐던 야훼라는 이름의 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야훼라는 신을 부정한다면 기독교는 존재 할 수 없다. 기독교 경전의 첫머리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부터 시작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이 곧 야훼이다. 야훼는 우주 창조의 주체로써 유일신이며 인격신이다. 즉 세상에 존재하는 신은 오직 그뿐이며 인간의 모습을 띠고 있고 모든 곳에 두루 편재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그는 다른 원인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있어온 자존의 존재이며, 물질이 아닌 영적 존재이고 영원한 전지전능의 존재이다. 특이한 점은 그가 이같은 위대한 속성을 지녔음에도 인간과 똑같은 여러 가지 감각, 감정, 사고, 의지를 온전히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도 인간처럼 생각하면서 때로 기쁨과 슬픔과
불교와 기독교는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를 이끌어 온 가장 대표적인 종교들이다. 사실 두 종교 모두 인간을 구제하고 복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현했다지만 그 내용과 전파의 과정은 판이하다. 혹자들은 모든 종교의 목적은 같지만 그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즉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이 다를 뿐 산의 정상은 같다는 것이다. 이들은 부처나 예수가 발견한 진리는 같은 것인데 다만 그 표현이 다르고 그에 이르는 방법이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종교 간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두 종교가 지닌 세계관과 인생관 그리고 두 종교가 지향하고 있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섣부른 주장이다. 대부분 종교가 그렇듯 불교와 기독교 역시 세계관과 인생관은 물론 목적까지 판이하게 다르다.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