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사는 '생명 5계'를 제정, 생활 속 자비실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열린 동식물 천도재 모습. 현덕사 생명 5계 ▷ 음식물 국물 하수도에 버리지 않기▷ 시골길을 차로 달릴 때는 속도 줄이기▷ 뜨거운 물은 식혀서 버리기▷ 식단은 채식으로 꾸미기▷ 화학 살충제 사용 안하기 “보살계경의 열여덟 가지 물건 가운데 여수낭(濾水囊, 물을 걸르는 주머니)은 아홉 번째에 해당한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니 마치 새의 두 날개와 같다. 두타행자가 여름 결제와 제방으로 행각(行脚)하는 달이면 모두 다 여수낭을 잊어서는 안된다.”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행위규범을 담은 종색 선사의 『선원청규』에 담긴 일명 ‘여수낭’ 규칙은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그 생명의
2500여 년 전, 당시 인도 사회의 엄격한 계급제도인 카스트를 부정하고 평등을 주창했던 불교. 특히 부처님은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어 귀히 여겨야 한다고 밝히면서 평등을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불교 승단 내에서는 비구·비구니의 불평등 조항이 있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비구니 스님이 비구 스님을 존중하고 공경해야 할 여덟 가지 종류의 법이라는 ‘비구니팔경법’이다. 각 조항마다 다분히 성적 차별의 요소를 지니고 있는 이 법은 부처님의 평등사상과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계율을 전공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과연 부처님이 이 법을 제정했을까’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거듭해 왔다. 부처님 평등사상에 위배 최근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스님은 「불교학연구」15
‘계율학’이라는 용어가 우리 학계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계율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오직 율사들만의 몫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재가자가 율장을 보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계율을 학문으로 접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77년 동국대에 ‘계율’ 과목 개설 동국대 명예교수 목정배 박사. 그는 우리 학계에 ‘계율학’이라는 학문적 체계를 처음으로 수립하고 율사 뿐 아니라 일반인도 누구나 계율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할 수 토대를 만들어야 함을 주창하며 30여년 간 계율학 연구 외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그가 계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60년대 후반,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조교로 근무할 즈음이다. 당시 이재창 교수 등을 도와 불교학과 강의 시간표를 준비하던
예로부터 개인적인 생활을 조정하는 윤리적인 도덕률이자, 교단의 질서를 제압하는 법규이며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계정혜 삼학의 제일보로 여겨지던 계율. 이런 까닭에 역대 고승들은 계율은 출·재가를 막론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수행의 기본으로 여기며 이를 배우고 지키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을 언제나 강조해왔다. 에세이-개론서 등 10여종 그러나 현대에 들어 계율을 단순히 구속쯤으로만 여기고 또 이를 지키고, 연구하는 것은 몇몇 율사들의 몫이라는 계율 경시풍조가 만연해 지면서 계율에 대한 인식이 크게 퇴색돼 왔다. 특히 계율이 무엇이며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계율 서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율전공자들이 추천하는 초심자를 위한 계율서적은 계율에세이에서부터 개론서까지 대략 10여종.
계·정·혜 삼학(三學) 가운데 하나인 계율. 계율은 한국불교가 1700여년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올 수 있게 한 근간이 돼 왔다. 특히 “계율을 어기며 100년을 사느니 하루를 살더라도 계율을 지키겠다”는 신라 자장 스님과 같은 율사들의 서슬 퍼런 지계 정신은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불교 승가 전통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불교 율맥을 잇는 율사에는 어떤 분들이 있을까. 근대 이후 한국불교 율풍 진작의 중흥조로는 용성, 자운 스님이 꼽힌다. 용성 스님은 지계의식이 급격히 무너지던 일제 강점기, 스님들의 결혼을 반대하며 출가자의 지계를 강조했을 뿐 아니라 ‘용성조사 세간 5계’를 만들어 재가자들의 지계를 강조하면서 무너져가던 지계정신을 곧추 세웠다. 용성 스님이 지계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