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것 하나 없는 가난한 눈빛 하나로 짧은 심지 하나 강 깊은데 박고’버거워도 살아가자야! 기가 막히다. 한 발 앞은 낭떠러지고 한 발 뒤는 절벽. 오산의 사성암은 절벽과 절벽 사이에 절묘하게 앉아 있다. 처마에 매달린 풍경처럼 허공에 매달린 암자! 그렇다고 아슬아슬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쭉쭉 뻗어 오르려는, 유유히 흐르는 구름도 단박에 움켜잡아 이리저리 흔들어 보려는 양 당찬 위용을 뿜어내고 있다. 회색과 적갈색의 막돌이 자아낸 돌담과 계단은 유럽 중세의 한 고성(古城)으로 이어진 돌길을 연상시켜 이국
"창틈으로 보인 산은 하늘에 닿았고 누각아래 부는 바람 물결로 여울지네"정족산(鼎足山)! ‘솥발뫼’라니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멀리서 보면 솥뚜껑을 거꾸로 얹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솥’이라 하고, 솥을 받치는 세 개의 다리와 같다 하여 ‘족’이라 했다고 한다. 마니산(摩尼山)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나가다 여기에 이르러 세 봉우리로 솟았으니 그렇게 이름 할만하다. 양양과 울산의 정족산 유래 또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동문과 남문 중 어디로 들어서도 멋진 풍광을 보여주는 삼랑성(三郞城)이지만 굳이 남문을 택해 서문으로
"자네는 집 밖 쫓아다니고 나는 집안에 앉아 있네. 집 밖에 있는 건 무엇인가?"설악산과 소백산에 변산바람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니 봄이라 해야 할까? 하나, 며칠 전에도 눈이 내린 서울이다. 봄이라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어야 봄이니 서울의 봄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햇살은 춘삼월 기운을 담아 따듯하다. 그 햇살, 일주문 현판에도 앉았다. 수락산 학림사(水落山 鶴林寺)! 고고함을 상징하는 두루미와 연관 있을 터. ‘학이 알을 품은 형국’이라는 학포지란(鶴抱之卵)에서 유래됐을 게다. 일주문에서부터 대웅전
"진정성 없이 시 쓴다면 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 길어 내려는 것"수종사 산길은 생각보다 가파르다. 몇 굽이를 휘돌아 걸었지만 산사는 보이지 않는다. 등줄기 따라 흐르는 땀이 그치지 않지만 운길산 깊은 품안에 드니 한적함을 만끽할 수 있어 좋다. 겸재 정선도 이 산길을 걸었을까? 화폭에 수종사 담아놓고는 ‘붓 놓은 순간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했을 수도 있겠다.조선의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은 한양(서울) 주변의 진경을 담은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독백탄(獨栢灘) 한 폭을 남겼다. ‘홀로 있는 잣나무(독백)’와 ‘
신석정 시인은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답다 했다. ‘한사코 높아서’, ‘아무 죄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뿐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아름답다고 한다. 참 예뻤던 꽃들 잠시 뫼땅 속에 숨겨 놓고, 하늘 이고 우뚝 서 있는 태백산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령스럽게 다가온다. 배달겨레를 상징해 온 산 아닌가."눈보라 헤쳐 온 주목이 묻는다‘난, 이리 산다. 넌, 어찌 사느냐!’서글퍼도 허리 곧추 세워숨 한 번 고르는 거다"옛 사람들은 태백산(太白山)을 ‘한밝뫼’라 했다. ‘한’은 ‘크다’, ‘밝’은 ‘밝다’, 뫼는 산이니 그대로 풀면
"이런 좋은 경치는 실컷 원대로 봐둘 일이 제일 크고, 제일 마땅한 일이다."뱃바람 차가운 한 겨울에도 바다 위 섬이 아늑해 보이는 건 바다가 섬을 품어서일까? 석모도 바람길을 따라 걷다보면 꼭 그래서만은 아닌 듯싶다.겨울바람살에 흙속 깊이 몸을 사리고 있지만 저 갯벌에는 큰 집게발을 가진 농게, 한 밤의 사냥꾼 낙지를 비롯해 소라, 모시조개, 갯지렁이, 칠게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극히 작은 생물마저 마다않고 품은 섬이 있기에 가능했다. 서해안 중 단위 면적당 미생물 개체수가 가장 많은 갯벌이 석모
하룻밤 사이에 20㎝의 소나기눈이 강원도 일대에 내렸다는 소식에 오대산으로 걸음 했는데 헛되지 않았다. 상원사 영산전 석탑 앞으로 펼쳐진 오대설산은 그야말로 절경이다."날 새고 눈 그쳐 있다 뒤에 두고 온 세상, 온갖 괴로움 마치고한 장의 수의에 덮여 있다"폭설(暴雪)은 세상의 소리를 단박에 덮어버리고 ‘침묵’을 그려낸다. 그 침묵의 끝자락서 전해오는 팽팽한 긴장감! 평온과 적막이 빚어낸 이 긴장감은 불현듯 마주한 죽음에서 시작됐는지 모른다. 살짝 밀려온 공포감을 떨쳐내기보다, 죽음의 가온으로 한 발 더 들어가 직면하는 게 낫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