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수) ▲사회복지법인 금강 ‘2010년 후원자·자원봉사자 송년행사’=저녁 7시, 마산 아리랑호텔. 055)221-8445 ▲안양시니어클럽 ‘2010년 노인일자리 전진대회’=오전 10시, 안양종합사회복지관 신관 3층, 17일까지. 031)455-0551 12월 16일(목) ▲공주 마곡사 ‘대전충남 불교 지도자 송년법회’=오후 6시, 대전 아리제뷔페. 041)841-6220 ▲대구 동화사 ‘동지기도법회 입재’=오전 10시, 경내 통일약사대불전, 22일까지. 053)985-9223 ▲양산 통도사 ‘월하 대종사 제7주기 추모일 기념 근현대불교사 출판 봉정식’=오전 10시, 경내. 02)575-4503 ▲서울 도선사 ‘동지맞이 7일 특별 관음기도법회’=오전 10시, 경내, 22일까지.
지난 90년대 초부터 근현대불교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김광식〈사진〉 동국대 교수가 해방 이후 가장 큰 사건으로 손꼽히는 불교정화운동(1954~1962)과 종단개혁(1994)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과 평가의 매스를 들었다. 김 교수는 특히 오늘날 조계종의 ‘세속 따라가기’와 ‘유사정치집단화’ 문제가 우려할 수준으로 새로운 불교정화운동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보조사상연구원과 (가칭)불교정화운동기념사업회가 11월 24일 오후 1시30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하는 불교정화운동 50주년 기념학술세미나에서 ‘불교정화운동과 조계종의 오늘’이란 논문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펼칠 예정이다. 미리 배포된 논문에서 김 교수는 “최근 조계종단은 정체성을 상실하고 성찰의 자세를 방하착하고, 갈 길을 못
김연일의 제주 법정사 봉기가 불교계 첫 무력항쟁비구니 상근은 자금조달 … 신상완은 日 회담 동행 왼쪽부터 불교계 독립운동의 핵심 만해 스님, 민족대표로 3·1운동 참여한 용성 스님, 한성임시정부 불교대표 한영 스님, 의병활동 후 출가해 독립투신한 운허 스님. “아등은 기(起) 하였노라. 대한의 국민으로서 대한국가의 자유와 독립을 완성하기 위하여 2천년 영광스러운 역사를 가진 대한불교를 일본화와 절멸(絶滅)에서 구하기 위해 아 7천의 대한 승니(僧尼)는 결속하고 기(起)하였노니 시사보국(矢死報國)의 발원과 중의경생(重義輕生)의 이 의기(義氣)를 뉘 막으며 무엇이 막으리오. 한번 결속하여 분기(奮起)한 아등은 대원(大願)을 성취하기까지 오직 전진하고 혈전(血戰)할 뿐인저.”
발해동양학한국학연구원․한국불교사연구소가 펴내는 「문학/사학/철학」(2008년 겨울 제15호)이 최근 나왔다. 이번 호에는 △영주 대조영 집단의 발해 건국(정병준) △일연사상과 민족통합(정원용) △근현대불교사와 구술사(이경순) △마음에 대한 고찰(고영섭) △법개념 논쟁을 통해 본 관행과 법해석의 재량(이정훈) △원효 화쟁의 판정과 방법(김영일) △단군신화에 대한 재해석1: 곰은 사라지고 단군이 산신령이 된 까닭은(박정진) △간다라 미술기행(5): 페샤와르의 탁티바히 사원지(유근자) △강소연의 미술사 기행(2): 관경십육관변상도2 △누에의 자아로 시의 돈오를 기다리다: 고영섭 시집 『황금똥에 대한 삼매』에 화답함(민순의) 등 글이 게재돼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이상 「법보신문」에 칼럼과 기획물을 기고해온 여섯 명의 연재물이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갈무리 된다. 긴 세월을 「법보신문」 독자들과 함께 해온 기고가들이 연재를 갈무리하면서 ‘법보신문 연재를 마치며’라는 주제의 글을 통해 그동안 풀어놓은 글을 반추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섯 명 기고가들의 회향 글을 지면에 옮긴다. 정사유 수행하는 자세로 집필‘21세기 불교의 철학적 읽기’ 연재 김 형 효 천학비재한 제게 법보시문이 4년 연속으로 글을 맡겨주었다. 실로 신문게재의 글로서 파격적인 기간이었다. 불교의 덕화를 입은지가 얕은 필자로서 이런 후대를 받은 것은 너무 흥감한 일이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제가 서양철학에 눈을 뜬 이후로 실존주의와 현상학, 그리고 구조주의와
종정-총무원장 갈등 원인…양측 공방으로 폭력·유혈 난무청사는 불타고 사상자 다수 발생…공권력에 의해 겨우 진정 1998년 조계종 분규로 화염에 휩싸인 조계종 총무원 청사. 1998년은 김영삼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로 말미암아 IMF로부터 구제금융 지원을 받아 주가지수는 300대로 추락하고, 각 기업과 공무원들은 인원 감축 사태를 맞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불교계 또한 정화개혁회의라는 세력이 등장하여 1994년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의가 중심이 되어 사부대중이 참여하여 민주화를 실현하였던 개혁을 역행하는 분규를 겪게 된다.사태의 발단은 1994년 서의현의 3선을 저지하기 위하여 개최되었던 전국승려대회 결과 개혁회의가 출범하고 새로운 종단의 총무원장으로 취임하여 4년의 임기
자신의 안목 바꿔나가는 게 ‘학문’지금부터는 불교사 저술에 주력 지난 8월 29일 정년퇴임한 최병헌 서울대 사학과 교수는 한국불교사 연구를 이끄는 대표적인 중진학자다. 최 교수는 그동안 많은 불교사학자를 양성했을 뿐 아니라 탁월한 안목으로 불교사 연구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2회에 걸쳐 그의 학문관과 함께 현재의 한국불교를 바라보는 그의 날카로운 견해를 소개한다. 편집자 한국사 연구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삼국시대 이 땅에 들어온 불교는 지난 1700여 년 동안 사상, 문화, 정치, 경제를 비롯한 생활 전반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그런 까닭에 불교에 대한 이해 없이 한국사를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
한글 대장경 발간 편집회의 장면. 사진제공=민족사 1964년 동국대학교 부설 동국역경원 설립정부·조계종·동국대 함께 참여한 대 역사1971년 이탈리아의 밀라노 전시회에 출품통불교적 관점으로 펴낸 ‘불교성전’ 인기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불경은 인도의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되어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1세기 중반인 후한 초기에 불경이 한역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4세기 경이고,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경전은 한문으로 되어 있었다. 한문으로 된 불경은 지식인이 아니면 아무나 쉽게 읽을 수는 없었다. 불교가 나의 실체를 깨닫는 종교라고 한다면 그 깨달음을 알기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삶 자체가 20세기 한국불교사라고 할 만큼 격동의 세월을 온 몸으로 겪으며, 한 평생 종단개혁, 역경, 어린이·청소년 포교에 헌신했던 ‘20세기 고불(古佛)’ 석주(1909~2004·사진) 스님.석주정일문도회(대표 월호)와 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이 석주 스님의 탄신 100년을 맞아 4월 8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이를 기념하는 대규모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등 종단 주요 직책을 역임한 석주 스님은 어린이 포교에서부터 노인복지, 군포교, 교육불사, 역경사업, 종단행정 등 근현대 한국불교에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크나큰 원력의 삶을 살다가 입적했다. 이번 탄신 기념학술회의에서는 근현대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중 노릇 행자 때 다한다.”출가 수행자의 길을 결심한 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행자 시절. 아직 정식으로 출가를 하지 못했으니 수행자는 아니지만 이 시절 마음속에 품고 있는 발심과 신심만큼은 인천의 스승에 못지않다. 그래서 옛 스님들은 행자 때야 말로 가장 출가자다운 시절이라고 말한다. 계를 받기까지 은사 스님을 모시고 살며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등 절집안의 모든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시절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와 추억을 낳는다. 근현대 한국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큰스님들에게도 행자시절은 있었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우리는 큰스님들의 법향을 오래 동안 느끼며 마음의 의지처로 삼을 수 있다. 『나의 행자시절』은 동국대학교 역경원 역격위원을 역임한 작가 박원자 씨가 근현대 한국불교계에 족적을 남긴 스님
1919년 중국 상해에서 12명 승려 이름으로 발표“7000명 승려 피로써 독립투쟁하겠다” 내용 담겨 선언서 작성자 놓고 백초월·신상원 등 의견‘분분’ 1919년 11월 15일 중국 상해에서 발표된 대한승려연합회의 독립선언서. (사진제공=민족사) 「대한승려연합회 독립선언서」는 1919년 11월 15일자 중국 상해에서 12명의 승려 이름으로 발표된 독립선언서이다. 이 선언서는 1969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굴했다. 당시 국사편찬위원회에 있었지만 후에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던 임영정은 1970년 3월 15일자 현재 「불교신문」의 전신인「대한불교」 신문에 이 선언서의 입수 경위와 발견의 의의를 소개하였다. 그가 소개한 내용은 이러하다. 이 선언서는 1
전공학자들이 제시한 근현대사 연구과제1. 국내외 자료의 수집2. 타학문과 연계한 학제간 연구 필요3. 근대 일본불교의 동향 및 한국으로의 침투4. 일제시대 고승들의 사상 및 활동에 대한 연구5. 불교계 친일문제 진단 한국의 불교사 연구는 고대에서 현대로 내려올수록 전공자가 적다. 다른 역사학 파트에서는 시대가 올라갈수록 전공자가 적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원효와 의상으로 대표되는 찬란한 고대불교에 비해 근대로 내려올수록 뛰어난 학승들의 수가 줄어들고 불교의 사회적 참여도가 낮아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현대’ 특히 일제시대는 친일문제 등 불교계의 지지 혹은 지원을 받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 근현대사 연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문제
한국불교학과 관련된 10만여편의 논문 중 일제하 불교에 관한 박사논문은 단 8편에 불과하다. 한국불교학 연구가 얼마나 편중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제시대는 ‘불교학의 노다지밭’이라고 불릴 정도 다수의 자료들이 밀집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사학자들은 상대적으로 일제시대에 대한 연구를 기피하고 있는 현상이 뚜렷하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이 11월 2일 ‘한국근현대불교사연구의 동향과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회의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일제하 불교계 인물의 생애와 사상’을 발표한 이덕진 창원전문대 교수는 “근현대 불교에 대한 종단과 학계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재 일제시대 불교계 인물에 대한 연구성과는 몇몇 개인이나 특정
이기영 추모학술대회 불연 이기영 선생의 10주기를 추모하는 학술대회가 11월 3일 동국대 덕암세미나실에서 열린다. 이 학술대회에는 이민용, 정병조, 조성택, 이태승 등 그의 제자들과 김상현, 김성철 등 후배 교수들, 그리고 서래대학 총장 랭카스터, UCLA 버스웰, 류고쿠대 아라마끼 등 그와 교유했던 외국인 학자들이 대거 참석해 이기영 교수의 업적과 한국불교학의 연구성과들을 논의한다. 근현대불교사 학술회의 (재)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은 11월 2일 오후 2시 서울 타워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한국 근현대 불교사 연구의 동향과 과제’를 주제로 제2회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김혜경 성신여대 강사가 ‘일제의 불교정책’을, 김경집 동국대 강사가 ‘일제 침략기 불교계의 대중화 및 개혁운동’을, 이덕진 창원전
이동인 등 개화승 활동-승려 도성 출입 계기억불로 침체됐던 국내 불교계에 기폭제 역할 우리 근현대불교사는 시련과 좌절을 딛고 선 아픈 기억을 가진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억불정책으로 일관하였던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근대사회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주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그 후유증으로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도 많은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 불교 근현대사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조명은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 필자는 많은 분들의 질책을 달게 받을 각오로 광복 60주년을 한 해 지난 현 시점에서 개항기부터 20세기를 마감하는 시기까지의 근현대불교사를 정리 해 보려는 만용을 부려 보고자 한다.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전량 폐기” “뺏은 절 반환” 한때 고성 “불교사 공동 기술…원만히 해결하자” 태고종 종단사간행위원회가 발간한 『태고종사』 내용을 놓고 갈등을 빚어온 조계종과 태고종 양종단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4월 7일 회동, “상식선에서 원만히 해결하자”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조계-태고 양 종단에서 각각 7명씩 14명이 한 자리에 모여 1시간 넘게 이어진 이날 회동에서 조계종 측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조계종 측은 기존의 주장대로 “전국에 배포된 『태고종사』의 전량 수거 및 폐기”를 요구했다. 조계종은 한 발 나아가 태고종의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태고종 측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맞섰고, 급기야 “조계종 교구본사 가운데 3개를 태고종에 돌려주면 태고종사를 전량 폐기하겠다”며 그동안 상
“찬양일변 논문서 벗어나야”지적도 10월12일 부산 고심정사에서 열린 성철 스님 추모 학술세미나. 지난해 12월 통도사에서 개최된 ‘현대고승 재조명 학술세미나’를 시작으로 최근 구하, 이종욱, 자운, 동산, 성철 스님 등 이른바 한국근대불교를 대표하는 스님들을 조명하는 학술발표회가 연이어 개최되고 있다. 또 근현대 불교사에 있어 각 지역 전통사찰의 역할과 인물 등을 집중 조명하는 학술세미나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학술발표회는 단순히 근대 고승의 행장을 열거하는 수준을 넘어 근현대 불교사에 있어 고승의 역할과 사상, 스님을 중심으로 한 근현대 불교계의 변화와 발전 등을 폭넓게 다뤄, 내용면에 있어서도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근대고승들을 조명하는 학술발표회가 최근 들어 ‘붐’처럼 개최되는
“제살 갉아먹는 분쟁 순수보다 정치색 강해” 통설 뒤엎는 내용 많아 거센 논란 일 듯 지난 1954년부터 1970년까지 교계를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소위 ‘정화’와 관련해 호평과 찬양일변도의 평가 속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이 나왔다. 정태혁 동국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불교융통사』(정우서적)에서 정화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즉 “이 사건은 외부 이교도의 정치노름에 의한 법란인 동시에 이에 놀아난 불교도들끼리의 어리석은 분쟁”이었다는 주장이다. 정 교수에 따르면 해방 이후 비구측과 대처측의 갈등이 내재돼 있다가 1954년 5월 대통령의 유시가 발표되자 불교계에서 태동하고 있던 보수적인 독신승과 신진 대처승과의 불화가 일시에 폭발하게 됐다는 것. 그
올해는 정부 수립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광복절을 맞는 감회도 새롭다. 일제 강점으로부터의 광복은 한겨레 모두의 염원과 줄기찬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조국의 광복을 위해 힘을 모은 선인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불교계도 그 대열에 동참해 무수한 고난을 겪었다. 그렇지만 필자를 비롯해 대다수의 불자들과 국민들은 그분들의 면면을 잘 모른다. 무관심이 일차적 원인이겠지만 불교계의 광복을 위한 노력들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극히 부진한 것도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학계의 한국불교사 연구 영역 가운데 근현대불교가 가장 연구가 미진한 분야라고 들었다. 교계의 노력이 부족한 것도 마찬가지다. 종단 차원에서 근현대불교사를 규명할 사료를 집대성했
"과거를 거울로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제시한다." 사학(史學)은 과거를 살피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사학은 지나간 역사의 단면들을 분석·고증함으로써 현재의 시대상을 이해해 내고 보다 바람직한 미래상을 제시하는 대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이같은 사학의 역할은불교사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동안 불교사학은 각 시기별로 나름의 연구성과를 쌓아 왔지만 유독 근현대불교사만은 개척해야 할 영역으로 남아 있다. 시기적으로 가까운 과거이자 현대한국불교의 모태이면서도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근현대불교사를 연구할 기초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사의 '한국 근현대불교 자료 전집'은 불교사의 공백을 메워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