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진흙탕 속에서 치른 것 같은 대통령 선거전을 마감한 국민들은 이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 관한 뉴스에 시선을 보내고 있다. “2013년까지 향후 5년이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관심에서이다. 역대 대통령 당선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항상 기대 속에 싹 튼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한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뀐다. 실례는 예외 없이 역대 정권에서 실증되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당선자 시절과 집권 초기에는 국민들로부터 60~80%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지지율은 마치 수학 공식처럼 집권 6개월도 지나지 않아 크게 떨어져 말기에는 10 ~ 20%로 마감한다. 왜 그럴까. 국민들이 잠시(5년) 빌려준 권력으로 자기 주변사람과 친인척들로 주요 국정을 주물렀기 때문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용과 뱀이 함께 어울려 사는 도량, 이것이 한국불교의 역동성을 간직한 도량의 참모습이다. 용이 되고자하는 뱀은 끊임없이 자신의 허물을 벗으면서 이무기로 변화하고 이무기는 인욕과 인고로 이윽고 용이 되는 것이다. 용은 뱀과 섞여서 몸을 숨기면서 용트림을 기다리며, 여의주를 득하여 품어 굴릴 줄 알아야 하고, 여의주를 갖춘 용은 승천하여 천지의 왕래에 그리고 용사의 왕래에 간격이 없어 자유자재하여야 한다. 그래서 용이 곧 뱀이고 뱀이 곧 용인 용사불이가 성립되고 따라서 용사상생은 당연한 귀결이 되는 것이다. 근대 한국불교에서 꺼져가던 선풍을 중흥시키고 제방의 여러 선원들을 설립하고 납자들을 지도하던 경허 스님, 오대산 상원사에서 올곧은 종풍을 정립하고 조계종 초대종정으로 추대 받은 한암 스님, 그리고 스승
손 혁 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선거를 치르고 나면 가장 많이 나오는 평가 가운데 ‘뜻밖의 결과’라는 표현이다. 5년 전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당내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꺾고 후보가 되었을 때도, 대통령선거에서 ‘이회창 대세론’을 꺾고 당선되었을 때도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뜻밖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뜻밖의 결과’라는 평가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정확한 표현은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측이 틀렸다’가 되어야 한다. 왜 선거 때마다 번번이 전문가들의 예측, 언론의 전망이 틀릴까? 우리나라 선거가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정치가 안정되어 있지 않은데다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선거는 유형을 나누기가 쉽지 않고 선거 하나하나가 다 새로운 특징들
연말연시가 코앞인데 주위의 관심은 온통 선거에 솔려있어 으례 하는 이웃돕기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나라의 5년 아니 10년 이상의 장래가 걸려 있는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신망과 덕과 능력을 갖춘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특정한 사고에 빠져 있거나 자신만의 종교에 빠져 다른 종교를 무시하는 후보를 선택하면 중도적인 입장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기에 신중히 선택해야 국론분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연말연시에는 자신은 물론 이웃도 돌아봐야 한다. 어떤 일을 함에 시작할 때는 계획을 세우고 끝날 때엔 반성과 평가를 하듯, 한 해의 끝과 시작 은 이웃을 돌봄으로 자신을 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보살은 온갖 중생 중 구호를 못 받는 자나, 갈 곳이 없는
정말 그랬다. 수유리 사거리 교통표지판에서 화계사의 영문이름이 또렷이 보일 때 가슴이 두근거리며 마치 인생의 긴 방황 끝에 찾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듯 잔잔한 흥분과 함께 마음 속 깊은 안도의 기쁨과 과거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 뒤섞여 화계사로 향하였다. 화계사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이러하였다. 그들은 멀리 유럽이나 미주지역,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찾아오는 벽안(碧眼)의 수행자들이었다. 그들에게 화계사는 한국에 있는 하나의 불교사원이 아니라 전 세계의 유일한 정신적 고향이자 귀의처였다. 화계사는 서울에 있는 여느 사찰처럼 산자락 끝에 있는 작지도 크지도 않는 평범한 사찰이다. 수려한 계곡이 받드는 것도 아니고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져 있는 것도 아니며 평화롭게 산책할 수 있는 정원이나 숲이 수 십 만평 펼
손 혁 재경기대 정치교육원장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종교계가 정치에 휩쓸리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만 나타나는 양상은 아니고 선거 때만 되면 종교계에 선거바람이 불어왔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종교의 일부 성직자들이 도를 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현 단계에서 당선이 유력한 후보가 매우 독실한 그 종교의 신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종교의 일부 성직자들이 설교나 공식 자리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 성직자는 이번 대선에서 그 후보를 안 찍는 신도는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농반진반으로 협박을 했다는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그 후보 자신도 봉헌 발언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성직자들도 있다. 지난
덕 진 스님울산 정토사 주지 한 차례 추위 이후론 입동이 지났는데도 따뜻한 날이 지속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우리가 사는 세상은 대통령 선거를 40여일 남겨두고 나온 이회창 씨의 출마 선언으로 요동치고 있다. 각 당이나 이해관계가 얽힌 진영은 더욱 분주해졌다. 이러한 때에 출가 수행자이자, 한 사람의 불자이기도 한 필자는 조용하지만 간절한 바람을 전 불자들에게 피력하고자 한다. 얼마 전 조선일보 사장이 총무원장 스님을 방문하고 그간의 보도에 대해 해명하고 다시는 왜곡보도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돌아갔다. 사필귀정이다. 그러나 그러한 보도의 빌미를 제공한 교계내부의 갈등이나 이를 해결하려는 잘못된 방법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대중공사를 벌여 참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청아 스님대전 자광사 주지 작금의 한국불교는 총체적 난국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어 도대체 어디서부터 그 해법을 찾아야하는지 막막한 상태이다. 부끄러움도 아픔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 하는 가히 뇌사상태라 할 수 있겠다. 1600년의 한국불교를 현재의 이러한 상태로 만든 책임론보다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자주 발생될지가 오히려 더욱 큰 걱정으로 다가 온다. 마치 부모나 스승의 임종을 지켜보는 심정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불법의 지혜가 이 땅에서 다시 꽃피어오도록 불자들은 모두 마음과 지혜를 모우고 아픔과 고통을 나누어 그 해법을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 먼저 이러한 총체적 난국을 냉철하게 진단하여야 한다. 바른 진단에 의하여 바른 치료가 도출될 수
손 혁 재경기대 정치교육원장 얼마전 속리산 법주사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하고 불교인권위원회가 주관한 불교인권학교가 열렸다. ‘자비, 생명 그리고 우리들의 인권’이라는 주제로 열린 불교인권학교는 불교와 인권, 지구화 시대 평화문제와 생존권, 학교에서의 종교자유 문제 등을 다루었고 다른 종교 인권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불교와 인권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까. 부처님 가르침, 불교경전의 말씀 어디에서 인권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우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오히려 인권과 관련되지 않은 것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부처님 말씀이야말로 2500여년 전에 나온 뛰어난 인권선언이 아니겠는가? 인권이란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다. 사
덕 진 스님정토사 주지 신정아라는 한 맹랑한 젊은이로 말미암아 우리 교계가 느끼는 불쾌감은 감내할 수준을 넘고 있다. 사람이 둘이나 생명을 잃고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던 아프간 인질사태의 책임문제는 잊은 지 오래고 코앞으로 다가온 대권도 신정아 보다 덜 중요한 듯 거대 언론들은 거의 석 달 가까이 그들의 작은 부분까지 캐고 또 캐고 있다. 거대 언론들이 신정아를 마치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거나 모든 국민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위대한 사람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신정아 패션이 어떻고 가방이 얼마짜리니, 또 누구와 메일 상에서 호칭을 어떻게 썼는지 등 법과도 관련이 없고 국민 전체에 끼치는 영향도 없는 것들을 선정적으로 쓰고 있다. 그러면서 동국대와 불교 전체가 범죄에 연루된 듯 한 논조로 지면을
정 구 복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어제는 민족의 최대명절인 추석이었다. 매년 추석 명절에는 전국에서 1000만 인구가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달려간다. 농어촌에 가는 길은 전국 어디나 아스팔트로 잘 포장되어 있다. 도시의 폐쇄적인 아파트 공간과 소음, 먼지로 가득 쌓인 답답한 곳을 벗어나 바람 시원하고 산천이 아름다운 열려진 자연의 품에 안기게 된다. 시골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들녘의 황금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시골을 찾은 여러분을 공손하게 반기고 있다. 이런 시골의 정경은 정말 사람이 살만한 자연환경임을 누구나 마음속으로 느꼈을 것이다. 아이들이 고추잠자리를 잡으며, 송사리와 메뚜기를 직접 잡고, 집안의 감나무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따주시는 홍시를 먹어 본 어린이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
청아 스님대전 지광사 주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부모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이때 모든 부모들은 하나같이 자녀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말과 글을 가르치며, 자식이 훌륭한 인간으로 자라주기를 기대한다. 자녀들이 점점 자라 더욱 성장하면 부모들은 자식들이 훌륭한 스승 밑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경주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경우로 우리는 흔히 중국 맹자와 한석봉의 어머니를 예로 든다.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보다 나은 공부 환경과 훌륭한 스승을 갈구하게 되고, 스승들은 또한 역사적으로 위대한 성현들의 가르침과 인류가 축척해 놓은 지식들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헌신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부모와 스승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자라 성인이 되면 자녀들은 사회
손 혁 재경기대 정치교육원장 해마다 9월이 오면 생각나는 스님들이 있다. 1200여년전에 입적한 김교각 스님과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에 입적한 효봉 스님이다. 김교각 스님은 중국과 일본 등에서 현신한 지장보살로 숭배되고 있는데 신라 경덕왕의 아들로 추정된다. 김교각 왕자는 스물 네 살 때 당 나라로 건너가 구화산 토굴에서 고행하고 아흔아홉에 입적했다. 교각 스님은 항아리 속에 들어가 가부좌한 채로 열반에 들었는데 3년 뒤 육신이 썩지 않은 채 지장보살의 화상과 똑같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1500년 만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현신한 지장보살로 모셔지고 있다. 교각 스님의 법체는 금을 입힌 등신불로 모셔져 스님이 창건한 중국 안휘성의 구화산 화성사에 보존되어 있다. 구화산 성지는 교각 스님
덕 진 스님정토사 주지 몇 달간의 진통 끝에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가 정해졌다. 이제는 여권 혹은 또 다른 정당의 대선 후보가 정해지는 과정이 남아 있다. 우리는 그 동안 대선 후보 경선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없거나 누가 링 위에 오르는지 봐야 하고, 또 마지막 결전을 지켜 봐야하는 의무가 있다. 이처럼 대선 얘기에 휘둘린 지도 벌써 일 년은 족히 넘어서는 것 같다. 언론이란 입법 행정 사법에 이은 제4부라고도 하고, 제3의 권력기관 또는 ‘사회의 공기’라고 할 만큼 그 영향력은 자못 크다. 또 그 영향력 만큼이나 정론과 직필의 정의로움을 요구받는 게 바를 언론의 사명이자 존재의 이유다. 언론은 한 가문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를 맑게 하고 이를 가로막는 부정을 감시해야 하는 공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
정 구 복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역사 허물기와 역사 쌓기라는 용어는 생소한 말이다. 특히 역사 쌓기란 용어는 필자가 5년 전부터 역사 허물기의 대칭용어로 처음 사용한 말이다. 이 두 가지 용어로는 인간이 의식적,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역사와 역사적 유물을 없애거나 새로이 세워 이를 유지 발전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역사 허물기로 기억되는 최초의 사건은 1896년 독립협회에서 조선왕조가 명나라와 청나라의 사신을 국왕이 맞이했던 영은문(迎恩門)을 중국에 대한 사대의 상징이라고 하여 철거하고 이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던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의 패배로 청나라 세력과 간섭이 배제된 상황 하에서 이루어졌다. 그 이름이 부적절하면 고치면 될 일이었다. 이로 인하여 조선 전기
청아 스님대전 자광사 주지 출가 입산하는 스님에게 출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스님으로서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이 원효 스님께서도 그 뜻을 밝혀 ‘세속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여윈 것’이라고 출가의 의미를 분명히 하셨다. 몸으로는 부모형제들과의 세연을 끊는 것이며, 마음으로는 번잡한 세상일들과의 인연을 벗어나 상구보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출가의 인연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지만 출가의 뜻은 이와 같아서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것이다. 이렇게 출가한 스님들은 불가(佛家)를 이루는 일원이 되어 각각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수행공부에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가도 자체적으로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국제사회나 국가와 같은 사회와 종횡으로 불가분의
손 혁 재경기대 정치교육원장 올 12월에 치러질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교계에 선거바람이 불고 있다. 올바른 지도자의 선택은 국가의 앞날과 국민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불교계가 대통령 선거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선거바람이 이상하게 불고 있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모 정치인에게 “선덕여왕 이후 여왕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덕담(?)을 한 스님이 있다고 한다. ‘필승’이라고 써 준 스님도 있다고 한다. 어떤 스님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방문하면 버선발로 뛰어나오고,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오면 차갑게 대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렇게 권력지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개신교신자인 이승만 대통령을 ‘보살의 화현’이라고 추켜세운
덕 진 스님정토사 주지 필자는 30년이 넘는 승려생활을 통해 어찌하면 불교가 좀 더 쉽고 생활화 될 수 있을까를 골몰하고 있다. 그 결과, 천수경이나 축원 등 의식의 대부분을 한글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절에서는 모두 이를 따라 하지만 불자들 대다수가 제사와 장례식 등 가정에서 행해지는 의식은 유교식으로 하고 있다. 불교의 장엄하고 엄숙한 장례의식, 다비식과 천도재, 시식 등은 주로 사찰 내에서만 하고 가정이나 장례식장 등에서는 스님을 초청하는 경우 외에는 불교 의식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유교식 상례는 곡을 하고 상주는 죄인이라 하여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고 있지만, 불교는 영가의 이름으로 보시 공덕지어 이고득락(離苦得樂)을 발원하고 어리석음을 깨우치도록 진리의 법을 설해주고 있다. 이렇게
정 구 복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불교에서의 시간관은 영겁의 시간을 꿰뚫고 있다. 1겁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이에는 세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되고 있다. 그 중 한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20리 되는 성안에 가득 채워진 겨자씨를 백년에 한 알 씩 집어내어 이를 다 집어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1겁이라고 한다. 이는 천문학적 계산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이다. 우리 인간은 오래 사는 사람의 경우에 겨우 겨자씨를 하나 집어내는 백년에 불과하다. 짧은 100년의 삶은 현세의 삶을 말할 뿐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과거세와 미래세의 삶이 있으니 모든 사람의 삶이 영겁동안 이어진다. 우리가 이 시대에 그리고 한국에 태어난 인간으로 태어난 확률은 로또 복권의 당첨률보다 몇십 배, 몇천 배 더
정여 스님부산 여여선원 선원장 한 여름에도 불자들의 마음속까지 상쾌하게 해주는 시원한 소식을 들었다. 부산 안국선원에서 수불 스님이 어린이 포교를 위한 발전 기금으로 상당히 많은 정재를 종단에 희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신흥사에서 성일 스님이 어린이 포교 기금으로 많은 성금을 종단에 보시 하신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포교 공덕은 대자비심이고 보현행원의 실천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좋은 일들을 계기로 어린이 법회가 전국적으로 활성화 되었으면 하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곧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예전에는 방학이 되면 마음 놓고 놀 수 있었기 때문에 도시에 살고 있더라도 농촌에 내려와서 원두막에 가서 참외도 먹고 수박도 먹으며 알찬 시간을 보냈다. 또 개울가에 가서 물장구도 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