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사회는 타락하고,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온 세계는 전쟁이 일어나고, 약육강식이 넘치고, 인간성은 파괴되고 야심의 불길에 휩싸여 짐승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인승(人乘)으로 바른 인간의 도리로서 대승불교의 기초를 세워야 한다.”불교 제종파·서양철학까지 연구곳곳에 불학원 세워 인재 양성‘인간불교’로 중국 근대화 기여‘불교를 근본으로 세상을 변혁하여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제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한 평생 그 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던 중국 근대 고승 태허대사(1889∼1947)의 말이다. 특히 태허대사는 세상의 변화에
2003년 10월, 빈곤 국가의 어린이와 주민들을 위한 국제 구호활동에 전념하겠다는 원을 세운 한 단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라오스, 몽골, 미얀마, 네팔, 케냐에 지부를 개설했고 그 나라마다 활동가를 파견하는 한편 식수지원과 교육, 그리고 지역개발을 도왔다. 그 결과 지금까지 캄보디아를 비롯한 각국에 2307곳의 우물을 만들어 식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58곳의 초·중·고등학교를 세워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도 가능하도록 기반을 다졌다.이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한 힘은 한 스님의 절실한 발원에서 시작됐다
역사는 인류 사회의 발전과 관련된 의미 있는 과거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이나 현상이 진행되거나 존재해 온 과정을 비롯해 자연 현상의 변화 등 인류 사회의 변천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역사도 누가 어느 시점에서 기록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특히 정권이 바뀌었을 때 앞선 정권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이전 정권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심지어 그 기록을 말살하기까지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하는 이유다.부국강병 꿈꾸며 세운 정림사백제 멸망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매일 매일의 행복을 꿈꾼다. 하여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을 찾아 마음속으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마음 바깥에서는 마음속으로 생각한 그것을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다.하지만 그렇게 매일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면서도 정작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아니,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이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며 가슴치고 고개를 가로 젓기에 바쁘다. 때문에 내적·외적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고 불행의 크기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왜 그럴까? 동사섭 수행프
“나라 안의 명산 중에서도 이곳이 가장 좋은 곳이니 불법(佛法)이 길이 번창할 곳이다.”옛사람들이 명산 중 명산이요불법 길이 번창할 곳이라 감탄자장 스님이 불사리 봉안하고신라 보천·효명 왕자 수행하며문수보살 친견하고 예경·공양본찰 월정사에서 상원사 거쳐보궁 수호 사자암·적멸보궁까지산중 전체가 성지이자 문화재옛사람들은 이곳의 산세와 지리를 보고 이처럼 감탄했다. 강원도 평창군과 홍천군, 그리고 강릉시에 걸쳐 있는 오대산. 높이 1563m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등의 고봉들이 한 뼘 두 뼘 높이를 달리한
“엄마는 나를 엄마가 생각하는 아이로 만들려 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뭐라고 하면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한다.”이 세상, 아니 대한민국에서 자녀를 두고 살아가는 엄마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엄마들에 대한 감정이 편치 않다. 엄마와 자녀 사이의 불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초등학교에서 3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집에서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쌓아둔 아이들의 속마음에 귀를 기울이면서 엄마의 말이 아이에게 어떤 마음을 불러일으키는지, 또
범일(梵日) 스님이 당나라 명주 개국사에 이르자 왼쪽 귀가 없는 한 사미가 “저도 신라 사람입니다. 제 집은 명주의 경내인 익령현 덕기방에 있으니 조사께서 후일 본국에 돌아가시거든 반드시 제 집을 지어 주십시오”라고 간곡히 청했다. 이후 귀국해 굴산사를 세우고 가르침을 전하던 어느 날 꿈에 그 사미가 나타나 “약속한 것을 실천하라”고 재촉하자, 범일 스님은 전에 사미가 일렀던 곳으로 찾아가 낙산 아랫마을에서 덕기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아이가 함께 놀았다는 금빛 나는 친구를 찾고서는 놀라지 않을
“‘화엄경’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가 하면, 저 차 소리, 기차소리, 온갖 잡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물소리, 우주 전체가 ‘화엄경’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전체가 ‘화엄경’이라고 한다면 따로 들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부처를 따로 찾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지옥을 피할 이유가 없으며 천당을 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살았다고 좋아할 것이 없고 죽는다고 서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엄경’ 도리입니다.”은사에게서 배운 ‘화엄경’현대인에 보급하겠다 발원1년에 2권씩 10년 불사계획직역으로 명확하게 의미전달탄허 스님은
법보신문 삼국유사순례단이 6월25일 일연 스님의 출가 사찰인 강원도 양양 진전사로 제3차 순례를 떠난다.진전사는 조계종 종조인 도의선사가 창건한 사찰로 신라 구산선문의 효시가 되었던 가지산파의 거점 도량이었다. 경상도 장산에서 태어난 일연 스님이 전남 무량사에서 공부하다 진전사를 찾은 것은 1219년으로 당시 나이 14세였다. 일연 스님은 여기서 대응 스님의 제자가 되어 삭발염의하고 출가수행자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1227년 승과에 급제했음에도 산중으로 돌아가 비슬산 보당암에서 참선과 수행에 몰두했고, 무주암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스님들이 전면에 나섰다. 세상살이에 지쳐 움츠린 어깨를 펴지 못한 채 속으로 아픈 마음을 삭이는 대중들의 손을 잡았다.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처럼, 혹은 품 넓은 형님처럼 토닥이며 안아주는 그 품에 아픈 청춘들이 몰려들었다. 뿐만 아니다. 나이 지긋한 장년층과 노년층까지 자꾸만 좁아지는 어깨를 내어 맡기고 있다.혜민 스님 4년 만에 펴낸 신작‘완벽하지…’ 상반기 판매 1위법륜 스님 ‘행복’도 10위권 안불교출판도 외형적 성장 지속올해 5월까지 불서 212종 출간법어·에세이 종류가 가장 많아불황 속 어린이·학술서 늘어매
“절과 절이 별처럼 벌여 있고, 탑과 탑들은 기러기 행렬인 양 늘어섰다. 법당을 세우고 범종을 매어다니 용상 같은 승려의 무리가 세상의 복전이 되고, 대소승의 불법이 서울의 자비로운 구름이 되었다.”불교미술 보고인 남산 오르며보리사터 미륵곡 부처님 만나자애로운 미소에 환희심 느껴바위 하나에 35개 조각 새긴10m 탑곡 마애불상군에서는부처님 모습 찾으며 원 세워삼릉계선 선각육존불상 참배친근한 미소로 순례단 맞이해‘삼국유사’는 불교가 공인되면서 변화한 신라 서라벌을 이렇게 묘사했다. ‘절이 하늘의 별처럼 펼쳐져 있고 탑이 기러기 행렬처
부처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은 ‘8만4천’으로 표현할 만큼 방대한 양에 달한다. 부처님이 때와 장소에 따라, 그리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근기에 맞춰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을 했던 데서 비롯된 결과다.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 방대한 양에 짓눌려 불교를 어렵다고 지레짐작하고 접근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같은 가르침을 놓고도 해석을 달리하며 논쟁을 일삼기도 한다. 세상살이의 복잡함을 간결하고 품격 있게 정리해줘야 할 불교가 난해해지는 이유 중 하나다.그러나 근본으로 돌아가면 모든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리기 마련이다.
문수보살로부터 법을 부촉 받았음에도 신라 왕족의 일원으로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자장 스님. 어느날 그 앞에 나타나 황룡사 호법룡이 자신의 맏아들이라고 밝힌 신인은 “황룡사 안에 9층탑을 이룩하면 왕업이 길이 편안해질 것이며, 탑을 세운 후에 팔관회를 베풀고 죄인을 사면하면 외적이 침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황룡사 9층 목탑 건립은 이렇듯 자장 스님의 신이로운 경험에서 시작됐다.신라의 화려한 불교문화 총체황룡사지서 옛 모습 그려보고분황사선 원효 화쟁사상 새겨불굴사지의 석조사면불상과이차돈 유물 출토
“과거는 인연 따라 흐른 세월이었고/ 인연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흐르므로/ 과거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후회할 것도 반성할 것도 없다/ 미래는 수억만 가지 인연의 흐름이므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래의 일은 ‘모른다’가 정답이니/ 걱정하거나 불안해할 것 없다/ 과거가 죽고/ 미래가 죽은/ ‘지금 이 순간’ ‘지금 이거’ ‘지금 여기’만이/ 삶의 현장이고/ 그 외는 다 허망한 생각이다/ 그러니 문제는 단 하나/ ‘생각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은 어제와 내일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옛 선지식들의 가르침이 오늘날에 전해지기까지는 제자들의 역할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간화선을 정립한 대혜종고 스님의 가르침을 알 수 있는 것 또한 선공부에 대한 요지를 묻는 이들에게 일일이 답한 편지글을 엮은 ‘서장’을 통해서다. 이 책은 제자 혜연 스님이 기록하고 거사 황문창이 중편해서 전해지고 있다. 만약 혜연 스님이 없었다면 우리는 ‘서장’을 알지 못한 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영원한 종정으로 추앙받고 있는 성철 스님의 사상이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는 데도 혜연 스님과 같은 역할을 한 제자 원택 스님이
100세 시대, 최대 화두는 건강이다. 그 영향 때문인지 의사들이 패널로 참여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나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고, 몸에 병 없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좋다는 음식과 건강보조제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정신 건강을 담보하지 못한 육체적 건강은 반쪽 건강일 뿐이다.그래서일까?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할 자기치유를 바라며 힐링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명상을 택한 이들이 늘어나면서 명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도대체 명상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며, 어떤 효과가
허운(1840∼1959) 스님은 중국 근현대 주요 사건들이 이어진 시대를 살며 중국불교를 탈바꿈시킨 주역 이다. 명나라 감산덕청의 환생으로 여겨졌던 허운은 19세에 출가해 56세에 깨달은 후 120세로 입적할 때까지 전쟁과 혁명으로 가득한 환란 속에서도 선의 중흥과 불교 전통의 회복, 그리고 중생구제를 위해 노력했다. 특히 중국 선종 5가 중 임제종과 조동종의 법맥을 이어받았고, 당나라 말기 법맥이 끊긴 위앙종, 법안종, 운문종을 되살렸다. 여기에 더해 계율을 철저히 지킨 율사이자 경전을 손에서 놓지 않은 강사로도 유명하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사람들 근기에 맞춰 전한 말씀이 팔만사천이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옮긴 경전도 수없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부처님 말씀을 옮긴 경전 중 어디 하나 괜한 것이 있겠는가. 용처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우리가 몸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비타민이 약효에 따라 각기 역할을 달리하는 A, B, C, D 등여러 종류가 있듯이 경전도 마찬가지다.그렇다면 모든 비타민의 장점을 모아 놓은 종합비타민 같은 경전은 없을까? 행불선원장 월호 스님은 이같은 물음에 ‘화엄경’을 첫 손에 꼽았다. ‘화엄경’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