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는 고행주의 전통이 강했다. 부처님은 이러한 고행주의를 비판하며, 무익함을 알려주고 계신다. 한편으로 쾌락주의의 무익함과 폐해를 지적함으로써, 두 양극단을 여읜 ‘중도’의 수행체계를 제시한다. 중도의 수행체계란 팔정도를 말하는 것으로, 요약하자면 ‘바른 생각과 바른 행동과 바른말’이다. 이 말은 상황마다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지혜로운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하지만 고행주의는 자신들이 행하는 고행만을 고집하여 바른 생각과 행동과 말이 어렵게 된다. 자신들만이 옳다고 하는 독단에 빠지기 쉽
공화당 정권이 ‘대통령 3선 연임금지 조항’을 풀어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가능케 한 개헌안을 1969년 9월14일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시키고 10월17일 국민투표에서 확정한 지 네 달도 안 된 1970년 2월8일,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당시 제호 ‘대한불교’)에 ‘침묵은 범죄다-봉은사가 팔린다’라는 칼럼이 실렸다. “지금 총무원 측이 획책하고 있는 구상대로라면, 봉은사 소유의 임야 및 대지 13만평 중에 그 6분의 5가 팔리고 나머지 6분의 1이 고작 도량으로서 존속될 모양이다.”글쓴이는 당시 봉은사 다래헌에 머물며 경전 번역
후쿠시마 원전폭발 10주년이 된 올해 일본정부는 2년 뒤에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겠다고 한다. 매일 평균 140톤의 오염수가 발생, 곧 137만 톤의 저장탱크 용량은 90%이상 차게 되어 시설을 확장하지 않고 싼 비용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애초에 원전 건설 또한 무공해 산업으로 값싸게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사고에서 탄생했다. 이미 원전이 지구에 대한 재앙임은 35년 전 체르노빌참사가 보여 주었다. 사고 당시 피폭되어 수백 명이 죽었고, 이후 수십 만 명의 암 환자가 발생, 수만 명이 사망했다. 후쿠시마 원전 문제도 일본의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았대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다시 그 사람을 용서하냐고요!”이것은 영화 ‘밀양’에서 아들을 유괴 살해한 범인을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앙심으로 용서해 주려고 찾아갔다가 오히려 범인의 예상 밖의 말에 여주인공이 절규하는 대사이다. 이 장면에서 범인은 “하나님이 이 죄 많은 놈한테 손 내밀어 주시고, 그 앞에 엎드려서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살고 있다고 마치 성자처럼 말한다. 용서라는 단어를 이 영화에서만큼 머리가 아니
1990년대 들어 경상도 지역의 사찰에서 연쇄적으로 불상들이 도난된 적이 있다. 그런 와중에 1993년 1월9일 문경 운암사 극락전에 봉안돼 있던 아미타불상의 협시보살인 목조관음보살상과 목조대세지보살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사진 1). 이 보살상 두 구는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도난 과정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주지가 사찰을 잠시 비운 틈을 타서 훔쳐간 것으로 보인다. 보살상과 달리 간신히 도난 위기에서 벗어났던 본존불 목조아미타불좌상은 극락전 보수를 위해 요사채로 잠시 옮겨졌을 때 요사채가 원인 모를 화재로 완전 소실되고 말았다.
대중 매체와 소셜네트워크(SNS)의 발달로 정보가 흘러 넘쳐 여과되지 않은 주장들이 한없이 돌아다닌다. 이런 폐해를 막으려면 그 근원을 찾아 뿌리를 뽑아야 하는데 근원의 몸체는 폐해를 생산하는 가짜 지식인들이다. 이번 기회에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경험한 한국사회의 사이비 지식인의 예를 몇 제시해 보겠다.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두 논객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서울대 출신이지만 독일로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못 받고 석사만 들고 돌아왔다. 한 사람이 쓴 책을 보면 유학 6년 후 석사를 받았
꽃이 만발하면 꽃 속으로 부처님이 오신다. 지금은 오시는 부처님을 기다리는 때다. 부처님은 인류의 스승인 ‘부처’를 이루기 위해 참으로 많고 좋은 인연을 지으셨다. 아득하게 오래 전 설산 수도자가 되셨다. 그때에 연등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듣기 위해 3천년 만에 한 번 씩 피는 우담바라꽃 다섯 송이를 어렵게 구해다 연등부처님께 올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연등부처님이 진흙을 밟지 않도록 진흙 위에 엎드리고 머리를 풀어서 깔아드렸다는 것은 참으로 감동이 되는 이야기다. 부처님 전생 이야기 547편을 모은 ‘본생경’에는 부처님이 여러
SF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벗어난 일을 과학적으로 가상하여 그린 소설”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보통 공상과학소설로 번역한다. 그러나 SF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 무엇을 SF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읽으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SF와 ‘-nal(-적인)’의 합성어인 [SFnal]은 굳이 번역하자면 “SF적인”일 것이나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탁월한 SF전문편집자가
나무마다 꽃이 피었다. 잔 가지에 연두색 잎들이 자라 신록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거리에서도 제빛을 갖는 나뭇잎이 신선함, 평화로움, 생동감을 안겨준다. 시간과 사회 변화에 발이라도 맞추듯 타지에서 들어온 나무와 꽃들이 토착화돼 아름답게 어울려 피고 진다. 변화는 인위적으로 의도된 것도 있고 교류가 많아져 자연스레 그리된 것도 있다. 또 환경에 적응하는 근기에 따라 혹은 타자의 의지로 생존과 소멸의 줄을 서기도 한다. 우리는 생존하고 소멸하는 그것들에 대해 지키지 못해 없어진 것에 그리움을 더해 안타까워하고, 새로운 것에는 옳다 그르
붓다는 ‘삽바사와-숫따(Sabbāsava-sutta, 一切漏經)’(MN2)에서 번뇌의 종류에 따라 그것을 제어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번뇌를 제어하는 것이 곧 수행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경에서 붓다가 제시한 일곱 가지 번뇌와 그 대처 방안은 다음과 같다.첫째는 봄[見]으로써(dassanā) 없애야 할 번뇌들이다. 이른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kāmāsava, 欲漏), 존재에 기인한 번뇌(bhavāsava, 有漏), 무명에 기인한 번뇌(avijjāsava, 無明漏)가 그것이다. 여기에 ‘견해에 기인한 번뇌(diṭṭ
현재 한국불교에서 행해지는 의례의식은 거의 ‘석문의범’에 기반한다. ‘석문의범’은 근대 고승 안진호(1880~1965) 스님이 편찬한 불교의식집이다. 여기에는 예불문을 비롯해 각종 불공이나 천도재, 설법, 강연 등 전통적으로 행해지는 의식뿐 아니라 대중포교에 적합한 의식들도 다양하게 수록돼 있다. 조선후기까지 통일된 의식집이 없어 사찰마다 제각각이었던 불교의식이 이 책으로 인해 거의 동일하게 행해지게 된 것이다.‘석문의범’을 자세히 살펴보면 형식도 잘 짜였지만 내용도 매우 훌륭하다. 반야, 법화, 화엄, 유식 등은 물론 선의 도리와
신라는 3국을 통일하여 원래의 신라에 견주어 대략 3배에 달할 정도의 막대한 영토와 인구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3국항쟁과 나당전쟁을 겪으면서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많은 인명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부흥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신라의 군비만이 아니고 당의 군사의 군량미까지도 신라가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경제적 지출이 막대하였다. 그런데 멸망당한 백제・고구려 측의 피해는 더욱 참혹하였다. 화려한 궁전과 역대 보물 전적이 적병에 의해 잿더미가 됨으로써 두 나라의 역사는 거의 인멸되고 말았다. 특히 백제・고
打破虛空出骨 閃電光中作窟타파허공출골 섬전광중작굴有人問我家風 此外更無別物유인문아가풍 차외갱무별물(허공을 깨트려서 뼈를 들추어내고 / 번쩍이는 번갯불 가운데 토굴을 짓노라 / 누구 있어 나의 가풍을 물을진대 / 이 밖에 다른 물건 없다 말하리라.)문경 봉암사 조사전에는 세 부분 12개의 주련이 있다. 이번 주련과 13회차에서 소개했던 주련은 모두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서암 스님의 글씨다.이번 주련은 고려 말 나옹혜근 스님(1320~1376)의 어록인 ‘나옹화상가송’에서 자찬(自讚)이라는 시제로 다섯 수가 실려 있는 가운데 네 번째에 해당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되면서 생긴 우스개 소리가 있다. “요즘은 모두가 미남 미녀”라는 말이다. 마스크 위로 눈과 이마만 보이니 모두가 잘생겨 보인다는 뜻이다. 며칠 전 신규직원 채용을 위해 면접을 보았다. 모두가 인물이 훤해보였다. 하지만 본인 확인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고 보니 그 첫인상이 각양각색이었다.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바뀌었다. 얼굴의 중심은 코이고 입 또한 인상의 상당 부분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가끔은 마스크를 벗은 직원의 얼굴이 상당히 낯설어 보일 때도 있다.
승이 영주 조횡산의 유화상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유화상이 말했다. “평지인데 높은 언덕이 보인다.”영주(郢州) 조횡산(趙橫山)의 유화상(柔和尚)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부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선문답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공안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정해진 것이 없다. 동일한 질문이라고 해도 답변은 동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질문자의 능력뿐만 아니라 답변자의 능력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답변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공안은 각자의 삶과 사유에 따른 모습이 드러난 것이기 때문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는 것은 그 형식은 달라도 동일하다. 동양은 그 형식면에서 서양보다는 발달했지만, 형식이 발달했다고 해서 동양이 서양보다 연장자를 더 공경한다고 말하는 것은 고려해 보아야 할 측면이 있다. 형식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담보되어야 한다. 한편 생물학적 나이가 많다고 하는 이유만으로 공경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경이란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한 존경이 전제되어야 되는 것이다. 공경이 형식이라면 인격이 내용이 된다.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에게 우리는 공경이란 형식을 갖추지 않는다. 때론
세계 가톨릭교회를 지배하는 로마 교왕청과 중국 정부 사이에 주교 임명권을 둘러싸고 이어져온 갈등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교왕청에서는 주교 임명이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 요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자신들이 선발한 주교 임명을 강행하고 있다. 교왕청과 중국 정부가 서로 “이번에 밀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절박한 상황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갈등은 앞으로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중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해올 것이므로 ‘물러설 곳이 없다’고 판
퀘이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낯선 이에게 건네받은 노트북의 화면에서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과거의 자신이라는 자가 ‘미래의 나에게’라며 현재의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네가 아는 너는 네가 아니라고. 나인 너는 독재자의 하수인이었으나 이제 잘못을 깨닫고 반군이 되었으니 독재자를 처치하는 것이 나이자 너의 임무라고. 존재하지 않는 기억으로 갖은 난관을 뚫고 만난 반군의 두목은 그에게 말했다.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서 괴로운가? 하지만 그대를 규정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행동이다.”영화 ‘토탈 리콜’(1990)의 장면이다
Q. 친한 친구가 요즘 들어 기운도 없어 보이고, 한숨도 많아졌습니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넘겼지만 이제는 사는 게 의미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날이 좋아져 얼굴을 보자고 해도 집에서 나오지 않고, 무슨 일이 있는지,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어도 아무 일도 없다, 괜찮다는 대답만 할 뿐입니다. 평소 씩씩했던 친구가 웃지도 않고 목소리에 힘도 없으니 걱정이 됩니다. 혼자 지내고 있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습니다.A. 무기력하고 기운없어 하는 친구가 많이 걱정되시는 것 같습니다. 예전 씩씩했던 친구의 모습
오윤(吳潤, 1946~1986)은 민중미술, 판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조각가이다. 그가 추구한 민중미술이란 무엇일까? 여기서는 필자 마음대로 불교적인 해석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민중의 중(衆)은 ‘무리’, ‘많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인데 인도에서 불교교단을 지칭하는 상가(saṃgha)를 발음으로 번역해 승가(僧伽)가 됐고, ‘중’이란 뜻으로 번역했다. 현재 불자들은 스님들을 ‘스님’, ‘승’으로 부르고 ‘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스님들을 무시할 때 ‘중’이라고 표현하지만, 원래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