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없다면 그 나라의 장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의 현실이 그럴 지경에 까지 와 있다. 사회 도처마다 어렵다는 말들만 있지 잘 된다는 얘기는 거의 없다. 청년 실업이라는 말은 말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어둡게 한다. 실업이란 일자리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것을 말하는 데, 아예 일자리를 가져보지도 못한다니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더더욱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당장 닥친 현실의 어려움보다도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패배감이다. 해 보기도 전에 “우리는 안 돼”, 또는 “나는 안 된다”는 자포자기 말이다. 젊음의 특징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자신감인데 그게 사라진 젊은이들의 모습은 딱하다. 현실에서 맛 본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북핵문제란 숙제를 안고 출범한 참여정부는 국정의 제1과제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설정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다자적 협의체인 6자회담의 틀을 마련하는 등 한반도의 긴장고조를 막고 위기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성과가 있었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 철도·도로연결, 개성공단 등 3대 경협사업 활성화로 남북경협이 제도화하는 진전이 있었다. 불교계의 숙원사업 중의 하나인 금강산 신계사 복원사업도 본격화 하여 대웅보전 낙성식을 가졌다. 또한 남북장성급회담을 통해 초보적 수준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이루는 성과도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북핵문제 해결이 지연되면서 남북관계도 이에 연동돼 정체국면을 지속하는 등의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부시 2기 행
윤 청 광 방송작가 지난 여름, 서울특별시장 이명박이 기독교 행사장에서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한다”고 망언을 늘어놓아 서울을 발칵 뒤집어 놓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상북도 포항시장 정장식이 공직자 기독교도들로 홀리클럽을 만들고, 포항시 예산의 1%를 기독교 선교자금으로 쓸 것이며 “포항시를 성시화(聖市化)하겠다”고 공표해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포항시장 정장식의 이 어처구니 없는 망언으로 포항을 비롯한 경상북도 불교인들은 물론 전국적으로 규탄의 소리가 드높아지고, 지난 12월 15일 포항에서 3만명이 넘는 대규모 규탄대회가 열리자 혼비백산, 부랴부랴 포항의 공직자들로 조직된 홀리클럽을 해체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기
공 종 원 언론인 지난 10월에 무현 심재룡(无見 沈在龍)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아직 60을 갓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도 아쉽지만 이제부터 그가 불교철학분야에서 더 많은 업적을 남기기를 기대하던 학계의 동료들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겠다. 마침 석주 숭산 등 큰스님들이 열반에 든 시점이라 불교계가 한 거사 불교철학자의 죽음에 무관심한 것도 가슴 아픈 일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그와 자별(自別)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의 폭넓은 식견과 불교 연구에 경복(敬服)하면서 그의 소탈하고 순진한 인간미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의 대성을 기대했던 것은 그가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미국 하와이대에서 석·박사를 하면서 불교를 공부했다는 점 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보 광 스님 동국대 불교대학원 원장 종교적인 능력이란 무엇일까? 이것을 불교에서는 지혜라고 하며, 기독교에서는 영적능력이라고 한다. 불교의 지혜란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부처님께서는 영겁의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를 보신 분이다. 우리가 수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지혜를 터득하여 현재를 올바르게 직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와 미래를 투철히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함일 것이다. 옛 선지식들은 이러한 지혜를 성취하여 자신의 생사문제는 당연히 해결하였으며, 나라와 백성들의 앞날까지도 걱정하였다. 그래서 선지식들은 항상 그 시대의 사표가 되었으며, 민중의 귀의처가 되었다. 이와 같은 선지식으로는 근세의 경허, 용성, 만해스님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신 규 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절에 다니는 사람들의 신앙 형태를 살펴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 일년에 한번 사월초파일에 절에 등을 달고 불공을 드리는 신도에서부터, 초하루 보름이나 관음재일 지장재일에 불공을 드리는 신도, 그리고 일요법회에 참석하여 불교 교리도 배우고 불공도 드리는 신도도 있다. 그러가 하면 절에는 안 가고 마음으로만 부처님을 믿는 신도도 있고, 불교를 연구하고 그것을 직업 삼아 살아가면서도 절에 불공 한번 안 드리는 신도도 있고, 그런가하면 그룹을 만들어 회비로 운영하면서 참선 등의 수련을 하는 신도들도 있다. 이런 다양한 형태의 신앙이 현재 불교 사회에 있다. 어느 경우라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 형태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뉘어 진다. 하나는 부처님 형
고 유 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미국 대선 이후 북한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이 손볼 대상이 이란이냐 아니면 북한이냐 하는 데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부시 재선 직후 이란이 핵개발 포기를 선언함으로써 이제 남은 대상은 북한으로 좁혀졌다. 북핵문제의 조기해결을 위한 우리정부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의 핵개발 의도를 설명하고, 북핵문제 해결을 최우선과제로 하여 한미 공동의 대북정책 방향 설정을 모색하고 있다. 북한의 유화적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부시 재선 직후 지난 11월 13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핵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며 그를 위해 회담형식자체에는 구애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재확인했다. 북핵해결을 위한 분주
윤 청 광 방송작가 우리나라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자기가 신봉하고 싶은 종교를 믿을 자유와 권리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법으로 정한 국교(國敎)가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그야말로 벼라별 교(敎)가 종교(宗敎)라는 이름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천도교, 유교, 단군교를 비롯해서 이슬람교, 천리교 심지어는 정체불명의 사이비교까지 알게 모르게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은 “세계 종교의 전시장”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일찍이 우리나라 문교부장관을 역임하신 안효상 박사는 생전에 “대한민국은 세계 종교의 쓰레기통”이라고 지적하고 앞으로 일어날 위험이 있는 종교의 충동을 우려한 적이 있었
공 종 원 언론인 최근에 불교단체인 정토회에서 ‘빈그릇 운동’이란 이름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음식을 먹다가 남기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의 운동이겠는데 지난 9월 1일 시작한 이래 큰 호응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구체적으로는 음식 남기지 않기 10만인 서약캠페인을 벌이면서 거리 홍보와 함께 아는 이들의 이메일을 통한 홍보에도 나서고 있다. 운동치고 신선한 운동이고 불교를 내세우지 않고도 불교의 근본정신을 잘 표현하는 운동이란 면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이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밥상예법은 스님들의 발우 공양을 떠올리게 한다. 출가한 스님들이 공양하는 것은 단지 굶주림을 면하거나 맛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고 삼보와 사중의 은혜를 갚고 삼도 중생의 고통을 건
보 광 스님 동국대 불교대학원 원장 전통사찰에 거주하는 스님이면 누구나 경험한 일이지만, 문화재를 다루는 전문가들과 스님들과는 상당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찰의 당우가 허물어져도 문화재 전문가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며, 이들은 사찰이 스님들의 생활주거공간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더구나 문화재 보수비를 지원 받아서 공사라도 하려고 하면 보통의 상전이 아니다. 이들 가운데는 신심이 있어서 스님들의 생활이나 생각을 이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단순히 문화재를 관리하고 있는 사람쯤으로 여기고 있으며, 그 곳에 사는 사람보다는 문화재만을 중시할 때도 있다. 우리들이 볼 때는 엄연한 예배의 대상이지만, 그들의 지식으로는 단순한 문화유산이며, 더 나아가서 그
신 규 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지금처럼 번화하지 않았던 옛 시골에서 타관 사람이 와서 길을 물으면 “이 길로 쭉 가다가 담배 가게 옆에서 논두렁 길 따라 한참 가면 박 서방 네 집이 보여요”라는 식의 대답을 주고받던 광경이 그리 먼 옛날 일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답변을 해주더라도 집을 찾는 데에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컴퓨터의 각종 검색 창에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어떤 단어를 입력하면 한 글자만 달라져도 영 다른 내용이 나오고 만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일 중의 하나로 주민등록번호를 통해서 전산조회 하는 게 있다. 불과 13자리의 숫자를 가지고 그 사람의 이름 주소 등등을 알아낸다. 물론 한 자만 달라도 영 다른 사람이 나오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기
고 유 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미국 부시 대통령이 지난 10월 18일 상·하양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한 북한인권법안에 서명함으로써 북한인권법은 미국의 법률로 공식 발효됐다. 이로써 미국은 법적 차원에서 북한의 인권개선과 체제전환을 모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게 됐다. 북한인권법 모태는 지난해 11월 하원에 상정됐던 북한자유법안이다. 이는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보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조항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자 법안 명칭과 내용을 수정하여 ‘2004 북한인권법안’으로 다시 상정했던 것이다. 자유화법안보다는 더욱 중립적인 인권법안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인권문제와 관계가 적은 일부 조항을 수정했지만 북한주민 인권 신장, 궁핍한 북한 주민 지원, 탈북자 보호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윤 청 광 방송작가 21세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숫자 계산은 물론이요 건축, 도목, 우주과학, 농업, 수산업에서 산업디자인, 영화예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컴퓨터 없이는 어떤 분야도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극장표 예약에서 기차표, 비행기표 예약도 사람대신 컴퓨터가 해결해 준다. 어디 그 뿐이랴.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급한 수술도 컴퓨터 없이는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정보전쟁도 컴퓨터의 몫이요, 육해공에서의 전투까지도 컴퓨터가 승패를 좌우한다. 이토록 컴퓨터 공학이 발달한 21세기, 그 가운데서도 인터넷 분야에서는 선진국을 달리고 있다는 대한민국인데 참으로 웃지못할 현상이 매일 되풀이 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대한
언론계 출신들의 일요일 북한산 등산길에서 한 친구가 “어젯밤 KBS ‘한국사회를 말한다’ 프로를 보았느냐”고 한다. “못 보았다”고 하니까 ‘한국기독교’를 고발하는 프로인데 주로 대형교회의 목사세습을 규탄하는 것이 골자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동안 기독교인들이 KBS 본사 앞에서 이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위했다는 보도가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 “기독교인들이 방송을 저지하기위해 며칠동안 KBS 앞에서 경고시위를 할만큼 방송내용 중에 기독교에 불편한 내용이나 왜곡된 내용이 있더냐?”물었더니 그 친구는 자기가 생각하기엔 별다른 내용이 없더라고 한다. 기독교계 대형교회의 목사세습은 이미 기독교계 안에서도 비판을 받아온 문제라서 새로운 문제도 아니고 프로그램 내용 중에 한국기독교
사찰 단위나 지역 단위로 운영되는 각 불교교양대학마다 학생이 모자라서 지속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불교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계의 전반적인 문제다. 이미 지방의 작은 사립대학들은 학생수급에 비상이 걸려있는지 오래다. 궁여지책으로 모자라는 학생을 채우기 위해 중국이나 월남을 비롯한 동남아 등지에서 데려오지만 명실상부한 교육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승려들을 교육하는 승가대학 즉 옛날의 강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간혹 부분적으로 학생 수급이 원활한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뿐,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러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우선은 이런 문제에 봉착한 해당 교양불교대학 실무자들이 모여 문제의 심각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 핵개발 프로그램 추진 ‘의혹’과 관련하여 제2의 북핵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의 우라늄 분리실험과 플루토늄 추출실험 사실이 연이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결과 발표가 있은 후에야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실험이 핵 농축이나 재처리 등 핵무기 개발계획과 관계없는 ‘과학실험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 정부와 언론들은 한국의 우라늄 분리실험이 북한 핵문제와 6자회담, 핵확산 등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리차드 바우처 미국무부 대변인은 “한국의 실험규모는 북한 등에 비하면 매우 작은 것”이라며 “이번 일이 북핵 6자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고,
윤 청 광 방송작가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관광지 보다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한적한 어촌의 조그마한 포구가 더 멋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나는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몇 번이나 절감했다. 그리고 팔도강산 어디를 가든 큰 산에는 큰 절이, 깊은 산 깊은 골짜기 안에는 작은 암자가 멋지게 자리잡고 앉아 절묘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음을 보고 우리 옛스님들의 멋진 안목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큰 산에는 큰 산에 알맞게, 비좁은 절벽에는 그 절벽에 알맞게, 큰 절과 암자가 산세와 계곡과 나무와 물소리와 흘러가는 흰구름, 지나가는 바람소리까지도 다 품에 안으면서 설 자리, 앉을 자리에 제대로 편안하게 앉아 있는 것
엊그제 한 일간지를 보니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한국불교학회가 불교용어 표준화작업을 거쳐 내년까지 모두 1만개의 불교용어를 표준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학회는 지금까지 의 작업으로 1차 정비를 마친 표준 불교용어 5000여개를 지난 8월 24일 공개하기도 했다는 보도다. 불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우리 학계 일각에서 이만한 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데 대해 놀라움과 함께 고마움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작업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표준화를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코 상당한 반발과 혼란도 초래할 것이라는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사에서도 그 점을 은근히 비치고 있었다. 내년 말부터는 ‘반야심경’을 욀 때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가떼아떼 빠라가떼’로 할지 모른다면서 ‘사
보 광 스님 동국대 불교대학원 원장 중국의 역사에 있어서 한족(漢族)이 중원을 다스린 적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그들이 말하는 오랑케족이라는 한족(漢族)이외의 이민족에 의해 중국역사가 전개된 적이 많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도 한족(漢族)에 의해서가 아니고 오늘날 그들이 말하는 소수민족 즉 호족(胡族)에 의해서였다. 한족은 263년경에 서진(西晉)을 건립하였으나 얼마 가지 못하여 북방의 이민족에 의해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으로 나누어졌으며, 한족은 이들에 밀려 양자강 남쪽으로 남하하여 317년에 동진(東晋)을 세우게 되었다. 이 때 중국의 동북방지역은 대단히 복잡하였다. 고구려와 인접한 나라는 선비족(鮮卑族)의 전연(前燕)이 있고, 그 옆에는 전진(前秦)이 있었다. 전진왕 부견(
신 규 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세상이 혼란스럽다. 연일 방송가에서는 물가가 오른다는 보도이고,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가에서는 수도 이전을 포함한 이념 논쟁이 끊이질 않는다. 외신 보도는 더더욱 우리들을 암담하게 한다. 중국의 고구려사에 대한 폭력적 보도는 물론 일본의 독도 문제에 대한 자의적 해석 등은 우리를 참으로 당혹하게 한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때마다 위기론이 등장하곤 했지만,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 것 같다. 국론 분열이 이 보다 더 심각했던 때도 없었다. 세대간의 갈등은 이미 정도를 넘었다. 이명박 서울 시장의 발언과 그에 대한 대처 등으로 상징되는 종교 간의 갈등 사태도 이미 정도를 넘었다. 힘든 세상이 되었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감을 하면서도, 이 난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