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은 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지난 5월 중순, 필자가 대륙횡단철도여행의 막바지에 달했을 때였다. 러시아의 한 호텔에서 독일방송을 시청하던 중 고국의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었다. 바로, 황우석 박사였다. 현대과학의 쾌거로써 그의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 뉴스를 비중 있게 다뤘다. 머나먼 타국에서 보는 우리나라의 기분 좋은 소식은 언제나처럼 여행의 피로를 시원스레 날려버리는 상쾌한 것이었다. 이처럼 전 세계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할 만큼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되는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이다. 온라인상에선 ‘이순신 이후 최고의 민족영웅’이라는 말까지 회자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동안 일본의 역사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등 대내외적으로 손상 입
박 찬 희 중앙대학교 교수 저는 독실한 불자는 못됩니다. 남들 앞에서 감히 수행과 명상을 이야기할 만큼 잘 알지도 못합니다. 애써 마음 속의 자신을 돌아보려고 애쓰는 평범한 사람일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업과 경제에 대한 평범한 생각들을 어린이 불자들도 아는 가르침에 비추어 한번 더 되새겨보는 정도일 것입니다. 난감함과 조심스러움을 기억하면서 오늘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이제 겨우 40이 좀 넘었는데, 어어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여러 곳에서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늘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원래 일하던 분들에게는 일상이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늘 하던 일을 늘 마주 보는 사람들과 하다 보니
윤 명 철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동해라는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 돌섬이 홀로 있다. 그래서 석도라고도 부르고, 독도라는 이름도 있다. 그 이전에는 武陵島 三峯島 子山島 干山島 라는 이름들이 있었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겨댄다. 늘 그래왔지만, 이번에는 심상찮다. 어업환경에 열악해지면서 시마네현의 어부들이 농성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지방정부의 차원이라며 발뺌을 하던 일본정부가 주한 일본대사의 공적인 발언을 통해서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주장하고, 정치인들은 이에 발맞추는 언동을 하고 있다. 또 늘 그랬듯이 한국은 파르르 떨며 부산을 떤다. 하지만 전과 달리 국민들의 반응에 맡겨놓는 태도를 벗어나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에 언급하였고, 정부차원에서도 각 부서가 경쟁적으로 강한 태도를 발표
손 기 원 지혜경영연구소 대표 최근 어느 단체가 근로자 의식조사를 한 결과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절반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심리적 압박 때문에 자녀의 희망 직업은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이나 공무원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10년 전만해도 웬만한 대학을 나오면 취업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하지 못해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취업을 한 사람들조차 직장을 유지하는 일에 불안을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그 원인이 어디 있는지는 자명한 일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무상의 진리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5년쯤
효 림 스님 실천불교 이사 시하 스님의 글을 읽고 무척 반갑고 기뻤습니다. 스님께서 매우 적절한 지적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거듭하여 반갑고 고맙습니다. 우선 먼저 스님의 글에 대한 감사와 함께 다시 한 번 사과부터 드립니다. 지난번 나의 글은 그 표현이 과격했었습니다. 그 점은 사과를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더불어 스님께 부탁을 드린다면 내가 왜 그렇게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였는가 하는 이면의 의미까지를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스님의 글을 읽고 이미 스님께서는 그 이면의 의미를 알고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스님을 위시한 많은 스님들이 그 이면의 의미를 아셨기 때문에 더욱 감사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나는 오래전부터 우리 교단 내에서 비구니스님의 위상이 높아지고
박남준 시인 한 이틀 옷깃을 여미게 했던 꽃샘추위도 지났다. 이제 남쪽엔 한창 매화꽃 향기가 절정이다. 꽃구경을 오겠다고, 지나는 길에 차나 한잔 마시자며 여기저기 전화연락이 끊이지 않는다. 어찌 사람들만이 겠는가. 꽃 그늘아래 들어서면 윙윙거리는 벌들이며 나풀거리는 나비와 무당벌레와 같은 작은 날벌레들, 이 작은 것들이 벌써 깨어나다니 비로소 봄임을 알겠다. 곧이어 매화꽃을 뒤로 노란 산수유 꽃들이 햇병아리처럼 눈부신 단장을 시작할 것이고 개나리, 진달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나 세상에서 살며 부대끼며 일어난 무겁고 우중충한 마음의 빗장을 조금쯤은 환히 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대자연 속 변함없이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어 누군가의 허기를 채워주고 거름으로 돌아가는 한 그루의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는 옛날로 치면 좌의정과 우의정에 해당하는 직책일 것이다. 지난 1월에는 우의정이 여러 가지 흠결사항과 자식의 부정입학 의혹으로 인해 1개월 만에 낙마하더니, 이번에는 좌의정이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표가 수리 되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 때마다 ‘청빈한 인물’이라거나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로 감싸다가 결국 여론에 밀려 당사자가 스스로 사표를 쓰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좌의정의 부인이 허위매매계약서를 만들어 부동산투기를 하면서, 백성들을 향해 ‘투기와의 전쟁’을 하겠다고 외치니 백성들의 분노를 살수밖에 없다. 한 가정의 부모도 가족구성원들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모범을 보임으로써 신뢰를 쌓아간다. 하물며 한 나라의 리더들에게 있어서 약속과 신뢰의 중요성에 대하여 더 말
최 진 옥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짐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고 그에 따라 여성의 역할 또한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원천은 가정에서의 차별이 해소되고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수가 늘어나는데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들을 자주 볼 수 있다는 데서 드러나고 있다. 활동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각종 스포츠 경기에서의 눈부신 활약, 고위직 공무원으로의 진출, 최고 경영자로서의 성과, 사관학교와 경찰 진출 등 오래 동안 눌려온 여성의 잠재능력이 한꺼번에 분출되기라도 하는 듯이 얼마 전까지 생각하기 어려웠던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효 림 스님 실천불교 이사 지난번에 비구니스님들은 종단 내에서 참정권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참정권이 없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없는 것이므로, 비구니스님들은 인권이 없다는 매우 모욕적인 말을 했다. 사실 이런 말을 하면 최소한도 비구니스님들로부터 무슨 반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아무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역시 비구니스님들은 인권에 대해무지하고 그러므로 또한 인격이 없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다. 비구니스님들은 아직은 종단 내에서 승려로서 또는 종단의 구성원으로서 기본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본다. 한마디로 인격이 없는 무지한 집단에 불과한 것이다. 이왕에 헌법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번에도 헌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미래학자인 멜린다 데이비스는 ‘욕망의 진화’(The New Culture of Desire)라는 그의 저서에서 우리의 미래에 관해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원초적 욕망은 육체와 직결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원초적 욕망은 ‘내 마음을 잃지 않는 것’, ‘내면의 기쁨’, ‘안전하고 행복한 가정’, ‘마음의 평화’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고, 그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스릴 줄 알며,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것, 그리하여 삶과 죽음을 뛰어 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것, 수천 년 전부터 수행자들은 그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밤낮으로 정진해 왔다. 그러나 이제 보통 사람들도 마음공부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대부분의
인류 역사상 인간의 삶은 오래 동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아왔다. 지금, 여기서 영위되는 삶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이 대부분 인간의 삶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지어 보지만 어느 것 하나도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없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라면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시간의 연속성도 과거 현재 미래로 인식하면 왠지 막연하게 느껴진다. 인과 법즉(因果法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오늘에 매여 있다. 어제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 없는 내일이 없건만 어제를 돌아보지 못하고 내일을 대비하는데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역사를 통해서 귀감을 삼으려는 노력과 각종 통계지수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 하지만 그저 오늘 하루 삶이 고단한 사람들에게는 감지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다.
효 림 스님 실천불교 이사 몇 년 전으로 기억된다. 김포공항 대합실에서 오랜만에 옛날 강원에서 같이 공부를 했던 도반을 만났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탓도 있고, 또 비행기 시간도 많이 남았고 해서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중에 그가 종단의 교육을 담당하는 무슨 위원이라고 해서 우리는 자연히 종단의 교육문제와 승려의 자질양상, 거기다가 승려의 자격요건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서로 의견이 합치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점차 이야기를 깊이 할수록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고, 잠시 후 시간이 되어 그와 헤어 질 때는 그의 관점이나 철학이 나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그와 나는 승려의 자질을 높여야 하는 것
박 남 준 시인 작년 한해 생명평화탁발순례의 길을 떠나 다니느라 제대로 일구지 못한 텃밭에 뒤늦게 심은 무가 어려서 얼기설기 비닐을 씌워 놓았는데 그나마 다행히 이처럼 엄동의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겨우 쓸 만큼 자라줬다. 그 중 실한 것으로는 해를 넘긴 동치미를 담고 나머지 자투리로 무말랭이를 좀 만드느라 없던 일거리가 생겼다. 마당으로 해가 들어서면 처마 밑 평상마루에 고루고루 펴놓았다가 저녁이면 얼지 않도록 들여와 방바닥에 한지를 펼쳐놓고 말려대는 것이다. 갑작스레 날이 많이 추워졌다. 주머니 경제가 어려워져서 생활고를 겪는 이들이 많기는 하지만 작년연말에 모금한 이웃돕기 성금은 역대 최대였다고 한다. 아직 세상은 이렇게 자신이 가진 것을 함께 나누려는 이들의 따뜻한 정으로 아침으로 해가
오늘 아침에도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 사이트의 방문자를 체크하고 이메일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새벽에 명상과 108배로 정신을 단단히 차리지 않았다면 수 백 개의 이메일 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짜증이 났을 터이다. 30년 전의 기준으로 보면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때 아침을 맞으면서 인터넷 사이트를 열거나 이메일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그 누구도 상상을 못했었다. 그렇게 세상이 뒤바뀐 일은 3백 년쯤 전에도 있었고, 3천 년쯤 전에도 있었다. 3백 년 전에는 동력이나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을 상상하지 못했었다. 3천 년 전에는 ‘내 것’, ‘네 것’하는 소유의 개념과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지는 상속의 개념을 상상하지 못했었다. 사회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불국토란 이상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것일까? 이상과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사고로 보면 불국토는 이상의 세계에 존재한다. 현실을 이상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나 목표가 담긴 말이라고 이해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불국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불국토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부처님 나라란 소인국이나 거인국처럼 그 나라에 사는 사람 모두가 부처가 되어야 한다면 우선 나부터 빨리 부처가 되자. 모두가 부처의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면 그 자리가 곧 불국토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게 어디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인가. 너나 할 것 없이 중생이고 싶어하는데 말이다. 따라서 부처님 나라를 만든다는 것은 그 나라에 사는 사람 모두가 부처가 되기보다는 그
효 림 스님 실천불교 이사 기왕에 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 하겠다. 지난 94년도 종단개혁에서 내가 개혁의 제일 과제로 내 세운 것은 겸직 반대였다. 당시 총무원장이 종단권력을 무제한으로 겸직하고 있었고, 종회의원에다가 본사 주지에다가 기타 각종 직책을 겸직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런 겸직은 종단의 권력이 소수의 몇몇 사람에게 집중되어 그들의 횡포와 독단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래도 그것에 대하여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문제를 지적하지 못했다. 만약 그랬다가는 보복을 당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종단은 개혁이후 겸직의 정신이 많이 훼손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겸직을 금지한 이후 종단 권력은 보다 폭넓게 개방되고 많은 사람들이 종단운
박 남 준 시인 말린 무청을 넣어 시래기 청국장을 끓이려다말고 추녀 한쪽에 걸어둔 호미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올 겨울 유난히 따뜻한 겨울 날씨 탓인지 얼마 전부터 여기저기 파릇파릇한 냉이가 눈에 띄었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뿌리, 두 뿌리, 다섯 뿌리, 그래 이것이면 족하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물을 끓이다 청국장과 김치로 간을 맞춘 후 마지막에 다섯 뿌리를 넣은 보글보글 향긋한 냉이 청국장에 한 그릇의 밥을 달게 비우며 두 손을 모았다.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떤 상태를 이르는 것일까. 눈으로 볼 수 있고 코로 맡을 수 있으며 귀로는 들을 수 있다. 그뿐인가 입으로 먹고 말 할 수 있으며 손으로 무엇인가를 잡고 일할 수 있다. 두 다리
손 기 원 지혜경영연구소 대표 요즘 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변화사회’라고 할 수 있다. 변화사회의 특징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 어지럼증을 느끼고 불안한 이유도 실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내가 다음 발을 내 디뎌야 할 곳’이 확실하면 결코 어지럽지 않다. 그런데 ‘변화’라는 말에 잠시 집중해보면 어디서 많이 보던 친근한 용어임을 알 수 있다. 2천5백 년 전에 이 세상에 나타난 붓다는 진리를 가르칠 때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던가? “모든 것은 변한다.”그렇다면 ‘변화사회’의 불확실성과 어지럼증, 그리고 불안감도 그 해답을 붓다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변한다(무상법),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연기법), 따
최 진 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교육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인재라고 하니까 재능이 뛰어난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 같이 들리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시대에 따라 사회 발전단계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해 왔다. 농경사회에서의 농민은 부모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부터 전수받은 농사기술로도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과 시장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어야 생존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 목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 중·고등학교의 교육목표가 대학에 가기 위한 것은 아닐진대 중·고등학교 교육은 대학 입시를 위해서, 대학은 취직을 하기 위해서 가는 것으로
효 림 스님 실천불교 이사 잘 알고 지내는 사람 가운데 만두집을 해서 성공한 사람이 있다. 그의 성공 비결은 사람들의 변화하는 입맛에 맞추어 끝임 없이 새로운 만두 맛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흔히 음식점, 그것도 맛있는 음식점으로 소문난 집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그런 집일수록 맛이 한결같아서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알기 쉽지만,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손님들은 한결 같은 맛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통을 고수 하면서 그런 가운데 끝없이 새로운 맛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사회 어느 집단이나 끝없이 자신을 개혁하면 성장하고 성공하는 반면 현실에 안주하고 스스로를 개혁하지 못하면 결국 도태하고 만다. 이것은 국가사회나 또는 개인에게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