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실(內實)과 외화(外華)는 이론적으로 상응관계를 맺고 있다. 안이 튼실할 때 그 건강미는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 역도 성립한다. 그러나 이론보다 훨씬 복잡한 현실은 내실과 외화를 모순관계로 변질시키고 있는데, ‘빛좋은 개살구’란 우리 속담이 이 점을 잘 말해준다. 시고 떫기만 한 개살구가 빛은 좋다는 것이다. 모순관계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마이너스적 동학(dynamics)이 역동하고 있다. 내실을 담보하지 않고 광고와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든지, 시간에 쫓겨 ‘빛좋은 개살구’를 데뷔시키는 방송과 신문의 속성이 자리잡고 있다. 부끄럼없이 자기PR에 여념없는 세태와 불러내기를 좋아하는 언론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 자랑할 내실이 없어서 나타나지 않겠다는 이를 가만두지
21세기 모든 현상들이 글로벌화되어가는 세태를 반영함인가 종교계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갑신 새해를 맞이하는 년초의 시점에서 우리 여성불자들에게 뜻깊은 해가 될 것같은 기대감에 감히 몇가지 홍보와 아울러 제언을 한다. 다가오는 6월 27일부터 7월 6일까지 제8차 세계여성불교도대회가 서울에서 열릴 계획이다. 1987년 27개 회원국에 1700여명의 회원으로 인도에서 창립된 샤카디타(Sakyadhita : 부처님의 딸들)이라는 명칭을 가진 국제여성불자연합회는 그 동안 2년마다 열려왔던 국제여성불자대회로서 이 자리에서는 전세계의 비구니스님과 여성재가불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위상과 역할을 점검하고 논의하는 토론의 장으로서, 대회시마다 주제를 달리하여 열려왔던 커다란 국제여성불교도 기구이다. 기독교식으로 말한
최근 ‘간화선의 정체성이 위기’라고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행한다는 것은 개인은 물론 사회의 전체적인 흐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다. 즉 ‘속박’에서 ‘해탈’로, ‘생사’에서 ‘열반’으로 변환하는 것이 수행하는 궁극의 목적이다. 오늘날 간화선이 대중과 거리가 멀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삶을 바꾸는 데 있어서 ‘간화선 수행’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간화선 하기가 왜 어려운가’를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누누이 강조하건데 ‘간화선 수행’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간화선에 접근 하는 방법이 어렵기에 ‘간화선 자체가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이것이 간화선 자체가 문제인양 와전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언론지상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해 온 법정(法頂) 스님께서 그동안 맡아온 ‘길상사’ 회주(會主)에서 물러나신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렇다고 아주 인연을 끊는 것은 아니며, 회주에서는 물러나지만 이들 모임의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길상사 모임을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는 뜻을 밝히셨다고 한다. 그런데 주위 분들이 전하는 사퇴 이유로는, ‘이제 70세가 넘은 만큼, 수행자로서는 정년이 없겠지만 소임에는 정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한다. 한편 지난 11월12일 염불선을 널리 진작시키신 청화 큰스님의 입적을 시작으로 한국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분들이 최근 연이어 입적하시더니, 12월 13일에는 이 시대 최고 고령의 선승이셨던 고불총림 방장 서옹 큰스님께서 입적을 하셨다.
공동체를 살려내는 위대한 지도자의 ‘단련기’는 비교적 시련의 형태로 온다. 만델라는 27여 년간에 걸친 투옥생활을 하였다.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쳤다. 이 점에서 “하늘이 장차 큰 책임을 어떤 사람에게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 사람의 근육과 골격을 수고롭게 하며, 그 사람을 굶주림에 빠지게 하고, 그 사람의 신체를 빈궁한 생활에 체험하게 하며, 그가 하는 일을 어지럽히어 방해한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움직여 타고난 성품에 굳게 참는 힘을 길러 주어, 그가 일찍이 할 수 없었던 일을 잘 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맹자』)는 말은 실감을 준다. 그러나 단련기가 반드시 시련의 형태만을 띠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도가니’로서의 단련
얼마 전 KBS 1TV의 ‘역사 스페셜’프로그램에서는 신라시대 경주 감은사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함에 대해 방영한 바 있다. 옛 감은사 성지 입구양측에 축조되었던 석탑이 천삼백여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속에 균형을 잃어가자, 그것을 해체·복원하는 초기작업과정에서 석탑상단 두 번째 층에서 사방 성인남성 한 뼘 정도의 길이의 아담한 사리함이 발견되었단 것이었다. 화면을 통해서 보여준 것은 입김만 쐬어도 파손되고 숨길만 내쉬어도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먼지더미를 잔뜩 뒤집어쓰고 녹이 슬 대로 슬어 바스러져 버릴 것 만 같은 아주 노후 된 먼지상자모형의 물체였다. 전문가들에 의한 그에 대한 분해·조립작업은 쥐면 꺼지고 불면 날아감을 지극히 조심하는 정성스런 태도로 임하고 있었다. 3개월 반 여에 걸친 작업기
승가의 교육은 대부분 강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승가교육이란 깨달음과 분리시킬 수 없다. 오히려 수행이라고 해야 그 의미가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강사의 역할은 학인 스님들에게 불법을 바르게 전달하는 지식전달에서 끝나지 않고 지혜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데에 있다. 이것이 지식이 지혜로 전환될 수 있는 이유이며 교육이 아니라 수행이라고 한 것이다. 지식의 한계는 삶과 죽음의 근원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지혜는 마음의 본성이므로 나이와 상관없으며 죽음에 이르렀다고 해도 지혜는 불멸이다. 그 방법은 문사수(聞思修)로서 지혜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강원에서는 듣고 생각하고 체험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학인 스님들은 강원졸업 후 선원에 입방하여 선 수행을 하는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 지역의 경우, 시간을 정확히 지켜 약속 장소에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지하철이다. 비록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장소라 할지라도 지하철역에 내려 지도벽화를 보고 현 위치만 파악하게 되면, 누구나 손쉽게 어느 출구로 나가는 것이 가장 빠른 지를 확인한 후 곧바로 목적지를 향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도 각자의 인생 목표에 맞는 인생지도를 갖추는 동시에 각자의 현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면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漕遇)인 우리의 단 한 번의 소중한 일생을 덧없이 보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최근 일어나고 있는, 장차 이 나라를 짊어질 젊은이들인 대학강사, 대학원생 및 수능입시생 등에 관한 일련의 자살 사건들로, 당사자들 모두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오늘의 한국사회는 지도력(leadership)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한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참여정부’의 출범으로 한국정치가 새로운 발전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예단한 바 있으나, 오히려 전면적인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 정립을 위한 과도기적 혼란이라는 진단을 내놓는 대통령을 비롯한 참여정부 관계자들 외에는, 한국정치의 질적 발전에 동의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있다. 종교계도 자기모순과 혼란의 늪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는 인상을 준다. 민족정서를 대변한다는 불교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환경문제를 비롯한 몇 가지 사안에 관해서는 어떤 딜레마에 빠지지 않았나 하는 내외의 시선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순과 혼란 주요 불교종단들
최근에 보도된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하루 평균 398쌍의 부부가 이혼을 한다고 한다. 이는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이혼율이 높고 아시아에서는 단연코 1위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한편 결혼율과 출산율은 오히려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높아지는 이혼율을 두고 여성들의 권익신장과 사회진출 등을 그 원인으로 분석하는가 하면 자기중심적 삶을 지향하는 가치관의 변화와 경제적 요인을 들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요인들이 이혼의 간접적 이유로는 작용했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미국 하와이에서 살고 있는 한인 교포들의 이혼율이 백인 다음으로 높다는 통계자료는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혼의 문제는 우리사회가 심각하게 연구하고 그 대책을 마련해야
법무부가 마련한 호주제폐지에 관한 민법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남은 것은 국회를 통과하는 것이지만 쉽게 낙관하기 힘들다. 국회의원들 중에도 남자만 씨가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호주제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거리에 나섰다. 어떤 이는 커다란 시위판에 구멍을 내어 개의 목을 내밀게 해 놓고 “우리(개)도 족보가 있는데”라는 문구와 아울러 “김가네 자식 이가 만드냐?“라고 쓰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모든 어머니는 자기와 성씨가 다른 자식을 키워야 했지만 그 아저씨에게는 그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고씨 엄마가 낳은 자식이 정가(아빠)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타인의 입장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시절에는 좁은 오솔길이 전부였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으며 인정을 메마르게 하지도 않았다. 문명발전과 함께 엄청난 도로가 건설되고 스피드와 용량이 커지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직선과 광폭이 기본, 그것도 모자라 산과 강을 무자비하게 관통했다. 사람들은 과속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조각난 공간에서 외로워하고 있다. 편리와 풍요를 위해 만든 길이 과잉의 폐해를 낳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희망적인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청계 고가를 철거하는 것이 한 예이다. 이미 거리가 훤해지고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멘트 구조물이 사라진 곳에는 맑은 물이 흐를 것이다. 같은 물건이 흉물 덩어리에서 도시 발전의 상징으로 바뀌게 된다. 남쪽 끝 청산도의 한 황토길이 서편제 촬영지로 유명
노무현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정국이 몹시도 어수선해졌다. 가능하면 빨리 재신임을 물으라고 몰아붙이던 야당들의 태도가 돌변하여 정치적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며 재신임 투표에 동의하지 않을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과연 재신임 투표가 실제로 이루어질지는 불확실하다. 노무현 후보에게 열광하며 자발적인 선거운동으로 선거문화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말을 들었던 이른바 ‘노빠’들을 노무현대통령에게 삐진 ‘노삐’로 만들고,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실망을 감출 수 없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개혁정신의 실종이다.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 강력한 개혁정책이 추진되리라는 것은 그를 지지했건 하지 않았건 대부분이 사람들이 예상하고 기대하였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 맞닥뜨린 네이스
한동안 젊은층들의 해외이민 열기와 기러기 아빠 이야기로 떠들썩하더니 이번에는 원정출산에 대한 사건이 화재가 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부모들이 원정출산까지 감행하는 가장 큰 일차적 이유는 남자아이들의 경우 외국 국적을 취득함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피할 수 있고 전반적 이유로는 영어교육이라고 한다. 자녀교육과 관련된 또 다른 희귀한 이야기는 강남지역의 일부 극성학원에서 초등학생에게 고등학교 과정의 수학을 가르치는데 모집 이틀만에 정원이 찼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현재 우리사회와 가정이 당면하고 있는 교육환경의 위기나 교육철학의 부재를 논의하고 잘잘못을 가려내어 그 책임을 따져보고 싶지는 않다. 더욱이 원정출산이나 특이한 선행학습의 옳고 그름이나 찬반의 개인적 견해를 말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많지 않지만 요즈음의 광고는 드라마보다도 더 재미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짧은 시간에 시청자의 머리에 오래도록 기억되게 하자니 기발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만드는 사람들도 대단히 애를 많이 쓸 것이다. 그러나 광고를 보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가슴 속에 서서히 분노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물론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날씨가 추워지면 텔레비전을 통해 혹은 신문지면을 통해 볼 수 있는 ‘ㅂ’유산균 발효유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어린 동자승이 추운 겨울에, 변비에 걸려 볼일을 오래 보시는 노스님이 밖에 나와 손 씻을 더운 물 바가지를 들고 눈밭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다가 졸기도 하고 때로는 바가지를 깨기도 하던가. 그래서 노스님이 유산균
삼성경제연구소 상무사람들이 요즘 돈에 미쳐 있다.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고 로또가 인생역전을 외쳐댄다. 흥청거리는 한편에는 절망감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부자 마음에는 욕망이, 빈자 마음에는 증오가 들끓는다. 돈이 최상위 가치, 세상의 전부가 된 듯하다. 돈은 엄연히 경제활동을 위한 도구이다. 당연히 필요한 존재이며 선악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돈에 대한 욕망이 지나쳐 사람의 혼을 빼앗고 선근을 뿌리 채 뽑고 있다. 재가불자들은 돈에 대한 욕망을 끊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하루하루 돈과 더불어 살아간다. 육신을 가진 이상 생존을 위해 음식과 주거가 필요하다. 자연에서 혼자 살면 모를까 현대 문명 속에 사는 한 돈을 소유해야 한다. 금욕 수행을 본분으로 하는 종단도 돈에서
태풍 매미가 남긴 상상을 넘어서는 엄청난 피해로 말미암아 마음 한 구석이 폭삭 무너져 내린 우리 앞에 ‘이라크에 전투병을 보내는 문제’라는 또 하나의 거센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정부에서는 아직 결정된 입장이 없다하고, 노무현대통령은 국민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제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지, 명분과 실리의 두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라크전쟁은 9.11테러에서 출발하였다. 미국의 부시정권은 9.11테러를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우며 알 카에다의 근거지인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여 탈레반정권을 붕괴시켰다. 더 나아가 후세인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이를 테러집단에 제공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전세계적인 전쟁반대 열기에도 불구하고,
2년전 이맘때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었다. 당시 50%에도 못 미쳤던 대통령의 인기가 갑자기 95%를 웃돌고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날이면 날마다 머리나쁜 대통령이라고 비꼬던 쇼프로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야당의원들 또한 대통령을 지지했고 대통령을 무시하고 비난하던 국민들의 목소리가 없어졌다. 언론들은 한결같이 그 끔직한 사건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려다 숨진 소방관, 경찰관, 시민들의 이야기를 전했고 대통령과 행정당국의 노력과 각지에서 전달되는 국민들의 성금과 관심을 전했다. 참으로 당연한 반응들이다. 그런데 그때 미국에서 TV화면을 통해서 그러한 모습들을 지켜보던 나는 미국인들의 태도가 놀랍고 신기했다. 지금도 신기한 건 마찬가지다. 그렇게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호주제폐지에 관련한 법무부의 개정안이 준비되고 있다. 법무부 안의 골자는 호주제를 폐지하고 ‘가족’이라는 용어를 폐지하며, 대안으로 개인별신분등록제를 채택하고 자식이 아버지의 성을 선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혼인시 부부의 협의에 따라 어머니의 성을 선택할 수도 있으며 자식의 복리를 위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 성을 바꿀 수도 있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호주제폐지운동을 해왔던 시민단체, 여성단체는 아버지성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 아무 의미도 없는 본을 살려놓은 것 등은 미진하지만 대체로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하다고 환영하고 있다. 모두 전산화될 것이므로 부모, 형제, 일가친척을 찾는 것도 식은 죽 먹기다. 그러나 이러한 법무부안에 대해서 유림을 비롯한 일부 남성들은 거센 반대를 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져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사오십 대 가장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있다. 노사가 서로 증오하고 이해관계자 들은 아귀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한 재벌 2세는 회사 빌딩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자살을 택했으며 죽는 순간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이처럼 기업은 고뇌로 가득 차 있다. 실패 확률이 높고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야 겨우 성공에 이른다. 창업과 성장의 매순간 고통이 함께 하며 실적이 나쁘면 안팎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겉은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기업은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다. 경영학은 기업의 목적이 이익 극대화라고 본다. 기업 이익은 자연에서 채취를 하거나 물질을 가공 및 이동시켜 인간 욕망을 채워 준 결과로 얻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