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군주가 지배하던 고대 로마의 격언 가운데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도 악법을 따라 기꺼이 독배를 마셨다. 그런데 정말 악법도 법일까?인도의 간디는 ‘악법은 악법’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야 할 법이 아니라 고쳐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다. 1928년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수탈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금세’를 신설했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먹어서는 안 되며 영국에서 판매하는 소금만 유통하도록 강제한 법이다. 인도인이 ‘인도산 소금’을 만지기만 해도 엄하게 처벌했다. 이에 맞서 간디는 70여명의 인도인과 바닷가로 가
장맛비가 참으로 괴팍하게 내리는 것 같다.장마철이 시작되면 물난리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제비가 추녀 밑에서 날갯짓을 잠시 쉬었다가 언뜻 다시 펼쳐지는 파아란 하늘로 비행하는 풍경을 상상하기도 하고, 만해 스님의 시 ‘알 수 없어요’를 통해 그려지는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라는 서정을 기대해 보지만, 올해 장맛비는 다른 것 같다. 마치 숨 쉴 틈 없는 돌발 변수들이 돌출하는 현재 우리 정치판의 한 장면처럼 이번 장마는 근년과는 너무 다른 것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2년여 간 코로나로 겪은 어려움이 이제는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로 인한 원자재 수급 차질, 급격한 물가 상승, 기준금리 인상 등 힘든 시기를 예고하는 뉴스뿐이다. 굳이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즐겨하는 짜장면 가격이 오른 것으로 실감하며, 경유값이 부담돼 출항을 포기했다는 고등어선단의 이야기는 우리의 친척 누군가의 이야기일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더 불안한 것은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대학 졸업 뒤 1990년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열정과 패기가 넘쳤고 못 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충만한 때였다. 그 시절 종단은 직원의 수도 적었고, 사업 종류와 규모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특히 사회복지와 관련해서는 종법과 제도가 미비했다. 그렇다 보니 이웃 종교들이 복지 시설 운영과 여러 복지사업으로 지역 단위의 종교 활동을 펼칠 때, 불교가 내세울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사찰의 담벼락은 그야말로 높아 보였다. ‘종단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한 역할은 무엇일
우리는 흔히 ‘이상적 세상’ 또는 ‘이상향’을 표현하는 말로 ‘유토피아’를 자주 사용한다.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는 1516년 토마스 모어의 공상소설 ‘유토피아’에서 처음 등장한 신조어였다. 고전 그리스어 ‘아니다/없다’라는 뜻의 ‘not’과 장소를 뜻하는 ‘place’를 조합하여 ‘없는 곳’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단어이다. 이런 뜻의 단어가 이상적 세상을 상징하는 말로 되는 데에는 소설 ‘유토피아’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나라로 ‘유토피아 섬’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 고전 소설인 ‘홍길동전’에서 나오는 ‘율도국
12시간 동안 벌어진 추격과 역전의 드라마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와 국민의힘 지지자 모두를 꼬박 밤새우게 했다. 결국 6월2일 오전 7시 경기도지사 경선 결과를 끝으로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우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려운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에게 감사의 말을, 당선인에게는 축하의 말은 전한다.대승불교에서는 수행과 정치를 통해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의 목적은 ‘요익중생(饒益衆生)’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널리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고, 정치인의 목표가 되야 한다는 의미다. 당선인들께서는 선거에서의 마음을 잊지 않고 지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 할 /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젊은 시설 흥얼거렸던 서정주의 시 구절이다. 처음 이 구절만 보고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알고 있다가 한참 후에 시 전체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제목부터 ‘신록(新祿)’이니 사랑 타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고 보니 좋아하는 연초록의 색감으로 물든 5월의 산하를 보면 시인의 사무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곤 한다.우리는 다양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항상 보고 듣고 생각하라고 배운다.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듣고 이
4월 중순, 가평 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와 조현수가 검거됐다. 올해 초, 가평 살인사건의 내막이 밝혀지면서 얼마나 많은 대중들이 치를 떨었는지 기억하는가?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생전에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당했다고 지적한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피해자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이다. 현실감각과 판단력이 심하게 약해진 피해자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학대를 받으면서도 이에 저항할 수 없거나 심지어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결국 가해자의 통제에
부처님께서 인간의 해방과 대자유, 영원한 행복을 근간으로 삼고, 사바세계에 나투신지 2566년째를 맞았다. 룸비니동산에서의 탄생 일성인 “하늘 위 하늘 아래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 세계의 고통받는 중생들을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라는 말씀은 사회적 약자 소외 등 오늘날 불평등한 현실을 꾸짖는 말씀같기도 하여 올해 부처님 오신 봄날은 무척 남다르다.연등회는 인간으로 말미암은 기후위기와 감염병으로 수년간 중단됐었다. 그러다 3년 만에 동국대 운동장에 형형색색의 등과 각국 불자들의 미소가 다시 모였다. 흥인지문(동대문)을 거쳐 조계사까
‘아기네들이 손을 꼽고 기다리던 사월팔일의 명절이 돌아왔다.··· 도미국에 배를 불리고 때때옷으로 파일빔한 도련님, 적은 아씨들이 딴 세상에 난듯하다.··· 견디는 집 아이들은 윤이 흐르는 색비단으로 내리 감았지만, 그렇지못한 바깥방 그네들까지 넝마를 빨아서라도 고웁게 물을 들여입고 동무끼리 손목을 이끌고 명일이 한 때라고 벙글벙글 돌아다닌다.’이 글은 1917년 5월29일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로 당시 부처님오신날의 풍경을 설명한 것이다. 이 기사에서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두 단어가 있다. 하나는 ‘명절’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
서열과 학번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헷갈리는 문화가 하나 있다. 나이, 띠 등이 혼합된 서열 매기기다. 이는 단일민족 국가의 보편적 특징이기도 하며, 해방 후 군사문화의 병폐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특수성을 담은 부분도 적지 않다. 일례로 필자는 음력으로 1971년 12월생이다. 돼지띠이면서, 1990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런데 양력으로는 1월생이 된다. 그렇다고 쥐띠는 아니다. 12지신으로 구분하는 띠는 음력으로 계산하는 까닭이다. 양력이 보편화 된 요즘 새해 1월1일을 호랑이띠 첫 출생이니 하는 등의 언론도 있지만, 이는 동양철학
꽃이 피고, 봄비가 내린다. 조금 지나면 신록이 대지를 가득 덮을 것이다. 폭설로 도로가 봉쇄되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지금은 온 산에 봄이 가득하다. 봄의 전령사를 자처하는 벚꽃들은 벌써 꽃잎을 모두 떨구었다.몇 주 전 산림조합 묘목 직판장에서 은행나무 묘목과 핑크셀릭스, 왕벚나무를 구입해 비 오는 날 뜰에 심었다. 또 작년 법당 둘레 멋지게 핀 접시꽃의 씨앗과 뜰에 가득 핀 봉숭아꽃 씨앗을 모아 두었는데 봄비 내려 모종판으로 한밭 가득 심었다. 그뿐만 아니다. 루피너스, 라벤더, 안개꽃, 수레국화, 솔체꽃, 꽃양귀비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전국장애인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논쟁이 이슈다. 이준석 대표가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의 방식을 비판하자, 전장연 측에서는 이준석 당대표의 몰이해와 장애인에 대한 혐오 행위라고 강력 비판했다. 이 대표는 서울 시민을 볼모로 삼는 떼법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전장연 측은 이 대표가 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를 한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논쟁을 보면 사회학 안에서 ‘비판이론’을 이끌고 있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2세대와 3세대의 논의가 떠오른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현실 사회에서의 갈등이라는 점에 주
매년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혹여 세계 장애인의 날이 12월3일인데 왜 우리나라는 4월인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1981년 장애인복지 불모지였던 시기에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처음 공포된 날을 기념해 4월20일로 정해졌다고 한다.‘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날’이라는 1981년 당시 제정 취지 설명이 무척이나 케케묵은 관점이어서 이미 빛바래 보인다. 지난날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을 시혜와 온정의 대상으로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이제 2022년 현실을
몇 년 전 터를 소재로 한 ‘명당’이라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그 영화에 ‘땅을 차지한 자 세상을 얻을 것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원래 명당(明堂)의 어원은 ‘대대례(大戴禮)’의 ‘명당편(明堂篇)’에 천자가 백관의 알현을 받으며 정치를 펴는 넓은 공간을 ‘명당’이라고 불렀다 한다. 다시 말해 왕이 신하들을 만나 정사를 논한 자리를 상징하여 이름 붙인 것으로 정사를 잘 다스려 백성을 편안하게 하도록 활용해야 하는 ‘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좋은 터 즉 ‘명당’이라는 이름으로 그곳을 얻으면 무조건 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있는 광주 나눔의집 운영을 둘러싸고 임시이사들이 집단 사퇴했다. 경기도와 광주시가 파견한 임시이사진 및 공익제보 직원들의 입장과 1992년 이후 나눔의집을 이끌어 온 불교계 이사진, 시설장 등의 입장은 달랐다.우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시설’이라는 인식의 출발은 다르지 않다. 지난 3월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집단 사퇴한 임시이사들은 “주인이어야 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자신들이 자비를 베푸는 수용자로 대상화하는 조계종단과 운영진의 인식·행동”이 문제라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강원에 다닐 때다. 지대방에서 갑자기 호국불교에 관해 열띤 논쟁이 일었다. 누군가가 “스님들은 당연히 정부의 시책을 따라야 한다”고 발언해서였다. 당시 출가한 지 2~3년 차 사미들이었으니 대부분이 기존 사회에서 학습한 말투와 관념이 채 바뀌지 않았을 때였다. 치문반이었으니 치문(緇門), 그야말로 중물들이는 시기였다. 그때 한 스님이 “스님에게 국가에 종속되고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폈다. 대다수가 그 스님을 무슨 이상한 사상에 물든 ‘이념적 도피 출가자가 아닌가’하는 막말까지 던졌던 것이 기억난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급증하다 보니 선별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검사를 위한 검진표 작성은 QR코드로 접속할 수 있었다. QR코드 안내는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고령자나 외국인 주민은 진행요원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QR코드 같은 디지털 접근은 효율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방법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지방에 계신 부모님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 연휴에도 아버지가 노트북을 내밀곤 “뭐 어떻게 하라고 하던데, 도통
지난해 11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해 지난 이야기지만 여전히 중증장애인들은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자신의 권리조차 챙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현재 진형형인 화두이고 한국 사회 노동시장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소개해 보고자 한다.토론회의 제목은 ‘세상을 바꾸는 노동을 합니다 : 재활을 넘어, 권리생산의 주체로’였다. 제목이 주는 함의와 명시성은 매우 뚜렷하다. 기존 비장애인 중심의 노동시장이 아니라 권리를 만들어 세상에 기여하는 것 또한 노동으로 인
‘인생에도 가상화폐처럼 기복이 있다.’ 이 말은 AI(인공지능) 스님인 파라 마하가 표현한 것이다. 얼마 전, 태국에서 가상 인물인 AI 스님을 개발해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젊은 층에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된 그 AI이다. 사실 다른 분야의 AI 바둑기사, 아나운서, 가수, 정치인 등을 접할 때나, 로마 바티칸의 프란치스코 교황 챗봇까지도 당연한 현상이라 받아들였던 필자이다. 하지만 AI에게 스님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하니 어색함과 관념의 저항을 숨길 수가 없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우리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