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방에서 대중생활을 하는 데는 다섯 가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첫째 자비로운 마음이요, 둘째 겸손하기를 먼지 묻은 수건을 터는 것과 같이 할지니, 수건은 능히 먼지를 모아 자기가 감싼다. 물건을 정결하게 하려는 까닭이다. 셋째 반드시 앉을 때와 일어날 때를 알아야 한다. 만약 윗사람을 보거든 편히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야 하며, 아랫사람을 보거든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사미는 구족계 받은 스님을 보면 일어나야 한다. 넷째 대중 가운데 세상일을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세상일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대중 가운데 가히 참지 못할 일이 있어도 시비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공양할 때, 좌선 할 때, 의식 때,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다투면 안 된다. 큰 방 한 가운데에 앉아 서로 부르며 말
스님을 모시고 마을로 볼 일 보러 갔다가 스님을 내버려 두고 자신의 아는 집이나, 속가 부모 집이나, 시주의 집을 스님 허락 없이 찾아다니지 말아야 한다. 스님이 마음을 쓰시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스님을 모시고 길을 가다가 아는 이를 우연히 만나면 오래 서서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한 눈 팔면 못쓰고 스님의 뒤를 따라야 한다. 시주 집에 가서는 한켠에서 스님을 지켜보고 서있되 스님이 앉으라하면 앉는다. 다른 절에 가서는 스님이 예불하실 때에나, 자기가 예불할 때에 함부로 경쇠를 치지 못한다. 절마다 각각 법도가 있어 본래 대중과 객승이 반드시 구분이 있다. 스스로 용모와 행동을 갖춰서 마음대로 거동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스님이 등산을 가시려고 하면 깔고 앉을 것을 가지고 따라가야 하고, 만일 먼 길
만일 불법에 관한 것을 물으려거든 의복을 정돈하여 합장예배하고 꿇어앉을 것이며, 스님이 하시는 말씀은 정신 차려 듣고 잘 생각해야 한다. 만일 집안의 예사스런 일을 물을 때에는 절할 것 없고, 곁에 단정하게 서서 사실대로 여쭙는다. 만일 스님이 고단하셔서 물러가라 하거든 곧 물러가고,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된다. 계를 범하였거나 잘못한 일이 있거든 숨기지 말고 스님께 가서 참회 받아주시기를 빌되 스님이 허락하거든 솔직하게 말하고 정성껏 뉘우치면 도로 깨끗해진다. 스님 말씀이 끝나기 전에 말하지 못하며, 스님 자리에 장난삼아 앉지 못하며, 스님 평상에 눕지 못하며, 스님의 옷과 모자를 입거나 써보지 못한다. 스님 명령으로 편지를 전달할 적에, 가만히 떼어 보지 못하며, 다른 사람을 주어 보게
제자가 스승을 받들어 섬기고 모시면, 스승은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제자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준다. 제자가 스승이 있는 것은 또한 나무에 뿌리가 있는 것과 같다. 율에 이르되, “제자가 화상을 모시되 반드시 네 가지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가까이 가고 사랑 하는 것이요, 둘째는 공경하고 따르는 것이요, 셋째는 두려워하며 어렵게 여기는 것이요, 넷째는 존중하는 것이다. 모시고 받들기를 신하가 임금을, 아들이 어버이를 섬기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서로 공경하고 존중하여 우러러 보면 정법으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해서 이익을 더함이 넓고 큼이다”고 했다. 잠을 자더라도 제자는 스승 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 불법 가운데에는 하루 저녁을 초저녁, 밤중, 새벽(後夜) 등 3시(時)로
큰스님의 존함을 친구 부르듯이 공손하지 않은 소리로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 공손하게 앞에 가서 적당한 소리로‘큰스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보통 때 큰스님의 법호를 친구 부르듯이 부르는 것은 결례가 된다. 사람들 앞에서 어른 스님을 소개 할 때는 법계와 법호를 넣어서 ‘아무개 큰스님’이라고 해야 한다. 큰스님이 포살할 때나, 계율 말씀하시는 것을 엿들어서는 안 된다. 만약 사사로이 몰래 들으면 오역(五逆)이나, 도둑질과 같기 때문이다. 돌아다니면서 큰스님 허물을 흉보아서도 안 된다. 만약 큰스님에게 허물이 있으면 큰스님들 스스로가 허물을 벌할 일이다. 사미, 사미니는 뒤에서 옳고 그름을 말해서는 안 된다. 논(論)에 이르기를, “만약 속인을 향하여 비구의 죄악을 말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불법 중에 신심과
위의(威儀)는 위엄이 있어서 남으로 하여금 어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며, 예절이 있어서 마땅히 남으로부터 공경을 받는 것이다. 정계(淨戒)를 가져서 청정 행을 갖춤이요. 이는 출가의 도품(道品)이며 인천(人天)의 스승과 모범을 이룬다.깨끗한 계행이 도를 이루고 맑고 깨끗하여 계품(戒品)이 원만하면 기개가 은하수 보다 높다. 위엄이 바람과 구름보다 엄숙해서 안으로는 사자의 덕을 품고 밖으로는 코끼리왕의 위엄을 나타낸다. 하늘과 사람이 우러러 공경하고 신룡(神龍)이 흠모하고 공경하기 때문이다. 사미, 사미니가 구족계를 받을 때에는 나이 스물이 되어야 하고, 사미의 위의를 물어서 알지 못하면 구족계를 받지 못한다. 사미, 사미니가 위의를 알지 못하면, 위의를 다시 배우고 안 뒤에 구족계를 받으러 오라 한다.
우운무 화상(和尙)이 사예설(蛇穢說)에 이르되 “세상 사람들이 살모사나 이무기 꿈을 꾸면 재물이 있을 것이라고 기뻐하고, 대변 보는 꿈을 꾸면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기뻐한다. 어찌 잠잘 때와 잠 깰 때의 좋아하고 싫어함이 같지 아니한가? 진실로 알라. 깨어났을 적에는 꺼리는 바가 있고 잠잘 적에 두려운 바가 있을진대, 어찌 재물을 보고 기뻐하고 이익 됨을 보고 기뻐하는 자가 있겠는가. 하물며 재물의 독이 살무사나 이무기 보다 심하고, 이익의 더러움이 똥에 지나리요. 재물을 탐하는 자는 살무사와 이무기를 기르는 것이요, 이익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몸이나 옷을 더럽히는 것이다. 내가 가난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로되, 이는 독해를 멀리 함이요. 내가 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로되 이는 더럽고 싫어함을 제어(除御
또 이런 인연이 있었다. 옛날에 부처님이 기사굴산을 내려오시는데, 그 때 아난이 한 구덩이에 금이 묻힌 것을 보고 부처님께 “부처님이시여, 독사입니다”라고 말씀드리니, 부처님은 “독사 이니라”하며 지나갔다. 나무꾼이 뒤에서 그 소리를 듣고 와서 보니, 구덩이에 금과 은이 있었다. 나무꾼은 “이런 독사는 나에게만 독사이기를 원한다”고 하고, 가지고 돌아가서 집과 누각을 짓고 1년 안에 갖가지 집들을 번듯하게 지었다. 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그것을 보고 신하들에게 “지난해에 볼 적에는 이곳이 황량한 들판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이 변화하였는고?”라고 초부(樵夫)에게 물으니, 초부가 위의 일을 말하였다. 왕은 “넓은 하늘아래 왕의 땅이 아님이 없으니, 땅에 묻힌 것은 모두 관물이거늘 너는 어찌 훔쳤는고?
우리는 재물이나 돈의 능력에 너무나 깊이 빠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능력이 없으면 힘이 없고 작아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재물이나 돈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계율이 적합하다 적합하지 않다 여론이 많을 수 있다. 부처님은 이런 나약함에 빠질까봐 제자들에게 재물을 멀리 할 것을 강조하신 것은 아닐까? 금, 은 보물이 모이면 탐착심이 생긴다. 그러므로 몸에 이욕(利欲)을 여의게 하려는 까닭으로 ‘갖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세간의 재물을 탐하면 출세간의 법재(法財)를 손실하는 것이다. 지혜의 목숨을 죽여 쇠잔하게 하고 악명이 유포되어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고 선신(善神)도 또한 보호하지 아니 한다. 보물을 모으면 혜명이 없어지고 번뇌가 늘어나며 바른
주굉 스님은 “옛날 어떤 큰스님은 옆방에서 오후에 밥 짓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불법이 쇠잔하는 것을 걱정하며 슬퍼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아서 자주 먹어야 할 이가 많아 이 계를 지킬 수 없으므로 옛 사람들은 저녁밥을 약석(藥石)이라 하여 병을 치료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옛날 법혜 선사(法慧禪師)는 업사(鄴寺)라는 곳에 머무셨다. 옆방의 비구 스님이 오후에 밥 짓는 냄새를 맡고 스스로 생각하되, “부처님 가신 때가 오래 되어서 사람들이 많이 계를 폐(廢)함이로다고 하며, 불법이 심히 쇠잔함을 슬퍼하시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셨다. 지금 사람들은 옛 성현처럼 이미 법을 수호하는 마음이 없고 도리어 훼방하는 마음을 내어 부끄러움이 없으니 옳겠는가”라고
산림 때면 ‘오후불식’에 대해 말이 분분하다. ‘오후불식’이 마치 별난 사람들이나 하는 것처럼 말한다. 오후불식은 미처 알지 못했던 먹는 것에 대한 탐욕심과 한 끼를 먹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소비함으로써 대중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먹는 사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배우게 한다. 그럼에도 오후불식은 우리만 생활화하지 않고 있다. 남방이나 중국이나 대만에서 수행자는 모두 오후불식을 한다. 본받아야 할 일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 임에도 실천하지 않고 율학을 전공하는 사람만 지켜야 할 것처럼 여기니 안타깝다. 『비라삼매경(毘羅三昧輕)』에서 “‘때 아닌 때 먹지 않으면 다섯 가지 이익이 있다. 첫째는 소음(少婬)이니 모든 탐욕을 여의고, 둘째는 소수(少睡)이니 잠을 쫓고, 셋째는 신안
오달국사(悟達國師)는 당나라 지현법사(知玄法師)이다. 속성(俗姓)은 진(陳)이다. 경·율·론 삼학(三學)에 통달하여, 그 이름이 첫 번째로 손꼽혔다. 남긴 발자취가 매우 많았으며, 그런 까닭으로 세상에서 그를 진보살(陳菩薩)이라 불렀다. 나이가 어릴 때에 한 낯선 스님을 만났는데, 어디에 사는 스님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스님은 대마풍(大麻瘋)이라는 나쁜 병이 있었는데 대중이 그를 싫어했다. 그러나 지현은 조금도 싫어함이 없이 간호했다. 헤어질 무렵 그 스님은 지현의 사람됨을 느끼고 축원하되, “앞으로 자네에게 어려움이 있거든 사천성 팽주 다룡산에 와서 두 그루 큰 소나무가 나란히 있는 곳에서 서로 만나자”고 했다. 뒤에 지현이 안국사에 살면서 도와 덕이 밝게 드러나거늘, 의종(懿宗)이 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