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흙’ 의미 ‘부처님 계신 곳 淨 자는 물 水의 변형인 의 뜻 부분과 다툴 爭(쟁)의 소리 부분이 합성된 형성문자이다. 곧 물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우리 주변에서 이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는 거의가 깨끗함의 상징이다. 청정(맑을 淸, 淨)이 그 대표적 예가 아닐까 여겨진다. 土 자는 二가 땅 밑을 상징한 것이고, 이 땅을 뚫고 나오는 생물의 의미로 를 결합시켰으니 이를 우리는 흙이라 한다. 땅과 흙이 내포하는 상징성이 여기서 다르다. 생물의 성장을 돕는 것이 흙이다. 정토란 글자 그대로 깨끗한 흙이다. 부처님이 사시는 곳이거나, 보살이 수행하여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그 청정의 처소가 바로 정토이다. 청정국토를 주려서 말한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의 대칭으로 중생들이 거주
나는 어려서 집을 나와 그 날짜도 기억하지 않고 친소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오직 도(道)만을 생각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느니. 인의(仁義)의 도(道)에 있어서는 친한 정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지만 우리 불가에서는 그런 생각이 조금만 있어도 큰 잘못으로 일컫는다.이런 뜻을 알아 부디 꼭 만나겠다는 마음을 아주 끊어버리길 바란다. 그리하여 24시간 동안 옷을 입고 밥을 먹거나 말하고 서로 문답하거나 일을 할 때나 또 어디서나 항상 아미타불을 간절히 생각하되 잠시라도 끊이지 말지니. 생각하여 쉬지 않고 기억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나는 경지에 이르면 나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또 육도에서 헤매는 고통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간절히 당부하고 또 당부하는 바이다. 게송을 하나 전하니 늘 새겨 간직
‘히말라야’넘지 않고 늘 성하 곁에 있으니 다람살라 사람은 행복해요 - 요리사 삼덴 스님 “올 초 티베트 라사에 살던 모녀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달라이라마를 뵙기 위해 다람살라로 왔다고 합니다. 이들 모녀는 히말라야를 넘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혔고 중국 공안들에게 성(性)을 허락한 뒤에야 겨우 풀려나 눈 덮인 ‘칼 산’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께 인사를 올린 뒤 모녀는 다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험난한 귀국 길’에 올랐습니다. 모녀가 다람살라로 오는 시간은 50여일 가까이 걸렸으며 달라이라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은 단 5분에 불과했습니다.” '존체' 위해 28년째 요리 텐친 삼덴 스님. ‘다람살라의 티베탄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달라이
“어휴 짜증나요. 윗 동네 교회에 다니는 그 아줌만 나만 보면 ‘왜 무릎 터지게 불상에 절을 하느냐’, ‘그거 미신 아니냐’, ‘불경 읽어 봤는데 별 내용도 없더라’고 약을 올려요. 뭐라고 얘기를 하려고 하면 “‘하나님’만 믿으면 돼”란 말을 어찌나 빨리 그리고 크게 하는지 기가 질려 답변할 겨를이 없었어요.”불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두번은 이 같은 난처한 질문에 당황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동국대 불교대학원장 보광 스님, 영남불교대학 총무 밀허 스님, 송광사 지묵 스님, 능인선원 탄경 스님, 한국불교 금강선원 총재 활안 스님으로부터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어봤다. 편집자 #절은 귀신소굴 같다 절 입구에 모신 금강신장이나 사천왕은 사악한 기운을 쫓고 정법
불교에 관계된 한자를 익힌다면서 정작 불교라는 한자는 살피지 않았으니 근본과 지엽이 뒤바뀐 느낌이 든다. 늦은 감이 있지마는 이번에는 불교의 한자 표기를 알아보자. ‘佛’자는 뜻 부분이라 할 수 있는 ‘人’자와, 소리 부분에 해당하는 ‘弗’(아닐 불) 자가 합성된 형성문자이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것이 한자 사용보다 매우 늦었음을 감안한다면 이 자가 처음부터 부처로 쓰였을 리가 없다. 그래서 원래의 의미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 ‘거슬린다(拂)’와 같은 의미, 또는 ‘비슷하다 (불)’의 뜻이었다. ‘부처 불’로 된 것은 범어의 buddha를 소리대로 번역한데서 유래한 것이다. ‘佛陀(불타)’ ‘부도(浮屠, 浮圖)’ 등이 모두 음역에서 온 것과 같은 것이고, 번역하면 ‘깨닫다(覺)’가 된다. 곧 진리
영단(靈壇)은 죽은 이의 영혼을 안치하여 제사를 올리는 곳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죽은 이의 영혼을 ‘영가(靈駕)’라고 하고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을 ‘49재’ 또는 ‘천도재’라고 합니다. 위패(位牌)나 사진 등을 올려놓고 영혼을 위로하며 명복을 비는 제단(祭壇)이 바로 영단인 것입니다. 대체로 사찰에서의 영단은 법당 안 좌측에 모시는데 그 이유는 법당 안에서 아침 저녁으로 늘 염불 소리를 듣고 속히 깨달아 극락세계에 왕생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부처님의 염원이 담긴 특별한 배려하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는 향을 사르고 백 번 예배합니다. 제자는 일찍 훌륭한 종자를 심어 스승님이 나오신 때를 만나 이렇게 뵈올 수 있었습니다. 스승님은 어느 한 종(宗)의 이념을 뛰어 넘고 격식을 벗어나 활구(活口)를 온통 들어보이셨습니다. 이에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다음 몇 구의 게송을 대화상의 법좌 아래 올립니다. 바라옵건대 스승님께서는 보시고 한 번 웃으소서.(중략)‘벙어리가 높은 소리로 묘한 법을 설명하매/ 귀머거리가 멀리서 작은 그 말을 듣는다/ 마음 없는 만물들이 모두 찬탄하면서/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밤에 와서 참석한다’제가 말한 이 4구 중 1구는 곧 화로에 놓인 한 점의 눈과 같고 또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합니다. 여기서 확실히 깨달은 조사께서는 원래 훌륭한 지음(知音)일 것입니다. 그러나 청컨대
티베탄들이 믿는 건 첫째 달라이라마 존자 둘째 그분의 ‘말씀’ 왼쪽>망명정부 외교부 툽덴 삼펠. 오른쪽>망명 정부 종교-문화부 툽텐 안예셍. “뭐라고요, 카규파의 제17대 카르마파 인터뷰를 허락해 주시겠다고요.” “한국의 기자 양반! 인터뷰는 허락해 주는데 질문은 ‘불교’에 관한 것만 가능하니 철저히 지켜 주시오, 여권하고 사진이나 준비하시오.…….” 인도 경찰서장의 대답을 들은 후 막 질문을 하려던 순간 나는 화들짝 잠에서(?) 깨어야만 했다. 생시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가는 몽롱한 그 때 나의 어깨를 강하게 뒤흔드는 망명정부 외교부 텐진 렉세이(27)의 시커먼 얼굴 선이 확 들어왔다. 잠시 정신이 드는가 했
초보자 1:1 개인지도 ‘견성성불’이 목적 주말, 저녁 프로그램 다양 참선은 불교의 수행법 중 높게 평가받는 전통 수행법이다. 특히 많은 선사들이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인격을 완성했다’하여 불교에 입문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초보불자들에게도 참선은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초보불자들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 ‘초보자가 무슨, 벌써 참선을 배우냐’며 미리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정말 초보자들은 참선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시민선방에서 재가자들을 직접 지도하는 선방관계자들은 “무엇이든지 처음부터 잘 하는 것은 없다, 근기에 따라 다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참선” 이라는 게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수선회 02)732-5960 ◆선도회 02)2685-6090 ◆임제선원 02)888-6397 ◆법련사 시민선방 02)733-5322 ◆금강선원 02)445-8484 ◆공소사 시민선방 031)246-1001 ◆용화선원 시민선방 032)872-6061 ◆대전 현문선원 042)257-0996 ◆대전 국은사 042)522-0300 ◆청주 용화사 043)274-2159 ◆부산 범어사 051)508-3122 ◆부산불교교육원 051)466-4080 ◆양산 통도사 055)382-7182 ◆해인사 백련암 055)932-7300 ◆해인사 원당암 055)932-7308 ◆울산 학성선원 052)272-5352 ◆대구 영남불교대학 053)47
“스트레스와 신경과민으로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더 많이 갖고 싶은 욕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선을 시작 했습니다.” 부산에 사는 배동문(47)씨는 부산불교교육원에서 매월 첫째 주 금요일 실시하는 참선교육에 참여한지 1년 정도 된 초보참선 수행자이다. 배씨는 불교를 만난 지 2년이 채 안된 초보불자이지만 참선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열심이다. 배씨는 불교입문 얼마 후 포교원에서 우연히 참선을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 뭣꼬’를 화두로 참선수행을 하고 있다. “잠시도 ‘이 뭣꼬’라는 화두가 떠나질 않는다”는 그는 “참선을 시작한 몇 개월 뒤 눈이 아프기 시작하고 귀가 울리고 가슴이 답답해져 ‘포기해야 하나’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어도 꾹 참고 수행에 전념하면
열반 이후에도 붓다는 여전히 영원한 메시지로 남아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비록 육신은 사라졌으나 가르침(법신)은 남아 2500년이 흐른 오늘에도 영원히 최고의 가르침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류는 오늘날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끔찍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오늘날처럼 붓다의 가르침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도 없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세상은 점점 삭막해지고 흉포화하고 있다. 이해관계로 전쟁을 일으키고 힘의 논리로 싸움을 하지 않으려는 이들까지 전장으로 몰아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붓다의 가르침이 간절해지는 시절인연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붓다는 이 세계에 출현하여 무지에서 비롯된 무명을 쫓아냄으로써 고통과 질병, 부패와 죽음 등 모든 살아
정토란 말 그대로 깨끗한 세계, 곧 부처님이 사는 세계를 말합니다. 수행자가 발심하여 긴 세월동안 헤아릴 수없는 수행을 쌓아서 그 공덕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세계가 바로 정토인 것입니다. 정토는 부처님의 청정한 광명과 공덕이 넘치는 세계를 뜻합니다. 예토는 중생이 사는 세계입니다. 즉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으로 오염돼 있는 사바세계를 말합니다. 인고의 세계이며 고통을 참아내는 세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에 사는 중생의 마음이 깨달음의 법에 따라 청정해지면 곧 정토가 된다는 불교의 근본 뜻을 불자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곧은 마음으로 ‘아름답게 행하다’ ‘功’자는 소리 부분인 ‘工’(공쟁이 공)과 뜻 부분인 ‘力’(힘 력)을 이루어진 형성문자이다. 힘써 이루어낸 일의 결과를 의미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소리 부분에 해당하는 ‘工’자도 기실은 의미의 일부를 나타낸 셈이다. 이 글자는 힘 뿐만 아니라 생각으로도 일하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려고 노력하는 것을 공부(工夫)라 함이 그런 까닭이다. 『설문해자』에서는 “수고로이 나라를 안정시킨 것을 공이라 한다(以勞定國曰功)”라 하였으니, 사람으로서 힘쓰는 일이 이것보다 더 큼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노력하여 얻은 결과가 ‘공’이다. ‘德’자는 원래 ‘悳’이었다. 곧 ‘곧은 마음’이라는 회의문자였다. 이것이 행동의 의미에 무게를 두다 보니 간다는 의미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권세가에 휩쓸려 법 전하겠단 생각 버려라” 답장제자 고려국 중흥선사(中興禪寺)에 머무는 보우는 아홉 번 절하고 스승 석옥 대선사께 삼가 올립니다. 지난 8월 1일 스승님 곁을 떠나온 뒤 하루도 우러러 사모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다음해 봄에는 다시 나아가 종신토록 모시려 하오나 혹 업연(業緣)에 얽매어 원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허나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한결같이 교훈에 의지하고 분부를 따라 나와 남을 이롭게 하되, 불법을 천하게 팔지 않고 나아가서는 후세에 이르기까지 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러하오나 이것이 어찌 제 혼자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바로 부처님과 조사님네들의 본원이 이끌어야 될 것입니다.지난 번 스님을 뵈온 것은 큰일을 이어 받는데 있었고, 오늘 조
수행고통 호소한 제자에게"뜻깊은 곳 기운 따른다"수행자 기백 확연히 드러나학이 춤추고 용이 잠자려 하면 반드시 산과 바다를 얻은 뒤에라야 뜻을 따라 자재(自在)롭게 될 것이네. 나도 멀리 금선(金仙:부처님)을 생각하면서 목을 서산(西山)으로 빼었네. 봄바람이 지팡이를 높이 떨치어 천리의 걸음을 결정할 것이니, 혹 한가한 틈을 얻거든 찾아주기 바라네.장부는 만세(萬世)를 논하되 일생을 논하지는 않는다네. 뜻이 있는 곳에는 또한 기운이 따르고, 기운이 있는 곳에는 천지와 귀신도 또한 따르는 것이므로 천지도 범부의 마음을 빼앗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일세. 차라리 죽을지언정 마음공부는 칠통(漆桶:무명)을 깨뜨리는 굳은 각오로 임해야 하네.이 편지는 청허당 휴정 서산대사(1520~1604)의 답장 형식의 글이다.
내게 그대의 날개를 빌려주오, 흰 두루미여!나는 리탕으로 더 가지는 못하리.그러나 거기서 다시 돌아오리라.피살 앞두고 다음 환생지 예견술-여인 사랑한 ‘괴짜’그가 지은 수많은 詩티베트인 아직도 애송지혜와 자비의 상징 달라이라마. 티베트인들은 그를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환생을 거듭하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믿는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14대를 비롯해 모든 달라이라마는 거룩하고 신성한 존재로 추앙 받고 있다.이런 면에서 볼 때 제6대 달라이라마인 창양 갸초(1683~1706)는 여느 달라이라마와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조용한 도량보다는 시끄러운 저자거리를 좋아했고, 부처님과 경전보다도 술과 여인 그리고 시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위의 짤막한 글은 창양 갸초가 몽골군의 포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네. 이러한 육바라밀 수행을 계속한다면 어떤 험난한 고해라도 능히 건너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믿게나. 이익과 손해, 즐거움과 괴로움, 명성과 무명, 비난과 칭찬의 여덟 가지 실상을 잘 살펴 이 경계를 꼭 뛰어넘도록 하게. 사람이 가문과 인품과 미모와 박식함을 갖추어도 지혜가 없고 계를 지키지 않는다면 이 사람을 어찌 귀하다 하겠는가. 하지만 용모가 추하고 아는 것이 적을지언정 지혜가 있고 계율을 생명처럼 지키려 한다면 오히려 공경 받아 마땅하다네.백년에 한 번 바다 위로 올라오는 눈 먼 거북이가 바다에서 떠다니는 널빤지 조각을 우연히 만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네. 그러나 축생의 몸 버리고 인간의 몸 얻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목조 전실은 짐승들로부터 본존불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사진은 1910년대 석굴암 본존불 모습. (사진1) 석굴암은 당초 문화유산이나 학자의 연구테마가 아닌, 붓다를 모시는 신성한 법당으로 발원되고 창건되었다. 오로지 승려나 신자의 예불 및 수행공간으로 건립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굴암의 그러한 종교성과 역사성을, 또 ‘집’이라는 기본상식을 40년 동안 줄곧 부정해온 허황된 견해가 있다. 1960년대 보수공사에서 신설한 목조기와집을 뜯어내야 한다는, 이른바 ‘목조전실 철거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학설로서 최소한의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희론(戱論)일 뿐이다. 석굴암, 예불-수행 공간이었다 첫째, 석굴암의 기상조건은 바다에 면한 산중턱에 자리한 탓에 경주 등지의 도심사찰과
일반인들도 쉽게 명상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명상편의점. (위로부터) 만다라그리기 명상모습, 가부좌를 하고 앉아 참선을 하고 있는 모습, 수행음악을 들으며 명상하는 모습 불교에 기초를 둔 ‘명상’이 웰빙바람을 타고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고 있다. 대중화에 발맞춰 지방자치단체들도 주요사업 중의 하나로 명상을 손꼽을 정도다. 전남 영암군에서는 명상센터를 세우기 위한 단계별 계획이 발표되는가 하면 경상북도는 동국대에서 웰빙과 명상을 접목시킨 대규모 명상웰빙타운을 만들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전국은 지금 ‘명상열풍’에 빠져있다. 물론 명상과 관련된 사업에는 불교가 빠질 수 없다. 불교의 다양한 수행과 기도 등을 활용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참선과 요가 등을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