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초심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을 일컬어 ‘보리심’이라고 한다. 이것은 깨달음을 얻어 널리 사람들을 무수한 고통에서 구하려는 마음이다. 또한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과 같이 여기며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자비심 발하는 마음을 ‘보살의 마음’이라고 한다. 보살의 정의는 대승불교에 있어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말하는데 구도자(求道者)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때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도하는 중생들도 보살이라 하기도 한다. 즉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우리 회원들이 산사순례에 와서 부처님께 기도를 하고 보리심을 발해 아름다운 선행을 펼치는 것도 ‘보살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 귀가 닳도록 얘기하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 바로 보살의 자세다. 근본적으로 보살은 남을 돕기 위해 해탈한
‘내게 한 개의 문(門)이 있으니 동쪽에서 보면 서문(西門)이요. 서쪽에서 보면 동문(東門)이요. 남쪽에서 보면 북문(北門)이요. 북쪽에서 보면 남문(南門)으로 보인다. 삼세제불이 이 문으로 출입했고, 서방보살, 역대 조사, 천하 선지식도 모두 이 문으로 출입했으며 오늘 효봉도 이 문을 좇아 출입했으니 이제 시회대중은 어느 문으로 출입할 것인가’ 이 글은 근대 선지식 효봉 스님께서 남기신 법문이다. 나는 가끔 이 법문의 의미를 마음속 깊이 되새긴다. 내게 그 한 개의 문(門)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수행자에게는 입선(入禪)의 문이 될 것이고, 재가불자에게는 수행의 문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문은 정작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문을 찾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임을 스님은 법문을 통해 대중에게
불교는 자력(自力)신앙과 타력(他力)신앙으로 나눈다. 열심히 수행하여 스스로 성불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자력신앙으로 볼 수 있고, 극락세계의 주인이신 아미타불을 신앙하고, 모든 공덕을 닦아서 극락세계에 태어남을 기원하는 정토(淨土)신앙은 타력신앙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회원들이 9년 동안 순례를 떠나 기도를 하며 108염주를 만들어 가는 것은 하나의 자력신앙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성지순례에 가서 아미타불 부처님께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은 타력신앙이다. 즉 108산사순례는 우리 회원들이 고행을 자처하여 이루어내는 자력신앙과 타력신앙이 함께 공존해 있는 뛰어난 수행법인지 모른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력(自力)신앙이란 말을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 수행은 누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힘
현재 전국적으로 많은 성지순례회가 결성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108산사순례기도회’가 다른 순례단과 굳이 차별화되는 것은 기도를 우선시 하는 단체라는 사실이다. 대개 순례라고 한다면, 소풍간다는 생각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원들의 대부분도 처음에는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순례를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례를 함께 다니는 도반이, 어머니가, 아내가 열심히 기도를 하는 모습을 자꾸 보게 되면 누구든지 자신도 모르게 동화(同化)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기도를 하게 만드는 주위 환경이다. 처음부터 기도를 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말이다. 실제로 ‘108산사순례’를 하다보면, 사찰의 주지스님들이 말로만 듣던 회원들의 지극한 신심을 보고 놀랐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렇게 많은 인원들이 일사분란
화창한 봄날, 남도 천리 길을 달려간 버스가 여수 영취산 흥국사 일주문에 닿자 봄바람이 가사자락을 휘어 감았다. 초봄이라 꽃봉오리를 열지 못한 꽃들이 간간이 눈에 띄고,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산사의 적음(寂音)과 함께 귓가에 흐른다. 산사에 와서 봄빛이 흐드러진 길을 걷다보니 절로 신명이 나는지 회원들은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그들이 다름 아닌 봄이다. 지난 3월 9일부터 10일까지 제 66차 ‘108산사순례’ 법회가 여수 영취산 흥국사에서 열리는 날, 봄은 그렇게 우리를 마중 나왔다. 생(生)은 하나의 끝없는 순례이다. 우리는 생의 틈 사이에서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는 또 다른 순례를 나서고 있다. 그것이 바로 ‘108산사순례’이다. 천년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사찰을 한 달에 한 번 씩 직접 눈으로
산가(山家)에도 봄이 찾아 왔다. 봄이 오면, 산문(山門)에 기대어 서서 귀를 열고 가끔 꽃이 피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를 듣는다. 언제나 듣는 그 소리들이지만 봄의 소리는 언제나 새롭고 싱그럽다. 봄은 이렇게 더디 오는 것 같아도 어김없이 와서 산사 곳곳마다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있다. 자연은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올 것이라고 우리에게 천년, 만년 변함없이 그 약속을 지킨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한가? 어제 한 약속도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네 마음이다. 우리는 그 자연의 위대한 약속을 이제는 배워야 한다. 나는 지난 2006년 9월 ‘선묵혜자 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 기도회’를 결성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부처님이 계시는 산사를 찾아 기도를 하고 한
나와 ‘108산사순례기도회’가 지난 2월 13일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 반 국제 공항에 도착했을 때, 티베트 불교의 영적 지도자인 기알왕 드룩파 린포체가 영접을 나왔다. 그리고 대통령과 총리, 제헌국회 의장이 그 후에 면담을 가졌다. 국가도 아닌 일개단체가 국가적인 환대를 받은 것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그날 우리는 카트만두에서 버스를 타고 험준한 계곡 속을 10시간이 넘도록 아찔한 곡예를 하며 룸비니로 향했다. 실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천 길 낭떠러지 밑에 흐르는 빙하천 주변, 사고로 떨어진 트럭의 잔해들을 보자 갑자기 몸이 오싹해졌다. 인도 국경의 룸비니에 버스가 도착하자 험준한 산맥은 사라지고 드넓은 평원이 펼쳐졌다. 몬순기후의 습한 안개사이에서 노란 유채꽃이 한창이었다. 부처님이 성불을 하시고 다섯 명
'108산사순례기도회’는 지난 2월15일 부처님의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 동산에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부처님 진신사리 탄생불’을 조성했다. 불교인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가보아야 할 불교 4대 성지 중의 하나인 룸비니 동산, 그곳에 한국 최초로 ‘108산사순례기도회’가 조성한 탄생불이 그 당당한 위용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날, 나는 부처님 열반지인 인도 쿠시나가라에서 모셔온 진신사리 3과를 화강암으로 조성된 1.5m의 탄생불에 봉안하고 진심으로 세계평화를 기원했다. 오른쪽 검지는 하늘로 향하고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습을 하고 있는 탄생불을 덮고 있는 곱디고운 흰 천을 걷어내자 일순,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장엄한 염송이 흘러나왔다. 이 순간 나와 우리 회원들의 눈시울도 동시에 붉어졌다. 가슴이 벅찼다
봄소식을 알리는 입춘이 지났는데도, 제 65차 108산사순례 팔공산 수도사에 도착하자 매서운 칼바람이 가사자락을 휘감는다. 겨울이 겨울답게 마지막 추위를 한껏 품어내는 것 같다. 나와 우리 회원들은 수도사의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추위도 아랑곳없이 먼 길을 달려왔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봄이 오면 풀과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추위조차 인내한다. 그것이 진리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병풍바위 아래에서 원효대사 역시 많은 제자들을 데리고 추위를 견디고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으리라. 그래서 절의 이름도 금당사에서 수도사로 바뀌어졌다. 많은 후대의 학자들은 원효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은 일심(一心)이라고 평가한다. 일체유심조가 그렇고 마음의 근원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원효는 “인간은
추운 겨울이 지나고 어김없이 삼라만상에도 봄이 찾아왔다. 자연에도 봄여름 가을겨울 사계(四季)가 흐르듯이 세상은 가고 오고, 오고 가고 머무는 바가 없다. 그동안 ‘108산사순례’도 수도산 팔공산 순례를 기점으로 65차례나 다녀왔다. 그 사이 5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간 것이다. 회원들의 머리카락에는 어느새 한 올 한 올 흰머리가 새록새록 앉고, 나 역시 다섯 살의 법랍(法臘)을 더 얹었다. 늘 강조했듯이 ‘108산사순례’는 스님이나 우리회원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수행이다. 그런데 어느 선승(禪僧)이 “수행이란 세상만사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배우는 일’이라고 했듯이 우리는 이 말씀에 새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지극한 겸손이 들어 있다. 그렇다. 삶이란
임진년 새해인가 싶더니 벌써 봄의 문턱인 2월 입춘이다. 입춘은 24절기 중의 하나로서 새해 봄을 알리는 첫 절기이기도 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절이 있는 산문(山門)에 봄의 전령인 진달래가 꽃잎을 ‘봄’하고 쑥 내밀 것 같다. 이때가 되면 집의 대문마다 닥쳐오는 일 년 동안 대길(大吉)· 다경(多慶)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입춘 축(祝)을 써 붙이기도 하고 때론 삼재를 당한 사람의 속옷에 ‘삼재팔난(三災八難)’이라 쓰고 절에 가서 부처님 앞에 빌고 난 후 속옷을 가져다가 불에 태우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한 해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보내기 위한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이다. ‘108산사순례기도회’에 있어서도 입춘의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전국에 있는 사찰을 순례해야 하는 우
산사순례를 하다보면 많은 행복을 느끼고 돌아 올 때가 많다. 새해 첫 순례지인 봉선사 순례 때도 매우 행복했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먼 남도(南道)는 물론, 전국에서 새벽버스를 타고 오신 회원들의 얼굴들을 변함없이 새해에도 맞이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엇이 회원들에게 그토록 먼 길을 달려오게 했을까? 조용한 산이 순례객들로 들썩이고 산사가 법석인 광경을 보고 봉선사에 주석하고 계시는 스님들과 대중들도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감동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회원들이 가진 신심이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즐겁지 못하면 능히 해내지 못하듯이 신심이 바로 감동과 기적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것이 부처님의 감응이다. 나는 부처님이 열
지난 1월 5일~7일 우리 회원들은 전국법등에서 이른 새벽, 살을 에는 영하의 추위 속을 뚫고 오직 부처님을 친견하고자 하는 그 마음으로 교육과 역경(譯經)의 산실(産室)이며 교종의 수(首)사찰로 불리고 있는 운악산 봉선사에 올 첫 ‘108산사순례’를 다녀왔다. 산자락을 깨는 여명의 종소리와 목탁소리가 봉선사 큰 법당에 울려 퍼지는 동안, 회원들은 처마다 기쁜 마음으로 새해 첫 인사를 나누었다. 이 모습을 보자 올 한 해도 무사히 ‘108산사순례를 회향 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샘솟았다. 이제 우리는 또 한 해의 출발점에 서있다. 나와 우리 회원들은 지난 5년 간의 긴 여정을 함께 해오면서 108염주를 함께 만들어가며 인연공덕을 쌓는 깊디깊은 도반이 되었다.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다. 나는
새해, 우리는 ‘108산사순례’ 첫 순례의 문(門)을 운악산 봉선사에서 열게 됩니다. 불가(佛家)의 문이나 세속의 문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찰의 문은 번뇌가 끓고 망상에 허덕이며 생사의 파랑(波浪)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속계(俗界)와 모든 번뇌와 망상이 가라앉고 청정무구한 본래면목으로 돌아가 자신을 반조하는 진계(眞界)의 경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5년이 지난 이쯤에서 2006년 9월, 첫 입재 후 108산사를 찾아 108참회를 하며 108번뇌를 소멸하고 108염주를 만들어가는 인연공덕을 쌓아가는 신행 단체임을 올해 임진년, 1월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되새겨 보고 부처님 전에 새로운 다짐을 하고자 합니다. 모든 일에는 첫 마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어떤 일을 시작
부처님, 임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시끄러워도 조용히 불자의 마음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묵묵하게 실천해가는 우리 ‘108산사순례회원’들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부처님 앞에 서원합니다. 한 해의 시작은 한 해의 끝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난 5년간 추위와 폭설, 때로는 무더위와 폭우를 견디며 보현행원의 길을 참으로 묵묵하게 걸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고난과 고행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꼬불꼬불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봄이면 꽃향기를 맡고 여름이면 계곡의 맑은 물 흐르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가을이면 붉은 낙엽의 정취에 젖어보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산사에 계신 모든 부처님의 말씀들을 가슴으로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어디 그것뿐이었습니까? 우리가 부처님 전에
지난 12월 17일 제2차 108산사순례지인 수원 봉녕사를 다녀왔다. 이곳은 얼마 전에 열반하셨던 한국 최초의 비구니 강사이셨던 묘엄 스님께서 평생 공부를 하시며 일구었던 사찰이다. 그날 우리는 산사순례를 마치고 서울 근교에 있는 회원들과 더불어 포대화상님을 모시고 서울 인사동거리에서 연말 불우이웃돕기 모금운동을 펼쳤다. 토요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았는데 배불뚝이 포대화상님의 배를 쓰다듬고 성금을 넣는 이색(異色)적인 풍경을 바라본 외국인과 관광객들도 미소를 지으며 함께 동참했다. 아마 그들에게 포대화상님의 자비로운 미소가 마음에 끌렸던 모양이다. 나는 이 모습을 지켜보고 매우 흐뭇했다. 사실, 남을 돕는 일은 온전히 마음을 내지 않고서는 힘들다. 이 세상에는 힘든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베
지난 12월 13일 ‘108산사순례 법등장 연수법회’를 가졌다. 한 해 동안 ‘108산사순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를 쓰시는 각 지역의 법등장님들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우리 회원들은 가족처럼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6천 여 명에 이르는 많은 회원들이 단 한 건의 사건사고 없이 올해도 무사히 순례를 회향하게 된 것은 각 지역 법등장님들의 크나큰 노력 덕분이기 때문이다. 회원들이 산사순례를 다니면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어떠한 애로가 있는지,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도 모두 법등장님들의 몫이다. 이분들이 있기에 ‘108산사순례’가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초전법륜인 팔정도를 따라 실천하는 법등장님들의 개개인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108산사순례에 대한 애착
한해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다 한해의 끝점에서 후회와 참회를 반복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108산사순례’를 통해 부처님을 만나고 열심히 기도를 하며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경전에 ‘나를 버리는 일이 곧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라는 의식을 지우는 순간부터 마음에 든 탐진치 삼독(三毒)이 사라지고 더불어 성불의 길로 나아갈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산사순례는 곧 ‘나’라는 의식을 지우는 머나먼 여행이며 이를 통해 마침내 열반의 경지에 들어서게 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만이 곧 열반이 아니라, ‘나’라는 의식을 지우는 순간부터 우리는 해탈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해탈이란 깨달음이 아니라, 몸속에 든 성냄과
나는 ‘108산사순례’ 기일이 정해지고 나면, 크게 고민하는 것이 하나가 있는데 바로 날씨상태이다. 그 달의 산사순례 날짜와 장소가 정해지게 되면 기도장소와 소요시간, 날씨를 점검하는 일도 결코 빼 놓을 수는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기후이다. 차량과 5천여 명에 이르는 많은 인원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비가 특히 많이 내리는 여름이나 초가을,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는 일정을 잡는데 매우 유의해야 한다. 회원들이 뜻하지 기상악화로 인해 자칫 사고가 발생하거나 많은 고생을 하기 때문에 날씨 점검은 매우 중요하다. 눈과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에 가는 순례는 차량점검도 필수적이다. 108대 중 한 대라도 하자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눈이 얼마나 내리는지, 또한 그날의 기온은 어떤지,
옛말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어떤 사람은 종지만큼 또 어떤 사람은 대접만큼 또 어떤 사람은 큰 그릇에 담는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그릇만큼 그 빗물을 받는다. 지식과 지혜, 사랑과 칭찬도 자신이 가진 마음그릇에 따라 많거나 적게 담겨진다’는 격언이 있다. 마음그릇이 작은 사람은 어느 날 아무리 큰 행운이나 복이 자신에게 돌아와도 그것을 제대로 담을 수 없고, 반대로 마음그릇이 큰 사람은 항상 무엇인가를 담을 준비를 하고 있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행운이나 복을 언제나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교훈이다. 우리가 ‘108산사순례’를 떠나 부처님 앞에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그릇을 키워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의 마음그릇은 말과 행동에서 온전히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