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에 있어 그것이 극치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도’의 경지에 들었다고 표현한다. 그림이나 글과 같은 예술작품일수록 그런 표현들은 흔해진다. 그렇다면 언어에 있어 간결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는 어떨까? 어떤 시들은 언어의 틀을 갖고 있지만 언어를 초월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여준다. 그런 시는 언어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도’의 경지나 번뜩이는 깨우침의 세계를 보여준다.‘첫사랑’ ‘면면함에 대하여’ ‘성숙’ ‘수선화, 그 환한 자리’ 등의 시로 잘 알려진 고재종 시인이 불교의 선문답과 현대시의 교감을 다룬 에세이집 ‘
불교계 최초 육군 군종감을 역임했던 김덕수 법사가 법어집을 펴냈다. 군종법사 시절부터 최근까지 일요법회를 비롯해 수많은 법회를 하면서 준비했던 수천 장의 법문 자료를 엄선해 엮었다.불교 용어와 교리, 실생활에서 접하는 불교에 관한 상식까지 초심자를 대하듯 쉽고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해당 주제에 맞는 다양한 예화들을 통해 독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책은 5개의 큰 주제 아래 102개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대표적으로 독송되는 경전과 그 핵심 내용을 비롯해 기도와 영가천도의 중요성, 불교적 가치관과 인생관, 참선과 깨달음 및 역대
마음은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위파사나 ‘사띠’의 번역인 마음챙김(mindfulness)은 존 카밧진에 의해 정신건강의 핵심개념으로 부각됐으며 심리학 등 여러 영역에서 사용하고 있다.저자는 마음챙김 개념을 현대 심리학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인 주역으로 40년이 넘도록 다양한 방면에서 마음챙김의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를 수행해 왔다. 그리고 이런 마음챙김의 원리와 지혜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집대성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마음챙김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삶에서 벌어지는 일에 기계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깨어있는 마음으로 주의를
작품을 수집하고 관리하며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을 큐레이터라 한다. 흔히들 미술관 큐레이터를 떠올리지만 박물관에도 큐레이터가 있다. 손때 묻은 유물에서 가치를 찾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박물관 큐레이터의 일이다. 오래된 유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박물관 큐레이터는 시간을 만지는 사람들이다.책은 국립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경험한 30년의 기억들을 다루고 있다. 불상 조각사를 전공한 저자는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개원연구원과 춘천박물관장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30년 세월
동물과 사람의 교감과 우정은 깊은 감동과 진한 여운을 남긴다. 야생으로 돌아갔지만 어린 시절 돌봐줬던 사람을 잊지 않고 부둥켜안으며 반가워하는 사자, 자신을 구해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때가 되면 나타나는 펭귄, 날개를 잃어 죽어가는 꿀벌을 돌봐주자 마치 사람의 손처럼 앞발을 들어 흔들며 친밀감을 표시하는 모습에서 과연 사람과 동물의 차이가 무엇일까 반문하게 된다.이 책은 CNN, CBS, BBC, 뉴욕타임스 등 세계 여러 언론에서 다룬 바 있는 감동 실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호소 툴라 툴라(Thula Thul
불교계를 대표하는 수필가로 달마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대원 작가가 수필집 ‘한 뼘의 볕바라기’를 내놓았다. 희수(喜壽)의 나이에 내 놓은 수필집은 미래에 대한 부푼 기대와 희망보다는 수렴(收斂)과 노년에 느끼는 삶에 대한 깊은 관조, 아름다운 마무리에 방점이 찍혀있다.평생의 반려자였던 노처(老妻)의 병상에서 느끼는 고마움과 죽음에 대한 단상, 그리고 하나둘 운명을 달리하는 인연들의 돌이키며 참다운 삶의 의미에 천착하기도 한다. 하늘로만 향했던 눈은 깊은 세월의 흐름에 점차 낮아져 청명한 날에 길가에 나온 작은 토룡을 보는 기적을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사랑하는 사람과다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자비와 연민,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는데 있어 최고의 경전으로 꼽히는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에 나오는 게송이다. 사랑할 대상은 많다. 친구, 배우자, 부모, 자식, 환경, 생명, 지구, 우주. 무엇을 소중히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랑의 대상은 다를 것이다. 불자라면 부처님일 것이고 부처님이라면 중생일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그 무엇이라도 좋다. 다만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천 생을 반복
새날이 왔습니다.하얀 눈 소담스레 쌓인 복된 날에 살며시 광명처럼 아침이 밝았습니다.가야산 깊은 골 해인사 비로전 앞에합장배례하는 스님 모습 간곡합니다.지난 2년 세상은 암흑이었습니다.곧 사라지리라 생각했던 코로나19는여전히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파편처럼 흩어져 홀로 걸으며마스크로 걸러진 세상을 호흡합니다. 무기력한 어둠 속에 맞이하는 새해스님의 간절한 기도에 용기 내봅니다.비로전 계신 비로자나 부처님이여법신불의 눈부신 대광명의 빛으로 삶 조여오는 어둠 말끔히 걷어가소서 호랑이 해, 제 말하면 오는
2022년 임인년(壬寅年)이 밝았습니다. 그러나 새해를 맞는 국민들의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계속되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새해가 주는 새로움에 대한 신선함과 내일에 대한 희망, 미래를 향한 부푼 마음보다는 우려와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상(無常)의 가르침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무상(無常)은 말 그대로 세상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는 뜻입니다. 코로나19로 겪는 우리의 고통 또한 무상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한국불교를 통불교라고 한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현교와 밀교 등 불교의 다양한 가르침과 교리들이 하나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불교의 특징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경전이 한국불교에만 존재한다는 ‘천수경(千手經)’이다. 천수경은 밀교부 경전으로 분류되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다라니, 진언 등 밀교적인 색체가 강하다. 물론 ‘천수경’에는 밀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토불교사상과 신행, 그리고 수행이 녹아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밀교적인 색체가 강한 ‘천수경’이 선종(禪宗)을 표방하는
사찰벽화는 불교의 가르침을 함축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과거 글을 읽지 못했을 대다수 민중들은 경전 대신 사찰벽화를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보다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찰벽화를 통해 불교를 이해하는 일은 별로 없다. 경전을 읽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벽화가 불교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불교보다는 미술의 영역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벽화를 통해 불교에 대한 쉬운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작자나 회화적 기법, 도상학적 설명에 짓눌리는 바람에 이를 통해 불교적 가르침을 구하
무등 스님이 첫 시집 ‘능소화 피는 날’을 펴냈다. ‘꽃들과의 대화’ ‘염불소리’ ‘계절의 노래’ ‘어머니, 고향, 추억’ ‘풍경소묘’ 등 5가지 주제에 82편을 담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수행자로서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인 환경보살로서 살아가며 느꼈던 남다른 심상들을 담았다. “무등 스님의 시 세계는 불교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부처님 법에 의지해 살아가는 수행자로서의 삶이 시행마다에 오롯이 투영돼 있다. 무등 스님의 부처님을 향한 간절한 염원이 능소화의 일편단심을 보는 듯하다.” 시 해설을 맡은 박준수 시인의 스
‘금강경’은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다. 따라서 시중에는 ‘금강경’에 대한 해설서가 넘쳐나고 경전을 통째로 외우고 있는 불자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금강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금강경’을 쉽게 풀어준다면서 본문보다 더 어려운 한자말이나 불교 전문용어를 덧칠해 질리게 만드는 해설서가 대부분인데다, 불자들 또한 ‘금강경’을 수지 독송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덕과 소원성취에 더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정수금강경’은 스스로 모난 돌이라 자처하는 다큐멘터리 PD출신의 저자가 8년여동안 ‘금강경’에 대한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은 인간과 AI(인공지능)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특히 바둑은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은 게임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승리가 점쳐졌다. 그러나 AI가 승리했다. 사람들은 AI로 대변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우리 목전에 와 있음을 체감했다. AI가 인류를 지배할지 모른다는 묵은 상상 속 공포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인류가 AI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수많은 영화를 양산해 냈다. 그중에 1999년 영화 ‘매트릭스’는 AI에 의한 인류 지배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영화
자연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는 것이 숲과 나무다. 삼라만상이 다 자연의 일부라지만 숲과 나무는 자연 그 자체다. 그래서 숲을 보거나 나무를 만날 때 비로소 자연을 명징하게 느끼게 된다. 숲과 나무를 통해 자연의 순환을 알게 되고, 부는 바람결을 느끼게 되고, 깃들어 사는 다양한 생명과 바탕인 흙과 느린 몸짓으로 우주질서에 순응하는 지혜와 침묵 같은 고요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세월을 짐작하게 된다.숲과 나무와 풀꽃의 삶은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넘어 깨달음이나 열반과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
시(詩)를 소개하기란 참 난망하다. 시란 마음을 글로 표현한 것이라 사람에 따라 달리 읽히기도 하고 같은 구절에서 시인과 다른 감흥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시는 쓰는 사람의 몫이기도 하지만 읽는 사람이 주인이기도 하다. 학교는 한참 배움의 시절에 시를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시를 쪼개고 분석해서 정답을 강요했다. 시인은 이미 가고 없는, 주인 없는 시에서 학교가 정해 준 답이 참인지 물어볼 길이 없었고. 그렇게 시는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암호가 돼 버렸다.시인은 넘치지만 시를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 적은 것은 아마도
현미경이 생물학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듯 신경과학계에도 일대 전환을 이룬 발명품이 있는데 자기공명영상(MRI)장치이다. 자기공명영상 장치를 통해 알게 된 색다른 발견 하나가 신경가소성에 대한 인식이다. 런던의 택시 기사들은 공간감각력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유달리 발달돼 있다. 좁고 복잡한 런던 시내를 달리다 보니 해당 부위가 특별히 발달된 것인데, 이것은 학습에 따라 인간의 뇌 구조가 바뀌며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신경가소성 이론에 따라 특별하게 주목받는 분야가 있다. 명상이다. 과거에는 뇌가 학습에 따라 바뀐다는
깨달음을 위해서는 오로지 참선만을 할뿐 다른 것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선가의 오래된 속설이다. 그러나 동국대 불교학부 김성철 교수는 이를 정면으로 부인한다. 선수행에 들어가는 것을 흔히 사교입선(捨敎入禪), 즉 교(敎)를 버리고 선(禪)에 들어가는 것으로 말하지만 무언가 있어야 버릴 것 아닌가. 그래서 김 교수는 사교입선을 교학을 버리고 선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닌, 교학 공부가 무르익어야 비로소 선 수행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한다.‘선불교의 뿌리’는 이런 김 교수의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불교가 위기입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10년 후 종교가 아닌 문화재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럼에도 변화의 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선원에서, 길에서 야단법석을 펼쳐 움직이는, 찾아가는,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새로운 불교를 제시했습니다. 상월선원과 만행결사는 부처님과 인연을 맺기 위한 실천행입니다.”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은 지난해 10월27일 150여명의 대중들을 이끌고 21일간의 자비순례를 회향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차담회를 열었다. 이날 스님의 목소리는 깊고 비감했다. 대중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 줄로 요약하면 ‘제악막작중선봉행(諸惡莫作衆善奉行)’이라고 한다. “나쁜 행위는 어떤 것이든 하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실천하라”는 뜻인데 당나라 도림 스님의 가르침이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가 않다. “세 살 어린아이도 알고 있지만 팔십 노인도 실천하기 어렵다”는 뒷말이 이어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불교는 어려운 종교라는 선입견이 있다. 교리는 배울수록 미적분을 푸는 것처럼 난해해지고, 깨달음은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가물거린다. 그러나 불교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