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스님의 사진을 보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수행자인 스님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런 시위를 하겠는가? 스님이 이렇게까지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든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 종교편향의 심각성, 그것이 초래하게 될 큰 문제에 대해 눈감고 대충 넘어가려 하는 정치권의 무심함과 무감각, 이런 문제들이 총제적으로 느껴져 참으로 마음이 무겁다.공적인 행사인 시무식에서 특정 종교의 찬송가를 불렀는데 그 자신의 공식적인 사과도 없고, 공식적인 문책이나 징계도 없다. 작은 문제 같지만 참으로 큰 파장
봄학기에는 나도 모르게 새내기 학인(學人) 스님들을 기다리게 된다. 많을 때는 여남은 명도 됐지만,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요즘에는 서너 명이 고작이다. 아무래도 비구니스님보다는 비구스님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려서 절에서 자라다가 동진(童眞) 출가한 스님도 있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늦게 발심해 출가한 스님들도 있다. 더러 몽골이나 태국, 스리랑카 등지에서 유학 온 외국인 스님도 보인다.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다. 시간이 맞으면 가끔 점심 공양을 함께 하기도 한다. 짜장면이나 베트남 국수를 먹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나는 짓궂게도 학교
어린 시절 겨울 추위는 대부분 추억으로 남아 있다. 머리맡에 놓여있던 물그릇의 살얼음이 신기했고, 문고리에 붙어 있는 서리는 그 겨울밤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알려주는 기상척도였다. 복지관에서도 내 방 온풍기는 이용자가 올 때만, 복도 등 공간은 맹추위만 겨우 가실 정도로 사용한다. 민원이 발생할 듯도 싶은데 감사하게도 대부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뉴스에는 “난방비가 500만원이 나왔다…1000만원이 나왔다…” 등 추위만큼이나 사회를 위축시키고, 난방비폭탄 고지서는 충격을 가져왔다. 그런가 하면 서민들은 “난방비폭탄을 막아라”가 구호가
지난 2월6일 일어난 튀르키예의 지진으로 마음이 아프다. 수만 명 죽음이 확인되었고,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잔해 더미에 깔려있는지 알 수 없다. 하늘은 무고한 백성들에게 왜 이리 가혹한 고통을 안겨주는지 모르겠다. 한국인들은 마음속에 튀르키예가 6·25전쟁 때 4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준 형제국으로 각인되어 극한의 고통을 나누기 위한 성금과 물자를 현지로 보내고 있다. 인간과 인간이 연대하는 것은 사회적 연기(緣起)의 실천행이다. 지구 위에 다양한 형태로 절망에 처한 이웃에 대한 연민의 정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가치가 아닐
인도 북부 지역을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야 왕조는 불교 역사와 관련이 깊다. 특히 집권 과정에서 무차별 폭력을 저지른 제3대 왕 아쇼까(Aśoka, 재위 272~236 BCE) 대왕에게는 ‘잔인한 아쇼까(Caņdāśoka)’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불교에 귀의한 뒤 그는 불법(佛法, Dharma)에 따라 전쟁과 살생을 멈추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 정책을 실행하였으며, 도로·여행자를 위한 숙박 시설 등 사회 간접자본 건설을 추진했다. 과거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람과 지역에 관용정책을 펼쳤으며, 불교뿐 아니라 백
동체대비(同體大悲)라고 한다. 모든 중생이 겪는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삼는 자비를 말한다. 억지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한 몸인 진리를 우리가 깨닫지 못하여 남으로 여기고, 편을 가르는 것일 뿐이다. 그러한 잘못된 견해를 벗어난 불보살에게는 동체대비가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다. 불교에서만 그런가? 유학에서도 모든 존재를 나와 하나로 여기는 것을 어짊[仁]이라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팔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을 불인(不仁), 즉 ‘어질지 않다’라고 한다. 정호(程顥, 1032∼85)는 손발에 기가 통하지 않아 자기 몸을 자기
어릴 때 먹었던 음식 맛이 엄마를 부른다면, 다 커서 만난 음식도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보다. 나에게 평양냉면은 바로 그런 음식이다. 비빔은 정중히 사양한다. 사시사철 언제나 물냉면을 먹는다. 성격 한번 유별나다. 특별한 맛이랄 것도 없는 슴슴한 국물과 맥없이 끊어지는면발의 허무한 느낌이 내 마음을 사로잡을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을지면옥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얼추 25년은 된 것 같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던 시간을 두고 한없이 불안하던 시절, 추운 겨울날 우연히 들렀던 곳이 을지면옥이었다. 처음 맛본 차
우주 질서 속에 있는 우리 생명체는 유물론적 입장에서 보면 분명 시작과 종말이 있다. 사대육신이 인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져 있다가 사대가 흩어지는 과정을 우리는 시작과 끝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시무종의 시공 속 사대가 흩어지는 과정에서 마지막 원자만 남았을 때 이 원자는 우주의 어느 곳에서 어느 인연과 화합할지는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전우주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불교에서의 시제는 어떨까.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시제가 기찻길처럼 일직선에 있는 것은 아니다. 불교의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원형
세계는 해를 더할수록 안락과 평화보다는 갈등과 고통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20세기의 1·2차 세계대전처럼 대량살상은 멈추었을지 몰라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보듯 여전히 전쟁은 일상화되고, 전선에서의 숱한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달된다. 이렇게 무감각해도 되는 것인가. 과학을 필두로 한 학문의 세계는 인간의 지식을 축적하고, 사고파는 시장경제 주도자인 기업은 지구의 경계를 허물며, 국가 간의 숱한 우호 협약들이 매스미디어를 장식함에도 왜 우리는 이토록 불안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가.존재 자체가 불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가,
정치권력에 너무 가깝게 다가가서 혜택을 많이 보거나 종속되어 권력이 던져주는 당근 맛에 취해 있다가 그 권력의 몰락과 함께 큰 피해를 입거나 아예 역사에서 사라진 종교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종교계를 향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깝게도 멀게도 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상식이라고 할 당연한 말이지만 이 당연한 일이 잘 안 되는 게 현실 세계이다.중국 동진시대의 혜원 스님은 여산 동림사에 은거할 때, 어느 날 자신을 찾아왔다 돌아가는 도연명과 육수정을 배웅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이 세속과의 경계
종교평화를 지향하는 방향의 큰 축을 법보신문 한 호에서 나란히 보게 되었다. 조계종이 종교간 화합·평화로운 사회 기원 트리등에 불을 밝혔다는 기사와, 조계종 중앙종회 특위가 종교편향 담당 전담조직 구성을 요구했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종교평화를 실현하는 길에 있어서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방향과 수동적이고 수비적인 방향을 잘 드러내주기에, 주마가편의 마음으로 한 마디를 더 보태고자 한다.우선 적극적으로 다른 종교에 화합과 협력의 손길을 내미는데 불교처럼 큰 강점을 가진 종교는 없다. 부처님께서는 다른 종교의 교단을 떠나 당신에게
주고받는 것이 좋을까, 안 주고 안 받는 것이 좋을까, 받고 안 주는 것이 좋을까, 주고 안 받는 것이 좋을까. 경조사비 이야기다. 주기만 했지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알리지도 않았으니 받을 일도 없었다고 해야겠다.한동안 뜸하던 사람이 갑자기 밥이나 먹자는 연락이 오면 아니나 다를까, 경조사 공지가 뜬다. 기분은 별로지만 애써 외면할 만큼 강심장도 못된다. 다들 엇비슷한 감정이겠지만 한국적인 정서상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어렵다. 마음속으로는 투덜대면서도 마지못해 봉투를 건넨다. 아까운 마음으로 줬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