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봉덕사종, 경판고→장경판전으로 불러야 창경궁이 한때 창경원이라 불린 적이 있다. 창경궁은 조선 임금이 살았던 지엄한 곳. 그런데 이곳이 어떻게 유원지에나 붙일 수 있는 원이 돼 버렸을까? 이런 만행을 저지른 장본인은 일제였다. 일제는 임금이 살던 궁궐에 식물원·동물원 등을 지어 놀이터로 바꿔버렸다. 이름도 이때 창경원으로 개칭됐다. 창경원이 다시 창경궁으로 제 이름을 찾는 것은 불과 18년 전이다. 창경궁은 해방이 된 이후에도 40여 년 동안 창경원으로 불렀던 것이다. 이처럼 문화재에 잘못 붙은 명칭은 문화재 훼손보다 더 큰 위력으로 문화재에 왜곡된 시각을 심어준다. 잘못된 명칭으로 피해를 입고 있거나, 혹은 제 이름을 잃은 불교문화재도 적지 않다. 직지심경, 에밀레종, 경
스님 뵙기 전에 법당에 들러 내 식대로 부처님 뵙고 한 말씀 듣고 나오니 마음이 사뿐해 지는군요. 나이 들어 지면 무어라 하는 소리는 들을 기회가 사그라지는 것 같아요. 차곡차곡 쌓인 전탑 마냥 쌓이는 말씀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일상의 작은 서운함들은 부처님 손 안에 담아 드리고… 경주 분황사 : 선덕여왕 3년인 634년에 창건(創建)되었다. 국보 제30호로 지정된 모전석탑(模武石塔)을 비롯하여, 화쟁국사비귀부(和諍國師碑龜趺)석정·석조·초석·석등·대석과 사경(寺境) 이외에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남아 있어 보존되고 있다. 이 절에는 775년(경덕왕 14) 본피부(本彼部)의 강고내미(强古乃未)가 구리 30만 6700근을 들여 만들었다는 약사여래동상이 있었
한알의 곡식은 99번의 노력과 땀의 결과라고 한다. 그러기에 승가에서는 음식을 먹을때 과연 먹을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한다. 사람 몸 받아 불도를 이루는 수심행을 말하는 것이다. 선방의 그런 바루공양은 음식은 부엌에서 짓되 공양후 설거지까지는 각자 담당하는 이상적인 식사법이다. 특히 어시바루는 존앙의 덕행을 만들고 음식과 양을 자신이 조절해 가장 자유로운 평등을 보여준다. 그래서 공양 의식은 지극히 정성스러운 것이다. 한편 언젠가부터 우리 불자들도 자연스럽게 공양을 들기 전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들면서 그 감사함을 잊고 살기 십상이지만 먹고 사는 일이 더없이 중요하기에 모두 두손을 모아 합장하고 “이 음식에 깃든 은혜 두손모아 감사하고 상구보리 하화중생 명심발원하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
인간이 진화하면서 생긴 대표적인 질환이 요통과 두통이다. 특히, 두통은 갈수록 그 발생의 빈도수가 늘어나고 만성화되는 추세로 있는 질환으로써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40대의 평범한 남성 직장인인 L씨가 두통으로 병원을 찾아왔는데, 약 2주전부터 머리부터 어깨까지 짓누르고 쥐어짜는 듯한 통증과 함께 머리가 항시 무거워 안개 속에 싸여있는 느낌이고, 며칠 전부터는 업무의 집중력조차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은 상태라고 했다. 두통을 호소하는 많은 환자들의 경우 L씨와 같은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런 경우 ‘긴장성 두통’으로 진단할 수 있다. 여기서 긴장은 머리를 싸고 있는 근육이 긴장한다는 뜻이다. 통증의 특징은 머리를 쥐어짜는 듯이 아프고 대개, 편두통과는 달리 양쪽으로 나타나며 머리거
카필라바스투는 부처님의 고국이다. 불전에서 가비라위국 또는 가비라성이라고도 불리는 곳이 이곳이며, 부처님 같은 성자의 고국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에 있던 사위성의 유리왕에 의해 멸망한 비운의 나라이다. 가비라성을 침공하려는 유리왕의 두 차례의 시도는 부처님에 의해 무산되었다. 그러다가 유리왕은 부처님이 멀리 떠나 있는 기회를 포착하여 가비라성을 함락시키고, 부처님의 동족인 석가족을 학살하는 잔학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무작정 베푸는 건 보시 아니다 이때 마하남이라는 수행자는 유리왕에게, 자신이 연못에서 잠수해 있는 동안만이라도 잔학 행위를 중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왕이 허락하자 마하남은 물속으로 들어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물속을 조사해 보았더니, 마하남은 물속의 나무뿌리에 자신의
# '남북 가슴엔 평화 씨앗 있어' '한국불교의 유구한 전통불교를 계승함과 동시에 세계인들에 한국전통불교문화를 널리 알리어 그 뜻이 전 세계에 전해지기 바랍니다.' 세계적인 고승으로 알려진 틱낫한 스님이 지난 3월 19일 조계사를 방문해 조계종 총무원장을 예방했다. 틱낫한 스님과 17명의 수도승들은 견지동 조계사에 도착해 대웅전에 들러 삼배를 올린 뒤 법장 스님 및 조계사 스님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불교의 전통문화를 높이 평가했다. 법장 스님은 틱낫한 스님을 맞은 자리에서 '평화운동가이자 수행자인 스님에게서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스님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이에 틱낫한 스님은 '정토(淨土)가 바로 이곳이며, 여기가 정토가 아니라면 그 어디에도 정토는 없다'며 '한
틱낫한 스님이 일부 출판업자와 장사꾼들에 의해 단순한 명상가로 왜곡·폄하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틱낫한 스님을 친견하고 그곳에서 수행을 하기도 했던 불교저술가 진현종 씨는 「불교와 문화」(3·4월호)를 통해 틱낫한 스님에 대한 기존의 오해와 편견들을 지적했다. 진 씨에 따르면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플럼빌리지(Plum Village)를 일종의 명상공동체라고 소개하는 사례가 많지만 스님은 비구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는 스님이고, 플럼빌리지는 우리의 송광사나 해인사와 다름없는 거룩한 삼보가 상주하고 있는 엄연한 절이라는 것. 또 진 씨는 스님을 시인, 수필가, 평화운동가, 명상가 등의 말로 지칭하는 것을 흔히 보지만 여기에는 불순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음도 지적했다. 진 씨는 임진왜
'20분의 참선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멈추고, 인생에서 모든 것을 잠시 비켜서 저의 내면을 바라보았습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입으면서 살아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7박 8일간의 '한국의 불교문화 체험'을 위해 14명의 조지아대 학생들을 인솔해 한국을 방문한 스티븐 엘리어트 고어 교수(44). 그는 현재 조지아대학 최우수학생 육성 프로그램 관리부(Honors and Founda ton Fellows Programs)에서 부소장직을 맡고 있다. '우리 학생들을 한국불교에 완전히 노출시켜 보는 것이 이번 연수의 취지'라는 그는 '한국의 불교를 배우는 과정 속에서 한국사회와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 문화의 정수를 느끼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이번 사찰체험의 목적을 설
'걷는 스님' 원공 스님을 만나기 위해 기자가 서울 도봉산 자락의 선각사(蟬覺寺)을 찾았을 때는 마침 점심 때였다. 절을 하려는 기자에게 스님은 '절은 부처님이 아니면 죽은 사람에게나 하는 것'이라며 악수나 한번 하자고 손을 내민다. 지난해 8월 도봉산 천축사에서 거처를 옮겨 작은 토굴을 마련한 스님의 도량은 말 그대로의 무소유의 공간이었다. 이사 오던 날 매미떼가 하도 울어 매미 선(蟬)자를 써서 선각사로 이름을 지었다는 이곳에는 손수 짠 엉성한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그 흔하디흔한 시계나 달력도 없었고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아 이런 것이 바로 '텅빈 충만'이란 생각을 절로 자아내게 했다. 무문관 이후 도보 수행 다소 막힌 공간인 까닭에 도량 안은 약간 어두웠지만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