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천지신명도 성지를 순례하고 불타기념관에서 함께 만나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등 세계의 일체 신들을 종교교류를 통해 불광산에서 세계평화를 기원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조성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부처님의 광명이 두루 비추고 불법의 법수가 오대주에 두루 뿌려지고 있습니다.”불타기념관을 건설하던 기간 중에는 원숭이도 찾아와서 놀고 근처 고병계 하천의 백로도 날아와서 먹이를 찾기도 하고 심지어는 공사장 인부들이 먹던 음식을 얻어먹으려고 50여 마리가 넘는 유기견이 몰려들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은 불타기념관이지 빈승이 개를
“신도들이 불광산에 와서 저를 찾으면 “스님은 주방에 계세요”라는 말에 국수를 끓이고 있는 저를 보게 되더라도, 말을 나눌 시간이 없어도 “대중들이 먹을 수 있도록 국수 좀 날라다 주세요”라는 저의 말에 그들도 기꺼이 나서서 도왔습니다. 대만 자원 봉사자의 성장은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 저는 1975년 정월을 맞으면서 매일 주방에서 국수를 끓였는데 하루에 큰 솥으로 50솥 이상을 끓였습니다. 신도들이 불광산에 와서 저를 찾으면 “스님은 주방에 계세요”라는 말에 주방으로 찾아와도, 국수를 끓이고 있는 저를 보게 되더라도, 말을
“불광산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이것을 기증해주는 사람이 있고 저것을 기증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빈승은 사람들에게 한번도 무얼 기증하라고 입을 뗀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많이 내놓지 말고 보시는 가늘고 기다란 물줄기처럼 조금씩 하라고 사람들에게 항상 말합니다.”빈승이 일생에서 먹어봤던 음식은 모두 잊지 못하고 일체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수십년 전 타이베이 김지고(金枝姑) 선생의 집에서 마셨던 시원한 우유 한잔은 마치 감로수와도 같아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70년전 진강의 ‘일지춘(一枝春)’이라는 작은 국수집에서
“저의 기쁨과 낙관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기쁨을 버는 것은 세상의 재물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누구나 남이 주는 것을 내가 받아야 기뻐하지만 사실 베푸는 것은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재산을 지니게 되면서 남한테 베푸는 것을 아까워하다가 마지막에는 자식들 간에 재산 싸움이 되면서 사회에서조차 어찌 해야 할지 몰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저의 기쁨과 낙관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마음 속 샘물에서 흘러나오고 사상의 통로에서 나오고 대중과 함께 하는 속에서 나오며 인간관계의 감사함으로부터 나오고 열심히 일하여 성취
“‘땅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는 곳에 재물이 있게 되고 재물이 있으면 대중을 위해 써야 한다’고 빈승은 말한 적 있습니다. 불광산은 50년 이래로 끊임없이 인파를 불러 모았고 점차적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불광산 교단을 상징하는 ‘승보(僧寶)’를 이루게 되었으며 ‘불보(佛寶)’를 대표하는 불타기념관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불광산 개산 초기로 기억하는데요, 사찰건립비용 마련을 돕고자 자선경매를 할 수 있도록 친한 도반 광원(廣元) 스님이 왕운오, 마수화(馬壽華) 등 선생을 모셔서 당대 유명화가들로부터 300장의 작품을
“‘법보(法寶)’를 상징하는 장경루가 완공되면 ‘불광대도(佛光大道)’에 있는 누(樓)와 각(閣), 관(館), 대(台)가 한 길로 이어져 통행에 장애가 없게 될 것이고 전체 불광산에 진정한 ‘불법승(佛法僧)’ 삼보가 갖추어지게 됩니다. ”2016년은 불광산 개산 50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개산 이후 40년은 불광산을 일구어 온 시간으로 승보의 교단이며, 이어서 근 10년에 걸쳐 지은 불타기념관으로 불보의 교단이 이루어졌고 곧 완공되는 장경루는 법보의 성지이니 ‘불광대도(佛光大道)’의 큰길로 불법승 삼보를 연결하여 불광산 교단이 됩니
“일요학교에는 이제 어린이들이 1000명 이상 모입니다. 60여 년 전, 빈승이 대만 동북부 의란(宜蘭)에서 처음 어린이반을 열었는데 흔히 말하는 ‘일요학교’입니다. 일요일이 되면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 저는 어린이들을 의란염불회로 불러 모아 행사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당시 주임과 지도교사를 맡았던 장자련(張慈蓮)과 임미월(林美月)은 40년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으며 차비 한 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해 이래로 수많은 자원봉사 엄마들이 운수도서 차량을 따라서 대만전역의 오지와 바닷가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동화구
“빈승의 이름이 ‘별 성(星) 구름 운(雲)’인데 별은 하늘 높이 걸려 있고 구름은 공중에 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떠 있거나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저 역시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다행히도 보통 출가인을 ‘운수승(雲水僧)’이라고 부릅니다. 물은 산간계곡을 흐르다가 모여서 강이 되고 바다를 이루니 ‘운수승’ 역시 빈승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빈승의 이름이 ‘별 성(星) 구름 운(雲)’인데 별은 하늘 높이 걸려 있고 구름은 공중에 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떠 있거나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저 역시
“수 많은 문화예술품들은 물론 신도들이 기증한 것도 있지만 대다수가 불광산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불광산의 욕심일까요? 아니면 희사일까요?”우리 사회에는 돈 많은 ‘가난한 사람’도 많고 검박하게 사는 ‘부자’도 많이 있습니다. 중국인은 도덕적 인격 추구가 사람의 도리라고 강조하면서 일반적으로 돈이 많고 적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격과 도덕을 군자의 근본으로 합니다.부처님의 큰 제자 가섭존자는 산속동굴이나 나무아래에 거주하면서 하루 한 끼만 먹었어도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고 법희와 선열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공자님
“대자육아원은 50년 이래로 1000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을 돌보면서 공부시키고 독립해 직업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양로원 인애지가와 불광정사에는 1000명의 노인들이 수십년 이래로 불광산의 사중식구로 살고 있습니다.”현재 제자 의항(依恆)이 ‘성문장(聲聞藏)’을 맡고 있고 의공이 ‘예문장(藝文藏)’을 맡았으며 영본(永本)과 묘서(妙書)가 ‘본연장(本然藏)’을 맡고 만기(滿紀)가 ‘유식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을 이끌면서 동시에 경전편찬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십명이 힘을 모으는 30여
“일생으로 일일이 따져보면 거쳐 가는 재물이기는 하지만 제 명의의 재물이 일부 있습니다. 불행히도 재물을 좋아하지 않는 빈승이지만 명의상으로 많은 재물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하나하나 자세히 계산해 보면 적어도 수천억원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빈승 평생의 세월에서 도대체 돈이 있었을까요? 아니면 돈이 없었을까요? 저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마음 속 재물 말고 세상의 금전으로 말한다면 빈승은 주머니에 돈을 넣은 적이 없습니다. 은행에도 저금이 없으며 개인재산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광산에서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법통을 물려주고 있습니다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제자들에게 저는 400만원에서 800만원 정도의 저금은 갖고 있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만일 속가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거나 자신이 여행을 가거나 책을 사고자 하는데 쓸 수 있는 개인적인 돈을 약간 갖고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받는 것’ ‘주는 것’에 있어서 저는 ‘주는 것’이 즐겁고 ‘받는 것’의 경우 고통은 아니지만 ‘부담’이 있습니다. 저는 평생으로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해 ‘남에게 신심을 주고, 남에게 기쁨을 주고, 남에게 희망을 주고, 남에게 편리함을 준다’라는 업무지침을 정했
“학생들을 키우기 위해 100만명이 학교건립에 동참했습니다. ‘일필자’(一筆字)를 써서 포교를 위한 공익신탁기금을 만들었습니다. 저의 재물에 대한 관념은 신도는 잘살고 절은 가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광산의 모든 일은 다 역대 주지 스님이 맡아서 하고 있는데, 현 주지는 제9대 주지로서 종무위원회를 대표하여 수많은 업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저 개인은 32년 전에 이미 주지 직무에서 물러났으니 불광산 재무와 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저 역시 불광산 신도 가운데
“부처님 가르침이 5대주로 펼쳐나가고 있는데 불교에 재물이 없을 리 있겠습니까? 인간 세상에 행복과 안락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금전적인 처리에 있어서 없을지언정 미리 지출한 적이 없습니다. 신도와의 왕래 중 법규에 따라 금전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중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불교에는 ‘빈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고 지금 저 역시 돌연 스스로를 ‘빈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세간법에서 저는 제 자신이 ‘빈승’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자격을 가장 잘 갖추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저는 은행에 저금통장을 갖고
“불광산 1000여명의 비구, 비구니들은 월급도 없고 휴일도 없습니다. 교실과 숙소는 50여년 전에 지어진 전통시설로 에어컨 설비없이 지내고 있지만 불광산의 에어컨은 모두 손님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 과거 중국대륙의 출가자들은 스스로를 ‘빈승’이라며 낮춰 불렀습니다. 출가인 마음속에 삼천 대천세계를 품고 있는데 어째서 스스로를 ‘빈승’이라고 업신여기나 해서 저는 이렇게 부르는 것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어린시절 저의 집은 끼니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저는 궁색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비록 돈이 없어서 학교에 갈 수
“저에게는 역시 ‘빈승’이라는 이름이 어울립니다. 시방에서 와서 시방으로 가고 함께 시방의 불사를 이뤄 냅니다. 무(無)를 유(有)로 삼으면서 공(空)을 즐거움으로 합니다.수십 년간 희사하고 재난구호를 펼쳐온 자제공덕회의 사회적인 헌신과 공로를 내호개발 사건으로 완전히 말살시킬 수는 없습니다. ”대만불교를 대표하는 스승이자 상징인 성운대사는 2015년 대만 사회를 향해 불자들의 권리를 적극 옹호하고 반세기 동안 대만 불교계가 펼쳐온 대승보살도의 보시와 나눔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글 40편을 썼다. 세납 89세의 성운대사가 ‘빈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