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불교는 서양의 침탈과 피식민 경험 그리고 전쟁·가난·불평등 등과 같은 현실 인식에 기반하고 있지만, 사회적 참여를 위한 불교적 관점의 이론적 틀을 제공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참여불교인들의 나이브(naive)한 현실 인식이나 사회과학적 지식의 부족 때문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내면적 변화를 통해서 개인의 구원을 목표로 하는 종교로서 불교가 갖는 고유한 특성에 기인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불교에만 해당하는 독특한 것은 아니다. 모든 종교는 개인의 구원과 사회 참여의 요구들을 조화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이
재물이란 사람 사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의 하나이지만, 그것을 입에 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그렇다. 특히 초세속적 요소가 강한 불교 공동체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럴수록, 또는 그렇기 때문에, ‘종학(宗學)’의 차원에서 원칙을 분명하게 규정해 둘 필요가 있다.불교 공동체는 출가자와 재가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칙적으로 재가자들은 출가자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재물을 보시해야 한다. 그런데 불교가 전파된 지역과 역사 전통 속에서, 승가에 귀속된 재물이 축적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축적된 재물을 ‘공적’으로
1960년 3월15일에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 부정을 규탄하는 학생 시위에서 촉발된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12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내각제 개헌을 거쳐 민주당 신파의 장면이 내각 수반인 국무총리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나라 안과 밖의 기대와 우려 속에 취임한 장면은 정치 기반이 취약한 데다 성격이 나약하여 어려운 시기를 이끌어갈 지도자감이 아니었다. 이는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이를 수습할 엄두도 내지 않고 도망쳐 수녀원에 몸을 숨겼던 것으로도 확인된다.장면은 해방 전 동성상업학교 등 가톨릭계 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다. ‘2020 도쿄올림픽’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잠시 동안 ‘지금이 2020년인가’ 착각했다. 모든 시간을 1년 전으로 돌려놓고 치르는 올림픽에 기대보다는 우려의 마음이 더 크다. 우리와 일본은 워낙 사이가 까칠해서 하고 싶은 일도 일본이 응원하면 집어치우고 싶은 게 솔직한 우리들의 심정이다.짧게 보면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형성된 줄 알지만 조금만 역사서를 살펴보면 정말 ‘천년의 원한’이 서려 있다고 하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가까운 지역에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사이가 좋지 않다. 긴 시간 이해관계가
지난 호에서 이른바 전불시대(前佛時代)의 가람터에 세운 7개 사찰과 성전(成典)이 설치된 7개 사찰의 비교를 통해 중고불교에서 중대불교로의 변화과정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 결과 삼국통일 뒤 중대불교는 중고불교의 왕실불교 성격을 계승하면서 한편으로 호국불교적인 성격이 다소 퇴색되는 대신 선대 국왕을 추모하는 제사기능이 추가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중고 국왕의 권위를 강화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던 흥륜사・황룡사・분황사・담엄사 등 4개 사찰이 중대불교의 성전사원에서는 제외되었고, 그 반면에 선대왕의 은덕에 감사하
내가 5살 때부터 키워온 남자아이가 벌써 22살 전형적인 이대남(20대 남성을 줄여 이르는 말)이 됐다. 이 친구는 여성가족부 산하(이하 여가부)기관에서 일하는 내게 불만과 존경의 마음이 반씩 있다고 말한다. 불만은 스님이 하는 일의 정책이 너무 ‘허접’하고, 양성보다는 여성을 위한 편향적 정책이라는 오해가 깔려 있었다.요즘 정치권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주장하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성가족부는 폐지돼서는 안 된다. 여론조사나 다수결로 이를 결정해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 여성정책은 1995년 ‘여
종교의 궁극적 가치는 뭘까? 또한 목적은 뭘까? 최근 캐나다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건을 보면서 필자는 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종교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졌다. 지난 7월1일 AFP통신에 따르면 캐나다 원주민 단체인 ‘로어 쿠테네이 밴드’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크랜브룩 근처에 있는 원주민 기숙학교 옛터에서 ‘표식 없는’ 무덤 182기를 찾아냈다. 지면 투과 레이더(GPR)를 통해 탐지해낸 이들 유해는 가톨릭 학교였던 이곳에서 19~20세기 사이에 교육을 받았던 7~15세의 원주민 어린이들 유해인 것으로 드러났다. 가톨릭이 운영한
Q. 아내와 사별하고 2년 전부터 아들네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밥해 먹는 것도 어렵고, 혼자 살다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걱정도 됐는데, 큰 아들이 같이 살자하니 옳다구나 싶었습니다. 살림을 합치기 위해 혼자 살고 있던 집을 처분하고 아들 명의로 서울에 큰 집을 사서 이사를 했습니다. 합가만 하면 아들며느리의 수발과 손주들 재롱을 마음껏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같이 살아도 살기 바빠 온 식구가 얼굴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답답하고 심심해 나가보려 해도 길도 잘 모르고 갈곳도
나이가 들면 꽃 사진을 찍게 된다지만, 나이 탓 만이겠는가. 꽃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동적으로 사람을 제 앞으로 데려다놓는 힘이 있다. 정교한 꽃잎과 화려한 색, 거기에 향기까지 더하면 누가 꽃을 이길 것인가. 꽃 앞에 서면 이기고 지려는 마음도 스러진다. 존재만으로도 고마울 밖에. 장 프랑수아 샤바가 쓴 짧은 글 세 편에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림을 덧붙인 이 아름다운 책은 G.W 게스만이 1899년에 쓴 ‘꽃의 언어’에 나온 꽃말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꽃말은 오래 전부터 꽃을 받는 사람에게 은근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으로 널
아가는 태어나면서 울음소리를 낸다. 젖을 먹고, 옹아리를 한다. 주먹을 빨고, 고개 들기, 뒤집기, 기어 다니기, 일어나 앉기, 따로 서기를 거쳐서 걷는다. 이것이 태어나서 1년의 성장 과정이다. 한 살이 넘고부터는 응석을 부리고 말을 알아듣고 배운다. 이 과정의 아기를 살펴보면 아기의 귀여운 행동 모두가 예술이요, 시다. 시는 성인 사회에서 시작되었지만 차츰, 어린이들이 주 독자가 되는 동시 갈래가 생겼다. 그러다가 유아교육이 발전하면서 그 영향으로 생겨난 것이 동시에서 갈래가 생긴 유아동시다. 유아동시는 유치원생이나 초등 저학년
1988년 2월23일 전남 구례 천은사 응진전(應眞殿)에 봉안됐던 목조나한상 7구와 목조제석천상 1구가 도난됐다. 33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나한상, 제석천상은 지난해 서울 한 사립박물관장 은닉처에서 발견됐다. 나한상 2구와 제석천상 1구가 발견된 이후, 나한상 1구를 추가로 회수하였다(사진 1, 2). 이는 지난해 1월 모 경매회사에서 경매진행 예정이었던 ‘포항 보경사 불화’ 2점을 확인하고, 도난 불교문화재 17건 33점을 압수하면서 관련자들을 지속적으로 수사한 성과다. 구례 천은사(泉隱寺)는 828년(신라 흥덕왕 3년)에 덕
중생은 육근(六根)을 통해 대상 세계를 인식한다. 육근은 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 의근(意根)으로 여섯 종류의 인식 기관이다. 여기서 근(根)은 기관 혹은 기능의 의미로 인식을 만들어 내고 인식 기능이 작용하는 장소를 가리킨다.중생의 육체적, 정신적 활동은 모두 이곳 육근에 의지해서 전개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육근 가운데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근이 있으니 눈과 귀에 해당하는 안근과 이근이다.중생들에게 들어오는 정보들 대부분이 눈이나 귀를 통해 들어온다. 요즘 너도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