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경인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악산과 동해안에는 새해의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밤잠을 설치며 여러 시간을 달려왔음에도 그들의 표정은 다른 때와 달리 피곤함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이들의 얼굴에서 피곤함을 밀어냈을까. 그것은 아마도 ‘초발심’이 지닌 설렘과 강렬함 그리고, 다른 그 무엇에 비할 바 없는 엄숙함 때문일 것이다. 매일 뜨는 해인데도 불구하고 새해의 첫 일출은 매해 새로운 일출이다. 시간을 초월해 살아가야 하는 수행자도 새해의 첫 일출에 새삼 숙연해지는 것을 감출 수 없는데, 매일 매일 새로운 일상과 마주쳐야 하는 일반인들에게는 그 숙연함이 몇 배 더 간절할 것이다. 초발심(初發心)이란 말은 우리 불교가 대중화 시킨 소중하고 아름다운 말들 중 하나이
근자에 불교계에서는 다양한 형식과 주제로 심도 있는 논의의 장이 마련되어 많은 불자들의 기대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8월 실상사에서 개최한 ‘정법불교를 모색하는 지리산 야단법석’에 이어, 이달 12일에는 밝은사람들연구소의 8회 학술연찬회 ‘몸, 마음공부의 기반인가 장애인가?’와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13번째 화엄광장 ‘신대승불교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가 진행되었다. 한편 조계종은 몇 해 전부터 중앙종무기관 직속으로 다양한 위원회를 신설하여 분야별로 정책의 전문화를 꾀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불교계가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긍정적 신호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전개과정과 결과물을 살펴보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데 한마디로 효과적인 문제해결기법의 부재라 할 수 있다. 시대에 조응하는 정체성에
송구영신 덕담을 나눌 때다. 하지만 그럴 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세밑의 세속 풍경이 녹록하지 않다. 살천스럽다. 인권운동을 지며리 펴온 활동가들이 발표한 ‘2009년 10대 인권뉴스’가 그 ‘증거’다. 10대 인권뉴스의 머리는 단연 서울 용산참사다. 더러는 또 그 이야기냐고 눈 흘길 지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그게 누군가의 노림수는 아닐까. 용산 참사의 진상을 가리거나 진저리치게 만드는 여론조작이 한 해 내내 이어졌다. 그 결과다. 참사는 시나브로 잊혀가고 있다. 철거민만이 아니다. 쌍용자동차의 일방적 해고에 맞선 노동자들도 가혹하게 탄압받았다. 그뿐인가. 미디어법도 날치기 처리했다. 시국선언 교사와 공무원 노조를 징계하겠다는 이명박 정권의 서슬은 새삼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톺아보게 한다.저들은 말끝마다
행복한 대통령이 보고 싶다. 국민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첫 번째 대통령은 경찰 발포로 국민들이 목숨을 잃자 물러났다. 그는 하와이로 갔다가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그 다음 대통령은 쿠데타를 일으킨 정치군인에게 시달리다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총칼로 권력을 빼앗아 헌정을 문란시키고, 인권을 짓밟으면서 장기집권 했던 세 번째 대통령은 부인을 총탄에 잃더니 자신도 측근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떴다. 전임자의 사망으로 얼떨결에 최고 권력자가 된 네 번째 대통령은 12·12와 5·17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에게 쫓겨났다. 다섯 번째 대통령부터는 임기를 다 마치고 제 발로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누구도 행복한 대통령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수천 시민의 피로 물들인 총구를 앞세워 권력을 찬탈한 다섯
역사상 언론사의 성쇄와 관련해 국민들이 운동의 형태로 참여한 것은 제 기억으로 두 번 정도입니다. 유신정권의 언론검열에 대항해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수호운동으로 맞섰고, 이에 정권은 광고주들에 대한 광고철회 압력으로 이를 꺾으려 했습니다. 1974년 말부터 1975년 사이 동아일보는 지면에 백지광고를 기재했고, “동아의 텅 빈 광고야말로 우리 자신의 아우성임을 알고 있노라”며 시민들은 후원광고와 성금으로 동아일보를 후원했습니다. 그러나 정권에 굴복한 동아일보 사주 측에서는 130여 명의 기자들을 해고했고, 이후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기사를 제작했습니다. 또 한 번은 1985년부터 벌어졌던 KBS 시청료 거부운동이었습니다. 당시 땡전뉴스라 불리울 정도로 정권의 홍보방송으로 전락해 왜곡보도를 일삼는 K
설악산에는 예년보다 일찍 눈이 내려 단풍과 설경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단풍 위에 쌓인 눈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맑아지고, 세상사 이치도 한결 분명해진다.새로운 날을 기약하며 온몸으로 자신을 불태우는 단풍을 보면 생멸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흰 눈을 바라보면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이라,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는 서산대사의 가르침이 절로 떠오른다.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 내년 달력이 나오고, 너나 할 것 없이 연말연시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다. 이때가 되면 늘 경책처럼 되새기는 말이 있다. 『무량수경』에 나오는 ‘화안애어’(和顔愛語)의 가르침이다. 한자 그대로 풀면, ‘온화한 얼굴에 사랑의 말’이고, 경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이전개관 당시만 하더라도 서양사와 중국사가 포함된 연표에 (고)조선의 역사가 빠져 있었다. 그러나 2007년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단군이 역사로 편입이 되었고 금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관이 개관되었다. 이로써 (후)조선과 일제에 의하여 부정되어 왔던 민족사가 본격적으로 재조명될 수 있는 전환점이 형성되었다. 그동안 고대사와 관련하여 쟁점의 중심에 있는 고서는 민족시원을 1만년 이전까지 적시하고 있는 규원사화, 한단고기 등으로 사학계에서는 사료적 가치조차 없는 위서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단고기의 위서논쟁과 함께 규원사화가 진본임을 아는 국민은 몇이나 될까. 조선조 숙종 2년 발간된 규원사화는 1972년 당대 최고의 문화재 위원이 심의를 하여 진본임을 확인한 중요한
“지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갈등과 대립을 조화롭게 극복하고, 모자라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노력이 시급한 때입니다. 서로 차이를 넘어 널리 화합을 이루라는 불교의 원융무애사상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대승적 통합과 상생의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이명박 대통령이 자승 총무원장에 보낸 취임 축하문의 일부다. 글만 보면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이명박 정권이 화합에 앞장서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그래서다. 우리는 갈등과 대립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그리고 참으로 화합을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원인을 외면한 채 갈등을 해소할 때 엉뚱한 결과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 보기가 ‘김영삼식 화해’다. 두루 알다시피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
헌법재판소의 미디어관련법에 대한 결정을 두고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온갖 패러디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양당 의원들의 심의 및 표결권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미디어관련법의 가결 및 선포행위가 유효하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일반인들의 법 감정과 많이 동떨어져 있는 듯합니다. 이렇다 보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패러디한 어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절도는 범죄지만 절도한 물건의 소유권은 절도범에게 있다”,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위조지폐임은 분명한데 화폐가치는 있다”, “커닝이나 대리시험은 확실한데 합격은 무효화할 수 없다”, “아내는 맞지만 와이프는 아니다”, “때린 것은 맞지만 폭력은 아니다”, “사고내고 도망갔지만 뺑소니는 아니다”, “베끼긴 했지만 표절은 아니다” 등등 패러디물
설악산은 지금 만산홍엽(滿山紅葉)입니다. 단풍만이 만산홍엽이 아니라, 색색의 등산복을 갖춰 입은 등산객들도 또한 만산홍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제 설악의 단풍은 한국인들만의 단풍이 아니라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단풍이 된 듯합니다. 어딜 가나 영어와 중국말, 그리고 일본말들이 들려옵니다. 단풍도 그것을 아는지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곱게 물이 들었습니다. 이럴 때, 우리 옛 스님들의 혜안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한 몸이 된 절을 지음으로써 왜 이 자리에 이 절이 있어야 되는지를 무언으로 보여준 지혜는 참으로 놀라울 뿐입니다. 만약 산 속 깊은 곳에 절이 없었다면 사람이 자연과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을 어떻게 배울 수 있으며, 자연 앞에 겸허해
최근 니까야와 아함경, 대승경전에 대한 불설·비불설 논쟁이 뜨겁다. 그러나 문헌학적 관점과 종교이념의 전통적 카테고리에 국한되어 논쟁이 진행되는 아쉬움이 있어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초기 경전은 보수적인 비구장로 중심으로 취사 결집되었다. 유행걸식의 시스템 상 붓다께서는 출가자 이상으로 재가자에 대하여 많은 법문을 하셨을 텐데 경전에서는 그 내용이 현저히 부족하다. 또한 진보적 입장을 견지했던 아난에 대하여 아라한과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결집과정에 쉽게 참여시키지 않은 점과 초기불교시대 견성한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의 숫자가 비구를 능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비구니조차 결집에 참여하지 못한 점은 초기경전을 바라볼 때 매우 신중히 살펴야 할 부분이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를 둘러싼 국회 안팎의 공방이 최종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7월 22일 국회에서 ‘기습 통과’ 된 미디어법의 권한쟁의 심판청구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10월말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을 톺아보면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명확하다. 이미 언론 현업인들의 단체인 전국언론노조가 미디어법 처리의 불법성에 대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날치기 당시 본회의장 안에 있었던 160여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의 동선을 여러 대의 카메라에 찍힌 영상들과 일일이 두 달 동안 대조하며 ‘발굴’해 낸 영상은 말 그대로 가관이다. 가령 본회의장 전광판에 재석 중으로 표시된 이사철 의원은 그 시각 야당 의원들과 대치하고 있어 투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