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즈음에 성묘를 가서 벌초를 하다보면 이름 모를 풀들이 무덤가에 여기저기 군락지어 피어 있습니다. 이 풀들을 뽑다보면 주변의 흙을 몽땅 파내야할 정도로 서로의 뿌리가 치렁치렁 얽혀있는 것이 발견됩니다. 수많은 생명체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서로의 뿌리를 얽어매고 있고, 그 사이에서는 이를 위협할 다른 생명체가 생겨나는 것을 애써 막고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며 우리 인간사의 인맥도 이와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화초는 척박한 땅에서라도 뿌리를 내리는 반면에 사람들은 모두 기름진 토지만을 찾으니 그 기름진 곳에 속한 인간들의 얽힘은 훨씬 심하다 할 것입니다. 예전 헌법재판소가 행한 위헌 판결로 없어진 법조문들 중에 지금에 와서 다시 거론되고 있는 규정들이 있습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판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늘 아름답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고, 천 원을 내면 천 원 어치의 물건을 받는 룰에 의해 움직이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마음까지 듬뿍 얹어서 주는 선물이야말로 소중한 공덕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추석에도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드리고, 또한 정성이 가득 담긴 귀한 선물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드릴 때는 늘 부족한 마음을 느끼게 되고, 빠뜨린 분이 없나 고민하게 되는 게 선물인 것 같다. 선물에 대한 고민 때문에 내 주변을 한 번 쯤 둘러 보게 되는 것도 선물이 주는 또 하나의 미덕인 셈이다. 추석을 앞두고 이사장 소임을 맡고 있는 복지재단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행사를 가졌다. 최선을 다해 지원금도 마련하고 필요한 물품도 준비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한 듯
추석연휴 기간 동안 1천만 명이 고향방문 등으로 대이동을 하여 전국의 도로는 극심한 교통체증이 예상된다. 마냥 즐거워야 할 민족최대의 명절임에도 연휴기간동안 많은 이들이 연쇄추돌사고로 인명피해를 입는 현실에 ‘운전자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법하다. 연쇄추돌사고는 예방이 불가능한 것인가. 일반적으로 사고소식을 접한 시청자 중 연쇄추돌의 원인에 대하여 살피고 자신의 운전습관과 견주어서 분석하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여러 사람의 운전습관을 살펴보면 안전속도에 대한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는 반면에 안전거리 및 도로환경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다. 운전자가 고속도로 규정 속도 100km를 유지하더라도 안전제동거리를 확보하지 않으면 돌발 상황에서 규정 속도는 무의미한 수치에 불과하다. 나의 규정 속도가 주
“극심한 분열, 편협한 시각, 옹졸함, 상대방의 조건을 맞추어주지 않으려는 고집, 타성.” 미국을 대표하는 노암 촘스키가 진보세력을 정조준 해 쏜 화살이다. 본디 탁월한 언어학자인 촘스키는 여든 살이 넘은 지금 이 순간까지 사회적 발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찍이 1966년에 에 기고한 ‘지식인의 책무’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촘스키는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미국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자리매김 된 순간이다. 촘스키는 지배 권력만 비판하지 않았다. 진보진영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촘스키는 진보세력이 “편협한 시각에 집착하고,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있는 그대로 찬성하지 않
제 자신도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새로이 법조인이 되는 친구들에게 기회가 닿는다면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물론 자기 직업에 적응하기 바쁘고, 쫓기는 듯 바쁜 일정에 살짝 피하려 하기도 하지만 원대한 포부를 갖고 시작한 일인 만큼 귀찮게 여긴다 싶어도 반드시 이 이야기를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은 자기가 정해놓은 틀에 생각을 고정시키지 말라는 것과 항상 헌법과 기본권에 대한 고민과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다행히도 먼저 불교를 접해 이변(二邊), 즉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정(中正)의 도(道)가 무엇일까 하는 중도사상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한 연유에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따라서 자기 범주에 빠져 상의·상관하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
휴가철을 맞아 밀물처럼 몰려왔던 관광객들이 빠져나가자 설악산이 다시 적적해졌다. 괜스레 바쁘고 쫓기던 마음도 가라앉고, 차분히 도량을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출가한 뒤 여러 큰 절을 다니며 공부할 때, 노스님들께 도량을 어떻게 가꾸는가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직접적인 가르침을 통해 배운 게 아니라 그 분들의 평소 언행을 통해 배워나간 것이다. 노스님들은 그 어떤 작은 불사를 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여러 번을 생각한 뒤 실천에 옮기곤 했다. 포행을 나갔다 돌아오면서 다시 그 자리에 가보고, 며칠 뒤에 다시 또 그 자리에 가보기를 반복한 뒤 “이건 이렇게 했으면 좋겠네”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었다. 당시는 나이도 어리고 혈기도 넘쳤던 때라 그게 갑갑해보였지만, 훗날 그런 반복을 통해 이룬 불사는 도량의 원래 자리
지난 8월 14일부터 4박 5일 동안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사부대중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정법불교를 모색하는 지리산 야단법석’이 진행되었다. 무비, 혜국 스님 등이 법석의 인례자로 나서는 것만으로도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사부대중이 함께 참여하는 토론방식의 열린법석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가볍지 않다. 특히 종단개혁을 해온 승려운동 조직이 94년 조계종 개혁종단 출범 이후 속(俗)화 되어버린 현실에서 금번 지리산 야단법석은 불교개혁을 열망하는 사부대중에게는 희망의 불씨로 느껴질 만하다. 무비 스님의 조계종 소의경전인 『금강경』에 대한 성찰적 이해의 주장이나, 혜국 스님의 “간화선은 여러 가지 수행법 중에 하나다”라고 언급한 대목은 논란의 여부를 떠나 조계종의 변화를 위한 초석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다. 2009년 새해를 맞을 때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민주주의와 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두 대통령이 모두 세상을 뜨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새삼 생로병사의 굴레를 실감하는 오늘이다. 두 대통령의 서거를 보는 눈은 다양할 수 있다. 평가도 그렇다. 다만, 겨레의 미래를 위해 결코 경시할 수 없는 공통점에 눈 돌릴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은 서거 직전에 신문시장을 독과점한 로부터 ‘독설’에 시달렸다. 대통령 시절 직접 돈을 챙겼다는 확인되지 않은 혐의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퍼부은 신문들의 조롱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인격 살인’이 끝내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자살을 불러왔다는 진실도 잊을 수 없다
앞으로 한세대 아니 불과 몇 년이 지나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이켜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부끄러운 생각만으로 가득차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한동안 사회 전체가 자본을 ‘자유’로만 여기는 천민자본주의에 열광하면서, 남보다 잘 살 수 있다는 말에 현혹돼 재화가 한도 끝도 없이 생긴다고 착각했습니다. 자기가 남보다 잘살면 그만큼 못살게 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은 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씨줄과 날줄처럼 정보망이 촘촘히 얽혀 서로를 환히 읽을 수 있는 인터넷 세상에서도 그러한 거짓된 성공 신화를 거르거나 비판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이웃의 비범한 성공 신화에 열광하면서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내달려가면서 자본의 자유를 부르짖는 자들에게 동조했습니다. 커다란 실패를 경험하고도 경기회복
최근 몇 년 사이 수해를 많이 입은 강원도에 살다보니 ‘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 중 가장 오랫동안 사유하며 놀라워 한 것은 물이 자기 기억을 갖고 흘러간다는 점이다.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보면, 그 자리는 어김없이 예전에 물길이 나 있었던 곳이다. 물이 자기의 과거를 복원하며 세차게 흘러 그 앞을 가로막는 건물과 토지 등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물길 위에 지어진 집과 다리와 밭 등은 늘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자연 앞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아직도 완전하게 복구되지 않은 강원도 동해안의 수해 피해지역을 둘러보면 ‘물의 기억’이 지닌 엄청난 힘과 파괴력을 새삼 느껴볼 수 있다. 물론 그 원인에는 순간의 안락과 안
격렬한 몸싸움 끝에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대리투표’, ‘재투표’의 논란과 함께 그 파장이 향후 우리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지 그 끝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지난 7개월간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결국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강행 처리되었지만 이명박 정권 집권이후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취한 정치행태의 행간을 읽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은 그 결과를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광주 시민을 무참히 학살한 계엄군을 연상시키는 촛불광장과 용산 철거민 현장에서 자행된 공권력의 대국민테러, 1950년대로 민주주의 시계를 돌린 조계사 앞 백색테러와 극우단체의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파괴, 미네르바와 유모차 엄마들 44명에 대한 무더기 소환 등의 지난했던 현대사를 경험한 국민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을 ‘쇄신’하겠다며 자신 있게 내놓은 검찰총장 인사가 결국 망신으로 귀결됐다.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천성관 씨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온갖 비리가 드러나 결국 사퇴했다. 사필귀정의 전형적 보기다. 처음 천성관 씨가 검찰총장으로 발탁되었을 때 대다수 언론이 ‘파격인사’라고 평가했다. 당시 신문들을 되짚어보면 ‘파격’의 실체를 간파할 수 있다. 청와대 대변인을 ‘배출’한 「동아일보」는 “천성관 후보자와 먼 혈연관계에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오랜 측근” 또는 “권력기관의 고위 인사”가 천 씨를 천거했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선택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논조가 정반대의 신문이지만, 천 씨의 검찰총장 내정에 대통령 의중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분석에는 일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