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게 화두는 ‘죽음’이었다. 첫 시작은 이랬다. “참 희한합니다. 의학적으로 볼때 선생님은 벌써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아요. 참 운이 좋네요.” 올해가 막 시작하자마자 의사에게 들은 말이다. 당시 심장 혈관 곳곳이 막혀 심장의 기능이 10%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한 해가 어느새 저물어간다. 11월 달력을 뜯어낼 때면 올 한 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우리 사회도, 국제사회도 참 다사다난했다. 그 가운데 죽음의 기운이 세계를 뒤덮은 우울한 해였다.우선 우리나라의 다사다난한 일부터 꼽으면 대
북극 한파가 심술을 부린다. 입동과 소설이 지난 날씨가 너무 따스하다고 생각할 즈음, 갑자기 한파가 찾아왔다. 일기예보가 너무나 세세히 지구본을 돌리면서 알려주는 덕분에 짐작으로도 훤히 기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예전에는 정말 갑자기 찾아오는 북풍한설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정확한 예측을 전해 듣고 나름 준비를 하고 나니 추위로 고생스럽지는 않지만 한켠에서는 뭔가 허전한 기분도 든다. 삶의 여운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인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본능적 공포심이 있다. 유사 이래로
“배송 시간이 지연됐으니, 회수해 가라.”엘리베이터 고장으로 29층까지 걸어 올라간 배달 기사가 고객에게 들은 말이다. 게다가 고객은 별점 1개와 부정적인 리뷰를 남겼다. 이후 관련 내용이 방송을 통해 퍼지자, “늦어진 아이들 끼니 때문에 예민해진 탓에 너무 제 입장만 고수한 것 같다”며 사과했다. 고객의 갑질이었을까, 정당한 권리였을까, 아니면 복잡한 조건이 초래한 모두가 불행한 상황이었을까.|최근에는 개인화, 더 나아가 초(超)개인화로 인하여 사회정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갑질의 이면에선 기존의 사회정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봤을 이야기 중에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요정이 나오는 것이 있다. 바로 ‘알라딘과 요술 램프(Aladdin’s Wonderful Lamp)’로 아라비아 지역의 민화를 묶어 만든 ‘천일야화’의 한 편이다. 여기서 요술 램프를 닦으면 램프요정이 나와 주인의 소원을 들어준다.하지만 현대 심리학에서 이 램프는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램프 증후군(Lamp syndrome)으로 일명 ‘과잉 근심증후군’이다.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는 램프를 한 번만 닦을 수 없는 것처럼 걱정을 만들어 주는 램프를 계속해서 닦아
핼러윈 참사로 우울하고 분노스럽던 11월4일 밤, 경북 봉화의 아연광산 지하갱도에 갇혔던 광부 2명의 무사생환 소식이 속보 자막으로 나왔다.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며 그들의 생환 소식을 몇 번이고 들었다. 어둡고 두려운 공간에서 9일간의 사투 끝에 무사히 구조됐다는 뉴스는 핼러윈 참사로 인한 우울한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이 사건 일지를 보면서 불교에서 말하는 ‘동체대비’의 마음이 바로 이런 가르침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어두운 갱도에 갇혀 생사를 다툴 동료들을 위해 밤낮을 쉬지 않고 탄광을 파들어간 동료 광
30년 전의 일이다. 한 젊은 청년이 우연히 조계사를 들리게 됐다. 법당 입구에 서책이 있었다. ‘불교 기초교리’였다. 한 권을 집어 들자 곁에 있던 사람이“2000원입니다”라고 했다. “처음 오는데 책을 그냥 주지 않느냐?”고 하니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냥 내려놓고 난생처음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절도 했다. 생각하니 교회는 처음 갔을 때 성경, 찬송가와 몇 종류의 책을 더 준 것이 기억났다. 오랜 세월의 숨은 인연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자꾸 법당 앞에서 당당하게 파는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아빠, 나 더 이상 포켓몬빵 안 살거야” 평소 포켓몬빵에 목을 매던 초등학교 2학년 딸이 한 말이다. 모두 알다시피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SPC그룹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단지 어린 여성노동자 한 명이 사망해서가 아니라, 고인의 죽음조차 능멸한 회사, 단지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회사에 대해서 사회적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산업재해 분야에서는 ‘1대 29대 300법칙’이라고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중대사고가 1건 발생했다면, 같은 원인으로 29건의 작은 사고가 발생했고, 다행히 피해는 없지만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오-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동명’ 18호 1923.1)이 구절은 ‘방랑(放浪)의 마음’이라는 시의 서두인 동시에 이 시의 주인공 묘 앞에 세워져 있는 시비(詩碑)의 전문이다. 일제 치하라는 어둡고 치욕스러운 현실을 벗어난 이상향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았던 작자의 마음과 삶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이 시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 신시(新詩)의 선구자인 공초(空超) 오상순이다. 하루에 200개피의 줄담배를 피웠고 밥 먹고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한 손에 담배꽁초가 들려져 있었다고 한다. 심
20여년 전 여름, 영광 불갑사를 찾았다가 처음 상사화를 봤다. 잎도 없는 긴 대에 꽃만 피어 있는, 사찰 뜨락 곳곳에 피어난 짙은 분홍빛의 상사화는 애절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었다.상사화(想思花)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즉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꽃이라는 의미다. 예전에 한 처녀가 한 스님을 사모했다. 하지만 수행 중인 스님에게 그 고백을 하지 못하고 상사병에 걸려 눈을 감고 말았다. 그 처녀가 죽고 나서 스님의 방문 앞에 꽃이 피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꽃은 잎이 진 다음 꽃이 피었다고 한다.또 다른 전설은 스님이 세속의
“진심으로 소통하고, 신심으로 포교하고, 공심으로 불교중흥의 새 역사를 열겠다”고 천명하는 조계종 37대 총무원장의 일성이 울려퍼졌다. 지금까지 많은 불교의 글들이 필요 이상으로 이상적 세계를 기웃거리며 현실 상황과 이격되는 듯한 느낌이 많았다면 이번 취임사는 달랐다. 분명하게 우리 불교의 현재 상황과 문제를 직시하고 당당하게 우리 사회의 리더적 역할로 자리해 나갈 것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이 충만한 취임사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기분이 좋다. 더구나 소속감에 강한 긍지가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조
최근 서울에서 한 승객이 음료가 든 컵을 가지고 버스에 승차하다가 운전기사와 벌인 실랑이가 온라인 상에서 회자된 적이 있다. 해당 승객은 버스에 승차하려다가 테이크 아웃 컵에 든 음료 때문에 기사에게 제지를 받았다. 그러자 승객은 자신의 행동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기사의 제지를 “무식한 짓”이라고 반박했다. 그 승객은 “이걸 들고 타지 말라는 법적인 근거를 대라”며 오히려 기사에게 “노인네”가 무작정 그렇게 한다며 비난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또 다른 승객이 서울시에 관련 조례가 있다고 운전기사를 변호했다. 그러
9월13일부터 15일까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에서 제7회 세계전통종교인 대회가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조계종이 유일하게 공식 초청되었고 필자는 국제교류위원의 자격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세계전통 종교인대회는 2001년 뉴욕 9·11테러 이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의 제안으로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 세계평화를 증진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세계 각국의 2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3년마다 한 번씩 카자흐스탄에서 개최하는 대회이다. 이번에 열린 제7차 종교인대회에는 한국, 몽골, 베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