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콜럼버스 이후 정복과 저항의 아메리카 원주민 500년사’ 1492년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가 아니라, 죽음 직전의 콜럼버스를 원주민들이 구해준 해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콜럼버스·피사로·워싱턴 등등을 위인이라 배우고 ‘신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행사’로 들뜬 그곳의 분위기를 좇아 흥분하는 언론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당혹스럽기까지 한 말이지만,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史實)이다. 어쨌든 콜럼버스에서 시작된 신대륙의 정복과 약탈의 역사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꿈틀거리고 있다가 화산 용암처럼 솟아오르곤 한다. 실제로 1990년 총인구 2만5000명에 불과한 캐나다 모호크족이 봉기하자 연방정부는 “모호크족 ‘
▲‘철학, 섹슈얼리티에 말을 건네다’ 이 책은 “인간의 삶과 세계 전체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해온 철학이 유독 성(性)에 대해서만은 줄기차게 외면해왔다는 게 정말 신기할 정도”라고 여긴 저자가 “음습한 동굴에서 기어 나와 우리의 당당한 이웃이 되어버린 성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성찰’·‘비판적 성찰’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평소에는 성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거나 단순한 흥밋거리로만 치부하던 보통 사람들이 사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성도덕에 거의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모순 또한 성 관념과 보편적인 세계관 사이의 비밀스러운 상호 연관”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현
▲‘죽림칠현-빼어난 속물들’ 요즈음과 달리 전(前)근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지식인[선비]은 관리(官吏)가 되어 국정에 참여하여 배운 것을 세상에 펼치고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높여야 하였다. 하지만 중국 삼국시대 이른바 죽림칠현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혜강(康)이 말하였듯이, 관리가 되어 쌓인 “영화와 명성은 몸을 더럽히는 것이고/ 높은 지위는 재앙을 늘리며/ 부(富)는 좀을 쌓이게 하고/ 귀(貴)는 다른 사람의 원한을 쌓이게 한다.” 이렇게 말하며 부귀영화와 그 뒤를 따르는 재앙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권력자의 눈에 가시가 되어 혜강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그의 불행은 또한 선비들의 불행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
▲‘남한산성’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수어사를 맡고 후에 영의정을 지낸 분이 직계 조상이기 때문에, 내게 ‘남한산성’은 편안하게 돌아보는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고, 소설 ‘남한산성’은 특별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역사책에서 기대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소설에서 얻을 수 있다면 아마도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나 일반 백성들의 여론을 생생하게 느끼는 것인데,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뛰어나다. 그것을 살펴보자. “수라상에 졸인 닭다리 두 개가 오르던 다음 날부터 성 안에서 닭은 울지 않았다.” 남한산성 안에 웅크리고 있던 인조임금과 조정의 형편이 이랬다. 이런 상황에서 “흐느끼면서 죽을 사(死)를 말하던 당하관 두 명이 다음날 새벽에 얼음벽이 무너진 구멍으로
▲‘날씨가 바꾼 전쟁의 역사-자연은 어떻게 인간의 역사를 바꾸었나?’ 소설 ‘삼국지연의’를 읽어보지 않은 이들도 제갈공명의 동남풍(東南風) 이야기는 잘 알고 있다. 병력과 군수 양 쪽에서 모두 열세에 있던 촉(蜀)이 막강한 위(魏)나라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공명(孔明)의 동남풍’으로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기후 변화’ 예측 능력 또는 정보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폭우·폭설과 태풍 등 급작스런 날씨 변화로 전투, 나아가 전쟁 상황이 완전히 바뀐 경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숱하게 많았다. 서기 9년 9월11일 막강한 로마군단이 오합지졸 게르만족에게 무너지고. 그 뒤로 로마제국이 500년간 더 지속되었지만 게르만 지방을 다시는
▲‘김춘추, 외교의 승부사’ 김춘추는 어떤 인물이었나? 우리 국민 대부분은 그에 대해 ‘외세의 힘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치고, 결국 우리 역사의 공간을 한반도 안으로 좁힌 인물’ 또는 ‘기막힌 처세술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왕위에 올라 삼국통일을 성취한 위인’ 등으로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다. “할아버지 진지왕이 폐위되지 않았다면 서라벌의 군주가 되었을 김춘추는, 권력의 주변으로 밀려난 탓에 고구려와 왜를 오가는 외교의 전면에 나서야 했고 잇달아 구금되는 화를 겪었다.” 하지만 그는 서라벌의 정치판이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동아시아 외교 무대에서 “물러서고 나아갈 때를 파악하는 데에 동물적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구려와 왜, 장안[唐]을 오가는
▲‘문명의 붕괴- 과거의 위대했던 문명은 왜 몰락했는가?’ 옮긴이의 말까지 729쪽, 참고문헌까지 하면 771쪽, 이처럼 두꺼운 책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읽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예외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그리고 읽은 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내 기억에 남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세계 역사에 등장했다 사라진 여러 문명들의 붕괴 과정을 분석한 뒤 문명(사회)의 붕괴에 영향을 미치는 다섯 가지 요인들이 있는데, “그중 환경 파괴, 기후 변화, 적대적인 이웃, 그리고 우호적인 무역국은 한 사회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섯 번째 요인, 즉 환경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 이 책의 저자는 “현대 스포츠는 결코 순수하지 않으며 실상 그 시초에서부터 한 번도 순수해본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초기 현대 스포츠가 가장 거리를 두려 애썼던 영역이 돈”이었지만, “현대 스포츠와 돈의 관계는 갈수록 밀접”해지고 있으며 심지어 “텔레비전 중계에 적합하도록 경기 방식을 바꾸거나” 순전히 광고 기회를 주기 위해 감독들은 “방송사의 요구에 따라 작전 시간을 요청해야 한다.” 더 나아가 “현대 스포츠는 정치와 거리를 두려 애써왔지만” 스포츠를 이용하고자 하는 정치의 유혹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온 국민이 열광하던 1988년의 서울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 맞추어 내가 여행을
▲‘종교가 사악해질 때’ 저자 찰스 킴볼은 이슬람 연구로 비교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은 침례교 목사이지만, 이슬람 세계에서도 신뢰를 받아 지난 1980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사태 당시 이란 측에서도 인정하는 ‘중재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역사를 통틀어 많은 사람과 신앙 집단들이 종교 사상과 종교적 헌신에 힘입어 편협한 이기심을 초월해 더 고귀한 가치와 진리를 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세력보다 종교의 이름으로 치러진 전쟁이 더 많고, 종교의 이름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더 많으며, 요즘은 종교의 이름으로 더 많은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가 보는 솔직한 종교 현실이다. 그러면 고귀한 가르침이 되어야 할 종교가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조선의 정치가 9인이 본 세종’ 세종대왕은 다양한 인재를 발탁하여 적재적소에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고, 국방을 튼튼하게 하며 명나라 및 일본과의 외교도 순탄하게 운용한 위대한 정치가였다. 관노 출신의 장영실을 발탁하여 큰 임무를 완수하도록 한 데에서 확인되듯이, “인재가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은 나라 다스리는 사람의 수치이며 사람이 어질다면 천한 사람도 공경(公卿)이 될 수 있다”고 여겼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경기관찰사가 특별히 이삭이 많이 달린 보리를 바쳤을 때, ‘성군(聖君)의 도래를 감축한다’는 아부성 발언에 도취되지 않고 대신에 ‘그 종자를 다시 심어서 더 많은 이삭을 가져오라’고 지시”할 정도로 자기
▲‘기적의 사과’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사과의 거의 대부분은 농약을 토대로 개량된 품종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사과는 야생의 힘을 잃어버렸다. 농약의 도움 없이는 병충해와 싸울 수 없는 매우 나약한 식물이 되어 버렸다” (‘사과’ 대신에 ‘일체의 농작물’을 넣어도 되고, 심지어 ‘사람’을 예로 들어 ‘오늘날의 인간은 화학적으로 만들어낸 약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약한 동물이 되어 버렸다’고 해도 맞을 것이다.) 보통의 농민들처럼 농사 안내 책자에 나오는 일정에 따라 성실하게(?) 농약을 살포하고 화학비료를 주면서 사과 농사를 짓던 이 책의 주인공 기무라 아키노리는, 농약을 뿌린 뒤면 사랑하는 아내가 며칠씩 앓아눕는 것을 보고 고민에 빠진다. 그
▲‘문명과 야만-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 “물리적인 힘이 유일한 법률이고, 범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래서 오직 이해관계만이 모든 것의 유일한 동기이고, 조국에 대한 사랑조차 알지 못하는 이 야만적인 나라. (…) 그들은 지독한 거짓말쟁이들인데, 그다지 악의는 없다. 그런데 아무리 조심해도 조선인들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다. (…) 조선인들은 거의 개처럼 관계를 맺습니다. 그들은 혼인의 순결성을 알지 못합니다.” 19세기 조선 상황을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보낸 제5대 조선대교구장 다블뤼(1818년에 태어나 1845년 조선에 들어와 활동하다 1866년 처형당함)주교의 보고이다. 조선의 모든 것이 야만 상태라고 보았던 것인데, 이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