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버린 사람들』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 김영사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주변에서 참 많이도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가슴을 치며 “내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다”라고 넋두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죄업이 두터워서 평생을, 아니 제 자식과 손자들, 대대손손 그 멍에가 씌워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 바로 그들입니다. 그것도 1억6천 명이나…. 자그마치 인도 인구의 16퍼센트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더럽고 부정한 운명을 타고 났기에 그저 지금의 이 한 세상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그들은 자기 침이 땅을 더럽히지 않도록 침을 담는 오지그릇을 목에 걸고 다녀야 했고, 더러운 자기 발자국을 지우려고 빗자루를 엉덩이에
『사막의 꽃』와리스 디리, 캐틀린 밀러 지음 / 섬앤섬 사막에도 꽃이 핀다는군요. 일 년 내내 비가 오지 않는 곳. 하지만 메마른 그곳에서도 아주 이따금 비가 내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생명체가 살지 않던 그 대지에 붉은 빛을 띤 화사한 노란 꽃이 피어난다고 합니다. 그 꽃 이름은 와리스. 책을 펼치자 소말리아 유목민 출신의 슈퍼모델 와리스 디리는 다소 건조하지만 아름다운 사막의 삶을 들려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막 유목민들의 질기고도 강인한 생존과 귀소본능, 가축들의 목에서 울리는 딸랑거리는 방울소리와 둥근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 여행의 마지막을 사막으로 정해놓고 있는 내게는 귀가 번쩍 뜨이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살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길러야 하는 사막의 여자들이 이런 나
『가만히 좋아하는』김사인 지음 / 창작과 비평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 본다/…/미안하다/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니/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 뿐이다/…/어찌하랴/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룰 길 아득하다/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어떤가 몸이여(노숙, 김사인 〈가만히 좋아하는〉에서) 언젠가 남편이 말하였습니다. “이젠 늙나봐. 손이 늙어가잖아.” 그 뒤로 내 손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다른 여자들에 비해 집안일을 그리 하지 않아서 그나마 나는 아가씨손 그대로였는데 언제부터인지 보일 듯 말 듯 세월의 손금이 하나씩 그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틱낫한의 사랑법』틱낫한 지음 / 나무심는사람 틱낫한 스님의 45년 전 첫사랑 이야기’라는 광고 문구는 퍽 자극적이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과 진리의 메시지를 안겨주는 고승 틱낫한. 그런 분이 젊은 시절 비구니스님과 ‘애정행각’을 벌였다? 책을 열어보기도 전에 ‘행각’이라는 다소 불미스러운 꼬리말까지 제멋대로 붙일 정도로 내 호기심은 컸습니다. 이런 성급한 호기심 덕분에 이 책을 참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엉큼한 짐작들이 저자의 마음속을 읽어내지 못하게 방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랑의 마음을 어떻게 보듬고 키워나가야 할 것인가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나름대로 정리해 본 틱낫한 스님의 사랑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랑의 감정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한정주·엄윤숙 엮음 / 포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너무’ 존경합니다. 그러다보니 가족이 굶어도 책을 놓지 않은 선비를 은근히 높이는 일부 지식인의 행태는 결국 책을 현실과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 시대 율곡선생께서도 이렇게 지적하고 계시더군요. “요즘 사람들은 독서가 일상생활이나 활동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높고 멀어 실천하기 힘든 것으로 어렵게만 생각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공부와 독서를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자포자기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p.17) 하지만 성현의 말씀이 담긴 책이니 정성을 다하여 읽고 사색하라는 당부로 점철된 이 책을 읽자면 독서라는 것은 여전히 글 읽는 거 말고는
『오 하느님』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짧은 일정의 외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입국신고 차례를 기다리다가 손에 들린 여권을 펼쳐보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 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 21세기의 한국 사람은 누구라도 여권 하나만 지니면 떳떳하게 외국을 돌아다닐 수 있고 보호를 받습니다만 수십 년 전에는 왜 이러지 못했을까요? 주권을 빼앗긴 나라의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백성들. 군대 갔다 오면 면서기를 시켜주겠다고 회유해도 꿈쩍하지 않자 말을 듣지 않으면 만주로 강제 이주시킨다는 협박을 받고서 결국 조선의 부모들은 자식을 전쟁터로 ‘지원’케 하고 맙니다. “총알 피해 댕겨라.”-아버지 “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 지음 / 이후 얼마 전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건 늘상 벌어지는 일’이라 여기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32명의 사망자’라는 구체적인 숫자와 함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기사가 뜨자 사회는 후끈 달아올랐습니다.곧이어 미국의 NBC방송에서 세상을 향해 지독한 저주와 경고를 퍼붓는 범인의 사진과 동영상이 방송되었고 전 세계 사람들은 그런 영상매체를 통해 자신도 그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음을 감지하고 새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사람들의 화제는 가공할 살상의 현장에서 희생자들이 얼마나 끔찍한 두려움과 고통을 느꼈을까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서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폭력
『시핑뉴스』애니 프루 지음 / media2.0 지지리도 못난 사내 쿼일을 따라다닌 수식어는 “뚱땡이, 코찔찔이, 못난 돼지새끼, 흑멧돼지, 바보 멍청이, 악취폭탄, 방귀뚱보, 기름덩어리”였습니다. 그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일찌감치 실망을 안겨 주어 노골적으로 구박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대도시 뉴욕의 음습하고 구석진 곳. 고향을 등지고 몰려든 사람들의 삶이 더러운 콘크리트 바닥에 뿌리 내리지 못한 채 부평초처럼 떠도는 곳. 그곳의 비좁은 트레일러 안에서 막연히 ‘누가 알아? 내 앞날에 무슨 일이 닥칠지….’라며 혼자서 외쳐대던 쿼일. 재능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다른 똘똘한 사내들보다 비계만 더 많을 뿐인 쿼일. 애욕으로 똘똘 뭉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지만 그녀는 떠나버렸고 설상가상으로 자동
『아난존자의 일기』원나 시리 지음 / 운주사 세상은 한 사람에게 참 많은 기회를 줍니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기회, 명예와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기회, 추종자를 많이 거느릴 수 있는 기회…. 이런 기회는 내게도 무수하게 찾아왔습니다만 나는 거부하였습니다. 내 이름은 아난. 모든 명예와 부와 환락을 포기하고 내가 선택한 길은 수행자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석가모니 부처님의 시자가 되어 수행자 시절의 거의 전부를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내 사촌형님이신 부처님은 거목이었습니다. 그 뿌리가 튼실하여 대지에 굳게 박혀 있었고 우주가 공급하는 영양분을 맘껏 빨아들여 더할 수 없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쑥쑥 자라난 거목이었습니다. 그 거목에서 숱한 가지들이 뻗어 나왔고
『천상의 바이올린』진창현 지음 / 에이지21 가난한 조선의 청년 진창현. 그에게는 선생님이 되어서 사람들을 가르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국적을 지닌 사람이 아무리 우수한 성적으로 교사자격증을 딴다고 해도 일본 그 어디에서도 교단에 설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갑자기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그를 달래준 것은 아주 오래 전 일본인 선생님이 들려주었던 바이올린의 선율이었습니다. 그는 바이올린연주자가 되려고 개인교습을 받지만 코흘리개 시절 고향의 강가에서 들었던 그 추억만으로는 연주자가 될 수 없음을 절감하고 그는 연주를 포기하고 맙니다. 그 대신 바이올린이라는 악기 제작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당시 일본은 이미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나라였습니다. 그러
『큰스님 큰 가르침』윤청광 지음/문예출판사 너무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스님들…. 이 책을 보고 처음 품었던 생각입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는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들이 많이 눈에 뜨여 그저 덤덤한 느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설상가상으로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건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도 그 분의 인생이 어김없이 달라지리라는 걸 나는 믿는다.” 에이, 설마… 하면서도 제목이 제목인 만큼 어쩌면 내가 건져 올릴 심오한 사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책을 읽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편한 자세로 드러누워서 느긋하게 페이지를 넘기던 나는 어느 사이 책상 앞에 단정히 앉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그 남루한 가사장삼을 걸친 스
『붉은 땅의 기억』장안거 글, 그림 / 홍연미 옮김문학동네 평소 아버지로부터 꾸중과 매를 많이 맞으며 자라난 마오쩌둥은 손님들 앞에서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반항하고 집을 뛰쳐나갑니다. 아버지가 달려 나와 집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했으나 어린 마오는 연못가에 서서 아버지가 다가오면 뛰어들겠다고 저항하였고, 결국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냅니다. 이 사건 이후 굴복하는 것은 압제를 낳을 뿐이며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개적인 반란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이 책 p.50에서 발췌) 훗날 공산당의 최고지도자가 된 마오쩌둥. 그가 1960년대 중국에 문화대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묘한 잔치’를 벌려놓았습니다. 세계인구의 5분의 1인 중국 인민들은 수천 년의 압제 속에서 배를 곯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정수일 지음 / 창비2004년 12월14일 아침 8시52분에 책의 첫 페이지를 열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뒤 2005년 1월19일 새벽 1시35분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습니다. 이 책의 첫 번째 정독기간입니다. 매일 번역을 시작하기 전 책상 앞에서 조금 씩 읽어나갔는데 책을 펼칠 때마다 어디선가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절망하지 마. 조금만 자신을 돌아봐. 네 자신을 지켜.” 가만히 귀 기울이자니 철창에 갇힌 지식인의 탄식어린 술회였고 그 속에서 억지로나마 자신을 다잡고 일으켜 세우려는 두 날개가 꺾인 수인(囚人)의 처절한 독백이었습니다.하지만 이런 애잔한 감상으로만 만나기에 이 책은 그 메시지가 너무나 웅장하고 묵직하였습니다. 책의 첫 페이지부터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닥터 노먼 베쑨』테드 알렌, 시드니 고든 지음천희상 옮김/실천문학사 위인이니 입지전적 인물이니 영웅이라며 찬양받고 숭배 받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의지적으로 자신의 삶과 마지막을 선택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뜻하는 바가 분명하였고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그 길을 걸어갔으며 세속의 영화에 자신의 양심을 팔지 않고 그로 인한 그 어떤 대가도 달게 받은 사람들입니다. 1890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1939년 중국의 전쟁터에서 패혈증으로 죽어간 닥터 노먼 베쑨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독실한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호기심과 의욕이 넘쳐나는 청년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 결핵에 걸려 시한부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만 선천적으로 삶을 사랑하고
『꽃신』김용익/돋을새김 나는 책을 읽을 때 소리를 내어 읽기를 좋아합니다. 눈으로만 읽어 내려가면 도대체가 건건하니 맛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끌고 있는 불서읽기 모임도 이렇게 한 사람씩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조용한 저녁 시간, 방안에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남자의 혹은 여자의 은은한 책 읽는 소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력으로 나를 유혹합니다. 내게 이런 습관이 붙은 것은 오래 전 김용익씨의 『꽃신』을 읽었을 때가 그 시작입니다. 주인공 상도는 백정의 아들입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이웃에는 상도네에게서 소가죽을 받아다 꽃신을 만들어 생계를 잇는 꽃신쟁이집이 있었습니다. 소를 잡는, 천하기 그지없는 백정 신분이었지만 상도의 마음속에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세상의 모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로버트 뉴튼 펙 지음 / 사계절출판사 “우리 아버지 헤븐 펙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돼지 잡는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참 다정다감하셨습니다.” 저자는 책 앞 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13살 로버트에게 온갖 자잘한 인생살이의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울타리 치는 법. 사람들 앞에서 예의를 차리는 법. 사양하는 법. 겸손하나 지혜롭게 거래하는 법. 돼지우리를 만드는 법. 우유가 빨리 쉬어버리는 이치를 깨닫는 법. 쓸모가 없는 것은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떠나보내야 한다는 법. 그리고 늙은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 어머니와 이모를 지켜줘야 한다는 법…. 로버트에게는 암퇘지 ‘핑키’가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핑키가 새끼를 낳지 못하자 가난한 집안 살림에 더는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오강남 지음 / 현암사 결혼한 뒤 나는 참으로 엉뚱한 ‘문화충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시댁의 모든 식구들이 시어머님의 음식이 지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자랑하며 내게도 은근히 동의를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음식에 관한 한 일가견을 이룬 친정어머니의 손맛에 길들여 30년 가까이 살아온 내가 전혀 다른 음식을 맛보면서 하루아침에 ‘우리 시어머님 음식이 제일 맛있다’라며 동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처음 몇 해 동안 나는 심한 거부감에 시달렸습니다. 나물 데치는 법, 칼질 하는 법, 양념 순서, 접시에 담는 법…. 이 모든 것이 내가 보고 자랐던 것과 너무나 달랐기에 나는 시댁의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고역이었습니다. 시댁에서 음식을 만들고 밥을 먹고 난 뒤에는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키케로 지음·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고대 로마의 뛰어난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기원전 106~43년)가 혀를 차며 말합니다. 바로 “자기가 얼마나 많은 염소와 양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자기가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갖고 있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그렇다고 아무나 친구로 삼을 수야 있겠습니까? 키케로는 그의 길지 않은 ‘우정론’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가축 떼를 마련할 때는 조심하면서도 친구를 고를 때에는 왜 조심하지 않는가. 우정은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아, 갑자기 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내게는 참 좋은 친구가 한 사람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부처님입니다. ‘감히 부처님을 자기 친구라고 하다니
『쌀』수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나를 경멸하지 마십시오. 내 고향 펑향수에 홍수가 지지만 않았어도 내가 그토록 살기등등하고 잔인하고 술수가 판치는 도시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영원히 풍요로운 내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지냈을 것입니다. 먹을 것을 찾아 흘러간 도시는 내게 조금도 따뜻하게 품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기에 나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나의 약점을 알고 나를 거리의 개처럼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나는 마음도 정신도 자존심도 없는 무정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어떠합니까? 내가 한 줌도 갖지 못한 쌀을 바리바리 가진 저들이 벌이는 세상은 온통 서로를 속고 속이고 죽고 죽임을 당하는 아수라장일 뿐이었습니다. 저들은 자신
『섭섭하게, 그러나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능행 스님 지음 / 도솔 아무리 준비해도 항상 부족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죽음에 대한 준비입니다. 근사한 묘 자리를 마련하고 안동산 최고급 수의를 준비해도, 능력 있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깔끔하게 유언장을 작성해두어도 죽음 앞에 서면 우리는 놀라고 당황하게 마련입니다.천군만마의 호위를 받으며 살았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홀로입니다. 어지간히 세상을 제대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저 혼자 떠나야 할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에 나설 배짱은 별로 없어들 보입니다. 그렇게 겁 많은 우리를 위해 이승의 문지방까지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호스피스입니다. ‘누구나 죽지. 암, 영원히 살 수는 없어’라며 큰소리치면서도 정작 자기가 죽어 없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