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쌀쌀합니다. 매번 수능을 치르는 날에는 날이 추운 경우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이 혹여 시험을 치르다가 졸지는 않을까 싶어서 정신 바짝 차리라고 북쪽의 한파신이 내려오나 봅니다. 학생들이 손이 시려 답안지를 쓰는 데에 불편하지 않도록 너무 춥게는 하지 마시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마음은 이런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아이들을 추운 날씨에 시험 치르는 시험장에 보내었을 때 불안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랑하는 만큼 불안한 마음도 더 커지고 그 마음을 의지할 기도의 마음도
봉려관(1865~1938)스님은 근대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운 승려이다. 1907년 9월 ‘고통에 처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승려가 되고자 목포를 거쳐 해남 대흥사로 향한다.해가 설플 때, 볼품없는 모양새를 한 봉려관이 대흥사에 도착했고, 대중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스님이 되고자 왔다는 봉려관에게 2년의 행자기간을 거치지 않아 수계(授戒)할 수 없다는 답을 한다. 절일을 도우면서 며칠간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해달라는 봉려관의 요청을 대흥사가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산내
핼러윈은 서양에서 들어온 명절입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 살아있는 사람에게 들어갈 수도 있다는 날입니다. 불교의 우란분절이나 동지와 비슷한 의미를 지닙니다. 한국불교는 백중과 동지를 매우 중시여기며 법회를 꼭 합니다. 핼러윈은 낯설어서 그런지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 청년들에게는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중요한 축제의 날이 되었습니다. 백중과 동지의 기세는 점점 줄어들어 백중은 절에 다니는 사람 말고는 아는 이가 거의 없고 동지도 단오와 삼짓날처럼 사장되고 있습니다. 그 빈자리를 핼러윈이 차지해가는 현실입니다.이런
팬데믹, 경제 불황, 질병, 예기치 않은 사고, 불평등, 이별, 배신 등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이러한 힘겨움과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한 고비 넘겼구나 하는 순간 또 다른 장애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불자로서 우리는 삶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불교전통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를 사바세계라고 합니다. 사바란 범어를 음역한 말로 그 뜻을 풀이하면 감인토(堪忍土) 즉, 갖가지 고통을 참고 견뎌나가야 하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지옥 중생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반대로 천상의 중생들은 너무나 편해
얼마 전 20대 청년이 1년 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지난해 전화로 상담했던 친구여서 잘 지내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를 휴학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질문을 합니다. “스님! 마음이 괴로울 때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습니까?” 순간적으로 약간 당황했습니다. 매일 부처님 가르침을 보고 배운다지만 지금 한참 마음이 힘들다며 간절하게 묻는 청년에게 짧게라도 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으니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부처님께서 숲에 계실
네모 안이 4등분 된 한문 밭 전(田)자는 8이 두 개 붙어있는 모양이다. ‘쌀 1톨이 나오기까지 농부가 88번 논에 나간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우리가 보통 가볍게 여기는 쌀 1톨에 농부의 손길이 무려 88번이나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지금의 송광사(순천) 공양간은 현대화되었지만, 1980년대 초기에는 오랜 시공(時空)이 깃든 목조건물이었고, 공양간 외부에는 사용한 물이 흘러내려가는 또랑도 있었다. 구산 큰스님은 종종 대나무 꼬챙이를 들고 이 또랑 앞에 서 계셨는데, 밥알 한 톨이라도 흘러내려오면 대꼬챙이로 콕 찔러 바로
부처님 전에 올리는 꽃 공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뜻입니다. 꽃은 가장 깨끗하고, 맑고, 정미하며, 모든 것을 품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완성된 형태로 부처님 전에 올리게 됩니다. 꽃 공양은 꽃꽂이해서 장식하는 방식과 화분에 키워서 올리는 방식으로 나뉩니다. 장, 단점이 있기에 무엇이 더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꽃꽂이는 식물을 싹둑싹둑 자르니 나무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것만 같고 화분은 그 속에 벌레나 오물 등이 들어 있을 수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단점이라는 것도
지난 9월24일 서울 광화문. 행진을 하던 수만 명의 시민이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갑자기 도로 위에 드러눕는다. 어린아이부터 학생, 어르신까지 아무런 미동도 없이 마치 죽은 듯 누워있다. “더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는 기후 재난에 대한 항의이자 비폭력 시위다. 지금 세계는 기후 비상사태다. 역대급 폭염과 가뭄으로 주요 강이 마르고 열대우림이 도처에서 불타며 빙하는 3배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매일 전 세계에서 약 1억50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150여종의 동식물종이 전멸하고 있다. 매일 5만톤의 비옥한 토양이 사리지고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루면서 살아가야 할까요? 이에 대한 길을 부처님께서는 2500년 전 이미 인류가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고집멸도 사성제로 전해주셨습니다. ‘대념처경’에는 “지금 몸으로 마음으로 경험하는 것들에서 깨어 있으라”고 그 비법을 알려줍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경험하는 일상을 알아차리고 머물러 지켜보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인생은 커다란 늪을 건너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늪을 건너가야 하는 경우 먼저 늪을 잘 살피고 한 발 내딛기 전에 발걸음을 주의 깊게 알아차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실행하는 분들에게 ‘자비’는 매우 익숙한 단어다. 그러나 누군가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무엇입니까?’ 물어오면, 다수는 난감해한다. 뭐부터 말해야 할지 주춤거리다 그동안 절에 다니며 귀 기울여 듣던 것들을 정리하느라 사고하는 뇌는 바쁘게 움직인다. 자비를 좀 더 잘 설명하려다 보니 머뭇거리게 된 것이다.평상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으면서 배려했던 생각이나 행동들이 바로 자비실행인데, 시간 여유를 내서 또는 금전 여유가 있어야 베풀 수 있는 것으로 오인하는 바람에 설명도 실행도 머뭇머뭇하게 되는 것이다. 실은 자
통제가 심한 부모에게 자라면 스스로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그렇게 하지 마라” “이렇게 해야 해” “나중에 뭐가 되겠니?”라고 말하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늘 꾸중을 듣는 것 같습니다. 잘못한 것이 많으니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스스로 잘못을 느끼게끔 인도해 주면 좋겠지만 심지어 잘못하지 않은 것까지 지적을 받으니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혼란스럽습니다. 자기 확신이 낮아지면 쉽게 불안하고, 공포를 느끼며, 의심·시기·질투도 강해집니다. 강자에겐 비굴하고 약자에겐
만나면 늘 행복한 기운이 흐르는 분의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습니다. 차를 마시기 위해 앉은 탁자 중앙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행복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감사를 실천하라 했다.” 순간 ‘아!’하는 감탄이 올라왔습니다. 10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SNS 단톡방을 활용해 감사 정진을 이어간 적이 있습니다. 하루 2~3가지 감사를 찾아 간단한 글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대부분이 특별한 일상에 대해 글을 올렸습니다. 어딘가를 여행했다거나, 누군가를 만나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거나, 자랑거리가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