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가 “문화재청은 칠백의총 정비사업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사단법인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회장 원경 스님)가 3월17일 성명을 내고 “10년 동안 수억 원의 세금을 들이면서도 반쪽짜리 금산전투 서술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칠백의총 유적종합 정비사업을 당장 중단하라”고 지적했다. 사단법인 승병장영규대사기념사업회는 마곡사 주지 원경, 갑사 주지 탄공, 신원사 주지 중하, 동학사 주지 정엽, 관촉사 주지 혜광, 고산사 주지 규봉, 보석사 주지 장곡 스님 등 임진왜란 당시 가장 먼저 승병을 일으킨 의승장 영규
30여년전 청주로 내려와 남편과 행복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날 한가로이 집 근처를 산책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4층 높이의 포교당 앞에 서있었다. 그 만남이 불교신자로서의 첫걸음이다. 마야부인상이 있던 그 절은 봉명동에서 안쪽으로 10여분 걸어가면 나온다. 대웅전 한채와 함께 유치원을 운영했던 비구니스님의 포교당이었다. 단순히 불교를 알고 싶은 마음에 다니기 시작했다. 스님을 따라 성지순례를 다니기도 하며 불교 기본예절과 찬불가 등을 배웠다. 그러나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그저 겉으로만 신행생활을 했다.결혼 후 2년이 지났
문화재청(청장 최응천) 산하 칠백의총관리소(소장 류시영)의 유적종합 정비사업에 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보신문은 3월10일 국내 불교학계를 대표하는 ‘한국교수불자연합회’ ‘한국불교학회’ ‘불교학연구회’ 단체장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칠백의총관리소가 임진왜란 당시 금산·청주 전투에서 전사한 의승(義僧) 역사를 누락하고 조헌 선생의 의병만 선양하는 것에 대해 “시대를 역행하는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먼저 이상훈 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대전대 경찰학과 교수)은 2015년부터 9년간 칠백의총 유적종합 정비
명상집단 일상다감사가 3월부터 경남 통영에서 본격적인 오프라인 명상클래스를 진행한다.일상다감사(지도법사 한산·무여 스님)는 3월 한 달 동안 통영리스타트플랫폼 4층에서 ‘통영 명상 클래스’를 개설한다. 3월4일부터 매주 토요일과 월요일 각각 오전 10시, 오후 3시에 진행될 통영 명상 클래스는 1시간 동안 명상과 차담으로 진행된다. 호흡 명상, 걷기 명상, 자애 명상, 사진 명상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참가비는 무료다. 단, 참가를 희망하는 신청자는 예약이 필수다. 신청 시 별도의 인원 제한은 없다. 3월4일 시작된 통영명상클래스에
조계종 제17교구본사 김제 금산사(주지 일원 스님)가 천일기도 입재식으로 세계평화와 기후위기 해소를 발원했다.금산사는 3월6일 경내 미륵전과 금산사 5층석탑 등에서 ‘열반재일 특별법회’와 ‘세계평화와 기후위기 해소를 위한 미륵성지 천일기도 입재식’을 봉행했다.법회에는 금산사 조실 도영 스님을 비롯해 주지 일원 스님, 재무국장 제환 스님, 금선암 주지 덕산 스님, 죽림정사 주지 창엄 스님 등 스님들과 금산사신도회 하유호 부회장 등 사부대중 100여명이 동참했다.금산사 조실 도영 스님은 법문을 통해 “세계는 지금 전쟁과 지진, 환경파괴
전북지역 사찰들이 부처님 출가·열반재일을 맞아 2월27일부터 3월6일까지 8일간 각자의 방법으로 수행정진을 이어가며 출가·열반의 의미를 되새겼다.조계종 제17교구본사 금산사 포교당 전북불교회관·보현사(주지 우림 스님)는 출가·열반재일을 ‘부처님의 출가에서 열반까지 특별정진 주간’으로 정하고 발심과 수행을 선도하는 자비도량참법 수행을 시작했다. 전북불교회관은 4층 큰법당에서 7일간 진행된 자비도량참법 수행에 이어 3월6일에는 금산사 대적광전과 5층석탑 등에서 금산사 조실 도영 스님의 법문과 함께 천일기도 입재식과 탑돌이를 진행했다.전
사찰에서 기도는 일상적이다. ‘초하루기도’ ‘삼칠일기도’ ‘백일기도’ ‘천일기도’ ‘철야기도’ ‘관음기도’ ‘지장기도’ ‘다라니기도’ ‘방생기도’ 등 숱한 기도들이 있다. 그럼에도 기도는 종종 부정되거나 평가절하된다. 일부 스님과 불교학자들조차 “불교는 자력종교이고 수행의 종교이므로 빌고 바라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라거나 “기도는 하근기 중생을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 낮잡아 말한다. 이러다 보니 불교 안에서 기도의 위상은 대단히 낮다. 그러면 기도는 불교가 아닌 걸까. 물론 그렇게 볼 수는 없다.“기도는 실천이지 이론이 아니다.
광덕 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해 불광의 본 모습을 찾겠다는 원력으로 시작된 서울 불광사·불광법회 보현행자 바라밀 천일기도가 3월2일 회향했다.서울 불광사·불광법회(주지 배정 스님)은 3월2일 경내 대웅전에서 보현행자 바라밀 천일기도 회향법회를 봉행했다. 보현행자 바라밀 천일기도는 기도를 통해 혼란에 휩싸인 사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2020년 6월6일 입재에 들어갔으며, 100일 단위로 1차부터 10차까지 나눠 입재와 회향을 반복해 이날 회향을 맞았다.법회는 상단불공에 이어 천일기도 입재부터 회향까지 동참대중들과 함께 기도해온 한주 혜
오늘은 조계총림 송광사 부산분원 관음사의 ‘지계염불만일결사’ 기도 중 3000일 회향의 날입니다. 3000일 동안 계율을 지키며 염불하시고 정진해 주신 관음사 사부대중께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관음사 신도님들은 행복한 분들입니다. 관음사 회주 지현 스님께서는 조계총림 송광사 율주 소임을 맡고 계십니다. 율주는 ‘율’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을 대신해서 계율을 지키며 모든 스님에게 모범이 되시고, 계율을 강의하며 부처님의 율법대로 사는 수행자의 길을 가르치시는 분입니다.지계(持戒), ‘계율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다시 말해 부
연산군 재위 초 한양 4대문 안의 사찰로 흥천사, 흥덕사, 원각사 등이 존재했었다고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다. 정확히 하자면 여기에 비구니 도량인 정업원과 궁궐 내 왕실 전용 사찰인 내불당이 포함된다. 진관사, 장의사, 대자암, 지천사 등 왕실의례 또는 국가행정과 깊은 관련을 맺으며 국초부터 ‘실록’에 빈번히 언급되는 다른 사찰들은 사실 한양 도성 바깥에 위치한 절들이었다.(‘태종실록’ 35권, 18년 4월 4일 ; ‘세종실록’ 61권, 15년 7월 21일 ; ‘세종실록’ 148권, ‘지리지’ ‘경도 한성부’ ; 같은 책 ‘경기 양주
문화재청 산하 칠백의총관리소가 ‘칠백의총에 임진왜란 금산·청주 전투에서 전사한 의승(義僧) 역사를 누락했다’는 지적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칠백의총’ 명칭 개정에 관해선 궁색한 이유를 내세워 불교계 의승 복권 요구를 거부했다. 또 조선 후기까지 별도로 존재했던 의승군 제향 공간 터를 인정하면서도 그 터의 위치가 분명치 않다는 핑계를 내세워 “복원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이같은 칠백의총관리소 입장에 관련 학자들은 학문적인 타당성이 결여된 궁색한 변명이라고 반박하고 있다.법보신문은 2월15일 문화재청에 ‘칠백의총 유적 종합정비 사업
문화재청이 칠백의총 주변 정비사업을 오는 8월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교계가 요구해 온 ‘천오백총’ 또는 ‘의승·의병의 총’으로의 명칭 변경은 “고증 자료가 필요하다”라는 이유를 내세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의승군이 청주성 수복을 비롯해 행주대첩, 평양성 탈환, 노원평 전투 등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영규대사와 의승이 제1차 금산(눈벌)·청주성전투·제2차 금산(연곤평)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운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국조보감’ ‘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행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나에게 있어서 수행도 마찬가지다. 탐진치로 얼룩진 번뇌를 내려놓고 사랑하는 법을 익히는 여정이다.오랜 시간 동안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정히 봐주기보다는 부정적이라 여기며 모른 척 회피하거나 눌러 없애기 바빴던 것 같다. 기쁨과 행복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듯 분노와 우울도 느닷없이 찾아온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불쑥 찾아오는 생각과 감정을 내 것이라 붙잡는 힘이 점점 빠지게 되었고, 지금 여기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생각과
1494년 12월 성종이 훙(薨)하였다.(‘성종실록’ 297권, 25년 12월24일.) 재위를 계승한 연산군이 국정에 임한 첫날, 예조판서 성현(成俔)이 아뢰었다. “선대 조정의 사례에 의하면 국상(國喪)이 있을 경우 칠칠일(七七日)과 소대상(小大祥)에는 모두 절에서 재(齋)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문(禮文)에 실리지 않았으며, 대행대왕께서도 불교를 믿지 않으셨는데 이번에는 어찌 하오리까?” 왕이 대비에게 물으니 대비가 말하였다. “대행대왕께서 불교를 좋아하지는 않으셨으나 재를 지내지 말라는 유교(遺敎)가 없었으며, 또 역대
금산 칠백의총에 조선후기까지 의승(義僧)을 위한 제향공간이 별도로 있었음에도 정부가 이를 복원하지 않고 외면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문화재청은 “종용사 오른편에 별실(別室)로 승장사(僧將祠)가 존재했다”는 박범 공주대 사학과 교수의 논문을, 자체 발간한 보고서에 수록하면서도 정작 칠백의총 종합정비사업에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가톨릭이라는 이유만으로 왜적 종군 신부 세스페데스가 머물렀던 창원에 기념 공원을 조성한 것과는 대조적이다.문화재청이 2021년 9월23일 발간한 ‘칠백의사 그 충절의 기록들’에 따르면 조헌·고경명 등 21
임담 의현 대종사가 대구 팔공산 팔공총림 동화사 제2대 방장후보에 만장일치로 추천됐다.팔공총림 대구 동화사(주지 능종 스님)는 2월7일 경내 통일기원대전에서 ‘팔공총림 방장 후보자 선출’을 위한 산중총회를 열어 6월 임기만료 되는 방장 진제 대종사(조계종 전 종정)의 후임에 임담 의현 대종사를 추천했다. 총림법에 따라 총림 방장은 산중총회에서 추천해 중앙종회에서 추대한다. 동화사는 이날 산중총회 결과에 따라 의현 대종사를 후임 팔공총림 방장으로 중앙종회에 추천할 계획이다. 의현 대종사는 3월 임시중앙종회에서 추대안이 가결되면 팔공총
임진왜란 금산전투에서 영규대사가 이끄는 800의승과 조헌이 이끄는 700의병이 왜군과 싸우다 함께 순절했지만 이들의 호국정신을 선양하는 사적·기념관은 조헌의 700의병에 한정한 ‘칠백의총’으로 불리고 있다. 이에 ‘800의승 공적은 송두리째 외면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문화재청은 2015년부터 9년 간 칠백의총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도 800의승 순국사실은 여전히 배제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문화재청은 임란 당시 의승장 기허영규(騎虛靈圭·?∼1592)대사와 의병장 조헌(趙憲·1544~1592)이 이끈 전투에서 순절한
‘이 일기 모음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 것 같다. 만일 출판이 될 수 없다면 나는 친구들이 서로 돌려보기를 바란다. 나는 내일 베트남을 떠나지만, 벌써 고국이 그립다.’1966년 5월11일, 이상하리 만치 환한 사이공의 밤하늘 아래서 마흔 살의 틱낫한 스님은 마지막 일기를 썼다. 반드시 고국으로 돌아올 것이라 결심했지만, 베트남 정부는끝내 그의 귀국을 금지시켰다. 고국을 떠나 전 세계를 떠돌아 다닌지 40여년 만인 2007년에야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으로 영구 귀국할 수 있었다.이 책은 삼십 대의 틱낫한 스님이 남긴 기록이다. 196
‘엇, 이건 분명히 이동인 스님 사진인데….’한상길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최근 고양 원각사에서 고문헌과 사진을 조사하다 깜짝 놀랐다. 개화파 이동인(1849?~1881) 스님으로 알고 있던 사진에 못보던 짧은 문구가 있었기 때문. 하단에는 ‘朝鮮風俗(조선풍속) 僧侶(승려) No.142 A PRIEST OF COREAN’이라는 글자가 뚜렷이 보였다. 한 교수는 의구심이 생겼다.한상길 교수가 최근 ‘대각사상’ 제38집에서 ‘한국 최초의 스님 사진에 관한 고찰-이동인과 화계사 스님 사진’을 발표했다. 이동인 스님으로 알려진 사진의 실
“법보시는 공부와 보시 두 가지를 모두 실천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수행입니다.”예술의 도시로 불리는 경남 통영에서 명상과 행복의 가치를 전파해 온 일상다감사 지도법사 한산 스님이 법보신문 법보시캠페인에 동참했다.한산 스님은 “SNS로 소통하고 인터넷으로 교류하며 책으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전법의 가치를 대중에게 가장 정확하게 알리고 전달할 창구는 신문”이라며 “지금 이 시대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불교 이야기를 매주 한 부의 신문에 집약해서 신속하고 알차게 전하는 법보신문을 내가 먼저 구독하고 인연이 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