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수행 그리고 기록문화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금사경(金寫經) 특별전이 열린다. 허락 고려사경문화원장은 10월23일부터 11월4일까지 서울 종로 한국문화정품관에서 세 번째 개인전 ‘현담 허락 금사경’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금사경 분야 전통을 계승하고 창조해온 허 작가의 30년 세월이 담긴 사경문화의 가치를 느껴 볼 수 있는 자리다.사경(寫經)은 불교 경전을 손으로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인쇄술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경전은 필사에 의한 사경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 사경이 전해진 것은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372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원력보살’이라는 별칭이 따르는 정우 스님은 195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김제 망해사에 얽힌 부설거사의 창건 이야기 한 토막을 듣고 크게 발심한 뒤 1967년 중학교를 다니던 중 산문의 길에 들어섰다. 인천 용화사와 서울 대방동 장안사에서 행자생활을 했고, 그곳에서 만난 노스님의 소개로 양산 통도사에서 정식 출가했다. 1968년 홍법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정우 스님은 같은 해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1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1974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197
정우 스님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천막법당과 도심포교당이다. 논밭이 더 많았던 서울 양재동 척박한 땅에 천막법당으로 시작하여 오늘의 구룡사를 일으켰다. 이 시대에 불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포교뿐이라는 생각으로 구룡사 외에도 여래사, 장안사, 보명사, 서래사 등 국내에 많은 포교당을 개척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였다.일찍부터 어린이 포교의 중요성을 절감하여 포교당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개설하여 어린이 포교에 앞장섰으며, 당시에는 선구적으로 극단 신시를 창단하여 여러 뮤지컬 작품을 통하여 문화포교의 지평을 열기도 하였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자 지정학적으로는 정치, 군사, 교통의 요충지여서 고대로부터 대중국 교류의 중심지였다. 또한 잘 알려져 있듯이 고려~조선시대에는 임시 수도로서 역할을 하였고 수도방어의 전초기지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역사지리적 환경 때문에 강화도에는 많은 문화유적이 분포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조사된 것만 500여 곳이 넘는다.강화도에는 면적에 비해 많은 사찰이 들어서 있다. 강화도의 불교유적은 삼국시대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활발하게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왕실이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옮겨온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 가장 발전된 차 문화를 향유했던 12세기 차 문화를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고려 차 문화의 정수인 단차 제다법 및 탕법에 대한 문헌자료 조사를 통해 복원한 고려시대 단차도 선보일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는 7월17일 오후 2~6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특별강연 및 복원과정 영상을 공개한다. 또 전문 시연자들이 고려시대 탕법 과정을 재현하고, 객석 참여로 단차 시음도 진행한다.특별강연을 맡은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은 고려시대 단차의 특징과 복원과정을 상
12세기 후반에 일어난 무신란은 고려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그 여파는 당시 사상사의 주류었던 불교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무신란 이후 불교계는 지눌 스님이 개창한 수선사(修禪社)와 요세(了世)스님에 의한 백련사(白蓮社) 결사가 이 시기를 대표한다고 할 정도로 영향력은 지대했다. 결사란 일종의 종교운동으로 당시 수도였던 개경을 중심으로 한 왕실 위주의 불교와는 전혀 다른 지방불교 성향을 가지면서 신앙내용도 정토관 및 참법을 표방하여 종교계와 사회 내부의 모순에 대한 반성과 자각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고려시대 불교사에서 수선사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그의 인문지리서 ‘택리지 (擇里志)’에 “충청도에서 내포(內浦)가 가장 좋다”라고 썼으며,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리쯤 되는 곳에 가야산이 있고, 가야산 앞뒤의 열 개 고을을 내포라고 하는데, 이곳은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며, 또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해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 집이 많다. 서울에서 세력 있는 집안치고 여기에 농토와 집을 두고 근거로 삼지 않는 사람이 없다”라고도 했다.중국 문물 백제로 유입됐던중요 경로 내포지역에 위치의상 스님 전교 화엄십찰로백개 암자·천명의 스님 수
대신들은 한밤중 은밀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타밀족의 침략으로 수도를 빼앗기고 국왕 왓타가마니 아브하야는 이미 담불라 바위산의 석굴로 몸을 숨겼다.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같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대신들은 적장을 찾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국가의 운명을 걸고 담판을 지으려함인가. 아니다. 투항하기 위해서였다. 날이 저물고 어두운 밤길에 발이 묶인 대신들은 인근 사찰에 하룻밤 잠자리를 의탁했다. 한밤중에 찾아온 대신들의 행보가 미심쩍었던 스님이 연유를 물었다. 학승으로 이름 높은 마하팃사 스님의 물음에 대신들은 자초지종을
“제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며 우리 사암연합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세계일화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 불교문화 교류에도 힘을 기울이겠습니다.”최근 제16대 포천시 불교사암연합회장에 취임한 정화 스님은 “사암연합회 소속 스님들이 각자 불교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계율을 지키고 자비를 실천한다면 불교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호국불교와 자비의 정신을 지역사회 속에서 꽃 피우겠다”고 강조했다.고려사 주지를 맡고 있는 정화 스님은 1986년 장성 백양사로 출가해 태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92년 서옹 스님을
사천시는 한반도의 남단이자 경상남도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이다. 동쪽으로 고성군, 서쪽으로 하동군, 북쪽으로 진주시와 이웃해있다. 해상으로는 여수시부터 거제시까지 이르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내륙과 해양문화가 서로 결합해 지역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지리적 조건 때문인지 사천의 첫 지명은 사방에 물이 풍부하다는 뜻의 ‘사물’이었다. 이후 신라시대에는 ‘사수(泗水)’로 고려시대에는 ‘사주(泗州)’로 불렸고 이후 조선시대에 와서 ‘사천’으로 불리게 되었다.제대로 된 안내판 하나 없어찾아가는 것조차 쉽지
올해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이 되는 해다. 각계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으며,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향후 더욱 의미 있는 행사가 개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500여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고려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불교를 국교처럼 숭배하던 왕조였다. 고려의 왕과 귀족들은 앞 다투어 원찰을 건립하였으며, 왕과 나라의 스승이라는 왕사 국사제도도 줄곧 시행되었다. 왕사와 국사를 모시는 책봉의식에서 스님은 왕의 자리에 앉아 왕에게 무려 아홉 번이나 절을 받을 정도였다. 고려불교와 승
황매산은 경상남도 서북지역의 척추로서 해인사의 가야산과 화엄사의 지리산을 연결하고 있다. 원형으로 피어 난 산봉우리들의 모양새가 매화 꽃잎과 흡사해 황매산(黃梅山)이라 했다. 황(黃)은 부(富)를 뜻하고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니 ‘부귀의 산’ 즉 ‘풍요의 산’이기도 하다. 푸른 하늘 머금은 합천호에 하봉, 중봉, 상봉의 산 그림자가 들어앉으면 ‘세 송이 매화꽃이 물에 잠긴 듯하다’ 해서 수중매(水中梅)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황매산 정상(1108m) 아래 900m 지점에 수십 만 평의 평전이 펼쳐져 있는데 4월 철쭉과 10월
불교문화재연구소 12월5일 공개국가서 관리했던 승단 공식인장문헌에 나오지만 실물로는 처음승단과 국가관계 밝힐 중요 사료항아리 묻힌 장독보관시설도 발견 삼척 흥전리사지에서 통일신라 때 승단에서 사용하던 공식 인장인 승관인(僧官印)이 처음 확인됐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승관인이 발견됨에 따라 한국 인장사 연구는 물론 통일신라 승단 조직과 국가와의 관계를 밝히는데 중요한 사료로 될 것으로 기대된다.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제장 스님)는 삼척시청(시장 김양호)과 공동으로 ‘삼척 흥전리사지’ 발굴조사지역에서 통일신라시대 승단 조직에서 사용한 청동
12월1일 숙환으로 별세한국불교학회장 등 역임불교학연구에 큰 이정표 원로 불교학자인 이재창 동국대 명예교수가 12월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호실이며, 발인은 12월3일이다.고인은 동국대 교수를 비롯해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장, 한국불교학회장, 천태불교문화연구원 초대원장, 동국대 이사 등을 역임했다. 또 불교사 및 불교경제 등 분야에 많은 연구 성과를 남겼다. 1957년 동국대 석사학위 논문인 ‘고려대장경을 중심으로 한 이조초기 대일관계’로 본격적인 학문 활동을 시작한 고인은 ‘사원노비고(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 연등회가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신청 종목으로 선정됐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11월7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이 같이 결정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연등회는 2018년 3월31일까지 유네스코 사무국에 신청서를 제출한 뒤 심사를 거쳐 2020년 유네스코 정부간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현재 유네스코에 등록된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은 총 19건이다.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 판소리(2003), 강릉단오제(2005), 남사당놀이, 강강술래
며칠 전 해인사 원당암 보광전의 주불인 목조아미타불좌상 복장(腹藏)에서 15세기 후령통과 고려시대 귀중한 전적들이 다량으로 발견돼 관심을 모았다. 지난 8월 개금불사를 위해 복장을 확인하던 중 고려시대 경전들이 납입됐음을 확인한 것이다.그러나 복장 유물 확인 과정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본존불인 목조아미타불좌상보다 협시불인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목조아미타불좌상은 1983년에도 개금불사를 위해 복장 일부가 개봉됐었으나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 복장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개봉된 적이 없었기 때문
조계종 문화부, 보광전 주불 정밀조사고려시대 경전, 15세기 후령통 등 발견보광전 협시불 엑스레이 결과도 공개 합천 해인사 원당암 아미타불좌상에서 15세기 후령통과 고려시대 경전 30여점이 한꺼번에 발견됐다.조계종 문화부(부장 정현 스님)는 해인사 원당암 보광전의 주불인 목조아미타삼존불상 정밀조사 결과 삼존불상의 본존인 아미타불좌상 내부에서 고려시대 경전들과 1694년 중수발원문 등을 확인했다고 10월16일 밝혔다. 또 보광전 협시불인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을 엑스레이로 촬영한 결과 이들 불상 내부에도 아미타불상에서 출토된 고려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은 헛말이 아니다. 바위에 스민 물도 제 스스로 얼고 녹음을 반복하며 집채만 한 바위라도 끝내 쪼개지 않는가. 그렇게 부수어진 돌조각들이 산비탈을 따라 흘러내려 퇴적된 특정지역을 너덜지대라고 한다. ‘너덜’은 돌들이 깔려 있는 산비탈을 이르는 순 우리말 ‘너덜겅’을 줄인 말이다. ‘지대’라는 단어가 굳이 필요 없음에도 지질학 관점에서 확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된 듯하다.500년 배롱나무 꽃향기초가을 천년고찰에 가득벼랑 끝 문수전서 조망한백화산·석천계곡 풍광 ‘절경’성주산문 세
인간불교 제창과 안심정토 건설을 위해 정진해온 논산 안심정사(회주 법안 스님)가 경북지역 불자들을 위한 기도·정진처를 개원했다.안심정사는 8월31일 ‘안심정사 대구도량 부처님 점안 및 개원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회주 법안 스님을 비롯해 영천 은해사 한주 법산, 태고종 총무원 재경부장 진성, 규정부장 도법, 대전교구종무원 부원장 남산 스님 등 사부대중 500여명이 동참해 안심정사 대구도량의 개산을 축하하고 발전을 축원했다.대구도량은 서울과 부산에 이은 안심정사의 세 번째 분원이다.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위치한 이곳은 대구지
여래종(총무원장 명안)은 7월11일 금강 대약사사에서 ‘보경당 만덕 대승정 49재’를 봉행한다.부종정 법수 스님의 증명으로 봉행되는 만덕 스님 49재는 오전 9시 공양탑 재막에 이어 11시부터 49재가 엄수된다.지난 5월23일 일본 청운사에서 입적한 만덕 스님은 1966년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서 출가했다. 1977년 일본으로 건너가 조동종 법성사에서 참선수행하던 중 여래종 전 종정 인왕 스님에게 비구계를 받고 일본 청운사를 창건해 교민들을 대상으로 전법에 매진했다. 2002년부터는 오사카 고려사 주지소임을 겸직했으며, 2016년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