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마조의 제자 가운데 선의 일상화를 잘 표현한 대표적인 시가 있다. 내 일상생활에 특이한 일이 따로 없으며/ 내 스스로 차별 없이 즐긴다./ 선택해서 버리고 취할 것이 별도로 없으며/ 너무 법석 떨 것도 치워 버릴 것도 없다./ 누가 주사(朱紫)라고 말하는가?/ 산과 언덕엔 티끌 하나 없는데/ 신통과 묘용은 물을 나르고 섶을 나른다.위의 시는 마조의 제자인 방 거사(?∼808)의 선시이다. 참 진리인 진여 혹은 실상·여여함이라는 것조차 마음에 두지 않는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앞의 시 내용 중 ‘주사(朱紫)’는 붉은색의 관복으로 나라
① 탐욕을 버리면 그 자리가 기쁨 꽃이 고운 봄날, 꽃나무 밑에서 입문한 지 오래지 않은 비구 네 사람이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세상만사에서 가장 큰 기쁨이 뭐냐?”하고.한 사람 비구가 하는 말.“오늘처럼 좋은 봄날, 경치 좋은 곳을 돌며들 구경, 산 구경 다니는 게 큰 기쁨이지.”또 한 사람 비구가 하는 말.“집안의 경사에 푸짐한 음식과 춤·노래로친척이 모여 즐기는 일이 큰 기쁨이지.” 또 한 사람 비구는“재산을 많이 모아, 여러 수레에 싣고,만인에게 자랑하는 기쁨이 제일일걸”또 한 사람 비구가“예쁜 아내를 옷과 화장으로 더 예쁘
초당사에는 중국불교사에 있어 중요한 또 다른 고승의 행적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대웅전 앞 양측에는 각각 비석을 안치하여 초당사에서 활약했던 두 스님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그중 우측의 비는 청대 용정12년(1734)에 황제가 사찰명을 ‘성은사(聖恩寺)’로 개명하고 구마라집의 제자인 승조(僧肇, 384~414)의 행적을 기리며 세운 것이다. 좌측의 비는 규봉 종밀(圭峰 宗密, 780~841) 선사가 입적한 지 15년 후에 당대(唐代)의 명재상이자 명문가였던 배휴(裴休)가 명문을 쓴 ‘규봉정혜선사비[唐故圭峰定慧禪師碑]’이다. 종밀은
일본 학자 마찌하다료오슈(道端良秀)가 “조식의 범패는 오(吳)의 지겸(支謙)과 강승회(?~280)에 의해 계승되었다”고 할 정도로 오나라에서 활동한 역경승들에게 경전은 그 자체가 범패였다. 지겸은 황태자의 스승이 되어 국정에도 참여하는 가운데 ‘대아미타경’ ‘유마경’ ‘무량수경’ 등을 번역하였다. 축율염(竺律炎)은 유기난(維祇難)과 함께 ‘법구경’ ‘아차말보살경’을 번역하였고, 유기난이 세상을 떠난 후인 230년에는 축율염이 단독으로 ‘삼마갈경’ ‘범지경’을 번역하였으며, 지겸과 함께 ‘마등가경’ ‘불의경’ 등을 번역하였고, 지강량
수보리 어의운하 여항하중소유사 불설시사부 여시 세존 여래설시사(須菩提 於意云何 如恒河中所有沙 佛說是沙不 如是 世尊 如來說是沙) 수보리 어의운하 여일항하중소유사 유여시사등항하 시제항하소유사수 불세계여시 영위다부(須菩提 於意云何 如一恒河中所有沙 有如是沙等恒河 是諸恒河所有沙數 佛世界如是 寧爲多不) 심다 세존(甚多 世尊)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항하에 있는 모래를 부처님이 모래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모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항하 강의 모래알 수가 많은 것과 같
“꿈은 꿈일 뿐이다. 꿈 속에서 살면서 또 무슨 꿈얘기를 하는가?”20여년 전 열반한 서암 스님이 생전에 나의 질문을 듣고 일러주신 가르침이다.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과 인연에 관한 암시는 글 몇 자 적는 것으로는 표현이 어렵다. 물론 무늬만 불자인 일반 대중의 행태를 나도 줄곧 반복해 왔다. 절에 가면 가끔 108배를 하거나, 부처님오신날에 절에 찾아가고, 경치 좋은 도량을 알아보는 것 등이었다. 세속에 사는 우리네들은 사방팔방이 감각적 욕망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문명이 발달한 요즘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감각적 욕망의
십년 전 다녀온 인도로 이번에는 불자님들과 성지순례를 다녀오게 되었다. 열흘 동안 마법의 성과도 같았던 따뜻한 나라 인도에서 함께 간 불자님들과 현지인의 포용력에 큰 감동을 경험한 여정이었다. 이번 순례를 통해 불자님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그분의 생각을 읽고자 했다. 성지에서 주고받은 말에는 그분의 믿음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순례의 순간순간이 연꽃처럼 피어난다.“스님! 여기는 다른 세상 같아요. 저승 같다는 느낌이 들 만큼 다른 세상이요.” 바라나시에서 마주한 안개 자욱한 새벽, 배를 타고 가는데 어느 순간 앞과 뒤를 전혀 가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최종 해답을 도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물음은 쉬이 ‘무엇이 종교인가?’라는 물음으로 전환되곤 한다. 이런 식으로 물음 전환이 이루어지고 사회적 해답이 제시되면 우리가 아는 ‘근대 종교’가 탄생한다.1906년 2월 통감부가 설치된 후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1906년 11월 17일에 ‘종교의 선포에 관한 규칙’을 공포하고 12월 1일부터 시행하여 신도, 불교, 기타 종교 등 일본종교의 한국 포교에 관한 규정을 만든다. 한일병합 후 조선총독부는 이 규칙을 한국의 종교로 확대하여
지난 2018년부터는 종교인도 과세대상이 되었다. 당시 이에 대해 찬반양론이 만만찮게 거론됐었다. 과거에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다른 종교는 모르겠으나 불교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스님은 무소유였기 때문에 낼 세금이 없다는 논리였을 것이다. 실제로 초기교단에서는 승려들의 가사와 발우가 유일한 소유물이었다. 비록 현대사회에서는 스님들이 아무리 무소유라 해도 이렇게 살 수는 없기에 사유재산을 어느 정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종교인으로서 세속과 단절되어 최소한만을 가지고 산다는 것에 대한 상징성
김해 연지공원 인근 보현산(377.2m) 자락에 자리한 통도사 김해포교당 바라밀선원. 미혹에 빠진 차안의 사람들을 깨달음의 피안으로 인도하려 수담인해(秀潭仁海) 스님이 세운 선원이다. ‘창건 10년’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서도 김해포교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통도사 마산포교당 정법사와 인연이 닿아 청소년 시절 때부터 불교학생회 활동을 활발히 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는 아예 절에서 살았더랬다. 남해고속도로 진영 휴게소에서 주유 아르바이트를 하던 1993년 12월 31일. 새벽 12시가 지나면 주유 값이 오른다는 사
“순전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절 수행이었지만 불교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부처님의 수승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죠.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하면서 20년간 수도 없이 많은 부처님 가피를 받았어요. 부처님 가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만큼 법보시 캠페인을 통해 베풀고 회향하고자 합니다.”20년간 매일 108배 절 수행으로 150만배를 회향해 본지에 소개된 주근호 불자가 법보신문을 교도소, 군법당, 병원법당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최근 법보신문과 다시 인연이 닿은 그는 “한 장 한 장 꼼
“교도소에서 힘든 삶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법보신문은 밝은 세상으로 향하는 창이며, 또한 선한 마음을 일으켜 불자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디딤돌입니다. 진정한 참회는 뉘우치는 것을 넘어 세상을 향한 선한 의지와 보살의 마음을 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법보신문 법보시가 정토 세상을 열어가는 문이 되길 기원합니다.”법무법인 남평 대표 변호사로 법보신문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는 김경규 변호사가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김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33기로 변호사로 활동한 이래, 법보신문 고문변호사를 맡아 크고 작은 소송을 담당해왔다. 불교계는
“대다수 언론이 태생적 한계와 운영의 어려움으로, 편향되거나 힘 있는 단체의 주장에 호도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독립언론 법보신문은 언제나 옳고 그름을 최우선의 가치에 두고 항상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약자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준 정의로운 언론이었습니다. 제가 20여 년 가까이 법보신문을 애독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홍창수 태고종 총무원 법무지원실장이 법보신문을 교도소·군법당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하며 이같이 말했다. 홍 실장은 2006년경 경기도에 있는 한 작은 사찰에서 종무원
삼보 귀의하옵니다안녕하세요. 저는 순간의 실수로 공주교도소에 수감중인 불자 ◌◌◌이라 하옵니다. 오늘 이렇게 글을 드리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옵고 법보신문을 꾸준히 좀 보고싶은데 여건이 여의치 않아 부탁의 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1년 1개월이 남았습니다. 여력이 되는대로 정기구독료를 입금토록 하겠사오니 어려움에 처해진 저를 가여이 여기시어 신문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허락이 되신다면 지난 신문부터 좀 보내주신다면 더더욱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꼭 부탁드리겠습니다.[1714호 / 2024년 1월 31일자 /
2월을 ‘정화의 달’이라고 한다. 2월을 뜻하는 ‘February’라는 단어의 어원은 혹독한 겨울을 끝내고 봄을 맞이하기에 앞서 묵은 때를 씻고 향을 쬐는 의식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고대 로마에서도 2월 15일에 죄를 씻는 예식이 있었다고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2월이면 정초기도, 입춘 삼재기도를 앞두고 사찰마다 정성 가득한 기도의 풍경이 불자들에겐 익숙하다. 바로 이 기도와 의식이 정화의 과정에 해당한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정화는 새롭게 시작하거나 깨어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두두물물(頭頭物物)’머리의 우측 상단부분에서 문자가 새겨지듯 어떤 유기체가 움직이는 것 같이 선명하게 각인되는 느낌이 찾아왔다. 그 다음은 이어지지 않았다. 8차선 대로와 인접된 길 어귀 보행 중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옆 사람과 큰 목소리로 대화를 해야만 들릴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순간이었는지 아니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라도 그것 외 일체의 인식이 사라진 현상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 생에서 간화선 수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자동차의 소음으로 인하여 대단히 시끄러운 대로변의 건물에서 삼중창인 창문
3회에 걸쳐 ‘삼국유사 낙산이성 관음정취조신’조와 익장(益莊)이 찬술한 ‘낙산사기문’(신증동국여지승람 양양도호부조)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의상이 낙산사의 창건조사로 등장하는 연기설화는 역사적 사실성이 결여된 설화적 허구로 이해하지 않을 수 없음을 피력하였다. 그런데 이 설화의 내용은 사실성이 결여됐기 때문에 불교사 자료로서 폐기해버릴 무가치한 것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비록 의상의 관음신앙 자체를 이해하는 자료로서는 당연히 제외되어야 하겠지만, 의상 이후 그의 불교가 전승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불교사 연구의 자료로서는 또 다른 의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했다고 하는데, 깨달음이라는 것은 요즘 말로 하면 행복 그 자체입니다. 깨달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행복하면 깨달은 것이라 볼 수 있어요. 그런데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바라는 게 많으면 행복해질 수 없겠지요. 그래서 욕심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해서 인생의 참 목적으로 바꾸면 욕심이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원력이 됩니다.욕심을 원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불교입니다. 미운 친구라도 그 친구 말을 잘 들어주고, 도와주고 공감하다 보면 머지않아 지인이 되는 것처럼 관점을 바
문화재청은 2021년 8월 24일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10점을 보물로 지정했다. 금동금강저(1점), 금동금강령(1점), 청동현향로(1점), 청동향합(1점), 청동숟가락(3점), 청동굽다리 그릇(1점), 청동유개호(1점), 청동동이(1점) 등이다.‘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은 조선시대 유학자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도봉서원(道峯書院)의 중심 건물지로 추정되는 제5호 건물지의 기단 아래에서 2012년 수습됐다. 조선시대 서원을 복원하기 위해 서원 건물의 흔적을 찾는 조사를 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