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입니다. 공기가 다릅니다. 맑고 밝은 느낌입니다. 아침 햇살이 방 창문을 통해 들어오듯 지구의 공기가 나의 마음에 그 기운을 보내 줍니다. 참으로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오늘은 푹 잤는가 봅니다. 역시 아침의 개운함은 일찍 잠드는 방법이 제일입니다. 다른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아도 마침내는 휴식의 시간이 지나야만 합니다. 일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쉬는 것은 게으르다. 착하지 못하다’라는 가르침이 머리에 또 가슴에 새겨져서 참 힘들었습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있는 그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과로로 인해 또 한약을 먹게
우리들은 생김새도 다르고 마음 씀씀이도 다르다. 상처에 새 살을 돋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간적 가치를 소홀히 해 상처를 주고 덧나게 하는 사람도 있다.인격상품에 늘 하자를 품고 사는 우리들이지만 남들이 종종 잘못을 저지르면 그를 질타하거나, 뒤에서 흉을 보거나, 심지어 왕따 시키는 등 고통을 더 가중시킨다. 마치 자신은 결이 다른 인격소유자인 양 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 씀씀이를 들여다보면 자신도 많은 단점을 가진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런 부족한 것들을 다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다들 좋은 사람이다.석가모니 부처님은
신도님들의 신심이 더 좋을까요? 스님들의 신심이 더 좋을까요?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전국 신도 상위 10%와 스님 전체의 신심을 비교한다면 해볼 만할까요? 스님들의 신심은 어떤 불자보다 더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신심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발보리심이 근본이지만 올바른 견해와 사유를 비롯한 팔정도가 잘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바른 견해를 가지려면 사성제·삼법인·12연기·사무량심·37조도품·18불공법 등 가르침을 늘 사유하여야 합니다. 더불어 부처님의 세상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도 중요합니다.
혹시 스스로가 사랑받기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내가 속한 집단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닌가 겁이 나나요? 이제는 그만 내려놓고 싶지만 쉽게 내려놓아지지 않는 생각과 감정들로 괴로운가요? 수치심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 또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 때 밀려옵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싶은 절박한 감정에 휩싸여 있다면 수치심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얼굴이 빨개지면서 머리를 숙이거나 억지웃음을 지을 수도, 과도하게 말을 많이 하거나 반대로 침묵할 수도 있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10여년 만에 어느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급한 일인가 싶어서 바로 전화했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안부를 먼저 주고받게 됩니다. “스님! 스님의 근황은 유튜브를 통해서 잘 알고 있어요. 예전에 비하면 살도 찌셨네요!” 순간 반가운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상대방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그것이 반갑다는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근황들을 묻고 전화를 끊었는데 남은 마음은 ‘유튜브에 나갈 땐 살을 빼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나도 이제 늙어 가는구나!’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됩니다. 가끔 어르신 보살
대만의 여름은 고온다습해서 한낮의 바깥활동은 그야말로 고난이다. 아스팔트가 푹신푹신한 8월 여름 한 낮, 나는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서있었다. 연거푸 혼잣말로 “얼굴이 익어가는 구나~”하며 홀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주 허름한 옷차림에 몸이 한 쪽으로 기운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정류장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바로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어르신은 느닷없이 내 손을 잡더니 손바닥에 무언가를 쥐어주고는 아무 말 없이 오던 길을 되걸어가셨고, 엉겁결에 손을 잡힌 나는 놀라 얼른 손을 펴보았다. 내 손안에는 동전 10원이 놓여
명상 중 가장 효과적인 명상은 소리 파동 명상일 것입니다. ‘관세음보살’ 그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명호를 구구절절 외치는 명상은 일찍이 경전에서도 대단한 효과를 설해왔습니다.‘관세음보살보문품’에 이르기를 “선남자야,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여러 괴로움을 받을 때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물과 불의 재앙에서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고난에서 벗어나는 등 가지가지 위험 속에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불러 그 일이 해결된다고 하셨습니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잘 안돼요.” “쉽게 짜증을 내는 편인데 그러고 나면 내 자신이 너무 싫어져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데 지쳤어요. 그렇다고 멈추기는 두려워요.”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에 사소한 일들도 계속 곱씹게 돼요. 그래서 너무 힘든데 다른 방법을 모르겠어요.” 사실 마음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자책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나에서 다른 내가 되길 원하지만 잘되지 않습니다. 변화하고 싶은 마음과 건강하지 않은 삶의 방식과 태도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면서 나를 괴롭히고 이것은 자기 비난으로 이어집니다
며칠 전 어느 거사님이 종무소에 명함을 두고 갔다고 합니다. 들어보니 20대 초반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 천도리에서 군대 생활을 함께하던 한 달 후배였습니다. 근 30년 넘어서의 연락에 바로 전화하진 못하고 며칠이 지난 뒤 통화하며 그동안의 안부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에 배운 경험도 기억납니다. 요즘 인플레이션이 온다고 다들 걱정입니다. 곧 물건이 부족하고 생필품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분위기입니다. 지금 상황에 옛 군대 시절을 대입하니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저와 후배
우리는 보통 경제적으로 풍요롭거나 주변사람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호의를 받는 사람을 두고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고 말한다.살기가 빠듯하지만 곁을 돌아볼 줄 알고 버거워하는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보면, 어떤 사람은 “배울 것이 많은 분이다”하고, 어떤 사람은 “아이고~, 본인처지나 살피지~”라며 염려 섞인 말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의 가치관은 각양각색이고 살아가는 모습도 천차만별이다.지인 병문안을 다녀온 후 나는 내가 여전히 걸어 다니는 것에 감사하고 내 삶의 질서를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음에 다행이라는
시대나 상황에 따라 변화하여 대처하는 것이 연기적 삶이고 부처님 제자다운 삶입니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낡은 철학이나 관념, 제도 등에 얽매인다면 불행한 사람이 생길 뿐만 아니라 더 좋게 성장하지도 못하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기회를 잃기도 합니다.전통적인 것은 다 낡고 불필요하며 거추장스러운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통적인 것 중에 그런 것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것은 다 좋은 것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새로운 것 중에는 전통적인 것보다 더 해악을 끼치는 것도 있습니다.전통적인 것을 보수라 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진보라
새벽 목탁소리가 참 좋습니다. 상단예불을 마치고 중단에 ‘반야심경’ 독송을 하는데 불현듯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하는 대목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요 며칠 일렁이던 마음이 쉬어집니다. 이것이 부처님 제자로 사는 혜택이구나 싶습니다.불청객 같은 그 마음 안에는 상처받은 나와 상처를 준 상대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내 선한 의도를 알아주지 않는 섭섭함과 슬픔이 있었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은 분노도 있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더 이상 관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음에도 한번 씩 찾아드는 그 마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