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종교학자였던 트레버 링(Trevor Ling)은 저서 ‘붓다, 마르크스, 그리고 신(Buddha, Marx, and God)’에서 초기불교가 비사회적이라는 평판은 현실적인 삶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기독교적 은자의 생활양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불교도들은 일찍부터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했다. 그는 재가와 승가의 접촉이 ‘윤리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들’을 어떻게 주고받으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버마 불교의 사례를 든다. 그의 눈에 버마는 불교가 “반드시 섬(insular)처럼 고립되거나 개인
미얀마 사원의 형상을 주도하는 것은 세 가지 유형의 탑이다. 첫째는 인도와 스리랑카의 스투파를 원형으로 하는 것이고, 둘째는 힌두사원의 시카라를 원형으로 하는 것, 셋째는 피아탓(pyattat)이라고 불리는 미얀마 고유의 불탑이다.첫째 유형의 탑이 중심 모티프가 된 것은 쉐다곤이나 쉐지곤 사원 등의 ‘파고다’인데, 거대한 계단형 기단 위에 세워진 불탑 자체만으로 본체를 이룬다. 미얀마의 불탑은 스리랑카에 비해 상륜부가 크게 확대되었고 탑신도 수직방향으로 길어졌다. 스리랑카 스투파의 윤곽선이 볼록한 곡선인 반면, 미얀마의 파고다는 오
리처드 맥브라이드 미국 브리검영대학 역사학과 교수가 5월30일 오전10시 동국대 혜화관 339호에서 ‘최치원전’을 강연한다.이번 강연회는 동국대 불교학술원 인문한국(HK+)연구단의 지역 인문학센터 강연프로그램인 ‘외국인의 눈으로 본 고전텍스트’이다.리처드 맥브라이드 교수는 1989~1990년 경상도 지역에 개신교 선교사로 왔다가 통도사·불국사 등에서 스님들과 만나며 신라 불교사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학부를 마친 뒤인 1994년 한국에 돌아와 연세대 외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신라 불교사 저변을 살폈고, 캘리포니아대 로스앤
지금은 도심 포교당이나 시민 선원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도시에도 절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절은 심산유곡에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한국불교와 도시가 소원한 관계였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신라 시대에는 황룡사가 수도인 경주 한복판에 위치하였을 정도로 불교와 도시는 밀접한 관계였다. 하지만 이후 선종의 도래, 풍수도참설(風水圖讖說)의 유포, 조선왕조의 숭유억불정책 등의 이유로 절은 도시와 멀어졌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가 사회와 물리적·정신적으로 단절된 은둔의 종교, 반사회적 종교, 염세주의적 종교라는 인상을 심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룬 뒤,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처음 법륜을 굴리기 시작한 이래 불교는 도시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인도의 전통 종교인 브라만교(婆羅門敎)는 주로 농촌에 탄탄한 기반을 이루고 있었다. 반면 불교는 무역과 상업이 발달한 도시를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붓다 시대의 고대 인도는 16대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에서 2대 강국은 마가다(Magadha)와 꼬살라(Kosala)였다. 부처님은 주로 열여섯 나라의 수도와 중요한 도시를 왕래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펼쳤다. 붓다 시대의 6대 도시는 마가다국의 수
미국 백악관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각국 대사를 비롯해 국제 불교회 (IBAA), 미주 비구니 승가회 등 불교 단체들을 초청해 봉축법회를 봉행했다. 뉴욕 불교 수행자 모임과 컬럼비아 대학 불교학생회 CUBA, 조계종 해외특별교구 미중서부지회소속 15개 사찰들도 잇달아 부처님 탄생을 기렸다. 백악관은 5월5일 세 번째 부처님오신날 기념행사(The Buddhist festival of Vesak)를 진행했다. 행사에는 20여 스님을 비롯해 더글라스 엠호프 미국 부대통령(Mr. Douglas Emhoff, 2ndGentleman), 왕모
미륵의 후예들 삶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내 앞에 놓인 저 어마어마하고 불가사의한 세계가 실은 모두 나의 식(識) 안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팎의 관념을 흔들어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제8아뢰야식이다. 나는 이전 글 곳곳에서 이 식에 대해 한마디씩 말하였지만, 이것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길 꺼려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 이름을 자주 부르다 보면 필시 그것을 마치 ‘나[我]’인 것처럼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그 점을 우려하였기에 그 식에 대해 오직 밀의(密意)로만 짧게 설하였다(‘해심밀경’의 ‘
불교에서 법(法)은 다양한 용도로 쓰이지만 크게 부처님 가르침으로서의 법[佛法 Dhamma]과, 존재하는 모든 것[一切法]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 일체법은 정신·물질[名色, nāma-rūpa]로 본다. 존재로서 법(dhamma)은 고유성질[自性, sabhāva]을 가진 ‘궁극적인 것(究境法 paramattha)’으로 개념(槪念 pannatti)과 엄밀히 구분한다. 예로서, 지·수·화·풍(地·水·火·風) 등 여러 가지 ‘궁극적인 것(究境法)’들이 어울려 아버지 혹은 책상과 같은 개념이 된다.상좌부 불교에서는 일체법, 즉 고유성질을 가
개인 중심 수행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가 비사회적인 ‘개인주의(individualism)’로 비치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지적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개인주의’란 용어가 갖는 부정적인 뉘앙스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구에서 유통되던 ‘개인주의’란 용어는 다양한 지적 배경과 의미의 편차를 가지고 있었다. 불교사상을 ‘개인주의’로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복잡하지만 흥미로운 담론이기도 하다. 때마침 도나 린 브라운(Donna Lynn Brown)의 “불교는 개인주의적인가:용어상의 혼란(Is Bud
티베트의 건물들은 모두 수평적이다. 지붕선들이 잘리거나 요철을 이루며 나고 들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긴 수평선을 근간으로 한다. 순례자들을 불러들이는 조캉 사원과 앞의 넓은 광장을 사변형으로 둘러싼 건축물들은 수평성, 사변형의 기하학주의를 확연히 보여준다. 걸개그림인지 커튼인지 모호한 ‘탕카’들로 둘러싼 테라스는 중정의 난간마저 사각형의 면들로 덮어버린다. 이 형상이 강력해 그 위에 얹은 중국식 지붕이나 스투파 형태의 장식들조차 사각형과 수평성을 방해하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건물로 다가서면 단단한 질감적 벽들의 육면체
하늘은 물망초처럼 파랬고 드넓은 광야엔 짙푸른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졌다. 지중해의 햇빛을 가득 머금은 싱그러운 잎사귀들의 향연이 서서히 옅어지자 날카롭게 튀어나온 철근과 붕괴된 건물의 시멘트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이 살았음을 알리는 흔적은 벽돌에 깔린 주황빛 양탄자뿐. 시내로 들어설수록 점차 늘어나는 무너진 잔해들이 도시를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조계종 공익법인 아름다운동행(이사장 진우·상임이사 일화 스님)이 5월말 완공을 앞둔 한국마을(Korean Village)의 현황을 살피기 위해 5월4일 튀르키예 하타이주를 방문했
40대에서 50대까지는 마음공부에 매진하며 매년 하안거, 동안거기간에 재가자도 참가할 수 있는 집중수행 프로그램을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템플스테이를 참가한 대중에게 명상을 안내하고 청소년캠프에서 아이들이 자연과 부처님 도량에서 마음 편히 지내다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느낀 건 요즘 아이들에게 불교의 신앙 부분이 잘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감정의 기복에서 헤맬 때 부처님 가르침과 참선·명상 수행으로 벗어날 수 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부처님 가르침을 전해주고 싶었다.현시대에 맞춰
내가 대학원생이었을 때 처음으로 제바달다가 석가모니를 세 차례나 시해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의 나는 아마 석가모니 같은 성자는 항상 고요한 물과 같고, 선한 역할만 하며, 또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잘생기고 의젓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의 정원 뒤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왠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이 글은 그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바달다를 분석한 것이며, 현장과 연관된 문헌들에서 본 두 개의 문구 즉 ‘우유죽을 먹지 않는 사람들’
푸르른 나뭇잎들이 신록을 뽐내는 지리산 천년고찰 천은사가 아름다운 노래 소리로 가득찼다.영혼의 울림의 노래하는 재즈 선율에 산사를 찾은 많은 이들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위로와 즐거움을 만끽했다.지리산 천은사(주지 대진 스님)는 4월22일 천은사 보제루와 보제루 앞마당에서 천은사 JAZZ Joep van Rhijn Quartet(윱 반 라인 퀼텟) 초청공연을 개최했다. 천은사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해 지역민들과 문화 소외 계층에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고자 음악회를 마련했다. 아름다운 지리산 풍경 속에 산중사찰인 천은사 보제루에서
종로구가족센터(센터장 박지선)가 5월6~13일 서울가족학교 예비부부교실 '우리, 결혼할까요?'를 운영한다.예비부부교실은 예비부부들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서로간의 이해와 배려, 존중하는 법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종로구가족센터는 2013년부터 예비부부교실을 진행해왔다.교육내용은 △성격유형 검사를 통해 서로의 차이 이해하기 △커플 대화법 △결혼 준비 체크리스트 △가족관계 점검 △커플 플라워박스 만들기 등이다.부부 중 한명이라도 서울생활권(거주지, 직장, 학교 소재지가 서울인 경우)이면 신청가능하다. 선착순 15쌍이 대상
이차돈의 순교를 기념하는 신라의 비석(경주박물관)은, 기하학주의와 거리가 먼 신라에서도 글자의 크기를 일정하게 하기 위해 사각형의 격자를 사용한 흔적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비례나 크기를 조절하기 위해 기하학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렇게 구성된 것이 미감이 기하학적인 것은 아니다. 기하학적이지 않다고 비난받던 고딕성당 또한 기하학적 선이나 격자를 사용했다. 기하학적 미학이란 황금비나 인체의 비례 같은 ‘특정한’ 비례, 혹은 원이나 정방형, 원기둥이나 원뿔 같은 입방체 등 ‘특정한’ 형태(form)를 보편적 모델로 하는 미학이다.
나는 이전의 글에서 ‘집착을 부르는 가짜 말[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러고 나니 뭔가 중요한 것을 빠뜨린 느낌이 든다. 우리는 기껏해야 깊은 한숨이나 신음 혹은 고함 등과 같은 원초적인 소리 말고는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고유한 목소리를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긴 해도 불교도라면 오직 부처님만은 예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석가모니라는 한 사람의 음성에 의해 일으켜진 반향이 2000여년 넘게 이어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사의하지 않은가. 그래서 저 거룩한 음성의 영감 속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도 생겨난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부처님 가르침이 언제 이 땅에 전해졌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전진의 승려 순도가 372년 고구려에 불교를 전하고,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384년 백제에 불교를 알렸다. 이어 고구려 승려 묵호자가 신라 눌지왕(417~458) 당시 구미 선산 지역 모례의 집에서 전법했다는 ‘삼국사기’에 근거하여, 우리는 “한국불교 1700년”이라는 표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만 이는 ‘삼국사기’가 가야불교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한 데서 발생한 오류가 아닐까 생각한다.금관가야 수로왕은 기
소리를 아는 것이 귀의 알음알이[耳識]이다. 이식도 안문[눈] 인식과정과 마찬가지로 이문[귀]과 의문[mano]을 통과하는 혼합문 인식 과정이다. 소리는 공기를 매개로 귀의 감성 물질에 부딪힌다. 소리는 공기의 파동이다. 이근(耳根), 즉 귀의 감성 물질은 무엇일까? 지금부터 약 1500년 전,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이 지은 ‘청정도론(淸淨道論)’에는 귀의 감성 물질을 “귓구멍 속에서 부드럽고 갈색인 털에 둘러싸여 있는 골무 모양을 한 곳에 있다”라고 설명한다. ‘골무 모양을 한 곳’은 고막이리라. 사실 고막은 소리
2009년 영국에서 발표된 페르시아 쿠시의 책(Kush Nama)에 담긴 내용에 의하면 튀르키예 보다 더 막역한 사돈의 나라가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이다. 요즈음은 이슬람 일색의 아라비아이지만 신라 교역 초창기의 페르시아는 다신적 국가였다. 수많은 신을 숭배하는데서 오는 혼란과 분열이 극심했기에 유일신을 향한 절대적 필요성이 있었고, 그로 인한 사회 통합의 기능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 로마제국이었다. 페르시아가 유일신으로 대동단결한 로마와 수백 년간 전쟁하다 지쳐있던 그때 새로운 세력이 밀려왔으니 예언자 무함마드를 추종하는 군단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