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서울 수안사 한켠에 마련된 제빵실로 스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밀가루. 그러나 누구하나 힘든 내색 없이 묵묵히 반죽을 시작한다. 꾹꾹 누르길 수백 번. 팔이 아플만도 하지만 스님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하다.“화이팅! 화이팅! 아직 팥앙금도 넣어야하고 구워서 포장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오늘 안에 빵 다 만들려면 좀 더 속도를 냅시다.” 대행보현회 자비애빵 대표 묘담 스님이 외치자 스님들의 손은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모두들 흰 밀가루를 얼굴에 묻혀가며 빵 만들기에 열심이다. 한 쟁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기 마련이다. 언제 어디서 불쑥 찾아올지 모르기에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고 체념한 체 두려운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이들의 마음은 더 그늘지고 예민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환자가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오는 죽음에 극심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해왔다. 그러나 점차 사회적으로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인간답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죽음을 앞두거나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처한 환자와 가족들에게 고통의 고리를 끊고 위안
매주 목요일 오전 9시가 되면 희망드림 사무실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소외이웃들에 전해줄 밑반찬을 만들기 위해서다. 배달할 반찬은 생선조림, 시금치, 오이소박이 등. 소외계층의 균형 잡힌 영양소 섭취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선정한 메뉴다. 홀로 거주하는 어르신이 대부분이다 보니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많아 더 신경 써서 준비할 수밖에 없다. 스님과 봉사자들은 재료를 다듬고, 볶고, 무치기 시작했다. 불 앞에서 조리를 하는 까닭에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어느덧 음식이 완성됐고 사무실엔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조리된
“승가결사체 이름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입니다. 자비심과 보살행을 몸소 실천하고 지역사회의 발전과 불법을 전하는 것은 불제자로서 응당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처럼 모든 이가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며 함께 살아가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승가결사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의 시작은 2000년 안산 보문선원이 개원하면서 조직된 동명의 봉사단체다. 당시에는 효경로잔치를 주된 봉사활동으로 삼아 여러 차례 주변의 어르신들을 초대해 흥겨운 잔치를 열었다. 답답한 집에서 나와 왁자지껄한 잔치에 모인 어르신들은 주름진
토요일 오전 9시 조금 느리게 하루를 시작해도 좋으련만 칠곡군 보현사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스님과 재가불자 등 20명이 모여 야채를 다듬고 양념에 버무린다. 물이 끓으면 재료를 넣는다. 썰어놓은 고기는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과 함께 볶는다. 김치 같은 숙성이 필요한 반찬은 어제저녁부터 준비해놓았다. 이웃을 위한 맛있는 냄새가 사찰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자비나눔 반찬봉사회(회주 묘현 스님)는 스님 4명이 모인 승가결사체로 칠곡군 지역 소외계층의 안정적인 식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결성됐다. 매주 토요일 회원스님 4명과
만유에 평등하사 일체중생과 함께 하시는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만 중생에게 해탈의 길 일러주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고두 삼배올리옵니다.상서 광명이 우주에 가득한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이 불자 한 떨기 청아한 연등을 받들어 지극한 정성으로 참회하고 발원하옵니다.자비로운 부처님!불혹의 나이에 엄마가 되었습니다.부처님의 가피 아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천사를 품에 안게 된 순간, 사생의 몸 받고 태어난 모든 생명 소중하다는 당신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지난날의 부끄러운 저를 되돌아봅니다.모든 생명 평등하고 존귀하거늘 이
이세상에 태어나서 많고많은 인연중에불법인연 맺게되어 감사함을 전합니다부족함이 많은나를 깨어있게 하시어서앉은자리 법당이요 내마음이 부처이고모든생명 사랑하는 측은지심 가지었고내가가진 모든행복 부처님의 가피로다이웃들도 나와같이 많은행복 누리시고부처님뜻 깊이새겨 무한공덕 베푸시어끝이없는 환희심을 마음깊이 느끼시고바른신심 굳게내어 수행정진 실천하여단단해진 마음공부 흔들리지 않게하며앉은자리 꽃자리니 긍정적인 마음가져지금여기 만족하며 욕심없이 살아가고살다보면 다시한번 힘든일이 있더라도마음수행 갈고닦아 다시한번 극복하여부처님께 지성으로 감사하며
가로열쇠1.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이끌었던 스님. 법명은 휴정(休靜), 호는 청허(淸虛)다. 사명대사의 스승이다.2. 오로지 염불에 매진해 삼매에 드는 것. 3. 구제해야 할 중생이 끝이 없음을 뜻하는 말. 사홍서원의 첫 번째 원에 나온다. ○○○○서원도.4. 불교를 따르는 사람들. 유가, 도가에 빗대어 이렇게 부른다.5. 삼법인(三法印)의 하나. 일체의 모든 행위는 변하지 않는 항상 함이 없다는 뜻. 6. 대승경전의 하나. 재가거사인 유마거사를 주인공으로 한 경전. 성스러운 유마힐의 설법이라는 뜻에서 본래 이름은 ‘유마힐소설경’이다
작가 채사장(40)은 내면의 여행자다. 익숙한 것에 머무르려 않았다. 권위 뒤에 어설프게 안주하기를 거부했다. 여행이란 본 적이 없는 세계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고, 아는 길이 아니라 감춰진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 여겼다. 그는 지식의 바다를 항해했다. 내면의 세계로도 깊숙이 나아갔다. 이해와 통찰은 길을 나서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특권. 떠나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여행에서 그는 인류가 쌓아올린 지식의 견고한 성을 목도했다. 위대한 성현들이 고구정녕하게 들려주는 지혜도 경청했다. 중고교 시절 제도교육이 강요했던 지식에서는 발견
파르라니 깎은 머리, 차분한 걸음걸이에 차수한 손 가지런히 모아 합장하는 모습까지…. 승복마저 입고 있었다면 영락없이 스님이다. 그도 그럴 것이 1년여간 스님으로 살아왔으니 승가의 습의가 몸에 배인 듯하다.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빈센조’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채신 스님 역의 배우 권승우씨를 서울 봉은사에서 만났다. 봉은사는 그가 스님 역할을 맡아 목탁과 염불, 의례 등 스님으로서의 기본을 배운 곳이니 어찌 보면 출가사찰인 셈이다.올해 35살인 그는 2019년 JTBC 드라마 ‘조선혼담공
불자는 부처님 삶을 본받아 부처님처럼 살아가기를 서원한 사람들이기에, 부처님의 생애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처님의 삶 속에 불교의 위대한 사상과 가르침, 그리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거룩한 삶의 표본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부처님 삶을 조명한 불서들을 통해 지금 여기서 우리 삶의 방향을 점검해 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불교전문출판사들이 출간한 책 가운데 6권을 선정해 소개한다.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부처님의 생애’조계종교육원 지음 / 조계종출판사부처님 삶에
불교경전에서 붓다와 동물은 서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면서 각자의 캐릭터에 힘을 불러 넣으며 상호작용한다. 붓다는 동물을 통해 자신의 성품을 드러내고 보완했으며, 동물은 붓다와의 만남을 통해 삶 전체가 변혁되면서 동물의 외피가 지닌 한계성과 그 슬픔을 자각하고 현생을 마감하는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웬디 도니거(Wendy Doniger)는 ‘인도신화에서 동물은 인간이 드러내지 못하는 자아의 무의식과 억압된 이미지를 대체해 발현해 낼 수 있는 용이한 기호’라고 보았다. 민족, 종교, 관습, 문화 등이 다른 인간들이 단일한 공동체를
‘인천(人天)의 스승’이신 부처님의 모습에 대한 형상화는 시대와 국가, 민족의 구분없이 신심을 표현하는 엄중한 행위이며 오랜 고민과 정성의 총화였다.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는 이후 전래 과정에서 각 지역과 민족의 문화와 전통, 고유의 사상을 흡수해 나갔다. 그렇게 조성된 불상은 불교의 전파와 발전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타임캡슐과도 같다. 하지만 ‘깨달은 이’의 모습을 인간 형상으로 표현하는 일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든 이후 무려 400여년이 되도록 감히 시도되지 못했다. 그 오랜 금기는 기원 전후 인도의 북부에서 깨졌다. 인도 북
부처님 입멸 후 2600여년 동안 불교가 그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은사‧상좌 제도 때문일 수 있다. 기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 은사의 말과 행동은 곧 법이었고, 깨달음으로 향해가는 지침이 됐다. 출가수행자로서 위의를 갖추고 여법하게 승단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은사는 갓 출가한 발심자의 의지처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은사와 상좌가 인연을 맺는 것은 부처님 법을 잇고 승단을 유지하는 불교의 오랜 전통이었다.그러나 현대에 들어 이 같은 전통은 옅어지고 있다. 산업화에 따른 핵가족화로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흔들
스님은 스승이다. ‘인천(人天)의 사표(師表)가 스님’이라는 말이 이를 대변한다. 참다운 스님은 상좌, 후학, 재가불자가 불법을 따라 살도록 알려준다. 경책하며 교육을 시킨다. 자신의 상좌가 승려 본분을 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며 그 연후에는 다수의 후학, 재가불자에게 법을 일러주고 가르친다.근현대기 불교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라를 빼앗겼고 승가공동체는 무너졌으며 계율은 이완됐다. 이에 산중불교에서 도회지 불교로, 대중과 함께하는 불교로 나가야 한다는 슬로건이 강력히 제기됐다. 승려 정체성 회복을 위한 정화운동과 교단 재건을 위한
영수여민 선사에게 어떤 제자가 물었다.“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선사가 잠시 말없이 있다가, 제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나의 행장비(行狀碑)를 세우려고 하는데, 비에 쓸 한마디 말을 지어 보라. 만약 들어맞는다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할 것이다.” 제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지만 아무도 스승의 뜻에 들어맞지 않았다.나중에 영수여민이 세상을 떠난 뒤한 제자가 운문 선사에게 물었다. “누군가가 열반하신 스승을 위해 비를 세운다면 무어라 해야 하겠습니까?”운문이 대답했다. “스승[師]이니
속담에 ‘삼대 가는 부자 드물고, 큰 권세도 10년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불교교단은 2600여년이나 지속됐고 교주를 숭상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매진하는 교도들이 세계에 퍼져 있다. 지금도 교세를 만방에 떨치고 있으니 실로 세상의 통념을 뛰어넘는 큰 부자요 큰 권세를 누리고 있다 하겠다.불교가 이렇게 오래토록 세상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물론 교주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위대한 행적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가 구현된 가르침 때문이란 건 재론의 여지가 없다.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삼계의 중생을 해탈로 인도하는 위대한 스승[三界導師]이다. 뭇 중생의 스승인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고통을 여읠 수 있는 정법을 제시했고, 그 법은 다시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끊임없이 이어오며 진리의 등불을 밝혀왔다. 부처님은 “만약 수행자가 올바른 스승(선지식)을 만났다면 도의 절반을 이룬 것이겠습니까?”라는 아난의 질문에 “아니다. 도의 전체를 이루느니라”고 답했다. 법보신문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승의 의미를 되짚어보았다. 편집자종교적 의미의 스승이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만을 가르쳐주는 이가 아니라 세계와 인생의 궁극적
수많은 날 가슴 졸여가며 발버둥 치고, 눈코 뜰 새 없이 힘겹게 살아온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다. 맹구우목(盲龜遇木)보다 더 어려운 몸으로 잉태 되고서도 기억되는 인연의 바람조차 느끼지 못했다. 깊은 어둠이 내리면 복받쳐 오르는 울혈로 시든 꽃 영혼 없는 박제마냥 가위눌리다 스스로 지쳐갔다. 실낱같은 미련을 아픈 마음 가리개 삼아 이 어둠이 걷히기를 울타리 없이 떨고 있는 초라한 별빛으로 위안을 삼았다. 스스로 도진 병은 온 몸 구석구석 메말라 뒤틀어지고 엉클어진 가슴으로 시린 아픔과 함께 누구를 향한지 모를 한숨 섞인 기도만이
포교사가 된 이후 일상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장례식장 출입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포교팀 총무가 염불봉사 시간을 알려준다. 그러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일상복에서 포교사복으로 갈아입는 일이다. 옷이 바뀐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는데도 근엄한 포교사의 마음가짐으로 변한다. 약속된 시간에 늦지 않으려 바삐 서두른다. 그러다 현관문 신발장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본다. 짧은 머리를 손빗으로 다듬고 옷 매무새를 살핀다. 오늘은 어떤 주검을 만날까. 봉사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 스스로를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사바 세계에 머무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