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부터 장맛비가 내리고 있지만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손님이 반갑지가 않다. 해마다 여름 안거를 무사히 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장마에 대비하느라 무너진 둑을 쌓고 바람을 막으려고 나무를 여러 그루 옮겨 심었으며 패인 길을 보수 했다. 마지막에는 밭에 있는 하지 감자를 거두어들인 것으로 일을 마쳤더니 뜨거운 햇볕에서 너무 무리한 탓인지 온 몸에서 열이 불덩이처럼 솟아오른다. 하지만 백설처럼 하얗고 둥글게 영근 감자를 쪄서 놓고 보니 마치 금방 건져 올린 따끈따끈한 법신 사리인양 뿌듯한 마음이다. 안거가 시작 된지 벌써 반 철이 가까워진다. 제방선원에서는 지금 정진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를 것이다. 더구나 초심자들은 오직 일대사를 한 철에 마치고야 말겠다는 순수한 열정과 급한 마음에 더욱 충천해 있
최근 신도들과 며칠간의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사찰순례였다. 고도(古都)는 고즈넉했고, 여행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밤이면 숙소에 인접한 오사카 성 이 들어있는 공원의 벚나무 숲을 지치도록 걷기도 했다. 일본인의 사유의 근간은 ‘신도(神道)’다. 이것은 일본의 고유 민족 신앙이자 선조나 자연을 숭배하는 토착 신앙이다. 조상의 유풍을 따라 ‘神’를 받들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전개되는 문화현상의 함의이기도 하다. 이들은 신불습합 (神佛習合)이라 하여 신도(神道)와 외래 불교와의 융합도 꾀하여 왔다. 그들의 독특한 정원 가꾸기도 만물을 신의 현현으로 보는 이런 사유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정성스레 가꿔진 도량엔 초여름의 신록이 우거져 더없이 아름다웠다. 여행을 다녀오면 ‘쇠고기 재협상’
수행은 연어귀향과 같이 고난의 연속물러서지 않는 ‘군인정신’ 때론 필요 천 길 되는 낚싯대 곧바로 드리우니한 물결 따라서 만 물결이 뒤따른다밤은 깊어 물은 찬데 고기 하나 물지 않으니배에 가득 공을 싣고 달빛 밟고 돌아가네-『금강경오가해』 중 야부송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군법당 초청으로 법회에 다녀왔다. 군종병으로 근무하면서 포교한다고 동분서주했던 옛 시절이 떠올라서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일체강물은 바다에 이르면 다툼이 사라지고 일미평등의 한 맛을 이룬다. 하지만 팔도의 사나이들이 모인 군대에는 아직 자기 관념과 집착이 강하여 크고 작은 일들이 쉼 없이 일어나 때로는 부모님들의 가슴에 깊은 한을 남기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더욱 부처님의 가르침이 필요한지 모른다. 부대 정문 앞 위병
사물은 연기적 순환 고리로 존재내 존재 유익한지부터 생각해야 근대 한국 불교의 대선지식인 경허선사(鏡虛 惺牛, 1849~1912)의 제자 중에 혜월 선사(慧月 慧明, 1862~1937)가 있다. 만공과 수월이 초승달과 반달이라면 스님은 보름달로 비유될 만큼 경허의 출중한 세 제자 중에서도 법력이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스님께서 양산 내원사에 계실 때, 어떤 사람에게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를 싼 값에 넘기고 말았다. 대신 그 돈으로 산비탈에 다랑이 논을 만들기 시작했다. 천수답을 개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일꾼들을 사서 했는데도 다섯 마지기 판돈으로 겨우 세 마지기 밖에 일궈내지 못했다. 제자들은 손해가 아니냐며 불평을 해댔다. 스님이 나무라셨다. “이놈들아,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지,
숲은 온통 초록으로 물결치는데 고절한 오동나무 보리 빛 향기를 들으니 봉황이 날아든다. 모내기 준비가 한창인 들녘에는 새로운 도량을 결계하는 듯 바둑판처럼 논을 고르고 물을 잡아 가두어 놓은 모습이 한 해의 농사를 가늠해 보는 것 같아서 더욱 엄숙하게 보인다. 결계와 포살로 더불어 여름 안거가 시작 되었다. 일체 흐름을 절단하여 해탈을 구하려는 수행자들은 바르게 계를 가짐으로써 선정의 물이 고이고 지혜의 달이 여실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육조단경』에서는 앞 생각을 미혹하여 비록 허물이 있을지라도 뒷 생각에서 바로 깨달으면 곧 여여한 부처라고 했다. 발심한 사람은 마음이 바로 부처인줄 믿고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지 않으니 한 생각 허물이 일어나면 바로 알아차리고 뒷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곧 깨달아 무심
도처 원망은 균형 잃은데서 오는 것중생 있다면 지옥 마다않아야 보살 중국 송대의 대표적 시인인 황산곡(黃山谷:본명 庭堅. 1045~1105)이 당시의 선승인 회당 조심(晦堂 祖心. 1025~1100)선사에게 참선을 익히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스님이 황산곡에게 물었다. “그대가 보고 있는 『논어』에 ‘내가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있느냐? 나는 숨기는 게 없다’고 하는 구절이 있다. 이것이 선종의 일대사(一大事)와 매우 흡사하다. 그것을 아는가?” 산곡은 대답을 못했다. 하루는 산책길에 어디선지 꽃향기가 흘러들었다. 산곡이 향기를 맡고 좋아했던가보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 “공은 목서(木犀)의 향기를 맡는가?” 어록에는 ‘맡는다’는 글자가 ‘문(聞)’으로 되어있다. 이 글자는 ‘듣는다’와 ‘맡는다’는
한줄기 비바람이 지나가니 산천초목은 관욕을 마치고 법열에 젖어 춤을 추고 하늘은 통명해 광명이 찬란하다. 오랜 무명의 안개가 걷히고 나니 바다는 툭 터져 끝이 없고 잔잔한 파도의 이랑엔 고기들이 널을 뛴다. 온갖 꽃들은 다투어 피어 향기를 발하고 새들은 저마다 목청을 가다듬어 범음을 노래한다. 두두물물이 환희심으로 벌떡 일어나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고 있다. 그 옛날 평화로운 룸비니 동산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부처님께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한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거듭 이르시길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라는 사자후를 토하며 세상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은 일체 중생의 생일과 겹치는 날이니 모든 생명이 차별이 없어 본래 평등하며 존귀함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은 끝이 없다. 원한을 버리는 게 갚는 길이요, 영원한 진리이다.’『법구경』 생각해 보면 ‘80년대 광주의 봄’을 겪은 나에게는 이 일이 두 가지 이미지로 남는다. 민주화의 뜨거운 열기가 붉은 영산홍을 닮았다면, 기억조차도 떠올리기 싫은 그날의 아픔은 아물지 않는 영원한 공백. 뚝뚝 떨어지는 눈물 같은 하얀 목련이다. 그해 시민회관에서 개회된 초파일 기념강연회에서 법정 스님은 위의 『법구경』 말씀을 하셨다. ‘원한을 쉼으로써 해결 된다’는 말씀은 큰 충격이었다. 며칠 뒤, 기한 없는 휴교에 들어가는 이른 오후의 무거운 침묵이 흐르던 교실. 난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위 구절을 종이에 적어 교탁에 몸을 굽히고 있던 담임선생에게 보여드렸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선생이 칠판에 옮겨
휘파람새가 뱃고동 소리처럼 길게 울어예니 새벽이 밝아오고 밤새 끊어진 뱃길이 다시 열리고 있다. 섬에서는 지금이 가장 바쁜 농사철이라서 특산물인 양파 출하가 한창이고 머지않아 톳을 채취하여 실어 나르는 배들이 끝없이 오고 갈 것이다. 산에는 어느덧 나무마다 순한 떡잎들이 잔잔한 물결을 이루어 갓난 애기처럼 칭얼거리고 고사리가 여린 주먹을 쥐고 다투어 오르고 있다. 이처럼 삼라만상이 계절을 따라서 변하면서 쉼 없이 돌아가지만 한 치의 오차가 없는 것은 저마다 반야의 배에 의지하여 타고 넘는 까닭일 것이다. 육바라밀은 대승 실천사상의 핵심으로써 생사의 바다를 건너 피안의 저 언덕에 이르는 나룻배와 같다. 그 중에서 반야바라밀이 다섯 가지를 포섭하니 근본이 되는 것이다. 『금강경』 첫 머리에서 부처님께서는 반야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計功多少 量彼來處)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忖己德行 全缺應供)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防心離過 貪等爲宗)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正思良藥 爲療形枯)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爲成道業 應受此食) 〈오관게(五觀偈)〉 내가 출가 했을 때 송광사 공양간에는 이 게송이 붙여져 있었다. ‘음식을 약’으로 생각한다는 정신이 퍽이나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공양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수고로움, 그리고 공양을 받는 목적을 돌이켜보라는 게송이다. 시주의 은혜가 소중한 절집에서는 공양물을 함부로 다루거나 먹고 남겨서도 안 된다. 또한 모든 공양은 육신을 지탱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모든 공양 가운데에 법공양이 제일”이라 했다. 또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밤새 소리 없이 순하게 내리던 비가 그쳤다. 바다는 흔적이 없는 듯 여여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앞마당에 나와 썰물의 때를 살피다가 그간 벼르던 바다로 내려간다. 겨우내 일체 흐름을 끊고 깊은 선정에 들었던 골짜기는 다시 깨어나 흐르고 함께 동행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갯바위는 부딪치는 파도에 더욱 둥글고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와 지난 동안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정겹기만 하다. 무심도 하나의 관문이어서 적멸을 비추고 있다면 아직 주객이 남아있어 법성의 바다에 들지 못하나니 적멸이 비춰야 마침내 바다가 된다고 설하고 있다. 여기저기 톳과 돌미역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갯바위에 붙어있는 연둣빛 파래와 먹빛 돌김이 달마대사의 수염처럼 자라서 손길이 가면 부드러운 촉감에 얼굴에는 파안대소가 번지고 있다. 갯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혼인에 관한 명계의 책이지.” 그리고 주머니에 담긴 빨간 끈으로는 두 사람을 묶어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다고 했다. 위고가 호기심에 자신을 한번 봐 달라고 청했다. 노인이 책을 뒤적거리더니 신부 감은 겨우 세 살로 열일곱이 되어야 시집을 올 것이라 했다. 신부는 마을 북쪽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진노파의 세 살 박이 아이였다. 위고가 실망하여 죽여 없애면 안 되는지 묻자, 노인은 “복이 있어서 아들 덕분에 영지까지 받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위고가 하인에게 비수와 돈을 건네며 노파의 딸을 죽여 달라 했고, 하인이 아이를 칼로 찔렀으나 빗나가 미간에 맞고 죽지는 않았다. 세월이 흘러 14년 뒤 위고는 관리가 되서 태수의 딸과 정혼하게 되었다. 신부는 아름
남도의 무르익은 봄기운을 따라서 가다가 한때 구산선문의 하나로 남종선의 종가였던 보림사에 도착했다. 하루해는 어느덧 앞산에 걸려 무여열반을 나투고 비로자나 부처님은 침묵으로 증명하고 있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불꽃이 소멸하여 적멸에 든 도량은 점점 평온한 어둠으로 깊어가고 있다. 부처님 출가제일과 열반제일 사이 불교도 경건주간을 맞이하여 보림결사라는 새로운 원력으로 도량을 결계하는 불사에 동참했다. 가지산문을 연 보조 체징선사는 오늘날 조계종 종조로 추앙받고 있는 도의국사로부터 법을 받은 염거선사의 제자로 이 절에서 20여 년간 주석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 내었다. 우리나라 선종의 발원지인 참으로 유서 깊은 도량이 그 간의 쓸쓸함을 떨치고 새 인연을 맞이하여 법신 광명으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선이
근진을 벗어나는 일이 간단치 않으니(塵勞逈脫事非常) 고삐를 당겨 잡고 한바탕 벌려보라(緊把繩頭做一場) 한 번의 찬바람을 뼈에 사무치지 않은들(不是一番寒徹骨)어찌 매화가 코 찌르는 향기를 얻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 이것은 선가에 애송되는 황벽희운(黃壁希運, ∼850) 선사의 게송이다. 일찍이 황벽산으로 출가하여 득도하였으므로 산 이름이 법명처럼 붙여졌다. 몸이 왜소하고 이마가 튀어나왔으므로 ‘육주(肉珠)’라는 별명도 가진 선사는 기개가 활달했다고 한다. 선가의 보석 같은 어록들 중에 하나인 『전심법요(傳心法要)』가 선사의 것이다.이 풍진 사바세계의 크고 작은 세상사도 마찬가지여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한번은 제대로 사무쳐봐야만 돌파구가 생기는 법이다. 출가자에게 “세상 안 태어난 셈 치라”고 고구정령
하늘에는 위풍당당하게 바람을 가르던 소리개가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바다는 뿌연 안개 속에 흔적이 없다. 강한 황사가 부는 걸 보니 봄이 결코 화사롭게 오지만은 않을 것 같다. 『숫타니파타』에서는 산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 또 남을 시켜 죽이게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생명의 존귀함과 일체 생명의 평등함을 갈파한 부처님 말씀이다. 정초 기도가 끝나고 절마다 자비심을 실천하는 방생법회가 열리고 있다. 옛날에 스님들이 행각할 때 석장을 짚고 다니거나 절에서 목욕하고 빨래하는 날이 정해졌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까지 배려하는 자비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모든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불살생계는 불자들이 지켜야 하는 제일가는 덕목이다. 오래 살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많은 살생을 하여 몸에 좋은 것만 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