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다라 2~3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6년간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혹독한 고행 을 했던 석가보살은 불현듯 농경제(農耕祭)에 참석했다가 무우수 아래에서 첫 선정에 들었을 때의 기쁨을 생각해 냈다. 고행이 성도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알고 과감하게 그간의 수행법인 고행을 포기하고 나란자라 강에 내려와 목욕을 했다. 마침 수자타가 올리는 죽을 먹고 기력을 회복하기로 결심했다. 그간 함께 고행을 했던 5명의 수행자는 고행을 그만둔 석가보살을 배신자라 생각하고, 그의 곁을 떠나갔다. 기운을 차린 석가보살은 과거의 부처님들은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에 이르렀을 때 어떤 자리에 앉았을까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것은 풀로 된
▲ 간다라 2~3세기,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 출가 수행자가 된 보살은 빔비사라 왕이 다스리는 라자가하 도시에 도착해 걸식하여 지냈다. 어느 날 걸식하는 보살을 본 빔비사라 왕은 그 수승한 용모에 반해 사람을 보내 보살을 살피게 했다. 보살이 수행할 당시 출가자는 나무뿌리를 거처로 삼고, 쓰레기더미에서 주은 누더기로 만든 옷을 의복으로 삼고, 탁발한 음식을 먹이로 삼고, 소의 썩은 오줌을 약으로 삼으며 생활했다. 보살 역시 이와 같은 길을 걸었다. 보살은 알라라까라마와 웃다까라마뿟다라는 스승을 만났으나, 결국 그들의 곁을 떠나 네란자라 강이 흐르고 있는 우루웰라 숲으로 향했다. 이곳에 거처를 마련한 보살은 “물에 빠졌던 나무라도
▲ 간다라 2~3세기,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 출가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석가보살은 먼저 자신의 긴 머리칼을 자르고 머리에 썼던 보배로 장식된 관을 벗었다. 몸에 걸쳤던 여러 장신구 역시 이제 수행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되었다. 보관(寶冠)과 장신구를 벗어 마부 찬나에게 맡기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을 가지고 카필라성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아내 야소다라에게 전하거라. 바른 깨달음을 이루면 다시 돌아가 법으로써 서로 제도할 것이니, 마음을 고요하게 해 세상의 영화를 그리워하지 마소서”(‘보요경’ 고차익피마품)라고.석가보살의 출가 수행기에 일어난 사건 가운데 불전 미술의 소재로 채택된 사건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마부 찬나와
▲ 간다라 2~3세기, 캘커타 인도박물관. 싯다르타 태자는 어둠의 세계를 버리고 광명의 길로 나섰다. 태자로서의 신분을 버리고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것을 출가라 하며, 부처님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남인도 불전미술에서 부처님의 육신의 탄생보다 정신적 탄생을 의미하는 출가를 강조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보살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출가부터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룰 때까지의 수행자를 보살이라 부르겠다. 보살은 마부 찬나와 애마 깐따카를 데리고 성을 넘어 출가의 길을 나섰다. 이때 사천왕이 말 발굽을 받쳐 소리나지 않게 했고, 애
▲ 간다라 2~3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싯다르타 태자는 몇 살에 출가를 했을까. 여러 설이 있지만 29살에 출가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왕위 계승자인 싯다르타 태자가 세속적인 구속에서 벗어나 수행자의 길로 나아가기로 한 출가 결심은, 불교사에서 중대한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카필라성을 나오던 날 밤의 일은 많은 불전(佛傳) 경전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보요경’에는 마부 찬나에게 애마 깐따카를 준비하도록 하는 품이 따로 있다. 출가 전날 밤 출가를 단행하려는 싯다르타 태자와 출가를 막아보려는 마부 찬나와의 대화가 펼쳐지고 있다. 싯다르타 태자는 성 안의 사람들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살며시 일어
▲싯다르타 태자의 궁중생활 (2~3세기, 파키스탄 카라치박물관).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전 궁중생활은 어떠했을까? ‘본생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아버지 정반왕은 아들을 위해 세 철에 알맞은 세 채의 궁전[三時殿]을 지었다. 하나는 9층이고 하나는 7층이며 또 하나는 5층이었다. 그리고 4만의 무희들이 보살을 모시고 있었다. 보살은 마치 천왕이 천녀들에게 둘러싸인 것처럼 아름답게 장식한 무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남자가 없는 여자들만이 연주하는 음악을 즐기며 철에 따라 거기에 맞는 궁전에 살고 있었다. 라후라의 어머니인 야소다라는 그 첫째 부인이었다.” 여러 불전에 의하면 싯다르타 태자는 사문유관 이후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불전문학에서는 싯닷타 태자가 동서남북 네 문을 통해 밖에서 경험한 일들을 사문유관(四門遊觀) 또는 사문출유(四門出遊)라고 한다. 왕궁의 호화로운 환경 속에서 인생의 부정적인 면을 경험하지 못한 싯닷타 태자는, 어느 날 나들이를 나갔다가 동쪽 성문에서 나이든 허리가 굽은 노인을 만났고 남쪽 성문 근처 길가에서 아픈 사람을 보았다. 서문을 나서다가 한 무리의 장례 행렬과 맞닥뜨렸고, 북문 근처에서 머리와 수염을 깎은 수행자를 만났다.싯닷타 태자는 노인과 아픈 사람 그리고 장례식을 보고는 인생의 고통과 허무를 깨달았고, 출가 사문을 보고
▲ 2~3세기, 간다라,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싯다르타 태자는 누구와 언제 혼인했을까? 결혼한 나이에 대해서는 여러 경전에 따라 16세·17세·19세 설 등으로 다양하고, 아내에 대해서도 여러 명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설은 라훌라를 낳은 야소다라가 태자의 부인이라는 것이다. 정반왕은 염부수 아래에서 첫 선정에 든 아들 싯다르타 태자를 본 이후 그를 빨리 결혼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석가족의 장로회의를 열어 싯다르타의 결혼 문제를 논의했다. 5백명의 대신들이 자기의 딸을 추천하자 정반왕은 그 결정권을 싯다르타 태자에게 맡겼다. 싯다르타 태자는 “젊고 건강하며 아름다우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삿된 생각을
▲3~4세기, 간다라,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부처님의 일대기에서 특히 중요시 되는 몇 장면이 있는데, 잠부 나무 아래에서 첫 선정에 잠긴 사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는 주로 벼농사를 짓는 농경 사회였던 것 같다. 봄이 되면 파종에 앞서 올리는 농경제(農耕祭)는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행사였는데, 싯다르타 태자는 아버지 정반왕과 함께 그 행사에 참석했다. 농경제에 참석한 싯다르타 태자는 잠부 나무[閻浮樹] 아래에 앉아서 밭갈이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흙덩이가 부서지면서 벌레가 나오자 까마귀가 벌레를 쪼아 먹고, 또 지렁이가 나오자 개구리가 지렁이를, 뱀이 개구리를, 공작이 뱀을, 매가 공작을, 독수리가 매를 잡아먹는 광경을 태
▲ 2~3세기, 간다라, 파키스탄 카라치박물관 싯닷타 태자의 청년기 모습은 학문 연마와 무예 겨루기가 대표적이다. ‘과거현재인과경’에 따르면 싯닷타 태자는 7세때 글을 익히기 시작했고 10세때 무예를 닦기 시작했다고 한다. 태자의 무예 실력은 ‘활쏘기’에 관한 이야기에 잘 담겨 있다. 열 살이 되자 정반왕은 태자에게 활쏘기를 가르치기 위해 나라 안에서 활 잘 쏘는 이를 초청해 궁전의 뒷뜰에서 쇠로 된 북을 쏘게 했다. 스승이 작은 활을 태자에게 주자 태자는 웃음을 머금고 “이것을 제게 주어서 무엇을 시키려 합니까?”하고 묻자, 스승은 “쇠북을 쏘십시오”라고 말했다. 태자는 스승이 가져다 준 일곱 개의 활 가운데 한 개의 화살을 쏘아
▲북인도, 간다라, 2~3세기, 국립뉴델리박물관 싯다르타 태자 역시 요즘처럼 조기 교육을 받았을까. 경전에 의하면 태자는 7세가 되자 정반왕이 ‘태자가 벌써 컸으니 학문을 하게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나라 안에서 글과 재주가 뛰어난 총명한 바라문을 두루 찾았다(‘과거현재인과경’)고 한다. 싯다르타 태자의 스승은 누구였을까. 명망과 학덕을 갖춘 바라문으로 웨다와 우빠니샤드에 정통한 위슈와미뜨라(Viśvāmitra), 병법과 무예를 가르칠 스승 끄산띠데와(Ksntideva), 수학을 가르칠 스승 아르주나(Arjuna), 언어학자이자 문법학자인 스승 삽바밋따(Sabbamitta)가 초청되었다. 싯다르타 태자는 이 스승들로부터 정
▲ 2~3세기, Peshawar Museum, Pakistan 인도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선인(仙人)으로 하여금 아이의 타고난 외모를 살펴 앞으로 전개될 아이의 운명을 살피는 관상법이 있었다. 아버지 숫도다나왕은 싯다르타 태자를 당시 유명한 아시따(Asita) 선인에게 보여, 태자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물었다. 이 주제는 간다라에서 즐겨 표현되는 불전 장면의 하나로 ‘싯다르타 태자의 관상(觀相)을 보는 아시따 선인’이다. 숫도다나왕의 스승이었던 아시따 선인은 싯다르타 태자의 상호를 살피다가 눈물을 흘렸다. 깜짝 놀란 숫도다나왕이 그 이유를 묻자 “왕자님은 가장 높은 분, 인간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분입니다. 왕자님은 최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