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중재법 개정안, 일명 ‘언론징벌법'을 놓고 정국이 뜨겁다. 밀어붙이는 쪽에선 이번에 반드시 ‘가짜뉴스'를 잡아야 한다고 국회 통과를 벼르고 있고, 막는 쪽에서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며 ‘진짜뉴스'까지 잡을 것이라고 적극 반대하고 있다.국민 여론도 두 쪽으로 갈라졌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언론으로부터 일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피해자 보호라는 명목하에 언론의 자유와 기능을 제약한다고 비판하고 있다.언론자유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가치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헌법 제21조에 4개항
개학을 앞두고 책장을 정리하다가 노란 표지의 자그마한 책 하나를 잡고서 다시 보고 있다. 1973년 봄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 당선된 글을 ‘여시아문’에서 2000년에 출판한 책으로 지허(知虛) 스님의 ‘선방일기’이다. 이 책은 서울대 출신의 지허 스님이 오대산 상원사 선방에서 동안거 기간에 경험하고 느낀 점을 일기의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36명의 선객들이 음력 10월15일에서 1월15일까지 3개월 동안 어떻게 참선하고, 어떻게 생활하고, 또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솔직 담백하게 잘 그려져 있다.10월25일 ‘선객의 운명’이란
며칠 전, 무심히 스친 뉴스는 아나운서의 차분한 목소리와는 달리 인류에게 주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머지않아 잠기게 된 부산과 같은 해양도시들을 대비하여 새로운 수상도시가 계획된다는 내용이었다. 돌아보면 지구 온난화는 세대가 여러 번 바뀌기 전부터 예측된 지구적 문제였다. 필자의 어린시절 온난화를 촉발하는 오존층 파괴 원인이 된다며 에어컨의 냉매가 되는 프레온가스나 헤어스프레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면 오히려 지구파괴를 막기에 희망적인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
살면서 ‘왜 하필 지금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하는 우연치고는 너무나 절묘한 시점에 생기는 난처함과 불행을 누구나 겪어 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명 머피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필자 또한 기억하기 싫은 머피의 법칙이 있다. 필자가 동국대 입시를 치를 때 일이다. 당시 경찰행정학과는 대입시험을 치른 다음 날에 신체검사를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원자 모두가 남자여서 옷을 탈의하고 속옷만을 입은 채로 신체검사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필자도 겉 상의를 벗고 바지를 벗는데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하고 머리는 하얗게 타버리고
“차 잠깐 세우지. 모두 주변에 가서 빵 있는 대로 사와. 여기가 프랑스 영향을 받아 빵이 맛있어.” 10여년 전, 캄보디아에 지구촌공생회가 설립한 학교를 방문하던 길. 월주 큰스님이 시장 가운데 차를 세우더니 주머니에서 돈을 한움큼씩 꺼내 일행에게 나눠줬다. 기자로 동참했던 필자도 몇 군데 빵집을 찾아 매점에 얼마 없는 빵 전부를 긁어왔다.학교에 도착하니 교실마다 발 디딜 틈 없이 아이들이 빼곡했다. 일행을 의전하러 나온 학교장, 코이카 단원과 지구촌공생회 파견 직원들에게 큰스님은 “의전은 됐으니,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달라”고 부
종교의 궁극적 가치는 뭘까? 또한 목적은 뭘까? 최근 캐나다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건을 보면서 필자는 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종교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졌다. 지난 7월1일 AFP통신에 따르면 캐나다 원주민 단체인 ‘로어 쿠테네이 밴드’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크랜브룩 근처에 있는 원주민 기숙학교 옛터에서 ‘표식 없는’ 무덤 182기를 찾아냈다. 지면 투과 레이더(GPR)를 통해 탐지해낸 이들 유해는 가톨릭 학교였던 이곳에서 19~20세기 사이에 교육을 받았던 7~15세의 원주민 어린이들 유해인 것으로 드러났다. 가톨릭이 운영한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이번 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욱 강화되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들의 일상에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거리두기’이다. 의학과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 인류가 신종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한 처방으로 내놓은 것이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소위 ‘거리두기’는 일상의 회복을 위한 임시적 조처인가, 아니면 인류 생존을 위해 ‘거리두기’ 속의 삶의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인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의 빠른 회복을
2021년 7월 여름. 대한민국은 UN회원국의 만장일치 합의로 명실상부한 선진국임을 인정받았다고 발표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한 것이다. 정부는 역사적 이정표라고 홍보에 분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차별이 만연화 된 사회구조에서 발생되는 인권 문제로 무거운 부채감 속에 여전히 살고 있다.뉴스에서는 연일 계층화된 사회에서 빈곤으로 인한 죽음이 보도되고, 군대에서조차 낮은 계급이나 소수자들이 인권유린을 감당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물리학자라고 평가되는 리처드 파인만은 1965년 빛과 전자의 상호작용을 도식화한 양자전기역학 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1~2학년생을 위한 기초 물리학 강의를 책으로 엮은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는 전 세계 물리학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전설의 책이다.필자가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들었던 것은 ‘나는 원소인가’라는 글이다. 글 내용은 인간이나 돌, 쥐의 꼬리, 파리의 뒷다리, 빗물 등 모든 것이 전부 원소라는 기본 단위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파리의 다리가 언제든 원소로
대한민국의 단일민족 신화는 깨진 지 오래다. 고인류에 대한 DNA 추적 기술 발달로 한반도에 처음 국가가 시작될 때부터 이미 남방과 북방의 민족 혼성이 이루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 되었다. 문헌상의 기록을 통해서도 해상과 육로를 통해 ‘바깥’의 사람들이 우리의 ‘안’에 스며들어와 지금의 한반도인을 형성해 왔음이 확인되고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19세기 유럽에서 형성된 것이며, ‘민족주의’ 또한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자민족의 우월성과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을 내포하게 된 이념이므로 코스모폴리탄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초파일 오전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다. 부처님오신날 정갈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곳은 여느 날과 달리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가 이발을 시작했을 때는, TV에서 조계사 초파일 행사를 중계하고 있었다. 이발하는 중에 갑자기 그 나이든 이발사가 푸념처럼 말했다.“알아듣기 쉽게 하면 좋을텐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요.” “좀 알아들을 수 있게 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듣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답답해서 하는 말입니다.” “저게 어느 나라 말이예요.”그때 TV에선 ‘반야심경
우리나라 국가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 2018∼2020년 평균 국가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5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35위로, 우리나라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그리스(5.72점)와 터키(4.95점)뿐이다. 방사능 오염과 방출문제 등으로 국제적 질타를 받고 있는 일본마저 5.94점을 받아 우리나라를 앞섰다. 우리나라 경제는 OECD 국가 중 10위로서 경제대국이다. 그런데 아직
얼마 전 젊은 불자 한 분이 일상생활 속에서 종교의 표현문제로 겪은 어려움을 상담한 적이 있다. 아파트 어린이집 어머니들의 모임이 있는데 구성원들 또한 다들 비슷한 연령대이고 서로 아이를 함께 돌봐주기도 하고 생활의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해서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난감한 문제는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이 자신에게 칭찬이나 고마움을 표현할 때 “하나님, 이렇게 좋은 분을 저희에게 보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 아멘”이라며 여럿이
지난 몇 주 우리 사회는 한강에서 사망한 한 전도유망한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많은 이들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애도와 함께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시기에 보도되었으나 이내 포털 대문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또 한 명의 젊은 죽음은 크게 기억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이의 빈소에 대통령이 몸소 방문해 조문을 했음에도 이 또한 단발의 기사로만 보도되었던 그 죽음은.기사에 공개되었으니 여기에서도 그이의 이름과 신상을 밝히겠다. 이선호씨. 1998년생 올해 나이 23살. 대학 3학년. 등록금 마련을 위해 평택항 부두 야적
오월이면 무엇보다 초파일의 연등 축제를 생각하게 된다. 오방색으로 화려하게 장엄한 등의 축제는 봄의 꽃잔치와 어우러져 생명의 약동을 축복한다. 온갖 생명이 저마다의 향기를 뽐내며 법계를 장엄하지 않는가? 모든 생명은 행복하라, 모든 생명은 자유로워라. 어떤 것이든 생명 그 자체는 경이롭고 존엄하지 않은가? 연등을 꾸미는 오방색이란 온 우주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오방색에 나의 주체적 색깔을 더하면 시방세계를 상징하는 색깔이 된다.하지만 금년의 초파일 연등 행사도 간단하게 치러야 한다고 한다. 오방색으로 서울의 밤하늘을 축복하는 일도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붓다의 삶과 길을 생각해본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붓다처럼 사는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붓다같이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는가. 깨달음과 진리만 추구하며 관념적으로 사는 것이 붓다 같은 삶인가, 아니면 ‘낡은 수레바퀴’가 되어서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온몸으로 헌신하고 자비를 행하며 실천적으로 사는 것이 붓다 같은 삶인가.며칠 전, 훈훈한 뉴스 하나가 가슴을 적시고 지나갔다. 5월4일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뒤, 뇌사 판정을 받은 20대 여성이 인하대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말기환자 4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았대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다시 그 사람을 용서하냐고요!”이것은 영화 ‘밀양’에서 아들을 유괴 살해한 범인을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앙심으로 용서해 주려고 찾아갔다가 오히려 범인의 예상 밖의 말에 여주인공이 절규하는 대사이다. 이 장면에서 범인은 “하나님이 이 죄 많은 놈한테 손 내밀어 주시고, 그 앞에 엎드려서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살고 있다고 마치 성자처럼 말한다. 용서라는 단어를 이 영화에서만큼 머리가 아니
퀘이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낯선 이에게 건네받은 노트북의 화면에서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과거의 자신이라는 자가 ‘미래의 나에게’라며 현재의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네가 아는 너는 네가 아니라고. 나인 너는 독재자의 하수인이었으나 이제 잘못을 깨닫고 반군이 되었으니 독재자를 처치하는 것이 나이자 너의 임무라고. 존재하지 않는 기억으로 갖은 난관을 뚫고 만난 반군의 두목은 그에게 말했다.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서 괴로운가? 하지만 그대를 규정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행동이다.”영화 ‘토탈 리콜’(1990)의 장면이다
꽃샘 추위처럼 정치 바람은 지나갔다. 어느 때보다 폭풍우와 거친 회오리를 동반했다. 이제 지나간 흔적을 정리하는 일만 남았다. 그렇지만 이런 정치 폭풍이 지날 때마다 씁쓸한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불교적 신념과 가치를 공유하거나 지향하지 않는 사람들이 불교행사의 앞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다. 더구나 그런 일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스님과 신도들의 모습을 보면 한국불교의 현실과 잠재된 DNA를 연상하게 된다. 새삼스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신념과 세속적 가치의 만남과 어울림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특히 신도를 팔아 상응
‘미얀마 사태’에 관한 글을 또 써야하는 마음이 퍽 참담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몸소 겪은 세대이기에 그 마음은 더욱 참괴하다. 전쟁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그렇게 ‘막’ 대하지는 않는다. 전범 재판이 두려우므로. 동물에게조차 동물권이 있다. 하지만 지금 미얀마 국민에겐 법도 없고 인권도 없다. 오직 (짐승만도 못한) 무참한 살육과 도륙만 있을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인간이 망각의 존재’라는 것이다. 불과 2년 전(2019년), 중국으로의 범죄인 송환법 철폐 등에 반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벌인 홍콩 민주화 시위(10명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