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가 제각기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을 갖고 있다. 어떤 이는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을, 어떤 이는 초등학교 입학식, 또 대학에 합격했을 때, 결혼식 등 저마다의 아름다운 순간을 추억하며 살고 있다. 그런 여러 순간들 중 누구나 ‘아~ ’하며 동의하는 순간, 하지만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것은 엄마가 사랑 가득 담아 아기를 안고 자신의 젖을 먹이고 있는 순간이 아닐까? 요즘도 그런 사진을 보면 아름다움을 넘어서 어떤 성스러움,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 우리네 인간의 감정이다. 약간은 생뚱맞은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은 얼마 전 나의 오랜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사진 때문이다. 많은 사진 중 첫째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
장 용 철 윤이상평화재단 사무처장 체계적인 폐사지 보존 대책이 절실하다. 전통사찰보존법과 문화재보존법 틈새에 끼여 한국불교의 침향(沈香), 오천년의 그루터기인 폐사지가 갈수록 풍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총체적인 현황조사가 없어 정확한 수치조차 파악이 어렵지만, 전국에는 약 2000여 개의 폐사지가 산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사적지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는 곳은 불과 30여 곳. 시도 기념물로 제정되어 겨우 유적지 보호 울타리에 들어 온 것을 포함해도 50여 곳을 넘지 않는다. 폐사지 보존 대책이 시급한 것은 전체적인 현황조사도 서둘러야 하지만, 관리의 주체가 모호하여 복원을 꿈꾸는 불교계와 지방정부 부처 사이에 충돌 현장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서산 보원사지가 그러하고,
박 찬 희 중앙대학교 교수 사람은 본능적으로 괴로운 것을 피하고 즐거운 것을 찾습니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금욕과 고행은 많은 종교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석가모니 부처의 고행을 보면 다양한 수행자들이 저마다의 고행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 석가모니 부처님이 고행을 그치고 타랍죽을 받아 드시는 모습을 보고 몰래 숨어서 따르던 사람들이 실망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저는 고행에 대해 감히 논할 만큼 잘 알지도 못하고 충분한 체험도 없습니다만, 이 장면에서는 고행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 고행이 오래 견디기 시합이 아닌 바에야 고행을 그친 석가모니 부처를 탓할 일은 아닌데, 왜 그분들은 실망했을까요? 한
윤 명 철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우리네 승려들은 옛날부터 바다를 건너다녔다. 고구려의 혜자나 담징은 망망대해의 동해를 항해하여 일본열도에 법의 씨앗들을 뿌렸다. 백제의 겸익은 뱃길로 인도를 갔다. 신라나 가야의 승려들도 마찬가지로 뱃길로 법을 구하러 다녔다. 이러한 인연들이 모여모여 통일신라시대에는 정말 많은 승려들이 바다를 항해하였다. 이때 당나라와 일본을 오고가는 승려들을 보살피고, 태워다주고, 또 함께 불법을 널리 편 사람이 장보고다. 장보고는 790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며, 어릴 때의 이름은 궁복(弓福) 또는 궁파(弓巴)라고 하였고 나중에 한자로 장고고(張保皐)라 하였는데, 활을 잘 쏘았던 것 같다. 아졸(牙卒)로 시작한 그는 공을 세워 30세 무렵에는 서주의 무령군(武寧軍)의 군중소
장 용 철 윤이상평화재단 사무처장 유사종교(類似宗敎) 행위가 용인될 수 없듯이 ‘유사복지(類似福祉)’ 행위도 용납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최근 아동학대 혐의로 ‘불교사회복지 10년’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한 수경사 사태도 그동안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한 축을 떠맡아 온 종교계의 사회복지가 더 이상 ‘유사복지’형태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종교는 관행적으로 복지활동을 펼쳐왔다. 그것은 종교 존립의 대의명분인 동시에 국가와 사회의 요청이기도 하였다. 사회복지정책 도입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책임져야할 상당부분의 민생복지를 종교계가 도맡아 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에도 정부의 턱없이 부족한 사회복지 예산의 일정부분을 ‘위탁체’ 또는 ‘참여복지’라
이 은 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많은 사건사고 중 그 어느 것보다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건이 있다. 10여년을 본인과 자녀를 상습적으로 폭행해온 남편을 살해한 것이다. 한두 대 맞는 것으로 끝나는 단순 폭력이 아니라 십수 년 지속되어온 끔찍한 폭력 앞에 자신과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이다. 다른 한 사건은 40대 중반의 이혼한 아들이 매일 술을 마시며 어머니를 폭행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한 사건이다. 이제 어머니는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된 것이다. 이처럼 가정폭력은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껴야할 대상에 대한 폭력인 만큼 그 결과 생기는 심신의 상처는 평생토록 남을 만큼 크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받은 가장이 중심이 되는 가부장중
박 찬 희 중앙대 겸임교수 TV로 운동 경기를 보면 선수들 사이에 실력 차이가 많이 나 보입니다. 못하는 선수를 보면 ‘내가 해도 저만큼은 하겠다’는 생각도 들지요. 하지만,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보통 사람들은 어림도 없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수련한 실력인데다 직업이니 만큼 죽기 살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인과는 하늘과 땅 차이지요. TV로 볼 때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막상 같이 해보면 엄청납니다. 주먹깨나 쓴다는 사람들도 프로 권투 선수와 링에 서면 3분 내내 몸에 손 한번 스치기가 힘들고, 동네 테니스 챔피언이 수준급 선수와 붙으면 한 점 따는 것이 힘듭니다. 남들 얘기만이 아니라 제 경험이기도 합니다. 군대 다녀온 분들은 축구 선수 생활 조금 한 사람이 경기장을 혼자 누비는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제도(釣魚島) 분쟁을 일으키고,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일본 또한 역사왜곡을 일삼고 있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쟁의 전초전이다. 궁극적으로는 통일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몇몇 지역을 포함하는 정치적이 공동체가 만들어지겠지만, 그 중간단계에서 우리는 생존전략을 찾고 실행해야 한다. 그 대안의 하나로서 노무현 정부는 최근에 소위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장하고 있다. 동북아 균형자 역할은 기본적으로 이상적인 발상이나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고, 특히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문제점이 심각하다. 우리는 균형자역할을 하겠다고 하는 지역의 시대적인 상황이 터무니없이 불리하다. 중국은 중화제국주의의 실현, 중화
한국은 달라이라마가 올 수 없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고이즈미 일본총리도 오고, 북녘의 정치지도자들도 오고가는데, 유독 세계불자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불리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도자 달라이라마만은 올 수 없는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올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티베트의 분리 독립운동을 반대하는 중국이 그의 방한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높고, 북핵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중국의 도움이 필수적인 우리 정부로서는 중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입김이 유달리 우리에게만 집중된 것은 아닐 텐데 심약한 우리 정부만이 중국의 요청을 거절치 못하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방한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새삼 정부의 비자주적이고,
이 은 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지난 5월 중순, 필자가 대륙횡단철도여행의 막바지에 달했을 때였다. 러시아의 한 호텔에서 독일방송을 시청하던 중 고국의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었다. 바로, 황우석 박사였다. 현대과학의 쾌거로써 그의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 뉴스를 비중 있게 다뤘다. 머나먼 타국에서 보는 우리나라의 기분 좋은 소식은 언제나처럼 여행의 피로를 시원스레 날려버리는 상쾌한 것이었다. 이처럼 전 세계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할 만큼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되는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이다. 온라인상에선 ‘이순신 이후 최고의 민족영웅’이라는 말까지 회자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동안 일본의 역사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등 대내외적으로 손상 입
박 찬 희 중앙대학교 교수 저는 독실한 불자는 못됩니다. 남들 앞에서 감히 수행과 명상을 이야기할 만큼 잘 알지도 못합니다. 애써 마음 속의 자신을 돌아보려고 애쓰는 평범한 사람일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업과 경제에 대한 평범한 생각들을 어린이 불자들도 아는 가르침에 비추어 한번 더 되새겨보는 정도일 것입니다. 난감함과 조심스러움을 기억하면서 오늘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이제 겨우 40이 좀 넘었는데, 어어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여러 곳에서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늘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원래 일하던 분들에게는 일상이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늘 하던 일을 늘 마주 보는 사람들과 하다 보니
윤 명 철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동해라는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 돌섬이 홀로 있다. 그래서 석도라고도 부르고, 독도라는 이름도 있다. 그 이전에는 武陵島 三峯島 子山島 干山島 라는 이름들이 있었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겨댄다. 늘 그래왔지만, 이번에는 심상찮다. 어업환경에 열악해지면서 시마네현의 어부들이 농성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지방정부의 차원이라며 발뺌을 하던 일본정부가 주한 일본대사의 공적인 발언을 통해서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주장하고, 정치인들은 이에 발맞추는 언동을 하고 있다. 또 늘 그랬듯이 한국은 파르르 떨며 부산을 떤다. 하지만 전과 달리 국민들의 반응에 맡겨놓는 태도를 벗어나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에 언급하였고, 정부차원에서도 각 부서가 경쟁적으로 강한 태도를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