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달라이라마가 올 수 없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고이즈미 일본총리도 오고, 북녘의 정치지도자들도 오고가는데, 유독 세계불자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불리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도자 달라이라마만은 올 수 없는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올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티베트의 분리 독립운동을 반대하는 중국이 그의 방한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높고, 북핵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중국의 도움이 필수적인 우리 정부로서는 중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입김이 유달리 우리에게만 집중된 것은 아닐 텐데 심약한 우리 정부만이 중국의 요청을 거절치 못하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방한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새삼 정부의 비자주적이고,
이 은 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지난 5월 중순, 필자가 대륙횡단철도여행의 막바지에 달했을 때였다. 러시아의 한 호텔에서 독일방송을 시청하던 중 고국의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었다. 바로, 황우석 박사였다. 현대과학의 쾌거로써 그의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 뉴스를 비중 있게 다뤘다. 머나먼 타국에서 보는 우리나라의 기분 좋은 소식은 언제나처럼 여행의 피로를 시원스레 날려버리는 상쾌한 것이었다. 이처럼 전 세계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할 만큼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되는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이다. 온라인상에선 ‘이순신 이후 최고의 민족영웅’이라는 말까지 회자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동안 일본의 역사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등 대내외적으로 손상 입
박 찬 희 중앙대학교 교수 저는 독실한 불자는 못됩니다. 남들 앞에서 감히 수행과 명상을 이야기할 만큼 잘 알지도 못합니다. 애써 마음 속의 자신을 돌아보려고 애쓰는 평범한 사람일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업과 경제에 대한 평범한 생각들을 어린이 불자들도 아는 가르침에 비추어 한번 더 되새겨보는 정도일 것입니다. 난감함과 조심스러움을 기억하면서 오늘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이제 겨우 40이 좀 넘었는데, 어어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여러 곳에서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늘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원래 일하던 분들에게는 일상이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늘 하던 일을 늘 마주 보는 사람들과 하다 보니
윤 명 철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동해라는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 돌섬이 홀로 있다. 그래서 석도라고도 부르고, 독도라는 이름도 있다. 그 이전에는 武陵島 三峯島 子山島 干山島 라는 이름들이 있었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겨댄다. 늘 그래왔지만, 이번에는 심상찮다. 어업환경에 열악해지면서 시마네현의 어부들이 농성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지방정부의 차원이라며 발뺌을 하던 일본정부가 주한 일본대사의 공적인 발언을 통해서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주장하고, 정치인들은 이에 발맞추는 언동을 하고 있다. 또 늘 그랬듯이 한국은 파르르 떨며 부산을 떤다. 하지만 전과 달리 국민들의 반응에 맡겨놓는 태도를 벗어나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에 언급하였고, 정부차원에서도 각 부서가 경쟁적으로 강한 태도를 발표
손 기 원 지혜경영연구소 대표 최근 어느 단체가 근로자 의식조사를 한 결과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절반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심리적 압박 때문에 자녀의 희망 직업은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이나 공무원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10년 전만해도 웬만한 대학을 나오면 취업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하지 못해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취업을 한 사람들조차 직장을 유지하는 일에 불안을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그 원인이 어디 있는지는 자명한 일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무상의 진리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5년쯤
효 림 스님 실천불교 이사 시하 스님의 글을 읽고 무척 반갑고 기뻤습니다. 스님께서 매우 적절한 지적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거듭하여 반갑고 고맙습니다. 우선 먼저 스님의 글에 대한 감사와 함께 다시 한 번 사과부터 드립니다. 지난번 나의 글은 그 표현이 과격했었습니다. 그 점은 사과를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더불어 스님께 부탁을 드린다면 내가 왜 그렇게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였는가 하는 이면의 의미까지를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스님의 글을 읽고 이미 스님께서는 그 이면의 의미를 알고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스님을 위시한 많은 스님들이 그 이면의 의미를 아셨기 때문에 더욱 감사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나는 오래전부터 우리 교단 내에서 비구니스님의 위상이 높아지고
박남준 시인 한 이틀 옷깃을 여미게 했던 꽃샘추위도 지났다. 이제 남쪽엔 한창 매화꽃 향기가 절정이다. 꽃구경을 오겠다고, 지나는 길에 차나 한잔 마시자며 여기저기 전화연락이 끊이지 않는다. 어찌 사람들만이 겠는가. 꽃 그늘아래 들어서면 윙윙거리는 벌들이며 나풀거리는 나비와 무당벌레와 같은 작은 날벌레들, 이 작은 것들이 벌써 깨어나다니 비로소 봄임을 알겠다. 곧이어 매화꽃을 뒤로 노란 산수유 꽃들이 햇병아리처럼 눈부신 단장을 시작할 것이고 개나리, 진달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나 세상에서 살며 부대끼며 일어난 무겁고 우중충한 마음의 빗장을 조금쯤은 환히 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대자연 속 변함없이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어 누군가의 허기를 채워주고 거름으로 돌아가는 한 그루의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는 옛날로 치면 좌의정과 우의정에 해당하는 직책일 것이다. 지난 1월에는 우의정이 여러 가지 흠결사항과 자식의 부정입학 의혹으로 인해 1개월 만에 낙마하더니, 이번에는 좌의정이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표가 수리 되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 때마다 ‘청빈한 인물’이라거나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로 감싸다가 결국 여론에 밀려 당사자가 스스로 사표를 쓰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좌의정의 부인이 허위매매계약서를 만들어 부동산투기를 하면서, 백성들을 향해 ‘투기와의 전쟁’을 하겠다고 외치니 백성들의 분노를 살수밖에 없다. 한 가정의 부모도 가족구성원들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모범을 보임으로써 신뢰를 쌓아간다. 하물며 한 나라의 리더들에게 있어서 약속과 신뢰의 중요성에 대하여 더 말
최 진 옥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짐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고 그에 따라 여성의 역할 또한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원천은 가정에서의 차별이 해소되고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수가 늘어나는데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들을 자주 볼 수 있다는 데서 드러나고 있다. 활동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각종 스포츠 경기에서의 눈부신 활약, 고위직 공무원으로의 진출, 최고 경영자로서의 성과, 사관학교와 경찰 진출 등 오래 동안 눌려온 여성의 잠재능력이 한꺼번에 분출되기라도 하는 듯이 얼마 전까지 생각하기 어려웠던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효 림 스님 실천불교 이사 지난번에 비구니스님들은 종단 내에서 참정권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참정권이 없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없는 것이므로, 비구니스님들은 인권이 없다는 매우 모욕적인 말을 했다. 사실 이런 말을 하면 최소한도 비구니스님들로부터 무슨 반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아무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역시 비구니스님들은 인권에 대해무지하고 그러므로 또한 인격이 없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다. 비구니스님들은 아직은 종단 내에서 승려로서 또는 종단의 구성원으로서 기본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본다. 한마디로 인격이 없는 무지한 집단에 불과한 것이다. 이왕에 헌법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번에도 헌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미래학자인 멜린다 데이비스는 ‘욕망의 진화’(The New Culture of Desire)라는 그의 저서에서 우리의 미래에 관해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원초적 욕망은 육체와 직결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원초적 욕망은 ‘내 마음을 잃지 않는 것’, ‘내면의 기쁨’, ‘안전하고 행복한 가정’, ‘마음의 평화’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고, 그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스릴 줄 알며,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것, 그리하여 삶과 죽음을 뛰어 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것, 수천 년 전부터 수행자들은 그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밤낮으로 정진해 왔다. 그러나 이제 보통 사람들도 마음공부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대부분의
인류 역사상 인간의 삶은 오래 동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아왔다. 지금, 여기서 영위되는 삶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이 대부분 인간의 삶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지어 보지만 어느 것 하나도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없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라면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시간의 연속성도 과거 현재 미래로 인식하면 왠지 막연하게 느껴진다. 인과 법즉(因果法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오늘에 매여 있다. 어제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 없는 내일이 없건만 어제를 돌아보지 못하고 내일을 대비하는데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역사를 통해서 귀감을 삼으려는 노력과 각종 통계지수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 하지만 그저 오늘 하루 삶이 고단한 사람들에게는 감지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