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100년의 세월 속에서 ‘큰 판’이 무너지고 새로 세워짐을 두 번이나 겪어야 했다. 긴 세월 전제왕권이 이 땅을 지배했다. 체제의 교학인 성리학과, 그 학문으로 무장된 사대부들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큰 판’이 흔들렸고 끝내 무너졌다. 일제는 식민지를 경영했고 이 세상을 봉건에서 근대로 개화시키겠다고 자임했다. 호구조사를 하고 땅을 측량하여 지번을 부여하는 등 근대적 각종 제도를 도입했다. 이렇게 ‘큰 판’이 한 번 흔들렸다.세계열강들의 식민지 전쟁도 원자폭탄 두 방에 끝이 났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9
지난 2015년 인구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불교와 천도교는 그 교세가 비슷하다. 그런데 원불교는 ‘불교-개신교-가톨릭’에 이은 제4대 종교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정부에서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며, 천도교 쪽에서도 아무런 이의 제기를 하지 않고 있어서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이 상태가 앞으로 오랜 동안 굳어질 것 같다.그런데 원불교가 언제, 어떻게 해서 ‘4대 종교’의 틀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여러 차례 국장·국민장이 치러졌는데, 2006년 10월 최규하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이르기까지
지난 연재에서 부처님의 출현은 신(神)중심적 세계로부터 인간의 행위 주체성을 강조하는 인문적 세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종교행위의 중심이 ‘제사’로부터 ‘수행’으로 전환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며 나아가 바라문교를 공고히 뒷받침하고 있던 사제주의를 폐기하는 일이었습니다.사제주의란 신과 인간을 매개하고 신을 대리한다는 사제의 종교적 권위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인도 사회에서 바라문은 혈통에 의한 세습적 사제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높은 영적·정신적 상태를 가리키는 의미로 ‘바라문’이란 용어를 사용
‘노는 입에 염불한다’ ‘까마귀도 염불한다’ 등 옛말이 있다. 다소 해학적인 표현이지만 염불에 대한 몇 가지 간과할 수 없는 특성을 내포한다. 권고성과 복덕성, 용이성과 대중성이다. 먼저 권고성은 사람들에게 염불할 것을 강하게 권유하고 있다는 것이고, 복덕성은 염불을 하면 갖가지 복과 공덕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용이성은 염불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이며, 대중성은 남녀노소 유식 무식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누구나 한다는 것이다.날아다니는 까마귀가 염불할 정도이니 염불이 얼마나 일반적이고 수승한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觀音竹繞菩提路 先超苦海有慈航관음죽요보리로 선초고해유자항羅漢松圍般若臺 立絶俗塵憑慧劍나한송위반야대 입절속진빙혜검경북 문경 대승사 응진전에 걸린 주련이다. 그러나 순서가 틀렸다고 볼 수있다. 위의 문장에서 상련은 ‘관음죽요보리로’이고, 하련으로는 ‘나한송위반야대’가 대구되는 시문이다. 그리고 ‘입절속진빙혜검’에 대구되는 하련은 ‘선초고해유자항’이다. 참고로 예천 서악사의 나한전 주련은 대승사 응진전 주련과 같은 필체다. 대승사 주련의 글씨를 번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련의 순서는 바르게 걸려있다. 그러므로 이를 정리해 바로 잡으면
요즘 자주 쓰이는 디톡스(detox)는 해독을 뜻하는 말로 신체에 독소를 빼는 제독요법이라 할 수 있다. 유해물질이 몸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이미 쌓여있는 독소를 오장육부나 피부, 운기 등으로 배출하는 방법을 말한다.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몸에 이로운 일을 하는 것과 둘째는 몸에 해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디톡스는 몸에 해로운 일을 다루는 분야다. 열 가지 이로운 것도 좋지만 한 가지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기도 하다.문명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독소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먹는 것
승이 영봉(靈峰)의 현영화상(顯英和尚)에게 물었다. “제불향상인(諸佛向上人)이란 무엇입니까.” 영봉이 말했다. “백운이 청산을 덮는다.” 승이 물었다. “그것은 화상께서 사람 교화하는 방식 아닙니까.” 영봉이 말했다. “작은 샘물이 흘러 강물을 이룬다.”영봉현영 화상의 법맥은 명교관(明教寬)-복창중선(福昌重善)-영봉현영(靈峰顯英)으로 청원행사의 제9세에 해당하는데 전기는 미상이다. 본 문답에서는 불향상인(佛向上人)의 면모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에 주안점이 있다. 부처의 경지는 불법수행의 궁극적인 이상이지만 그러한 부처의 경지에도
고대 인도 사회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실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없다. 지금 우리 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계급을 나누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지금도 암묵적 계급이 존재한다면, 고대 사회에서의 계급제도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 만약 계급제도를 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혁명에 다름 아니며, 나아가서는 사회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극형에 처해졌을 것이다.부처님은 2500여년전, 계급사회였던 인도사회에서 계급을 부정했던 분이다.
2005년 인구통계조사 결과 10년 동안 개신교도 숫자는 1.6% 감소하고 가톨릭교도는 74.4% 증가한 것으로 밝혀져 개신교계가 충격에 빠진 뒤 이를 진단하는 세미나 ‘2005 인구주택총조사 그 이후,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톨릭 성장’에서 ‘가톨릭신자의 괄목할 만한 증가와 그 요인’을 발표한 오경환 신부의 발언이 내 머리에 오래 남아 있다. 불교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일상생활 중에 관찰하면서 각 종교에 대하여 호감이나 반감을 갖게 되는 것이고, 아무리 신자들이 열심히 선교해도 호감을 갖는 사람만이 입
불교의 최대 장점은 자유와 자율을 중시한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혹자는 자유와 자율은 불교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최대 약점으로도 평가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 인도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한 장점은 생각할 수 없다. 출가자의 나이나 성별, 신분을 논하지 않았다. 누구나 부처님의 품 안에서 자유롭게 수행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수행자가 지켜야 할 규범은 자율적으로 지켜야 했다. 계율이 성립하고 교단이 발전하면서 출가의 자유에는 제동이 걸렸다. 누구나 원하면 출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출가를 금지하는 예
부여 무량사 금동아미타불좌상은 도난된지 28년 만에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무량사 5층석탑에서 발견된 조선 초기의 아미타삼존불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1989년 7월13일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에 있는 무량사 주지실에 복면을 쓴 강도 두 명이 침입했다. 이들은 주지스님의 얼굴을 가리고 손과 발을 테이프로 묶어 움직일 수 없게 한 뒤 산소용접기로 금고를 해체해 보관중이었던 금동아미타삼존불상과 금동보살좌상, 청동사리구, 청동합, 보살문원판, 동경 등 여덟 점을 모두 훔쳐갔다. 다행히 아미타삼존불상
붓다의 자비(慈悲)는 원래 따뜻한 마음으로 포근히 품어주는 덕이 아니라 집착을 일으키지 않도록 아무 감정의 개입이 없는 상태로 행해지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대한 배려라는 사실이 정(情) 많은 불자들을 종종 당황스럽게 만든다. 아니, 자비가 ‘무정(無情)한 배려’라니, 얼토당토않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붓다의 자비는 감정이나 집착 없이 행해지는 타인의 번뇌에 대한 배려가 맞다.한편 ‘자선(慈善)’이라고 번역되는 영어의 ‘charity’가 철학의 의미론과 인식론에서 논하는 ‘principle of charity’에서는 엉뚱하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