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찰은 자연과 역사, 그리고, 정신적인 귀의처로서 이 시대 최후의 보루가 되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종교적인 의미로서만이 아니라 양호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적들을 간직한 이 시대의 유산자원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오늘날의 사찰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많은 것들을 제공해 줄 수 있으며, 몇가지 가치와 중요성을 우리들은 알아야 한다. 그 첫째가 오늘날의 사찰은 종교적 성지라는 점이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 불교인들의 수행처이자 생활공간으로서 수행과 기도, 법회와 포교가 이루어지는 종교적 성지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많은 사찰지역이 관광지가 되어 가고 있다. 수행공간과 탐방공간이 구분되지 않고, 대부분이 개방되어 무분별한 탐방객들에 의해 수행환경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종교적 성지로서의
현대의 디지털 문화가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록과 보존의 형태, 그리고 그것이 유통되는 방식을 바꾸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일한 내용을 얼마든지 복제할 수도 있으며 또 그것을 빠르게 유통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문자적인 기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3차원의 영상까지 가능하며, 미래는 영상이 아니라 ‘실재’의 복사와 전송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화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유지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포교의 측면에서도 의미있는 기능을 갖을 수 있다. 불교계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 정보는 기록문서나 유물과 같은 유형문화재 뿐만 아니라, 의식과 의례와 같은 무형문화재가 수없이 많다. 고려대장경이나 한국불교전서, 또는 한글대장경과 같이 불교계의 일각에서 기획·진
세간의 삶은 언제나 어수선하다. 그 풍경을 전하는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 “가뭄에 웬 파업?”이라는 큼직한 신문 표제들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가뭄으로 온 나라가 목타고 있음에도 항공대란이 일어났다고 아우성이다. 국민 건강을 볼모로 병원 파업이 벌어졌다는 부르대기도 쏟아진다. ‘집단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질타도 이어진다. 노사갈등 부정적 현상 아니다 노사 양쪽의 사이에 서서 두 당사자들을 모두 나무라는 것이 중도(中道)이거나 중용(中庸)의 미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냉철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도나 중용이 한낱 양시양비(兩是兩非)론이나 기회주의적 처신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먼저 노사갈등에 대한
한국의 불교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각종 법회와 행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살아있는 자를 위한 법회보다 죽은 자를 위한 행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사찰 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49재(齋)를 비롯한 각종 제사와 우란분절를 기해 봉행되는 천도재와 특별히 마련되는 영산재와 수륙재도 모두 죽은 자를 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법식에도 맞지 않는 지장보살이 본존불의 협시보살로 봉안되고, 위패를 모신 영단(靈壇)이 법당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엄격히 말해서 영단은 법당 안에 들어와서는 안되는 것이다. 중국의 사원에서도 대부분 위패는 별도의 건물인 영각(靈閣)에 봉안하고 있다. 이러한 영각은 전체 사원의 구조에서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리고 남방불교의 사원에서는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지 보름을 지나고 있다. 전쟁의 동기부터 그리 객관적이지 못하더니 평화를 갈구하는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전쟁으로 인해 저마다 분열하고 긴장의 국면을 맞고 있다.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명분도 약하고 결국엔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통치자의 어리석음은 선량한 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다. 연일 언론을 통해 쏟아지는 전쟁의 정보들은 이미 우리도 전쟁의 한 복판에 서있음을 부정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유도 모르는 포탄의 파편에 신음하는 어린이의 사진들이 공개되면서 더욱 전쟁이 빨리 끝나야한다는 당위성에 공감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할 ‘어린이’를 가공할 파괴력의 원천인 포탄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범죄일 수 밖에 없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일수록 부처님의
현대에 들어 불교학 연구의 한 경향은 기존 전문가 집단에 한하여 이루어진 불교학 연구독점의 탈피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문적으로 불교 공부를 하려면 불교학 관련 대학이나 강원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배울 수 있는 곳도, 방법도, 학습자료도 다양해 졌다. 인터넷을 통해 공부에 필요한 중요한 원전들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중요 개념에 대한 세계 각지의 전문학자나 수행자들의 설명까지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공부환경의 덕택인지 국내외적으로 다른 전공을 하면서 불교를 공부하는 새로운 전문가 집단, 즉 비전공출신 불교학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탈독점화된 불교학 연구의 한 특징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전공출신
하지만 부처님의 말씀이 바로 꽃피기 위해서는 교계 스스로 힘없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천에 옮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최근 불교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종교로 꼽히는 두 종교의 사회복지법인들의 부끄러운 문제가 사회문제로 부각된 적이 있다. 하나는 세계적인 청년 조직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빈민 구호단체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공히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정부의 보조금과 일반인들의 후원금을 함부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다른 종교에서는 많은 보조금을 정부로부터 받아서 사용하는데 불교계가 정부로부터 받아오는 사회 복지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불교도들 역시 똑같이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계종을 비롯한 모든 불교 종단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물의 하나인 바퀴를 어떤 바빌로니아의 귀족이 독점 생산하였다고 가정해보자. 그 귀족은 한 때 그 바퀴를 단 마차 위에서 영달을 누렸을 것이나, 인류의 대부분은 아직도 그 바퀴를 혐오하며 수레나 끌고 있을 것이다. 요즘 인터넷 서핑을 할수록 공허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인터넷의 발견이 바퀴의 발명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바퀴 시대에는 없었던 정보 소유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불과 2, 3년 전만해도 무료로 운영되던 컨텐츠들은 유료화 되기 시작했고 유익했던 개인 연구자들의 홈페이지는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마음대로 논문을 다운받았던 외국의 저널들은 불필요한 접속수를 막고 정보 매매율을 놓이기 위해 회원제나 유료제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쓸만한 정보들이 방화벽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4苦)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천리(天理)이고 대자연의 섭리요, 불변의 가치이다. 이 중에서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는 것의 상대적 개념이고, 늙음은 젊음의 대칭개념이며, 신병의 고통은 건강의 쇠약으로 형성되는 증후이다. 사회학의 구조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만약 인간이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면 사회는 재생산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정체와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흐름은 오히려 사회를 진화시킨다는 결과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노인은 '사회문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늘날의 노인들은 이 나라의 건국과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역사의 주역들이다. 그러면 현재의 노인에 대한 국가의 복지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 나라
2002년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를 기념해서 세계 최대 불교 학술회의가 내년에 서울에서 열린다고 한다. 이 학술회의는 일본과의 공동 개최로, 이틀 동안 10개 분과 250여명의 발표자가 참여하는 유례없는 초대형 학술회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학술회의를 통해서 ‘한국불교의 세계화의 초석’을 마련하겠다는 한국 주최측의 의도는 기대와 동시에 기본적인 몇 가지 점을 생각하게 한다. 학술회의는 말 그대로 학술적인 주제에 대해 토의하기 위한 자리이다. 그래서 학술회의는 보통 특정주제에 대한 발표와 이 주제에 대한 공동탐구의 취지를 갖는다. 그런데 이러한 공동탐구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모든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역사성 내지는 연속성을 전제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번 불교 학술회
‘군 대체복무제 추진’에 대한 종교계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관련세미나 장소로 종로성당을 빌려주는 등 내심 찬성에 가까운 제스처를 내보였고, 불교계에는 동국대 조국 교수 등 관련 학자들이 군 입대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할 스님들의 어려움을 처음으로 거론함으로써 무작정 반대할 일만은 아니라는 시각의 단초가 제공된 상태입니다. 다만 개신교계는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의의 성명을 통해 ‘기독교계에서 이단시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위한 제도이므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군 대체복무제에 대한 본지의 심층보도 이후 불교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남의 일로만 여기던 이 문제가 불교계에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또 그에 앞서 인권 문제를 가장
“아아, 돈, 돈! 이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슬픔들이 이 세상을 젖게 하는가!”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외친 탄식이다. 비단 톨스토이만은 아니다. 돈에 대한 경고는 동서고금에 두루 퍼져있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우리 속담은 돈의 부정적 힘을 여실히 깨우쳐 준다. 요컨대 돈은 삶을 병들게 한다는 교훈이다.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 “돈은 삶을 병들게 한다” 최근 미국의 한 의학연구소에 따르면 1달러 짜리 지폐 94%에서 박테리아 등 세균이 우글우글 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책임자는 “1달러 지폐는 널리 사용되고 사용빈도도 높다”며 돈을 통해 병이 번질 위험을 우려했다. 현재 미국에서 돌고 있는 1달러 지폐는 수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