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무상정각을 이루신 뒤에 49년간 8만4천의 법문을 하셨고, 그 가르침은 ‘화엄경’ ‘아함경’ ‘방등경’ ‘반야심경’ ‘법화경’ 등의 경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법문을 교문‧선문‧염불문‧총지문 4종으로 나누는데, 교문은 경‧율‧론 삼장 연구로 간경삼매력을, 선문은 견성성불 조사공안으로 선정삼매력을, 염불문은 구념심행 정토왕생으로 염불삼매력을, 총지문은 밀교진언 상밀상응으로 주문삼매력을 불도 수행의 노정기로 삼아 수행정진을 해 오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조사님들이 도를 이루셨지만 저는 경
얼마 전 법보신문사 앞으로 두툼한 서류봉투 하나가 등기로 전달됐다. 광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한 재소자가 보낸 서류봉투에는 편지지를 모아 책으로 엮은 교정노트가 담겨 있었다.재소자는 동봉한 편지에서 스님과 불자들의 법보시로 매주 법보신문을 받아보고 있다면서 “보내주신 법보신문으로 올 한해도 부처님의 크신 가피를 입었다”며 “15년의 길고 긴 담 안의 삶을 좋은 마음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줘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이어 한 달 전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며 “재앙에 가까운 참사에 옥중에 갇혀 있는 죄인이지만 이렇게라
부처님은 ‘법화경’에서 화택유(火宅喩)를 통해 이 세상이 불난 집이라고 설하신다. 한 장자의 집이 “모두 낡아서 벽과 담은 무너졌고, 기둥뿌리는 썩었으며, 대들보는 기울어져 위태롭게 생겼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불이 나 한창 타고 있었느니라”라고 설하신다. 지금 이 사회와 세계는 불난 집과 다름이 없다. 각종 이념과 사상들은 서로 자신의 것이 옳다며 담장을 치고, 지성과 덕행에서 나오는 권위의 뿌리는 썩어가고 있으며, 정의와 평화의 대들보는 무너지기 직전이다. 욕망의 불길이 이들을 재료 삼아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불법의 위대한 점은
도심포교를 기치로 광주 광산구에 개원한 화엄사 빛고을포교원이 개원 1주년을 맞았다.대한불교조계종 화엄사(주지 덕문 스님) 광주 빛고을포교원(주지 연성 스님)은 11월19일 개원 1주년을 맞아 기념법회를 봉행했다. 법회에는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을 비롯해 24교구본사 선운사 주지 경우, 20교구본사 선암사 주지 대행 대진, 광주불교연합회 수석부회장 도계(소원정사 주지) 스님 등 50여명의 스님들과 전병호 빛고을포교원 신도회장, 장길선 화엄사신도회장, 이범식 광주불교연합회신도회장, 이민수 광주BBS 사장, 이용빈
황금빛 단풍잎이 비처럼 내리는 운문사 은행나무, 학인들은 논강이 끝난 뒤 은행나무로 달려가 ‘잎비’를 발로 흩으며 가을을 만끽한다. 그 은행나무는 이맘때쯤이면 그 장관을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한다. 지금 운문사 도량에는 황금빛보다 더 빛나는 회주 법계명성스님이 계신다. 내가 회주스님을 처음 뵌 것은 1978년 만추의 계절, 은행나무가 찬란한 빛을 내뿜는 10월, 치문 방부생으로서였다. 당시 회주스님께서 1977년 최초로 학장과 주지를 겸직하시게 된 지 얼마 안 된 시기로 운문사 학인들 건사하랴, 도량보수 및 불사를 계획하고 추진하시랴,
忍受井枯魚少水 寧容象逼鼠侵藤인수정고어소수 영용상핍서침등覩玆脆境早修行 勤念彌陀生極樂도자취경조수행 근념미타생극락(물고기가 옹달샘 물이 말라 적어지면 어찌 견딜 것이며/ 설령 코끼리는 등나무를 흔들고 쥐들은 갉아먹는데/ 이런 위태한 지경을 보고 가벼이 여기지 말고 조급히 수행하라./ 부지런히 아미타불 염불하여 극락왕생하리라.)이 주련의 일부는 ‘석가여래행적송(釋迦如來行蹟頌)’ 제2권 불자필람(佛子必覽)과 ‘석문의범(釋門儀範)’ ‘칠중수계의궤(七衆受戒儀軌)’ ‘화엄대례문(華嚴大禮文)’ 등을 통해 서둘러 수행할 것을 경책하는 문구로 자주 거
수대(隋代, 581~618)에 건설된 막고굴 423굴은 서벽 감실에 미륵불을 주존상으로 모시고 있다. 그 위로 이어진 천장부에는 중국의 전통적인 목조건축 형식의 전당이 그려졌다. 전당 안에는 양쪽으로 난 창을 통해 대중들이 운집해 있는 것이 보이고, 중앙에는 각자의 대좌에 마주 앉은 두 인물이 눈에 띈다. 이처럼 건축물 안에 두 인물이 마주 앉은 구도가 낯설지는 않다. 바로 ‘법화경’의 견보탑품을 도상화한 석가·다보 이불병좌상(二佛並坐像)의 예에서 비슷한 구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11회 참조).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
‘법화경’ ‘여래수량품’에 ‘매자작시의 이하령중생 득입무상혜 속성취불신(每自作是意 以何令衆生 得入無上慧 速成就佛身)’이라, 부처님께서 하시는 불사는 오직 어떻게 하면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지혜에 들게 해 부처님 몸을 빨리 이룰 수 있게 하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이며, ‘소작불사 미증잠폐(所作佛事 未曾暫廢)’라, 부처님께서는 속성취불신(速成就佛身)의 불사를 잠시도 그만 둔 적이 없으셨다는 것이다. ‘이하령중생 득입무상혜 속성취불신’의 ‘매자작시의’ 이외에 일체의 모든 생각은 본래 없는 것임을 알게 되니, 참으로 본래 있는 법을 그대
방편업은 민법·형법 등 세속의 법전을 읽으며 살아가는 변호사이지만, 본업은 부처님의 일대사인연이 온전히 담긴 진실법인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를 생각 생각마다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 정진하고 있는 염불불자다. 초등학생시절 내가 왜 이 지구라는 별에 왔는지, 기껏해야 100년도 못 살고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이런 의문은 성장할수록 깊어졌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수능공부에 매진하다가 갑자기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싶어 무작정 휴학하겠다고 부모님께 통보한 적이 있다. 당연
“부처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부산교구 종도 여러분과 일불승(一佛乘)이 되어서 불교 부흥과 법화종단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10월6일 부산 사상구 광명사에서 봉행된 ‘대한불교법화종 부산교구 종무원장 이·취임식’에서 전임 종무원장 상백 스님에 이어 신임 종무원장으로 취임한 광명사 주지 법경 스님이 활동의 포부를 밝혔다. 법경 스님은 “소의경전 ‘법화경’을 봉대하며 큰스님을 잘 모시고 종도 간에 화합하며 불교 중흥과 홍포 그리고 포교 활동에 주력하며 법화종 부산교구 발전에 미력하나마 힘이 될 수 있길 바란다”며 “무거운 소임을
淸淨善根普回向 利益群迷恒不捨청정선근보회향 이익군미항불사悉令一切諸衆生 得成無上照世燈실령일체제중생 득성무상조세등(훌륭한 선근으로 널리 회향해/ 언제나 중생들을 버리지 않고 이롭게 하고/ 모든 중생에게/ 세상 비추는 가장 높은 등불 이루게 하네.)佛智廣大同虛空 悉了世閒諸妄想불지광대동허공 실료세한제망상(부처님 지혜 넓고 커서 허공과 같아/ 세간의 헛된 생각 모두 알도다.)80권 ‘화엄경’ 권제24 십회향품에 실린 게송과 이어서 나오는 두 구절은 ‘화엄경’ 권제80 입법계품에 실린 게송을 인용했다. 이 주련은 밀양 표충사 대광전, 김천 직지
속리산(俗離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상고암(上庫庵‧930m)에 30대 초반의 행자가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 주석하고 있던 성중 스님과 은사 인연을 맺은 후 굴 법당에 들어가서는 매일매일 지장기도를 올렸다. “내 시봉 그만해도 좋으니 큰 절로 내려가라”는 은사 스님의 당부에도 암자를 떠나지 않다가 3년여의 정진 끝에서야 법주사로 가 행자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보림(寶林) 스님이다.고향은 남해 용문사에서 가까운 남면 죽전(竹田)이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던 할아버지는 집안일 돕던 사람이 결혼하면 작은 땅이라도 떼어 주었을 정도
지난회에서 논의했듯 석가여래의 반열반은 남겨진 육신마저 태워버리는 ‘무여열반(無餘涅槃)’을 통해서 오히려 법신을 드러낸다. 이후 성당(705~781) 시기에 조성된 막고굴 148굴에서는 332굴의 경우처럼 주실의 중심에 자리했던 탑주를 세우지 않았다. 이로써 상대적으로 열반굴 내에서 탑이 갖는 의미가 감소하고 주존인 와불상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와불의 뒷벽에는 세존의 열반 후 입관에서 사리탑 봉안에 이르는 과정이 여전히, 오히려 더욱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점은 사리탑이 여전히 열반의 교의를 설명하는 주요 소재임을 보여준다. 9
千年石上古人從 萬丈巖前一點空천년석상고인종 만장암전일점공明月照時常皎潔 不勞尋討問西東명월조시상교결 불로심토문서동(천년의 반석 위에는 옛사람의 발자취/ 만 길의 바위 앞은 한 점의 허공이네./ 밝은 달이 비출 때면 늘 맑고 깨끗하거늘/ 괜히 동서(東西)를 물어서 찾느라고 수고롭지 않다네.)당대 고승으로 알려진 ‘한산시(寒山詩)’의 시문이다. 한산자(寒山子)는 중국불교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은자(隱者)로, 천태산에 머물며 나무와 바위에 새긴 시를 국청사(國淸寺) 스님이 편집했다고 전해지는 시집이다. 한산시에는 한산자의 시 300여수뿐 아니라
11세기 고려의 전형적인 중앙집권체제가 정비되고 문벌귀족세력이 등장하는 것에 상응하여 불교계에서 교종 계통의 화엄종과 법상종이 주류적인 종파로 대두하면서 (초조)대장경의 완간에 이은 불전 간행의 보완사업으로서 의천(1055~1101)에 의해 경·율·론 삼장의 주석서인 장소를 모은 교장을 간행하였다. 불교의 역사에서 최초로 동아시아 불교사의 업적을 집대성하는 의의를 갖는 불사였다. 그 간행 예정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1090)에는 원효의 저술 44부 87권(또는 83권)의 목록을 수록하였다. 그리고 의천은 경주의 분황사를 찾아
안산 도심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전달하는 보문선원이 개원 23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자리에 모인 사부대중은 보문선원이 앞으로도 지역주민들을 행복의 길로 이끄는 도량이 되길 기원했다.안산 보문선원(회주 보림 스님)은 10월3일 보문선원 법당에서 ‘보문선원 개원 23주년 기념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기념법회에는 보문선원을 개원한 회주 보림 스님을 비롯해 덕주사 주지 정진, 보문선원 주지 정암, 김포 연운사 부주지 원지 스님이 자리했다. 또 불교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구담 스님과 보문선원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강의하며 인연 맺
사유와 명상의 종교인 불교에서도 체험·영험담은 무수히 편찬돼 왔다. 가장 중요한 고대 역사서인 ‘삼국유사’에도 신비로운 체험들이 숱하게 실려 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불교사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이다.경전과 논서가 있음에도 이러한 문헌들이 편찬·유통됐던 것은 왜일까? 특별한 존재인 불보살이 아닌 나와 같은 사람들 진솔한 얘기가 더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 처음 발간된 조계종 신행수기 모음집은 옛 불교전통을 잇는 생생한 현대판 불교 체험·영험담이다. 신행수기 당선작이 불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는 것
돈황석굴 열반경변도는 북주 시대 조성된 428굴의 열반경변이 출현한 이후, 수대(隋代)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동일한 도상 형식을 유지하였다. 마치 이불병좌상이 ‘법화경’의 교의를 대표하듯, 오른쪽으로 돌아누우신 와불상(臥佛像)은 ‘열반경’을 대표하는 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일관된 형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당대(唐代) 측천무후 집권시기(698년)에 조성된 막고굴 332굴이다. 332굴 주실은 중앙에 4면 기둥을 둔 중심주식 석굴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은 돈황석굴 초기에 유행하였다가 감실에 불상을 조성하는 불전굴(佛殿窟)
오늘날 인류는 재난에 대비한 다양한 방재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그럼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지진, 홍수, 태풍, 가뭄, 전쟁, 전염병 등 재난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는 한다. 지금도 그러한데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은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했을까. 이런저런 자구책을 마련했겠지만 불교국가였던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인왕호국경(仁王護國經)’에 의지해 재난 극복을 기원하고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인왕호국경’이 오늘날 불자들에게 낯설 수 있으나 장구한 한국불교사에서 ‘인왕호국경’은 ‘법화경’ ‘금광명경’
‘누구나 가슴 속에/ 별 하나 만듭니다// 장미꽃 심어 놓고/ 나팔꽃 트럼펫이// 화단에/ 목화씨 몇 알/ 정성들여 심어봅니다//… 물레를/ 잣던 둘레길/ 무명옷이 그리워// 실 뽑아 한 올 한 올/ 마음을 열어가며// 사랑의 방방곡곡/ 원앙침 수놓으면// 찬란히/ 목화별 뜨는/ 밟아가는 산책 길’(홍정희 시 ‘목화별 산책’)대개의 사람이 화려한 장미꽃이나 개성 강한 나팔꽃을 좋아하지만, 시인은 어머니 품처럼 따듯한 온기를 전하는 목화를 선호한다. 사랑하는 꽃을 별로 승화시킨 시인은 오늘도 내일도 ‘찬란히 목화별 뜨는 산책길’을 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