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참선하는 스님과 우연히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선원장을 맡고 있는 스님은 의외로 현행 간화선 수행 풍토에 비판적이었다. 오늘날 한국 선원에서 스님들이 정진하는 방식은 어느 때부터인가 선의 본류에서 너무나도 동떨어졌다고 탄식했다.스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앉아있는 좌선 일변도의 수행 방식에 대해 지적했다. 선의 황금시대라는 당송시대 활동했던 수많은 선사들의 어록이 남아있지만 어느 곳에도 좌선을 강조하는 구절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우리나라 선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줬던 임제 선사의 상당법어 마지막 구절인 ‘구립진중
1999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인제 백담사에서는 제1회 만해축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국내외 저명 학자들과 조병화, 김남조, 유안진, 신달자 시인을 비롯해 만해 스님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는 이들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화려한 개막식과 함께 20세기 한국문학을 총 점검하는 대규모 심포지엄이 열렸고, 한국무용, 시낭송회, 장기자랑 및 퍼포먼스도 열렸다.이 행사가 향후 만해 스님의 사상과 문학을 세계화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찬사가 잇따랐다. 이러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소설가 조세희씨였다. 그는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표현한 소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겪게 되는 차별은 주인공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이어진다. 성인이 되어서도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학과 회사에서의 성희롱을 비롯해 육아를 홀로 감당하면서도 ‘맘충’으로 비난받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고단한 삶을 보여준다. 출간 후 이 책은 20~30대 여성들의 전폭적인 공감을 얻어내며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됐다.최근 이 소설의 영화화와 주연배
조성택 고려대 교수는 근대 한국불교 이해를 위한 새로운 키워드로 ‘딜레마’를 제시했었다. 조 교수에 따르면 유럽 식민지처럼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종교가 다를 경우 피식민자의 전통종교는 저항과 새로운 민족담론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지만 한국의 근대불교는 그렇지 못했다. 당시 선진적 근대불교의 모델로 인식됐던 일본불교를 따르자니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게 되고,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강조하다 보면 새 시대의 사회적 유용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딜레마에 직면했다. 더욱이 조선왕조는 500년간 불교를 억압했던 탄압자 성격이 강했고, 일본은 한국
‘부러진 화살’은 2012년 개봉한 영화다. 2007년 벌어졌던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의 석궁사건을 소재로 만든 법정스릴러다. 제작비 5억원의 예산으로 만들었지만 340만명이 영화관에서 관람했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영화는 실화에 바탕하고 있다.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교수는 대학 입시에 출제된 수학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고, 이로 인해 재임용 과정에서 탈락했다. 대학의 명예를 크게 훼손했다는 게 이유였다. 김 교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하고 항소심에서도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김 교
박보영 전 대법관이 원로법관으로 재임용돼 여수시법원에서 일하게 됐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고 있다. 고위직 법관이 일선으로 복귀해 재판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특별할 게 있을까 여길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원은 1995년 법조경륜이 풍부한 원로 법조인들이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의미로 시·군판사로 근무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해 왔다.그러나 이 제도의 실효성은 미미했다. 퇴임 대법관 출신이 원로법관에 지원한 사례도 없었다. 대법관 출신으로 대형 로펌에 들어가거나 변호사로 개업하면 수임료가 수백억 원에 이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불교학자들이 불교계를 대하는 유형은 크게 4가지로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첫번 째는 ‘분리형’으로 불교학과 불교계를 명확히 구분 짓는다. 많은 학자들이 속하는 이 유형은 자신의 학문과 불교(계)를 결부시키지 않고 연구 활동에 전념하는 경우다. 믿음이나 종교 체험이 객관적 연구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도 여긴다. 두 번째는 ‘수행형’이다. 불교학을 연구하는 동시에 출가자 못지않게 참선, 염불, 위빠사나 등 수행에 매진하는 경우다. 이들은 방학을 이용해 집중 수련을 하는가 하면 남방국가에 가서 직접 수행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한다.세
경허·만공선사 선풍을 잇는 덕숭총림 방장을 역임한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사면초가에 내몰리면서 눈길을 끄는 두 명의 스님이 있다. 전 옥천암 주지 정범 스님과 전 불학연구소장 허정 스님이다. 법랍은 정범 스님이 여러 해 많지만 두 스님 모두 1969년생으로 덕숭총림 수덕사가 출가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두 스님에게 설정 스님은 비록 은사는 아니지만 문중의 큰 어른이다. 그렇지만 이들 스님이 지금 설정 스님을 바라보는 관점은 물과 기름만큼이나 확연히 다르다. 종회의원 정범 스님은 설정 스님이 총무원장에 선출되면서 의도적으로 거리두
불교계가 연일 깊은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퇴진을 요구하던 설조 스님이 단식을 그쳤지만 여전히 조계사 인근에는 선정적인 구호와 피켓들이 난무한다. 몇몇 거친 이들의 입에서는 욕설에 가까운 말들이 쏟아진다. 현 총무원장은 물론 이제는 전 총무원장의 책임론까지 들고나온다. 수많은 비판의 언어들 중에는 사실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항의성 집회라는 성격상 특정 인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책임론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더라도 때때로 과도한 경우들이 없지 않다. ‘불자 300만 감소’ 문제도 그중 하나다.
조계종 제2교구본사 주지 성월 스님이 재임을 않겠다고 선언했다. 차기 주지후보 선출을 위한 산중총회 전날인 7월16일이었다. 지난 4년간 범계 의혹으로 불교계 혼란의 중심에 섰던 성월 스님이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이제 용주사 교구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성월 스님의 주지임기 4년은 어느 교구본사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온갖 시비와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시작은 2014년 7월, 성월 스님이 주지후보로 나서면서부터였다. 용주사 내부 문도회에 의해 승적을 위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호법부에
21세기 최고의 역경사라는 퇴현 전재성(66) 박사. 그가 이번에는 새로운 ‘앙굿따라니까야’를 선보였다. 지난 2008년 11권으로 출간한 ‘앙굿따라니까야’를 이번에 역주와 색인 등을 대폭 보완해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덕분에 초기불교에 관심 있는 불자들은 물론 전문 연구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한국빠알리성전협회장을 맡고 있는 전 박사는 우리시대 최고의 불경 역주가로 꼽힌다. 지난 30여년의 세월 동안 그는 새롭게 번역한 우리말 불경을 들고 늘 우리 곁을 찾아왔다. 전 박사가 지금까지 펴낸 책들은 원고지로 환산하면 수십
지난 6월24일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여성 운전을 금지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여성이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됐다. 여성운전에 반대하는 두 남성이 여성 소유 차량을 불태우는 일이 벌어졌다지만 이런 반발도 일시적일 뿐 성 평등 요구를 거스르기는 어려워 보인다.이와 함께 최근 미국 성공회 공동기도문 개정 논의는 종교계도 더 이상 성 평등 문제를 외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미국 성공회는 7월4일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총회에서 1979년 개정된 ‘성공회 기도서’의 개정안을 논의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기도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