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탁자 위에 낯선 봉투 두 개가 놓여 있다. 발송인은 동부경찰서이고 수취인은 내 이름이다. 놀라서 뜯어보니 제목이 길었다. ‘위반 사실 통지 및 과태료 부과 사전 통지서’.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이나 같은 장소에서 교통 법규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통보한 일종의 내용증명서였다.서너 달 사이에 벌써 대여섯 번째다. 위반 장소와 시간이 무미한 건조체로 적혀 있고, 아래 칸에는 벌금 액수가 볼썽사납게 박혀 있었다. 원인 제공의 현장은 바로 그때 그 자리였다. 남산 2호 터널을 나오자마자 녹사평역 방향으로 이어지는 지하차도 입구까지
코로나에 걸릴까봐 오는 것도 가는 것도 꺼려지던 시절을 뒤로 하고 여행을 떠났다. 지나는 길에 사찰에 들려 예불도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특별함으로 오는 여행이었다. 무작정 들렸던 주지스님의 방에 ‘休(휴), 억지로라도 쉬어가소’라는 글귀가 마음에 훅하니 들어왔다. 진심을 다해 객을 맞아주었던 스님의 환대에 오래 전 소임 시절 객들을 귀찮아하던 속 좁은 마음을 반성했다. 옛 기억 속에 쥐꼬리 같기도, 뱀이 똬리를 튼 것 같기도 했던 미시령 옛길을 새벽에 트래킹 했다. 미시령에서 바라본 울산바위가 여명을 받아 깨어나고 있었다. 이
정의(正義)는 사회와 인간, 인간과 인간 간에 발생한 다양한 문제를 어떻게 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다. 오랜 농업이나 유목 생활에서 점차 도시화와 국가체제를 만들어 오는 과정에서 정의의 문제는 더욱 첨예하게 대두되었다. 관계에서 발생한 도덕이 윤리로 승격되고, 윤리가 법으로 강화되면서 삶은 더욱 더 자율과 타율이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소한 시빗거리도 법에 의지하는 시대가 되었다.새 정부는 이러한 법을 다루던 사람들의 독무대가 되었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정부의 요직에 검
얼마 전 공직을 퇴직하고 귀향한 옛 동료를 만나러 경북 영주에 다녀왔다. 그와 함께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돌아본 뒤, 불현 듯 풍기읍내에 있는 작은 절 영전사 주지스님을 뵙고 싶다는 생각이 났다. 왜 갑자기 이 생각이 났을까.1994년 이른바 개혁불사 이후 조계종 포교원이 의욕을 갖고 1996년을 ‘불교청소년의 해’로 선언한 뒤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여 실행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파라미타청소년협회 출범이었다. 많은 분들이 전폭 지원해준 덕분에 파라미타는 빠르게 성장‧발전하였다. ‘캠프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1996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 공약(公約)들이 공약(空約)으로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그것을 사납게 비난하는 여론이 일고, 또 안 지킨다는 것이 아니라는 변명이 이어지는 진부한 정치적 행태가 일어나고 있다. 정치인의 말, 그것은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무거워야 할 것이다. 여러 사람의 앞에 나서서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겠다는 정치인의 말이 가벼우면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어떤 말보다 믿지 못할 것이 정치인의 말이라는 것이 우리 국민의 일반적인 정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행태들의 연장선에서 대통
고인(故人)이 된 어느 대통령이 ‘갱제’를 살리기 위해 ‘강간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시중의 놀림감이 된 적이 있다. 복모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대통령이 ‘경제’를 ‘갱제’로 ‘관광’을 ‘강간’으로 발음하는 바람에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몇 가지 발음은 여전히 잘 안 된다. ‘ㄱ’과 ‘ㄲ’, ‘ㄷ’과 ‘ㄸ’, ‘ㅓ’ 와 ‘ㅡ’, ‘ㅅ’과 ‘ㅆ’ 등을 분간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추장’은 ‘꼬추장’이고 먹는 ‘밤’은 ‘빰’이며, ‘성공’은 언제나 ‘승공’이고 ‘쌀’은 죽으나 사
20년 전 나는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다고 어떤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지구환경’이라는 거대한 일은 당장 나의 일이라기보다 누군가가 대신하는 사회운동쯤으로 여겼다. 다급하지 않았고 취사선택을 해도 되는 일 중에 하나였다. 지율 스님이 안동댐 지류인 내성천에서 환경운동을 할 때였다. 솔직히 나는 환경운동을 하는 스님이 궁금하기도 했고, 그냥 있기도 염치가 없어 방문한 적이 있다. 강가에서 사계절을 비닐 움막 하나로 추위와 더위, 해충,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협박 속에서도 굳건한 스님의 모습에 참 미안하기도 했고, 꼭 저
4월은 만물이 겨울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날이다.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목련과 벚꽃이 화려함을 더하고, 메말랐던 가지에선 연초록 잎이 앞다퉈 솟아난다. 신기할 뿐이다. 그러나 딱 100년 전 토머스 엘리엇은 그 유명한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고 읊었다. 인류의 지옥문이 열린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문명 파탄의 원인을 욕망에서 찾는다. 자본, 과학, 국가가 한패가 되어 지구를 황폐화하고, 절망의 비가 대지를 적시던 때다. 결국은
부처님이 왕사성에 있는 기사굴산에 계실 때, 당시 강대국 중 하나였던 마가다국의 왕이 작은 나라 밧지국을 침공할 마음을 먹고, 최종 결심을 하기 전에 부처님의 의중(意中)을 알아보려고 고위 관료를 사신으로 부처님께 보냈다.‘전쟁을 일으키면 승리할 수 있을지’ 확인하고, ‘혹 부처님이 강하게 반대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을 세우려 했을 것이다. 높은 산 위까지 힘들게 찾아온 고위 관리를 맞은 부처님은 사신에게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든가 “전쟁을 하면 승리할 것이다”라며 직설적으로 말씀하지 않고 대신 시자 아난다와 주고받는 대화를
오래전 워싱턴DC에 갔을 때 유인물·기록물을 모은 박물관에 들렀던 적이 있다. 여러 박물관에서 느낄 수 없었던 몇 가지 강한 인상을 받았다. 거기에는 미국 역사의 생생한 모습이 있었다. 그들이 지금 누리는 많은 것들이 어느 하나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대륙에 정착하면서 생기는 수많은 문제…. 그것들을 해결해 오면서 걸어온 미국의 생생한 자취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이 어렵게 이루어 온 것들을 수입해서 손쉽게 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수입해서 우리에게 맞게 정착시키는 동안 많은 세금을 치르기도 했지만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야당 후보의 대선공약을 듣고 짜증 비슷한 감정이 치솟았었다. 크고 작은 행사로 광화문 부근이 걸핏하면 통제되는 일이 발생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광화문 네거리는 출퇴근하는 버스의 정류장이 있는 곳이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개인의 ‘이익’은 공동체의 ‘대의’를 외면하기 마련인가 보다. 기껏해야 나는 ‘여럿’의 불편을 나 ‘혼자’ 불평하는 못난 중생에 불과했다. 대선이 끝나고 잠시 광화문 시대라는 말이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없었던 일이 되고 만듯하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
식상한 이야기지만 나는 5년마다 늘 새로운 대통령에게 그동안 숙제 같은 바람을 품었다. 지금까지 대통령들은 초심을 붙잡고 광대한 원을 세우지만, 지나고 보면 공약은 흐지부지, 내가 대통령에게 바랐던 것도 흐지부지되었다. 그리고는 같은 꿈을 새로운 대통령에게 꾼다. 물론 대의적인 공약들이 셀 수도 없이 많고, 각계각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들까지 줄을 섰다. 대통령이 출가사문인 나의 삶에 어떤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벌어지는 사회병리 현상과 여야를 떠난 편가르기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