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책에서 본 호흡 수행을 따라해 보면서 몸에서 물방울 같은 것이 흘러내리는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숨만 제대로 쉬어도 이런 현상이 생기는구나. 그렇다면 삶도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걸까?’하는 의문을 화두처럼 늘 마음에 품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인이 매우 곤란한 일이 있어서 힘들 때, 스님 법문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하며 스님을 친견하기를 제안했다. 그 스님을 찾아뵙고 삼배를 올리니 스님께서 “무엇이 궁금해서 왔는고?”하고 물으셨다. 나는 “제대로 된 삶을 살려면 어떻게 배
코로나19로 인한 비상사태로 우리 절의 모든 기도와 법회, 행사를 멈춘 지 벌써 두 달째입니다. 경전 공부반과 어린이, 청소년 법회까지 모두 중단된 상태입니다. 금방 지나갈 듯했던 혼자만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일상의 일들이 일상이 아니게 되자, 비로소 그 가치를 느낍니다. 봄꽃 소식이 들려오는데, 마음은 겨울 속에 멈추어 있습니다. 심리적인 고통이 심해지는 우리 절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일을 생각했습니다. 핸드폰으로 사시기도를 녹음해서 모든 신도님들께 톡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지난 관음재일에는 노트북으
음력 보름이면 늘 봉행하는 법회입니다만, 코로나19 때문에 각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동참하고 계신 불자님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법회에 참석하지 못해도 이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마음은 하나라고 봅니다. 어서 빨리 이 모진 질병이 사라지기를 부처님께 기원하면서 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질병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겪어온 재앙입니다. 인류 역사는 세 가지 고통과 함께 흘러왔습니다. 그중 하나가 질병입니다. 중세에도 흑사병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때는 병의 원인을 모르고 ‘인간이 죄를 많이 지으면 죽는다’고 생각해
새벽녘, 별 하나가 반짝였다. 그때 인도 부다가야(Buddhagayā) 보리수 아래서 정진하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았다. 이 땅에 붓다(Buddha)가 출현한 성스러운 순간이다. 부처님의 전도는 쿠시나가라 사라쌍수숲에서 열반에 들기까지 45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인도불교는 8세기에서 13세기 초 쇠퇴해가다 절멸했다.1891년, 스리랑카에서 부다가야로 성지순례를 온 재가불자 다르마빨라(Dharma pāla, 1864∼1933)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성보들은 도난·파괴되었고 일부 사원은 돼지사육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어린 시
“죽음이라, 누굴 위해 죽었으며 / 태어남이라, 누굴 위해 태어났단 말인가. 삶과 죽음 본래 오고감의 자취 없건만 / 애오라지 온 생명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네. 오는 것도 중생을 위해서 오고 / 가는 것도 중생을 위해서 가니 오고 가는 오롯한 한 주인공이여/마침내 그 어디에 머무는가.” (환향곡(還鄕曲) 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 스님은 조선 중기 때의 선승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전국의 승군들을 이끌고 나라를 구하는 고귀한 역할을 한다. 그는 왜 이렇게 생명 살상을 큰 죄업으
원광은 신라에서 일찍이 유학과 현학을 공부하고 제가서(諸家書)와 역사서(歷史書)를 섭렵하는 등 세속의 학문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25세 때 그러한 학문의 공부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문명국이라 일컬어지던 남조의 진(陳)에의 유학을 결심하였다. ‘속고승전’ 원광전에 의하면 원광은 진(陳)의 금릉(金陵)에 도착한 이후 이전에 가졌던 의문점들을 묻고 조사하면서, 요의(了義)를 탐구하였다. 그런데 원광은 남조의 발달한 불교의 교학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공부의 방향을 바꾸었다. ‘속고승전’ 원광전에서는 불교의 종지를 듣고 세간의 학문을 썩은
직장과 집으로 쳇바퀴처럼 바쁘게만 뛰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보니 나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자비로운 스님을 통해서 ‘삶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선물을 더 크게 받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정토사는 직장과 가정을 이어주는 나의 행복 에너지 충전소로 자리매김했다. 좋은 법우님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나 또한 좋은 법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그러한 노력을 거치면서 좋은 법우들과 함께 정진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108배와 성지순례로 건강도 되찾을 수 있었다.나는 그동안 억울함을 당하면 참을 수 없을 만큼 속상하고 화가
새해의 시작과 더불어 발생한 코로나 사태가 계속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2월23일에는 코로나19가 ‘심각’ 단계로 격상됐습니다. 3월11일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중국 후베이성의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국내의 경우 대구를 비롯해 청도대남병원을 거점으로 경북지역에 확산되었습니다. 이제 전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들썩이며 신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확산의 기폭제가 된 것은 31번째 확진자였던 신천지 교인이었습니다. 신천지는 개신교
요즘 한국의 상황이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저도 법문과 강의를 하는 정기법회를 모두 다 중단했습니다. 염화실, 문수선원뿐만 아니라 다른 사찰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코로나19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침묵하고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공부하고 기도하며 빨리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소참법문(小參法門)’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법회를 하나 개설했습니다. 소참법문은 모이는 대중이 없을 때도 할 수 있고, 한 사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수계식을 하고 법명을 받았던 그날, 지난 2016년 겨울 울산 정토사의 불교 기초교리반 1기 수료식이 떠오른다. 집 근처에 위치한 정토사를 찾아 당차게 기초교리반의 문을 두드렸지만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며 불교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평소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요구했다.그나마 기초교리를 배울 때는 일단 지각을 하더라도 결석은 하지 말자는 각오였다. 수업을 마칠 시간에 겨우 사찰에 도착한 적도 수차례였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이날 수료식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스스로가 얼
오늘은 음력 2월 초하루 법회일입니다. 문명의 발전 덕분에 실시간 유튜브 방송이라는 색다른 방식으로 법회를 한다는 것은 발전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것이 우리의 자의적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적 재난인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방지를 위해서 진행된다고 하는 것은 큰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역시 법문을 하기 위해 이 법좌에 올랐습니다만 사실 굉장히 어색합니다. 그 어색함을 딛고 오늘 몇 가지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절이라고 해서 부처님이 계시고, 가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공양게 전문)공양은 존재와 직결된다. “일체의 제법은 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식(食)에 의존하지 않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일아함경’도 설하고 있을 정도다. 하여 산사에서는 채소 다듬고, 국 끓이고, 밥 짓는 일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뤘다. 채공(菜供), 갱두(羹頭), 공양주(供養主)의 정성이 배인 음식은 각기 특성이 있기에 사찰마다 다양한 맛을 창출해 왔다. 절만이 간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신라 교학승의 자료만을 따로 모아 놓은 ‘의해(義解)’편에서 원광전을 가장 먼저 싣고, ‘속고승전’과 고본 ‘수이전’의 원광전의 전문을 그대로 전재하였다. 그밖에 일연은 ‘삼국사기’의 관련 자료, 운문사 등에 전하는 고문서, ‘해동고승전’ 원광전 등의 원광에 관한 자료들까지 총망라하여 검토하고 종합해 주었다. 그 결과 원광에 관한 자료는 오늘날 신라의 승려 가운데서 비교적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원광의 행적과 사상에 대한 이해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학
참회의 절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 경남 하동 칠불사로 성지순례를 갔을 때였다. 당시 지금은 입적하신 통광 큰스님께서 법문으로 참회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 법문을 들으며 나도 참회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참회하며 절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오게 되었다. 가족과의 갈등이 생기더라도 매월 말일 참회의 108배를 하며 반성을 했다. 절을 할 때는 정신을 집중하여 전심전력으로 했다. ‘언제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참회합니다.’ 하며 절을 하면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참회할 일이 많다 싶으면 연말에 모아서 다시 참회의
연일 코로나19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서울 시내의 모든 복지관이 잠정 휴관을 하고 있다. 우리 복지관도 예외는 아니어서 비록 어르신들은 안 나오시지만 직원들은 출근해 일을 하고 있다. 매일 소독을 하고 마스크 착용을 하고는 있으나 마스크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르신들께 드리는 것도 넉넉하지가 않아 걱정이다. 더불어 사회활동지원사업에 참여하시는 어르신들도 걱정이 된다. 한 달에 30시간을 일하고 받는 보수가 있는데 코로나19로 일을 못하게 되니 받으실 보수도 없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이
나이 칠순을 맞이하여 선방에서 더 정진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문경 봉암사를 시작으로 해남 대흥사, 백담사 무문관, 내연산 보경사, 오대산 상원사에서 정진하다 보니 어느덧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선방에서 40·50대 스님들과 나란히 앉아 한 치의 틈도 없이 짜여 있는 일과 속에서 지내니 힘이 들기도 했지만 규칙적인 생활은 수행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번 안거 때 제가 간략하게나마 쓴 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하얀 눈을 밟아본다. 눈은 소리도 없이 나를 맞이한다. 눈이 내리면 무작정 좋아서 온 동네를 뛰어다니던 어린 시
24살 때 즈음으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께서 절에 다니시는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결혼 후 ‘나도 절에 가고 싶다’는 원을 갖게 되었다. 마침 이웃의 보살님께서 부산 사하구 당리동에 있는 관음사에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함께 가고 싶어요”하며 반가움에 말씀을 드렸다. 마침 다음 날이 음력 보름이니 같이 가자고 하는 보살님을 따라 관음사에 첫발을 딛게 된 것이 어느새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의 이야기가 되고 보니, 세월의 흐름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불교 교리와 예절도 몰랐지만, 사찰을 향하는 발걸음은 마냥
가히 세기말적 상황이라 해야 할 것 같다.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사망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경각심이 더해만 가고 있다.균과 인류와의 싸움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다. 누군가는 하루 자살자가 40여명으로 OECD 국가 중 최고로 높은 것을 빗대어 ‘너무 호들갑 떠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이런 비교로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놀란 마음을 쉬이 진정시키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인류 전체는 바이러스의 공포를 유전자 속에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 바이러스에 의한 집단적 사망
‘막막한 세상의 끝/ 천지에 더 이상 갈 곳이 없고/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홀로/ 돌담을 마주하고 선다/ 조용히 돌거울을 들여다보면/ 거기 내가 길이 되어 누워있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한 줄기/ 길이 되어 외롭게 누워있다.’(김영석 시 ‘돌담’ 전문)가끔, 새벽녘에 일어나 담 너머를 우두커니 바라보곤 했다. 마을 제일의 부호로 소문난 집안이었지만 아버지가 별세한 직후부터 살림은 급격히 줄어들어 갔다. 이 형편대로라면 7남매의 막내인 자신에게 돌아올 몫은 고사하고 중·고등학교 입학도 장담할 수 없을 듯싶었
어느덧 미타선원 명상 지도사 과정은 나에게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전생부터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알게 모르게 쌓여 있던 바르지 못한 습관들이 ‘나’라고 믿으면서 어리석음을 무한 반복하며 살다 보니 업은 누구보다 두터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명상을 통해 그러한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맑게 깨어있음을 당부해 주신 스님과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는 수업을 매 순간 열려 있는 마음으로 동참하는 것에 집중했다. 생각과 고정된 관념을 시나브로 내려놓게 되면서 ‘나’ 스스로에게 위로받고, 용서하며 정화와 치유를 하는 과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