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좌부불교의 팔리율은 계체를 색법으로 보기에 신업과 구업으로 행위가 밖으로 드러나야 규제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계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준수하되, 계문에서 언급하지 않으면 제한할 방법이 없다. 물론 상좌부불교에서도 법답게 수행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어떤 이들은 계문에 술을 먹지 말라는 조항은 있지만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조항은 없으므로 흡연은 규제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담배나 빈랑을 사용하고 문신하기도 한다. 심지어 신도들이 스님들에게 담배를 권하기도 한다.2013년 불교평론 53호에 실린 깜맛사까 스님의 논문 ‘한국
한 승이 용아에게 물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용아가 말했다. “돌 거북이[石烏龜]가 말을 하면 그때 이야기해주겠다.”용아는 용아거둔(龍牙居遁, 835~923)으로 강서성 무주(撫州)의 남성(南城) 출신이다. 성은 곽(郭)씨이고 14세 때 강서성 만전사(滿田寺)에서 출가하였다. 숭악(崇岳)으로 가서 구족계를 받고 제방을 유행하였다. 이후 취미무학(翠微無學), 향엄지한(香嚴智閑), 백마둔유(白馬遁儒), 덕산선감(德山宣鑒) 등을 참문하였고,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을 이었다. 호남성 마(馬)씨의 청을 받아 용아
지난번에는 세계적 대유행(pandemic)과 같은 세계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적 대안은 ‘보살의 이타행(利他行)’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그 연장선상에서 보살의 이타행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보살의 이타행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나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점차 확대되어 나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는 이타의 마음으로 성숙된다.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종교와 윤리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
어린이날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애니메이션 중 ‘머털도사’가 있었는데, 아마 어른들도 많이 보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당시 ‘머털도사’를 본 어린이들은 이미 어른이 되었겠습니다. 줄거리의 자초지종은 생략하고 머털이라는 도사가 가진 도술의 핵심만 말해 본다면, 머털도사가 머리털을 세우면 자기 몸을 자유롭게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머리털이 불에 다 타고 없어지는 사연을 겪기 전까지 본인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것은 스승이신 누덕도사에게서 익힌 것이었습니다. 오랜 고난 끝에 머털도사는 다시 자라난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 거
이보다 전면적이고 무차별적인 전쟁은 없다. 그렇다고 총과 대포로 섬멸하는 적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류는 지구의 탄생 이래 최초로 하나가 되어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방어전을 펼치고 있다. 적이 가진 무기는 취약한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것뿐인데도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인류가 쌓아올린 지식은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더구나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몰락으로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쾌재를 부른 사람들은 이 비참한 현실에 어떤 처방을 내릴 수 있는가. 자본의 탐욕이 개척한 신자유주의의 루트는 그야말로 대유행의 통로가 되
전통사찰을 보는 즐거움 만큼 새로운 사찰 건축물을 찾아보는 즐거움 또한 크다. 어떤 나라 어떤 지역에 가더라도 그곳의 건축물은 항상 우리의 흥미를 이끌어낸다. 건축물은 그 시대 그 지역 사람들의 ‘생각을 담아내고 있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그 ‘생각을 담고 있는 건축물’을 찾아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로마 종교건축물과 그리스 종교건축물을 대비해보면 ‘노블’과 ‘심플’의 미학이라 할까?20세기 건축은 오히려 로마보다는 그리이스 건축이 기초가 되고 있으며, 나아가 로마·그리이스의 만남을 통해 화해·융합·다양성을 받아
용주사 삼불회도를 둘러싼 논쟁은 작가가 누구인가의 문제와 이 그림이 언제 그려졌느냐의 문제가 서로 맞물려 있다. 김홍도 작품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는 이 불화가 용주사 창건 때의 작품이 아니라 19세기말 이후 작품이라는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면 김홍도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1790년 용주사가 세워질 당시의 불화라는 견해는 양립될 수 없을까?지금까지의 정황으로는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1790년에 놓고 보면 너무나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이고, 또한 함께 작업한 화승들의 작풍에서는 이러한 스타일이 보이
재일조선인 1세들의 처절한 생존을 상징하는 음식이 ‘호르몬(ホルモン, 곱창)’이다. 일본인이 먹지 않아 버리던 호르몬을 가져와 1세들은 가게를 열어 척박한 환경에서도 삶을 개척해 나아갔다. 이렇게 정착하여 형성된 곳이, 지금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오사카 츠루하시(大阪 鶴橋)의 코리아타운이다. 그러나 이곳이 생긴 배경이 우리의 슬픈 역사와 관계 깊다는 것을 많은 이들은 알지 못한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희생자와 그들의 가족과 후손들이 터를 잡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뿐.재일동포 가운데는 제주도 출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오사카
루드비히 반 베토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작곡가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주저 없이 그의 이름을 생각해 낼 것이다.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청력상실을 딛고 일어난 불굴의 의지 표상이기도 한 베토벤은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도 그의 이름은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고, 모르는 사이에 그의 음악을 들으며 생활하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 레퍼토리 또한 베토벤의 작품들이다.베토벤의 9개 교향곡, 16개의 현악사중주,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등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모두 그의 인생 굴
세친이 ‘섭대승론석’에서 삼신과 삼덕을 상응시키면서 보신(報身)은 언급하지 않았음을 전회(前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법신의 단덕, 응신의 지덕, 화신의 은덕으로 설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보신의 덕행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삼신은 법신과 보신과 화신을 일컫고, 사신(四身)이라 할 때 응신까지 포함시킨다. 삼신의 보신이 누락되어 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넓은 의미에서는 화신에 응신을 포함시켜 이해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화신과 응신은 구분된다. 진호국가(鎭護國家) 경전으로 신라와 고려에서 존숭된 ‘금광명최승왕경’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분류하고 떼어내고 하나씩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과학적’ 사고방식에 굳게 붙잡혀있는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은 난해한 조언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연기성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나와 남을 먼저 상정하고 그 둘의 관계를 살피는데, 그 방법으로는 나와 떨어진 남, 남과 떨어진 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때까지 가야 할 길이 지난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뿌리박힌 익숙한 사고방식을 내려놓는 데서부터 제대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신라 경덕왕 때의 일이다. 서라벌 한기리(漢岐里)에서 살고 있는 ‘희명(希明)’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있었다. 희명은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 아이는 갑자기 눈이 멀었다.희명은 눈이 먼 아이를 안고 분황사(芬皇寺)에 갔다. 벽에 그려진 천수천안관세음(千手千眼觀世音) 앞에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어 아이에게 소원을 빌게 했다. “즈믄(천)손 즈믄(천)눈을 가지고 계신 관세음보살님! 당신은 눈이 천개인데 우리 아이는 한 개도 없습니다. 한 개도 없는 우리 아이에게 눈 하나만 주세요.”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 중
“불도(佛道)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배우는 것이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는 것이다. 자기를 잊는다는 것은 만법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다. 만법에 증명된다는 것은 자신의 신심(身心) 및 타인의 신심을 탈락(脫落)하는 것이다.”(‘정법안장’) 위 글은 일본 조동선(曹洞禪)의 개조(開祖) 도겐(道元) 선사의 선어다. 불도를 배우는 불자로서의 삶이란 자기를 잊는다는 것인데, 그것은 나와 타자의 몸과 마음이 무아로 비워져 자기를 벗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벗어나고 자신의 마음을 잊는 것이다. 나로부터의 해방이다. 그것은 달리
원광이 귀국한 진평왕 22년(600) 즈음 고구려・백제・신라 관계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백제는 30대 무왕(600~641)이 즉위하면서 46년 전 성왕이 피살된 후유증에서 벗어나 새로운 중흥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신라에 대한 침공을 재개하여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원광에게 세속오계를 받았던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 전사한 것도 진평왕 24년(602)의 아막성(阿莫城)의 전투에서였다. 한편 고구려는 26대 영양왕(590~618)이 즉위하여 말갈병을 동원, 요서지역을 침공하는 한편 남쪽으로 백제와 신라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였
오랜 전통이 있는 각 나라나 지역에는 사람들이 따르는 관습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을 좋게 표현하면 ‘전통’이라고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지켜져야 할 전통과는 무관하게, 일종의 믿음체계처럼 받아들여져 행해지는 행위들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말을 한다. 그것을 왜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묻지 않고 맹목적으로 행위 한다. ‘디가니까야’에는 ‘싱갈라를 가르치는 경(Siṅgālovādasutta)’이 있다. 한역으로는 ‘육방예경’ 등으로 전한다. 이 경전은 한 장자의 아들인 싱갈라가 매일 육방으로 예경하는 모습
제6 정신희유분의 후반부에서 부처님께선 말세라도 이미 많은 선근을 쌓은 중생은 ‘금강경’을 읽으면 깨끗한 믿음을 낼 것이라 말씀하시며 그 이유로 그러한 중생은 4상(四相)이 없음은 물론 법상(法相)이나 비법상(非法相)도 없기 때문이라 말씀하신다. 4상은 앞서도 언급하였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을 것인데, 법상과 비법상도 그에 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4상을 ‘아뜨만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생각이 아상이요, 뿟갈라를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생각이 인상이며…’라고 풀이하는 것처럼 법상과 비법상을 풀이해본다.어떤 이들은
행위양식(Doing Mode)의 삶이란 실제의 세상과 우리의 주관적 생각이나 바람 사이에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상정하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판단내리는 것이다. 이때 마음은 자신의 생각과 이미지를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생각이 곧 실체라고 착각하며 실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살지 못하고 머릿속 생각의 세계에 살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삶의 많은 긍정적인 부분을 놓치게 되고 삶 전체가 점차 기계적으로 굴러가는 자동화모드에 빠지기 시작한다. 심지어 우리의 생각과 느낌, 감각뿐 아니라 타인 또는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 또한 자동화시킨
14장 본문은 “‘참선’은 세 가지 요지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대 신심이고, 둘째는 대 분심이며, 셋째는 대 의심이다. 만약 하나라도 없으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이 마침내 그릇이 될 수 없다”이다.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가 ‘선요’에서 ‘참선’의 요지를 밝혔다. ‘믿음’은 ‘불조’의 가르침이 자신의 인식과 감정적 행동을 ‘향상일로’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분심’은 내가 왜 미혹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가? 반드시 ‘불조’같이 깨닫겠다는 의지다. ‘논어’에서 ‘간절한 마음’과 ‘영리한 사람’만이 지도 받을
승이 양산에게 물었다.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양산이 말했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양산은 북송대 조동종의 양산연관(梁山緣觀)이다. 그 법계는 동산양개 - 운거도응 - 동안도비 - 동안관지 - 양산연관으로 조동종의 제5세이다. 호남성 낭주(朗州) 양산(梁山)의 관음사에 주석하였다.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불법의 궁극은 언설로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분별심으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는 심행처멸(心行處滅)이므로 어떤 언어나 사유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다. 그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나쁜 의도를 갖는 고의적으로 저지르는 악한 경우도 있으나, 생활 속의 대부분의 실수는 우리의 부족함에 의해 의도치 않게 생겨난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생기는 실수나 운전 중에 끼어들기를 하거나 주차를 하다가 생기는 실수 등 우리는 수 많은 일상 속에서 여러 실수와 만나며 항상 무언가 부족함이 가득한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른 이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좋아지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배우고 익힐 수